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842화 (84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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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용의 혼을 가지고 제갈사에게 돌아왔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 잘했어."

" 혼을 먹을까?"

" 기다려 봐. 그 혼의 본질을 한번 보고 싶군."

제갈사는 내 손 위에 떠올라 있는 마룡 드라큘라 대공의 혼에 접속해서 이혼대법을 써서 살피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뭔가 헤집는 듯 하던 제갈사가 입을 열었다.

" 이대로는 못 먹겠군."

" 왜?"

" 이 혼은 내부에 무수한 원혼을 품고 있다. 생전에 그가 가시말뚝으로 꿰어죽인 적국의 군병(軍兵)들의 영혼이 마도의식에 의해 인신공양당해서 드라큘라의 용체(龍體)를 만들어냈던 것으로 보이는군. 이걸 그대로 먹으면 원혼의 소재가 백웅 너에게로 그대로 옮겨간다."

" 윽... 원혼을 떼낼 수는 없나?"

" 가죽벗기듯 떼낼 순 있겠지만 그러면 의미가 없지. 그 원혼들의 무시무시한 원념이 용의 마력을 이루는 원천이니 그 원한의 결정이 사라지면 마력 또한 사라진다."

" ......"

" 이 용의 영혼은 강력한 마도구를 만드는데 쓰거나, 아니면 타락을 각오하고 먹어치울 수밖에 없겠군."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히쭉 웃었다.

" ... 나로서는 후자를 추천하지만 말이야. 이 영혼을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으면 너는 마룡의 힘을 얻게 된다. 용의 마력과 육신갑, 용혈을 구현화시킬 수 있지. 무공을 안 써도 내구력만으로 초인적인 존재가 된다."

" 됐어. 지금도 벅차."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지금만 해도 가진 힘을 다 못 쓰고 있을뿐더러, 무엇보다도 서문혜에게서 흡수한 정체불명의 암흑의 힘도 소화가 안 되는 실정이다. 이 상태에서 마룡의 타락한 힘까지 먹어치우면 체할 게 분명했다.

제갈사가 말했다.

" 그럼 파우스트 박사와 [옛 대륙]에 대해서 말해 보지.."

" 으음."

" 백웅. 파우스트 박사와 메피스토펠레스는 네게 모든 정보를 줄 수 있음에도 일부러 극히 제한적인 정보만을 넘겨줬다. 왜인 거 같냐?"

" 글쎄…"

" 그들은 심정적으로 미래인류 최후의 희망인 십이율주 하은천을 지지하고 있는 거다. 자신들이 그의 모든 정보를 전생자에게 넘겨준다면 십이율주가 모든 기회를 박탈 당하게 되기 때문에, 운좋게 네가 그와 협력할 상황을 상정하고 호의를 사기 위해 최소한의 정보를 준 거겠지."

" 짜증나는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던간에 십이율주에게 뒤통수를 크게 후려맞은 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크게 화난 것 같지 않군."

" 뭐?"

" 그렇지 않나? 뒤통수맞은 아픔이 컸다면 넌 이번 생이 시작하자마자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십이율주부터 해치울 방법을 내게 물었을 거다. 그러나 넌 한 번도 내게 그 계책을 묻지 않았어."

" ......"

" 현재 너는 십이율주를 어떻게 생각하지?"

나는 침묵하다가 제갈사의 말에 대꾸했다.

" 언젠가 놈을 내 부하로 만들 거다. 쓸만한 놈이니까."

" 호오."

" 어차피 놈의 한계를 봤어. 십이율주가 최선을 다해봤자 내 전생능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게 증명된 거라고. 그럼 원한을 공연히 키울 필요는 없지."

십이율주 하은천에게 미친듯이 후드려맞은 건 사실이지만, 달리 말하면 그가 아무리 발악해도 천암비서에서 비롯되는 전생능력을 뺏거나 봉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 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윤회포는 전생자를 상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을 테지만 그걸 썼는데도 그저 다중우주를 넘는 결말이 찾아왔을 뿐이다.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소멸시키거나 봉인시킬 수 없는 상대라면 전생자인 내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것도 전생이 쌓이면 쌓일수록 나는 십이율주를 느긋하고 착실하게 요리하는 게 가능할 것이리라. 무려 이십육 회나 환생하면서 경력이 쌓였기 때문에 나는 내 우위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제갈사가 큭큭 웃었다.

" 꽤 그릇이 커졌군. 그렇다 해도 넌 아직 놈한테 직접전투로 상대가 안 되지만."

" 하지만 파우스트 박사가 마지막에 전해준 정보 중에는 아주 중요한 게 있었어."

나는 중얼거렸다.

" 미래의 메피스토펠레스를 이루는 500년간의 발전도정의 AI 설계도! 이 기억을 파우스트 박사에게 줄 수 있다면 강인공지능 메피스토펠레스를 머지않아 부활시키는 게 가능해."

그렇다.

파우스트 박사는 어째서 하은천이 봉황을 소환할 수 있는지, 어째서 세계수를 부활시킬 수 있었는지, 그는 인간이 아닌 무엇인지, 어째서 죽어도 부활할 수 있는지 등등의 정보를 하나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에 완성형 메피스토펠레스의 강인공지능 AI 설계도를 양자데이터화 시켜서 내게 기억을 전송해 준 것이다.

묘한 눈으로 나를 보던 제갈사가 말했다.

" 그러나 지금은 전해줄 수 없다. 그 사실도 알고 있지?"

"...응."

지금 흑요석으로 기억을 전해줘 봤자 파우스트 박사에게는 무의미할 것이다. 왜냐하면 파우스트 박사가 마도사 출신 연금술사라고 해도 정신방어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그의 정신이 붕괴되거나 타락하여 극악한 마도사로 탈태할지도 모른다. 이족조차 두려워할 정도의 악의를 쌓고 있는 제갈사같은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 이번 회차에는 써먹기 힘든 정보야. 본래라면 메피스토의 설계도는 다음회차에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방법이 있지."

뭐?!

내가 제갈사의 말에 뜻밖이란 표정을 짓자, 그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 과학도 내가 공부한 마도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어차피 하위학문이니까. 내가 시간날 때마다 공부해서 인공지능의 기초수준까지 이해하고 파우스트와 접촉해서 그에게 메피스토펠레스의 설계도를 전해주지."

" ... 그, 그게 가능해? 과학은 무려 수백 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고 인공지능은 그 총아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걱정스럽게 말했다. 미래인류의 과학은 굉장한 수준으로 발전해서, 중성자포를 실현시키고 핵무기나 반물질장을 만들어내고 아광속 우주선을 만들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행성을 테라포밍 시키고 워프의 기초단계를 만드는데도 성공했다. 그런 과학력의 정점에 서 있는 게 바로 기계장치의 신이자 인류를 초월한 강인공지능 메피스토펠레스였는데 어찌 쉽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파우스트에게 단서를 전해주기 위한 지식의 이해 뿐이라면 전혀 문제 없어. 과학이라고 해 봤자 결국 [옛 지배자]들이 세상의 섭리를 장난하듯 뿌려놓은 하위진리에 불과해. 형이상학을 논하지 않고 건조한 형이하학 속에서 우주를 규명하려는 학문인데, 웃긴 건 이 세계는 형이상학의 초차원적 존재들이 수십 억 개의 법칙을 갖고논다는 게 진실이지."

" 아..."

" 언령과 인신공양을 기반으로 한 주술체계로 발달한 외계의 고위문명은 정면으로 모든 과학을 부정할 수 있어. 그래서 수억 년동안 발전해 온 마도(魔道)에 비하면 과학은 미약하기 짝이 없는 실험에 불과하지. 마도사나 연금술사에게 있어서 과학은 어려울 게 없단 소리야."

" 진짜야?"

" 너한테서 받은 기억도 사실 천재인 나라면 어떻게든 십 년 내에 필요한 만큼은 따라 갈 수 있어. 마도를 이용한 편법도 숱하게 많이 있지. 게다가 친절하게 모든 식(式)이 풀어헤쳐져 있으니."

" ......"

그러고보니 이 녀석도 천재였지...

나는 제갈사에게 말했다.

" 알았어. 그 쪽은 맡기지. 그럼 이제 난 뭘 해야하지?"

" 두 가지 해야할 일이 있지. 하나는 다시 전욱의 사도가 되는 것, 또 하나는 선지자에게 보물을 바치고 정보를 얻는 것이다."

" ......!!"

전욱의 사도!

선지자!

두 가지 모두 중요한 일이었기에 나는 듣자마자 긴장했다. 제갈사가 말했다.

" 전욱의 사도가 되면 길이 크게 단축된다. 실로 지름길 그 자체지. 음신지력의 빠른 대성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급히 도전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이유는 알고 있겠지?"

" 전욱 때문에 내 움직임이 자유스럽지 못하게 된다는 것."

" 멍청아. 자살법은 뻘로 배웠냐? 전욱새끼가 꼬우면 자살하면 되지 그게 문제야?"

" ......"

" 천계의 현재 상황을 아직 모른다는 게 문제잖아. 전욱이 어떤 돌발변수가 되어버릴 지 모른다. 하물며 요순이 소멸했을지도 모르는 현 상황에서는 위험도가 높아. 사도가 되어버린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의 사도로 들어갈 수 있게 호의를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 음... 그렇군."

동료인 삼황오제가 난데없이 소멸해버린 상황이라면 전욱은 극도의 긴장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런 전욱에게 호의를 얻는 건 예전 생보다 어려울 수 있었다.

" 그럼 선지자에게 현재 상황을 탐색하면서 그에게 보물을 바쳐서 핵심정보를 얻는 게 최우선이다."

" 선지자에게 뭘 물어봐야 할까?"

" 물어볼 거야 정해져 있지."

파앗

나는 곧장 선지자에게로 찾아갔다. 그리고 외쳤다.

" 선지자! 거래다!!"

후우웅

선지자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선지자가 촉수를 일렁이며 내게 말했다.

[ 무슨 일이지...?]

" 알고싶은 정보가 있다!"

[ 호오... 알고싶은 정보라. 정보의 값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선지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내가 알고싶은 건... 현재 천계의 동향이다!"

[ 어떤 동향을 말하는 거지...?]

" 천계 최고위 신선과 옥황상제, 서왕모, 태허천존, 제천대성, 구천현녀 등의 현재 상태를 알고 싶다."

[ 그건 고급정보다... 먼저 조건을 제시해라.]

" 좋아."

나는 대뜸 나인성본전을 내놓았다. 단번에 최상급 마도서가 제시되자 선지자는 침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 거래할 줄 아는 놈이군... 마음에 들었다.]

" 그럼 가르쳐줘."

[ 받아라.]

삐잉

선지자가 촉수 하나를 들더니 내게 촉수광선을 발사했다. 내가 광선을 맞자, 순식간에 천계의 모든 정보가 머릿속에 기억으로 흡수되는 것 같았다. 그 기억과 정보에는 한치의 혼선도 없었으며 마치 내가 직접 겪은 것만 같았다.

" ......!!"

뭐지?! 이런 술법도 쓸 줄 알았냐!

내가 쓰는 흑요석술법의 완벽한 상위술법이었다. 그냥 광선만 발사했는데도 아무런 기억혼란도 없었고 용량제한도 없는 듯 했다. 하긴 술법의 원주인이자 마도의 왕이니 이런 건 당연할지도 몰랐다.

나는 현재 천계상황에 다소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으음... 역시 대혼란이군.'

서왕모는 천계 신선들에게 지상에 강신하는 것을 금지시켰고 뭔가를 간절히 찾아다니는 듯 했다. 그리고 투선들은 모두 천계의 외곽에 배치되어서 침입자를 대비하고 있었다. 제천대성도 경계를 서는 중이었고 구천현녀는 자신의 제자들을 백능산에서 보호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서 경계태세에 들어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옥황상제와 태허천존은 실종되었다. 아마 이들의 실종이 천계에 일어난 혼란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 이런 상황이면 수기공양의식을 했어도 신선들이 소환에 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겠군...'

나는 기억을 모두 얻은 후 선지자에게 말했다.

" 좋아. 그럼 거래를 한 번 더 하자고."

[ 어떤 거래를 원하는가...]

" 그 전에 말해둘 게 있다만."

[ 뭐지?]

스윽

나는 팔뚝을 내밀었다. 그러자 선지자는 전생자의 표식을 확인했는지 흠칫했다.

[ 음…!!]

" 보다시피 난 전생자다. 전생한지는 27번째이고 거래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 신뢰를 위해서 미리 밝혀두겠다."

[ ...그렇군.]

" 내가 알고 싶은 건 바로 인과율의 특이점을 유예하거나 소멸시키는 방법이다."

[ .......]

선지자가 침묵하자 나는 말을 이었다.

" 내 숙명의 특이점은 망량선사와의 거래로 인해 앞으로 당겨졌다. 그 때문에 나는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파멸을 앞두고 있는 상태지. 그래서 그 특이점을 최대한 다시 뒤로 미루거나, 가능하면 없애고 싶다."

[ 잠시만...]

선지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듯 했다. 그러더니 의혹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럴 리가... 벌써 그럴 리는 없을 터. 저렇게 약한데... 갓난아이 걸음마 수준에서 벌써? 최소한 이 별을 제패한 제왕 정도는 되어야...]

" ......?"

[ 판의 흐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누군가가 끼어든 것인가... 설마 그 자가...]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선지자가 고개를 흔들더니 말했다.

[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군... 특이점이 분명히 있어... 그것도 당장 네 목을 쳐버릴 정도로 접근해 있군.]

" 그래.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 지금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라고."

[ ... 흐음... ]

선지자는 크게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 갖고있는 대가를 최대한 많이 바쳐라... 심정적으로는 도와주고 싶지만... 너무나 큰 인과율의 고리가 걸려있기 때문에 나도 대가를 크게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종족의 사활마저 걸려있기에...]

" 기다려 봐."

나는 순어구를 이용해서 제갈사와 통신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을 설명하자, 제갈사가 말했다.

[ 있는대로 다 바쳐. 아낄 필요 없어. 필요한 건 내가 다 챙겼다.]

[ 알았어.]

[ 이번 생을 빨리 넘어가는 한이 있어도 얻어야하는 정보다. 오래 살 필요도 없으니까 다 걸어버려.]

나는 이번 생에서 얻은 모든 보물을 다 꺼냈다.

그러자 선지자가 깜짝 놀랐다.

[ 아니... 사도급 용의 혼?! 이 귀한 걸 어떻게 손에 얻었지.]

" 잡았어."

[ 네 힘으로 말이냐...? 흐음... 사술을 썼군.]

" ......"

어떻게 알았지?

[ 기다려 봐라... 가치를 측정하겠다.]

선지자는 보물들 하나하나를 촉수로 만지작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참 후에 말했다.

[ 대가의 가치를 모두 측정했다. 그 대가에 걸맞는 조언을 해 주겠다.]

" 그래, 빨리 해 줘! 난 어떻게 해야 특이점을 유예할 수 있지?!"

[ 그대가 파멸을 피할 방법은...]

나는 괜히 초조해졌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것 같은데 소멸의 위험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니! 최소한 그 파멸의 위기를 뒤로 미루고 싶었다.

잠시 후 선지자가 입을 열었다.

[ 백련교의 사대신기를 찾아라...]

엥?

" ... 뭐? 아, 아니 잠깐잠깐. 그 말은..."

[ 무슨 뜻인지 못 알아들었나.]

선지자가 넁막하게 말을 이었다.

[ 전생자여. 사대신기를 찾아내면 무생노모의 법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법문만이 특이점을 되돌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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