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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한 달 내에 구파일방 장문인, 십이율 문주, 황제에게서 소매치기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일단 그들 중 나보다 무공이 높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오히려 정면으로 붙으면 다 쉽게 이길 자신이 있었다.
다만 그 것과는 별개로, 소매치기는 무력이 아니므로 고민을 하게 했다.
고수에게서 훔친다.
그건 상당히 어려운 일인 것이다.
일수탈금을 대성한 후 낙양의 수많은 행인에게 소매치기를 시전해서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나, 그 들 모두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이었다.
고수일 경우 당연히 내공으로 기력이 강화되어서 모든 신체 능력이 높은데다,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감각을 속이고 훔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무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자기만의 [영역]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감지영역 내에 들어가는 모든 게 의심의 대상이 되고 만다.
나는 고민하다가 일단 며칠 정도는 도둑질에 대해서 정보를 모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검마를 찾아가서 상담했다.
"강호의 유명한 도둑을 알려달라고?"
"네. 그렇습니다."
우선은 강호에서 도둑으로 유명한 전문가들이 어떻게 사는지부터 알아야겠다.
개방에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개방방주 또한 내 목표중 하나였으므로 쓸데없이 정보가 흐르는 건 피하고 싶기에, 아군인 검마를 찾아간 것이다.
"흐음... 엉뚱한 일을 생각하고 있나 보군. 내가 그런 정보를 알 거라고 생각하는가?"
"마도팔문의 수장이나 다름없으시니..."
"하긴 그렇군."
쓴웃음을 짓던 검마가 입을 열었다.
"현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도둑이라면 단 두명이 있지."
"두 명이라고요?"
"한명은 백면신군(白面神君) 방류향(芳柳享)일세. 이 자는 정사중간의 괴인으로써 역용술에 있어서 강호제일이라 할 수 있지. 그 역용술을 살려서 큰 도둑질을 몇 번 해냈어. 다만 이 자는 도둑질은 겸사겸사 할 뿐, 제 맘대로 사는 강호인에 가깝네. 무공수위는 절정지경이니 상당한 인물이지."
"흐음."
"또 한명은 쾌영(快影).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자는 현 강호에서 제일 뛰어난 특급도둑일세. 듣기로는 관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거 같던데 관부에서 키운 비밀요원일지도 모르겠군."
"쾌영이 제일 뛰어나다고 단언하시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100회의 크고 작은 도행을 하면서 이름도 얼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누구도 그에게 한 칼을 먹이지 못했네. 도둑질을 실패한 적도 없었지. 이 자는 대단한 실력자야."
"으음..."
"문제는 쾌영이 사적인 청부를 받지 않는다는 거겠지만. 이 자는 오로지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서 도둑질을 하는 듯 하네. 금전도 목적이 아닌 듯 하군."
생각보다 강호에는 기인들이 많은 듯 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검마에게 말했다.
"백면신군 방류향이나 쾌영과 만날 수 있겠습니까? 도와주십시오."
"내가 어찌 도와줄 수 있겠는가?"
"무영문의 주인이시니까요."
내 말에 검마가 껄껄 웃더니 말했다.
"하하! 그 말대로일세. 쾌영은 모르겠지만 방류향은 자네에게 소개시켜줄 수 있지. 이로써 자네에게 혜아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셈인가."
나는 검마의 소개장을 받아서 그가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방류향은 무영문이 있는 곳에서 무려 육백 리나 떨어진 이름 없는 산골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외각의 오두막에 찾아가자, 누군가가 나를 멀리서 감시하며 서성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육합전성을 보냈다.
[백면신군인가? 검마의 소개장을 받고 온 사람이오.]
스슷
백면신군은 기척을 드러내었다. 그는 삼십대 후반 정도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잘생긴 사내였다.
백면신군이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보다가 손을 내밀었고, 그에게 소개장을 건네주자, 백면신군은 소개장을 읽더니 말했다.
"무영문의 하나뿐인 인장이니 확실하군. 검마 어르신에게 구명 받은 후 은거해서 살며 그 분의 부탁은 뭐든 들어드리려 했는데... 당신을 통해 검마 어르신께 은혜를 갚을 수 있는가?"
"그렇소."
"이해가 안 가는군. 육합전성을 쓸 수 있으니 그대는 자신의 무력만으로 뭐든 하고 싶은 걸 하며 살 수 있을 터인데, 어찌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자를 찾아왔는가."
그 또한 절정고수답게 한눈에 내가 무력을 판별한 듯 했다.
당연히 두려움이 느껴질 텐데도 앞으로 나온걸 보면, 검마에게 진 목숨의 빛이 그만큼 큰 듯 했다.
"나는 그대에게 도둑질의 도를 물으러 왔소."
내 말에 백면신군 방류향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도둑질의 도...?"
나는 백면신군 방류향에게 백변신투 비급을 보여주고는 현재 내가 놓인 상황을 설명해 줬다.
방류향은 내 말을 다 듣고 나서 백변신투의 비급을 약 반 시진동안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는 불쑥 말했다.
"당신, 백웅이라 했었지. 혹시 여기 있는 무공을 다 익혔소?"
"그렇소."
"으음... 고수한테서 일수탈금으로 도둑질을 한다라."
백면신군은 낭패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게 은화 몇 덩이를 던져주었다.
"그 은화를 소매에 넣고 뒤돌아서 천천히 걸어가 보시오."
내가 백면신군이 시키는대로 하자, 백면신군이 등 뒤에서 슬며시 다가오더니 스치듯 내 옆을 지나갔다.
그리고 그가 내 소매의 은화를 어느 새 훔쳐가 소매에 들면서 말했다.
"당신의 무공수위로 볼 때 내가 훔치는 순간은 당연히 알아챘을 것이오.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이런 잔재주로 고수의 감각을 속이는 건 불가하지."
"그렇소."
"방금 내가 쓴 건 그 책에 있던 일수탈금의 수법이오. 하지만 그건 시중의 도둑질이 몇 년 동안 체득해온 요령의 결집체에 가깝고, 특별한 뭔가가 아니오. 그래서 그 일수탈금으로 절정지경 이상의 고수를 상대로 소매치기는 불가능하오."
"당신은 절정지경 고수를 상대로도 도둑질을 몇 번 성공했다고 들었소만."
"그건 소매치기가 아니라 내 역용술을 이용해서 요새 같은 전진에 침투해서 몰래 훔친 것이오. 다른 영역의 일이오."
그렇게 말한 백면신군이 말했다.
"차라리 당신의 무공으로 장문인을 기습해서 점혈시키고 빼앗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구려."
"그건 소매치기가 아니라 강탈이잖소. 그건 도둑이 아니라 강도요."
"그렇긴 하오만..."
"좀 방법을 생각해주시오. 검마는 자기가 아는 강호의 괴도 중 당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했었소."
"......"
그러자 백면신군은 오기가 생긴 표정이 되었다.
물론 내가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말이었지만 백면신군의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충분한 듯 했다.
백면신군은 고개를 숙이고 아주 깊게 생각하다가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했다.
"좋소. 내 비장의 술법을 가르쳐주지."
백면신군은 자기 집에 들어가더니 뭔가를 꺼내왔다.
흐물흐물한 가죽 같은 거였는데, 얼굴에 쓰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보자마자 말했다.
"이건 면구(面具)군."
가면처럼 자신의 얼굴을 가장하기 위해 만드는 도구.
사실 가면을 바꾸는 기술을 연마하는 건, 면구를 빠르게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렇소. 상등품이지."
"인피면구요?"
"그렇지 않소."
"면구를 쓰면 역용술은 보다 자연스러워지고 완전해진다는 건 알고 있소. 면구를 써서 역용술을 연습하라는 것이오?"
백면신군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당신도 용백변을 수련해서 알겠지만, 사실 역용술은 경지에 달하면 순식간에 외모를 바꿀 수 있소. 근골을 당기는 속도를 가속시키는 거지. 가면을 쓰면서 연습하는 이유는 머릿속에 그 심상을 떠올리며 심상에 결과를 맞추는 것. 그리고 그 가속이 또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슈슈슉!
".....!!"
"이런 것도 가능하오."
나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백면신군이 겨우 두 걸음을 걷는 사이에 완전히 아리따운 여자로 변해버린 것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수준의 역용술이었고 차라리 변신술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단시간에 몸 전체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한거요? 변신술인가?"
"변신술이 아니오. 이것이 본문에 전해지는 일자상전의 비기, 변태술(變態術)이오! 면구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비기로써, 보통 어깨 위만 바꿀 수 있는 역용술의 가속을 면구로 더욱 가속시켜 순간적으로 전신근골성형이 가능케 하오."
"목소리도 완전히 여성이구려."
"물론 성대도 바꿨으니까... 지금은 근육과 근골 전체가 여성이오."
대단한 기술이다!
나는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런데 비기 이름이 좀 이상하구려."
슈욱
백면신군의 용모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보다시피 이 술수는 비기이기 때문에 오래 쓸 수 없소. 근육과 근골을 응축시키는 게 몸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오. 그래서 도중에 비기가 풀려서 원래대로 돌아온 게 들킨 경우가 있었는데..., 근데..., 여자로 변신하는 게 도둑질하면서 제일 허를 찌르기 좋았기에... 여자 옷에서 원래대로 돌아오니까 좀..."
백면신군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 변태소리를 들었구려."
"뭐 선대부터 종종 있었던 일인지라 그냥 체념하고..., 중의적으로 지은 것뿐이오."
"......"
어감은 안 좋지만 확실히 대단한 기술이다.
변신술은 굉장히 어려운 술법이라서 대성하려면 뛰어난 술법사의 역량을 가져야 했기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 변태술을 쓰면 단시간이긴 하지만 변신술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백면신군의 말이 이어졌다.
"사흘이면 족하니 당신에게 변태술을 전수하겠소. 원래라면 1년은 걸리겠지만 당신은 용백변을 꽤 뛰어난 수준으로 성취해서 역용술과 변면술의 기초가 다 되어 있기 때문이오."
"그 비기를 써서 소매치기를 하란 말이오?"
"그렇소. 구파 장문인급 고수에게 소매치기를 할 방법은 그것뿐이오."
백면신군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당신 정도의 초고수라면 아주 찰나동안 상대의 인지영역을 뛰어넘는 극속을 써서 아예 눈치도 못챌 정도의 '한 순간'을 만드는 게 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그 '한 순간'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변태술로 틈을 만드는 거요! 가까운 인물로 근처에 파고드는 수법으로!"
"으음...!!"
"참고로 구파일방 장문인 수준의 초절정고수에게 소매치기를 성공한 도둑은 강호역사상 한 명도 없었소. 대륙 도둑의 긍지를 걸고 부디 성공하길 바라겠소."
나는 백면신군에게 변태술을 전수 받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 비기는 역용술, 면구 사용법, 변면술 등이 모두 숙련되어야만 익힐 수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의 말대로 나는 기초가 되어있었기에 사흘은커녕 이틀만에 다 익힐 수가 있었다.
백면신군이 내게 인피면구를 건네주며 말했다.
"내 면구를 가져가시오."
"당신도 써야 하잖소."
"내 평생에 변태술을 타인에게 전수한 건 당신이 처음이오. 당신에게 본문의 맥을 넘겼다고도 할 수 있으니, 부디 잘 써주길 바라오. 난 이제 도둑질에서 은퇴하겠소."
"......"
빚이 좀 더 늘어난 기분이다.
나는 백면신군에게서 면구를 받고, 시험삼아서 다시 낙양으로 간 후, 이번에는 잠복해 있다가 낙양 철혈문의 문하수련생들을 지켜보았다.
'저 녀석들은 일, 이류급이라 할 수 있지. 저놈들을 상대로 내 소매치기가 통하는지 먼저 알아봐야 겠...어?'
나는 낯익은 놈을 발견하자 눈에 이채를 띄었다. 그리고 철혈문에서 걸어 나오는, 삿갓을 쓴 초로의 고수를 주시했다.
'귀영검객 진평, 오랜만이다.'
예전에 내 목을 벴던 놈!
나는 일단 평범한 외모의 여자로 변태술을 쓴 후 재빨리 여자옷으로 갈아입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에서 진평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진평 바로 옆에 도달한 시점에서 나는 뇌신류 비기를 발동했다.
뇌명(雷鳴)!
일시적으로 내 신체능력이 극대화 되었고, 나는 그 찰나에 내 몸의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시키면서 일수탈금을 시전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진평의 소매에 있던 은화와 금전을 쥐어서 가지고 나왔다.
될까?
저벅
나는 그렇게 세 걸음을 걸어갔음에도 진평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없음을 알아챘다.
그리고 열 걸음을 걸어갔는데도 무반응이었고, 인파 속에서 진평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약 백여 걸음이 지나자, 나는 근처 골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는 변태술을 풀었다.
"크크크...."
된다!
귀영검객 진평 같은 절정고수도 눈치 못 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대로 가장 가까운 구파일방 화산파로 가서 장문인이 거처하는 곳을 살폈고, 장문인과 가장 가까운 문하제자의 모습을 예의주시하다가 그 자를 몰래 때려눕혔다.
그리고 옷을 뺏어 입은 후 그 자의 모습으로 변태술을 시전했다.
그리고 화산파 장문인을 따라다니는 척 하다가 다시 한 번 뇌명을 써서 일수탈금으로 소매치기를 했다.
소매치기한 물건이 빠르게 내 소매로 들어갔다.
파밧
좋아 훔쳤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화산파 장문인 앞을 나온 후 옷을 갈아입고는 전리품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뜻밖의 물건이 내 소매에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
"앗...! 이것은..."
화산파의 장문영부?!
장문인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문영부였다.
어떤 의미로는 금은보화보다 더 귀중한 것이었는데, 문파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늘 직접 갖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이게 있으면 각지의 화산파 제자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큰 물건을 훔치자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다가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 어때...'
이런 영부 쪼가리가 내 수련보다 중요할 순 없지!
나는 이후로 종남파, 청성파, 점창파, 곤류파, 아미파 등을 돌면서 계속 장문인의 소매를 훔쳤다.
원래라면 아미파가 여인들이 많은 문파라서 곤란했겠지만, 변태술은 여자로도 변신이 가능했으므로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다.
개방방주 또한 무공이 별 볼일 없는 놈이라 훔치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거지로 분장하기가 꽤 고역이었다.
종종 장문영부가 섞여있기도 했고 금은보화도 꽤 있었다.
그렇게 무당파와 소림사, 황산파만을 남기고 모두 훔치는데 성공하자 나는 고민에 빠졌다.
'무당파 장문인은 꽤 쎈 놈... 소림사 장문인도 그렇고... 황산파는 용중일이군.'
무당파와 소림사 장문인들은 모두 한가락 하는 놈들이었다.
이놈들은 초절정의 반열 중에서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있어서, 근처에 접근하는 것으로도 부담일 수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대문파를 대표하는 기인인 명룡자와 신승이 심혈을 다해 키워낸, 정파의 대표고수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용중일은 환생자이며 현재의 나조차도 쉽게 이길 수 없는 강력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
지금 절대지경일지 어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추구하는 사신검형의 수준으로 볼 때 결코 용중일한테 소매치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리라.
"에라이, 간다!"
나는 눈 딱 감고 무당파와 소림사로 돌격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별다른 탈 없이 소매치기를 성공했고, 황산파만 남기게 되었다.
"......"
이제보니 초절정고수 감각속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거 아닌가?
뇌명과 내 엄청난 내공이 결합되어서 만들어내는 순간속력은 생각보다 더 빠른 듯 했다.
나는 큰 자신감을 갖고, 구파일방 최후의 도전인, 용중일 소매치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나는 용중일을 수행하는 황산파 사대장로 중 한 놈을 때려눕힌 후, 그 모습으로 변태술을 써서 용중일 근처로 갔다.
용중일은 황산파 인근의 호수를 거닐면서 사대장로의 수행을 받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산책을 하려는 듯싶었다.
용중일은 한참을 걷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장로들. 요즘 재밌는 소문이 들리더군."
"어떤 소문 말씀이십니까?"
"구파일방 장문인들이 누군가에게 소매치기를 당해서 장문영부를 잃어버렸다는 소문인데... 요 며칠 새에 강호에 새로운 신투(神偸)가 나타난 듯 싶네."
"그런 일이...!!"
"후후. 소매치기를 하려면 근처에 역용술을 써서 다가와야겠지. 자네들..."
그렇게 말한 용중일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사대장로를 한 번씩 쳐다보다가, 뜬금없는 명령을 내렸다.
"내가 전수해 준 검형(劍形)을 이 자리에서 펼쳐보도록."
검형?!
'뭐야?! 이 새끼 설마, 사신검형을 황산파 장로들한테 전해줬었단 말인가?!'
나는 경악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신검형!
그것은 수백년 동안 환생하며 모든 사대무류를 익혀온 환생자 용중일이 만들어낸, 사대무류 파해식의 결정체였다.
사대무류의 극성으로 만들어진 무공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런 걸 장로들에게 전해줬단 말인가?
용중일이 나를 흘끔 보더니 말했다.
"소정검(蘇貞劍) 마뢰 장로. 자네부터."
소정검 마뢰로 변태해 있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저기..., 까먹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다른 할 일이 많아서..."
용중일 주변에 있던 다른 장로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나는 들켰다고 생각하고 벗어날까 싶었지만, 의외로 용중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후후, 도둑이 그렇게 금방 탄로날 변명을 하진 않겠지. 그럼 냉천검 공재 장로가 펼쳐보게."
"네!"
냉천검 공재가 열심히 검초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냉천검 공재가 펼치는 초식을 보자 이상함을 느꼈다.
'어엉...? 사신검형이 아닌데?'
나는 사신검형을 쓰는 용중일을 상대로 사천 초 이상 관찰하며 버텨온 적이 있었기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냉천검 공재의 초식은 전혀 사신검형이라 할 수 없었다.
이윽고 그의 시연이 끝나자 용중일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잘 했네."
"감사합니다."
"황산파 고검류는 언제고 수행하여 잊지 말도록 하게. 그래야 우리가 구파일방에 편하게 남아있을 수 있으니까..."
"......"
용중일은 그 말을 끝으로 의심을 거둔 듯 아무 일 없이 경계를 풀고 호수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반응을 보자 마음속을 쓸어내렸다.
'휴우. 검형이란 게, 사신검형이 아니라 황산파 고검류를 말하는 거였나... 황산파의 옛 도인들이 남긴 무공...'
역시 황산파 사대장로는 풍신류출신이며 풍신류 무인들인 것이다.
또한 그들은 구파일방의 도맥의 정체성에 맞추기 위해서, 황산파에 원래 거주하던 도인들의 무공을 연막용으로 수련하는 듯 했다.
내가 검형이란 말에 지레짐작해서 사신검형을 보였다면, 큰 일 날 뻔 했다!
나는 용중일이 제일 경계를 늦춘 시점에 재빨리 뇌명을 써서 소매치기를 했다.
파앗
...걸렸을까?
하지만 다행히도 용중일은 못 알아챈 듯 했다.
나는 산책이 끝나자마자 바로 황산파에서 튀었고,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해냈다!!'
구파일방 장문인한테서 모두 소매치기를 성공했다!
다음은 십이율이다!
나는 곧장 제갈사에게 가서 구파장문인에게서 훔친 보물들을 내놓으며 기억을 주었고, 제갈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꽤 빠르군. 백웅, 너..."
"응?"
제갈사는 진심으로 감탄한 듯 말했다.
"도둑질에 재능이 있는 것 같군."
"......"
파밧
나는 십이율 문주들의 처소를 향해서 소매치기를 하러 떠나면서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십이율 문주들을 다 털고 마지막으로 명나라 황제만 소매치기하면 되는데, 왜인지 기분이 껄끄럽다.
...왜지?
칭찬을 들었는데 별로 기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