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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44화 (84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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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이혼대법을 걸어서 원월천살법을?

나는 제갈사의 계책에 멍한 기분이 들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 제갈사! 그는 절대지경의 고수야. 다른 어중이떠중이면 몰라도 그에게 어떻게..."

" 묘항현령(猫項懸鈴)...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라는 소리로 들리나?"

" 약간."

" 힘든 건 네가 쥐일 경우겠지. 넌 쥐가 아냐."

" 뭐?"

제갈사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 하아... 순수한 무예경지라면 당연히 넌 미야모토 무사시보다 약하겠지. 그러나 수단방법을 안 가리면 넌 그놈을 넘어서고도 남는다."

" ......"

" 이것까지 책략을 말해주면 왠지 네게 도움이 안될 것 같군. 그러니 이번에는 네가 혼자서 머리를 써서 무사시를 잡아 봐라."

" 음... 알았어."

아무래도 제갈사가 볼 때는 내 잠재능력을 다 동원하면 혼자서도 충분히 무사시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너무 그에게 기댄 게 사실이었으므로 머쓱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잠시 후 제갈사에게 물었다.

" 원월천살법을 얻는 건 좋은데 지금 내가 익힌다 해도 무의미하지 않을까?"

" 왜 무의미하지?"

" 그건 애초에 천재중의 천재를 위한 무예이며 미야모토 무사시가 재창안한 아류(亞流)잖아. 칠대절학이나 다른 정종무공과는 달라. 게다가 지금 내가 익힌 무공숫자도 많아서 굳이 필요하진 않은데..."

" 그거야 그렇지. 무공의 관점에선 그럴거야."

제갈사가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동시에 그건 '신살(神殺)'을 목표로 만들어진 유일한 절대무공이기도 하지."

" ......!!"

" 사대무류의 신공이나 칠대절학 등도 원월천살법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할 순 없겠지만 상징성이 달라. 전승 자체가 신살을 노린 건 원월천살법이 유일해. 그렇다면 그 전승의 근원에는 당연히 신화적 비밀이 있음이 틀림없다. 왜냐? 이 세계의 어둠을 지배하는 신, [옛 지배자]를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애초에 신살이라는 개념조차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 음."

일리있는 말이다.

" 그리고 미야모토 무사시가 아무리 초천재라고 해도 아예 없는 걸 재창조할 수는 없어. 하물며 절대무공이라면 더더욱 무(無)에서 만들어낼 순 없지. 놈도 당연히 서적이든 유적이든 인물이든 '스승'이라고 할만한 게 하나 정돈 있었을 거다. 그 단서를 쫓아가는 게 바로 원월천살법의 실체를 밝히는 일이 되는 것이다."

" 그렇군."

" 하는 김에 미야모토 무사시를 이혼대법으로 손에 넣어서 놈이 수해의 왕과 대치했을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알아보고."

나는 제갈사 앞을 걸어나오면서 생각했다.

' 음... 무사시를 어떻게 잡아야 하지...'

미야모토 무사시를 찾아가는 일 자체는 쉽다. 그는 현재 십이율의 특위로 근무하며 황궁의 이상동향을 살피기 위해서 절대지경의 무공을 이용해서 공간을 베어 기척을 감추고 있었다. 물론 없을수도 있지만 여태껏 전생경험으로 보면 십중팔구는 거기에 있었다.

왜냐하면 십이율주 입장에서 무사시를 황궁에 박아놓을 경우 가장 신경쓰이는 마도세력인 황궁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으면서 정보원 또한 절대지경의 고수라서 절대 당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이점이 있었기에 괜히 치울 리가 없는 것이다.

다만 찾아가서 어떻게 할 것인가?

무사시를 불러서 내 앞으로 나오게까지는 할 수 있다. 호기심 때문이라도 무사시는 자신의 기척을 알아차린 듯한 괴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고, 호승심과 자신감이 넘치는 성격상 더더욱 그럴 것이다.

문제는 그 후다. 내가 맨몸으로 무사시와 정면승부를 할 경우 버티기는 어찌어찌 되겠지만 그를 제압해서 이혼대법을 펼칠만한 틈을 낼 수는 없다. 무방비 상태의 무사시에게 적어도 숨을 스무 번 쉴 정도로 접촉해서 이혼대법을 연계해야 하는데 무사시 정도의 절대고수에게 그 틈을 내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술법이나 마법 등 내가 아는 조야한 술수로는 무사시에게 빈틈을 낼 수 없다. 적어도 상급술사는 되어야 그에게 먹힐텐데 나는 그 정도 술수능력이 없다. 환영술이나 은신술 따위는 절대지경에게 통하지 않을 게 뻔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최강의 주문인 흉신의 주문을 쓰면 무사시가 버티기는 커녕 죽어버린다. 이혼대법을 써야하기 때문에 죽이는 건 영 꺼림칙할 뿐더러 무사시에게 흉신의 주문을 쓰는 건 아까웠다.

그렇다면 방법은 월요와 대라멸진이다.

월요를 갖고 제대로 삼신기의 위력을 살리면서 싸운다면 무사시와 대등 이상으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도 추측일 뿐이고 실제로 절대지경의 고수와 싸운다면 어떤 양상이 될지는 나도 몰랐다. 절대지경이란 의념천주로 법칙을 뒤트는 경지이므로 무사시의 천재적인 전투본능이 싸움을 어떻게 이끌어갈지는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 대라멸진을 쓰면 확실히 무사시를 쓰러뜨릴 수 있어. 하지만...'

손대중을 할 자신이 없다. 대라멸진을 쓰면 전투력이 급격히 증폭하지만 나 또한 가진 무공을 제대로 억제하기 힘든지라 무사시 정도의 고수를 상대로 죽이지 않고 제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일단 죽여놓고 천신경의 술법으로 영혼을 불러내는 건 너무나 마도(魔道)이자 비인외도(非人外道)였기에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무사시가 건방진 놈이긴 했지만 그렇게 사악한 짓을 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또한 대라멸진을 펼치고도 살아남으려면 생명력공유의 술법이 필요한데 지금 나와 그 술법을 펼쳐줄 수 있는 건 제갈사 뿐이다. 안그래도 할일이 많은 제갈사의 수명을 더 깎을 수는 없기에 대라멸진은 쉽게 쓸 수 없는 방법이다.

어떻게든 무사시한테 들이대봐야 하나...?

전국옥새만 있었어도 전국옥새의 영력으로 힘을 증폭해서 싸워봤을건데 선지자에게 정보료로 바친 게 뼈아팠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이긴 했으나 막상 무력이 필요할 때는 아쉬워지는 것이다.

나는 고민하다가 문득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 그러고보니 내게는 무사시가 검마를 수련시켜줬던 경험이 있어...!!'

망량이 명경을 통해서 동료들의 경험치를 모아서 내게 몰아준 기억! 그 중에는 미야모토 무사시가 팔부신중의 습격을 대비해서 임시아군이었던 검마를 비롯한 아군동료들에게 별개의 수련을 시켜준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별로 쓸 일이 없어서 그 기억을 주의깊게 보지 않았는데, 어쩌면 무사시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이 그 수련기록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장령곡의 비처로 이동해서 명상을 하며 그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 광기(狂氣)에 가까운 집념이다. 모든 고수들은 자기만의 신념을 갖고 있으나, 그 이상의 신념으로 일념정진하여 모든 걸 버릴 수 있는 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벨 수 있는 자... 그런 자만이 '격'을 올릴 수 있다.]

[ 너희는 나나 그 진소청이란 놈처럼 압도적인 재능으로 벽을 돌파할 수는 없어. 그럼 철리(哲理)를 광기로 돌파할 수밖에.]

[ 생각하는 수련법이 있는 것이오?]

[ 백만 번 베기 수련이다.]

그렇게 말한 무사시는 검마, 명룡자, 청월, 극호 등에게 백만 번 베기를 시켰다. 말이 백만 번이지 하루에 일만 번 휘두르기도 고문이나 다름없는 걸 그 짧은 시간에 백 배 이상 휘두르는건 말도 되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팔근육이 끊어지도록 계속 휘두르기만 했다.

욱신

나는 그 수련기억을 읽는 것 뿐인데도 간접적인 근육통과 괴로움이 느껴져서 움찔거렸다. 아무리 초고수라지만 백만 번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검마를 제외한 세 사람은 수련 도중에 지쳐서 나가떨어졌고 오로지 검마만이 극기로 자신을 초월하여 끝까지 버틸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백만 번을 모두 벤 검마에게 무사시가 그제서야 무론(武論)을 말해주었다.

[ 보아라, 검마. 이 허공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소.]

[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태조차도 유(有)이다.]

쩌엉!!

그 순간 무사시는 허공을 공간째로 베어넘겼다. 절대지경의 기예를 눈앞에서 본 검마는 피로를 잊고 찬탄했으나 무사시는 천천히 검을 수납하며 냉막하게 말했다.

[ 이 세상 모든 게 유(有)라 생각하면 모든 걸 벨 수 있다. 그리고 그 경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검이 무(無)에 이르러야 한다. 이는 무초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기자신에게 허(虛)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다듬은 무론, 오륜서(五輪書)의 극의(極意)다.]

[ 허라... 그건 설마 태허(太虛)를 의미하는 것이오?]

[ 그게 뭔지 난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모든 걸 죽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자신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스스스

무사시의 몸이 점점 흐릿해지더니 그 공간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자기자신의 기척을 베어서 완전히 세계에서 모습을 차단한 것이다. 그리고 무사시는 육합전성을 써서 검마에게 말했다.

[ 너는 백만 번을 베면서 자아를 잊고 '벤다'에만 집중한 상태를 깨달았다. 그대로 자기자신의 육감(六感)을 잊어버려서 허(虛)를 깨달으라.]

[ ......!!]

[ 허(虛)로 공(空)을 참(斬)하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베어라!]

검마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오감을 완전히 무(無)로 만들고 육감조차도 죽여버리기 시작했다. 그는 천부적인 무예재능을 타고났기에 무사시의 한 마디에 어떻게 해야 자신이 높은 경지에 오를수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은신했던 무사시가 모습을 드러내며 검마에게 일격을 가했다.

째앵!!

그 순간 검마와 무사시의 일검이 충돌했다. 등 뒤에서 아무런 전조없이 날아온 기습공격이었으나 검마는 절대지경의 일검을 확실하게 감지하고 막아낸 것이다! 무사시는 자신의 검을 거두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 코지로와 이 짓을 수천 번이나 했는데도 그 놈은 모르던데... 넌 이제 절대지경에 한걸음을 딛었다.]

그 이후 검마는 자신이 내딛은 절대지경의 깨달음을 남은 기간동안 완전히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 이후 검마와 무사시는 두 번을 더 싸워서 공멸했으나, 그들의 수련에는 틀림없는 종사의 기풍이 존재했다.

나는 기억을 완전히 다 들여다 본 후에 생각했다.

원월천살법의 요체는 허(虛)란 말인가?

' 자기자신을 텅 비게 만드는 것으로써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을 유(有)로 간주하여 '벨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 그것이 무사시의 절대지경이란 말인가?'

어찌보면 불가의 공(空)과 비슷해 보였지만 전혀 달랐다. 왜냐하면 무사시의 허에는 난폭한 공격성과 극한의 살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허무를 깨달음의 방편으로 쓰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무기로써 예리하게 다듬는 방식을 선택했다.

' 일단 대비를 해 둘까...'

나는 검마와 무사시의 전투를 보면서 무사시의 수법을 복기하기로 했다.

' 간다!'

나는 눈을 감고 명상하면서 검마와 무사시가 전투하던 기억을 되살려서 뇌내에 재생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가상대련이었다.

파앗...

어둠 속에서 양인(兩人)이 부딪힌다. 한 명은 무사시였고 한 명은 검마였다.

나는 검마에게 빙의한 상태로 그가 검을 쓰는 상태를 느끼기 시작했고 느릿하게 대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카메와리(瓶割)의 강검(强劍)이 내리쳐 온다. 나는 이미 이 대결을 기억으로 본 적이 있었기에 이 검이 사실 역수역족의 재반격을 노린 교묘한 수법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검마에게 빙의한 상태에서 그대로 무영탈혼검법의 자세에서 좌탈백(左奪魄)을 시전해서 무사시에게 반격했다.

' 답을 알고 있는데 틀릴 리가... 어?'

주왁

하지만 내가 좌탈백을 펼치는 순간 무사시의 첫 일격은 그대로 내 방어를 뚫고 어깨죽지와 가슴을 죽하고 내려베었다. 말 그대로 치명상이며 즉사할만한 부상이었기에 나는 순식간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럴 수가? 수순은 맞게 했는데 어째서...

퍼걱

다음 순간 가상대련에서 검마의 목이 날아갔다. 나는 거기까지의 가상대련을 뇌내에서 멈추고는 눈을 흡뜨면서 일어섰다.

" ......!!"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정답을 적어 놓았는데도 틀려버린 상황에서 크게 당황해버렸다. 그래서 그 자리에 앉아서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가상대련을 해 봤는데, 이번에도 똑같이 내 쪽이 먼저 베이고 만 것이다.

나는 어째서 이런 상황이 펼쳐졌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혼란스러워서 이번에는 검마와 다른 방식으로 가상대련에서 막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죽을 뿐 결과는 변하는 게 없었다.

' 제길! 안되면 될 때까지...'

나는 그런 식으로 수백 번을 시도하다가 겨우 직감으로 왜 그런 건지 알 수가 있었다.

순수한 기량의 차이.

나는 절대지경 고수들과 내 기량차이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검마에 미치지 못하는 내 실력으로는 같은 초식을 써도 다른 결과가 나와버리는 것이다! 뇌내 가상대련이라지만 현실인식을 반영한 듯 했다.

" 으윽..."

역시 이번에도 삽질을 했을 뿐이란 말인가?

내가 또 멍청하게 시간을 낭비한 거란 말인가?

그냥 사술외법의 힘으로 무사시를 대충 제압해버리면 될 것을 괜히 무인의 오기로 정면승부를 하고싶어 하는 것인가?

나는 오만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입술을 짓씹었다. 그리고 피토하는 심정으로 일갈했다.

" 아니야!!"

언제까지고 절대지경이 대단하다고 멍하니 위만 바라볼 수는 없어!

나는 절대지경에 입벌리고 감탄이나 하고있을 입장이 아니다.

그보다 수십 수백배는 더 강한 적들이 널린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으라고?!

" 어떻게든 돌파해 주겠다!!"

나는 오기로 가상대련을 다시 시작했다. 결국 이 가상대련은 내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가장 사실성있는 결과를 내놓는 것이었고, 그 말은 검마가 내놓았던 '정답'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였다. 나는 일단 무영탈혼검법의 모든 초식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미야모토 무사시의 카메와리 재반격의 한 수를 뚫고 나가기로 작정했다.

파바밧

도대체 몇 번이나 목이 날아가는 것일까. 나는 벌써 이백 오십 번의 경우의 수를 대입했는데도 한 번도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는 상황이 기가 막혔다. 실제로도 내 자신이 무사시의 극강쾌검을 상대로 방어할 수 있다고 납득할만한 수순이 아니라면 도저히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어찌보면 내 무영탈혼검법의 숙련도가 검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걸 반영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익숙해하고 잘 쓰는 무공을 써야 한다.

무쌍패를 시전해서 무사시의 공격을 제대로 막아 보았다. 확실히 막아지기는 했으나, 나는 이후 경직되면서 무사시의 다음 세 초식으로 목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나는 가상대련에서 무쌍패를 쓰면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아챘다.

' ... 제천대성과 싸워본 경험 때문이야. 만일 무사시가 제천대성만큼 상대의 허실을 잘 찌르는 기량이 있다면 뚫릴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실제로도 가능성이 있는 일이다. 제천대성이 내 헛손질을 유도한 것처럼 무사시 또한 내 헛점을 유도할 수가 있다. 나는 온갖 고민을 다 하면서 머릿속으로 다시금 수백 수천번의 가상대련을 반복했다.

......

그렇게 약 열흘 밤을 지새면서 계속해서 머리를 회전시킨 결과, 나는 십이만 오천여 번의 가상의 경우를 대입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 '비운다'는 게 뭔지 알아야 해..."

수도 없이 가상대련을 돌려본 결과 무사시의 무공의 근간을 확실히 알아낸 듯 했다.

허(虛).

검마와 나의 차이는 무사시가 자기자신을 허무의 축으로 만드는 지경을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그걸 이해한다면 어떤 초식으로든 막거나 피할 수 있겠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초식을 써도 무의미하다.

하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무사시를 둘러싸고 법칙이 뒤틀려서 뭔가 이상기류를 만들어내는 건 이제 느낄 수 있지만, 도대체 그걸 어떻게 막거나 피해야 하는 걸까? 말 그대로 의념조차 뒤틀어 찢어버리는 흐름이기에 지금 내 수준으로는 어떻게 할 수도 없다.

나는 여기서 벽을 느끼고는 결국 여동빈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 연자여. 나를 무슨 일로 불렀는가?]

이번 생에서는 처음 부르는 것 같다.

" 무공의 벽에 막힌 듯 합니다... 허(虛)란 무엇입니까?"

나는 여동빈에게 지금까지 내가 고민하던 것을 말했고,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동빈은 한참동안 생각하는 듯 했다.

[ 연자여. 부탁이 있다.]

" 무엇입니까?"

여동빈은 청정하고 심유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 무사시란 자와 일전을 겨루고 싶으니 내게 잠시 몸을 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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