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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28화 (82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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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본색을 드러낸 건가!

나는 십이율주와 운사의 합공을 받으면 오래지 않아 죽거나 잡힐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일단 죽을 준비부터 하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 몸이 갑작스럽게 둥실 떠오르더니 영문을 알 수 없는 백색 공간으로 내던져졌고, 이어서 한기가 느껴지는 거대하고 투명한 손이 내 몸을 감싸왔다.

뭐가 어찌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적인 공격이 이어지자 나는 위기를 느꼈지만, 일단 훈련한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 상대가 네가 자살하는 방법을 봉쇄하려고 계약을 이용할 수도 있지. 충분히 있을 수가 있는 일이야. 뭘 멍청하게 그런 걸 당할까 싶지만, 넌 맹한 구석이 있어서 당할 수도 있겠지.]

자살법을 훈련하던 당시 제갈사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럼 남의 칼로 죽으면 돼.]

[무슨 말이야?]

[‘행동금지’의 제약이 붙는 술법은 필연적으로 ‘의지’를 측정하게 되지. 즉 네가 ‘자살하려는 의지’부터 먼저 감지한 후 그 의지에 파생되는 행동을 모두 차단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자살하려는 의지나 방향성을 갖지 않으면 자살할 수 있는 거야.]

[그게 말이 돼? 의지가 없는데 어떻게 행동을 해?]

[들어 봐. 충분히 가능한 자살법이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 검을 세게 움켜 잡았다.

‘제갈사식 자살법 그 17번째….’

이혼대법(移魂大法)

자동조작술(自動造作術)!

위잉!

그 순간 내 자아가 마치 망망대해에 던져지듯 깊숙한 무의식의 경계까지 파고들었고, 나는 정신세계에서 정보의 격류에 허우적대었다. 평소에는 뇌에서 감당하던 세밀한 파장이나 흐름 따위가, 아무런 거름망 없이 내게 쏟아졌기에 미칠 듯이 괴로운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침착하게 이혼대법이 발동하기를 기다렸다.

파직!!

그리고 내 몸이 완전히 이혼대법의 명령에 적응한 듯, 흐릿하게 시각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나는 무의식의 경계에서 눈앞에 오감(五感)이 연결되기를 기다렸고, 잠시 후 ‘백웅의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좋아, 됐어!’

내 몸을 둘러싼 백색 공간과 투명한 손은 대번에 검뢰(劍雷)로 베여 나갔고, 검뢰로 적의 술수를 베어버린 ‘백웅의 몸’은 곧장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서 침 없이도 임시로 발동할 수 있는 약식(略式) 대라멸진을 발동했다.

대라멸진의 공혈(孔穴)이 차례차례 열리기 시작하자 내 몸은 즉시 곁에 있던 운사에게로 돌격했다.

뎅겅!

내 검이 공기를 뚫는 소리와 함께 운사의 목을 엄청난 속도로 베어가자, 운사는 그 속도에 반응하지 못 하고 대번에 목을 베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절대지경의 초 고수들을 제외하고는 중원제일의 쾌검(快劍)이라 자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지근거리에서 내 검을 막거나 피할 자는 거의 없었다.

운사의 목이 뎅겅 날아가는 순간, 내 등허리에 웬 부적이 날아와서 박히는 게 느껴졌다.

어느 새 뒤에 와 있던 십이율주 하은천이 두 손가락을 모으며 념(念)으로 주문을 발동했다.

“봉인.”

스스스스 -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뚱이는 수 천 개의 종이덩어리에 꽁꽁 묶여서 숨조차 쉴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보나마나 십이율주가 쓴 것이니 최상급의 봉인술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 수준의 봉인술을 풀어내는 건 지금의 내 술법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는 무의식의 경계에서 연결된 시각으로 그 광경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흉신의 주문도 소모했고 거의 남은 수가 없다…. 내가 직접 내 몸을 썼어도 결과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 설령 수요를 들었어도 하은천 또한 목요가 있다….’

내가 방금 전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건 맞서 싸우거나 도주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방금 전 계약 때문에 자살할 수 있는 선택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결과는 십이율주에게 붙잡혀 봉인당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나 - 이혼대법은 만만치 않다.

그렇기는커녕 이혼대법의 진가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는 의지로 ‘내 몸’에게 명령을 내렸다.

[백(魄)이여. 측좌핵(側坐核)을 움직여라.]

몸 내부의 연결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뇌 내부를 확실히 통제할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감이 생겨서 마저 명령했다.

[뇌내의 피각(被殼)을 모두 파괴해라. 연상회와 각회의 모든 연결부를 끊는다.]

빨리 죽으려면 이걸론 부족할까? 나는 좀 더 생각한 후 한 번 더 백에게 명령을 내렸다.

[뇌간, 소뇌, 전두엽의 활동을 정지시켜라. 심장을 비롯한 모든 장기에게의 명령을 금지한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애초에 들려올 수가 없다.

정적.

그러나 나는 잠시 후 엄청난 속도로 내 몸이 잠에 빠져들듯 죽음 그 자체로 변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자살법이 거의 성공한 것을 깨닫고는 씨익 웃었다.

‘두고 보자, 율주.’

그 순간이었다.

푸와아앗

“……!!”

나는 갑자기 튕겨지듯 의식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고, 내 몸에 칭칭 감겨있던 봉인술 또한 풀려 있었다. 내가 종이뭉치 같은 봉인술 더미 속에서 몸을 일으키자 율주가 당혹한 듯 말했다.

“…놀랍군. 이런 식으로 계약의 허점을 노릴 수 있다니.”

“무슨 소리지?”

“시치미 뗄 필요는 없어. 난 지금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으니까.”

십이율주는 나를 응시했다.

“인공백(人工魄)에 자기의 신체를 조종하게 내버려두고 자아를 가라앉혀서 가사상태가 되었나? 그리고 내가 눈치 채지 못하게 육체를 조종해 싸우는 척 하다가 봉인술에 묶여서 내가 방심하고 있을 때, 인공백에게 자기 자신의 육체를 파괴시켜서 소리 소문 없이 자살이라….”

“…….”

“이혼대법은 정말 대단하군. 그리고 너 또한 요령이 좋아."

들킨 건가.

‘이렇게 되면 한판 붙어보는 게 이득인가…?’

나는 검을 다시금 꽉 잡았다. 방금은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의 제지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제갈사의 자살법, 이혼대법 자동조작!

아무리 강력한 술법이나 마법의 계약이라 할지라도 ‘혼’과 ‘육체’가 일치된 상태를 가정하기 때문에, 정신이 육체의 통제력을 잃고 무의식까지 추락한 경우는 ‘의지’라고 판단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혼대법은 마왕이 창조한 술법답게 그 맹점을 찌를 수가 있었고, 시전자를 무의식의 경계까지 의식을 잃지 않고 내려 보낸 후 정신세계의 심처에서 몰래 인공백을 덧씌운 육체를 이용해서 몸을 통제하는 게 가능했다.

예전 벽지상이 미호나 검마의 심문을 통과했던 것도 아마 이혼대법을 응용한 방법이었으리라. 일단 무의식의 경계까지 내려간다면 거의 모든 정신계 술법이나 봉인술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예 천우진처럼 몽환을 주 영역으로 하는 최강급 술사가 아닌 한에는 불가능했고, 달리 말하면 천우진이 배교 이혼대법 술사의 천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이혼대법의 술사는 자기 자신의 몸에 인공백을 씌워서 자기 몸에 간단한 명령을 내려놓고 자동으로 실행 하게 할 수 있다. 인공백에는 자아나 의지가 없으나 일단 시킨 명령은 충실하게 실행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십이율주가 의심이 많은 성격이란 걸 감안해서 바로 자살 할 수도 있었으나 일단 반격하면서 내 의식이 있는 척 하면서 그저 근처의 적에게 반격하라는 명령 하나만 내려두어도 내 몸이 그 동안 엄청난 무예를 습득해 왔기에 주변에 위화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봉인술에 묶였을 때 바로 무의식에서 명령을 내려서 뇌부터 파괴!

뇌가 파괴된 생명체는 무슨 수를 써도 살릴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저 새끼는 그 순간에 위화감을 느끼고 바로 해방목요의 회복력을 이용해서 날 살려낸 건가….’

솔직히 이혼대법을 응용하면 아무리 천재라도 눈치 채지 못하게 자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약간 자존심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십이율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다시 봉인술로 묶었으면 될 텐데 왜 나를 풀어줬지?”

이젠 서로 재보는 과정이 끝났으므로 딱히 존댓말을 쓸 필요가 없다. 내가 으르렁거리자 십이율주가 대꾸 했다.

“무의미하니까…. 네 이혼대법으로 자아를 어디까지 감출 수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그리고 네가 전혼탈겁(轉魂奪劫)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상 봉인술을 써봤자지.”

“…….”

“대단해. 어째서 내 시대에는 이혼대법 같은 게 전해져 오지 않았을까?”

푸념하듯 말하는 십이율주였다. 나는 놈의 생각을 대충 읽을 수가 있었다.

‘저 놈은 전혼탈겁을 경계하고 있군.’

전혼탈겁!

그것은 바로 이혼대법 술사의 최고 경지로써, 죽고 나서도 미리 이혼대법을 펼쳐 둔 육체로 영혼을 즉시 옮길 수 있는 궁극의 기술이었다. 본래 축융급의 신적존재를 소환하면 인간 마도사는 죽는 게 정상이지만, 제갈사가 멀쩡히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자신의 육체가 죽은 다음에도 옮겨갈 수 있다면 이혼대법 술사를 봉인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나는 아직 전혼탈겁을 쓰지 못한다. 이혼대법의 성취가 그 동안 많이 늘어났으나 아직 극성이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전혼탈겁을 시전 한다면 할 수는 있겠으나, 성공률이 제갈사와는 비교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낮다. 하지만 십이율주 입장에서는 그 낮은 성공률조차 경계할만한 대상으로 보는 모양이었다.

나는 십이율주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고집을 꺾어.”

“무슨 고집을 꺾으란 말이지?”

“내가 무한히 전생한다고 해서 딱히 널 탄압하거나 괴롭힐 생각은 없어. 물론 쌓인 감정이야 있다만 네가 동료가 되어준다면 최선을 다해서 동료로 대우해 주지. 신이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는데 인간끼리 꼭 싸워야 하는 거냐?”

“…….”

나는 하소연하듯 외쳤다.

“십이율주! 그냥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해줘! 그럼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미래를 구하게 될 거야! 전생능력을 그렇게 고집할 이유가 있어?”

“분명한 이유가 있지.”

“어떤 이유냐.”

십이율주는 멀뚱히 서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네가 구하려는 세상은 나의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뭣….”

“그래. 어리석은 걸 안다. 그저 내 망집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철그렁

십이율주가 은하구절편을 늘어뜨렸다. 나는 그의 몸에 투지가 넘실거리는 걸 깨닫고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진심으로 싸우려 한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시대 따위 알 바 아냐. 미래의 100억 명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

“빌어먹을…!!”

“너와 마찬가지다, 백웅.”

그의 눈에 서늘한 안광이 맺혔다.

“난 절대 포기하지 않아.”

싸울 수밖에 없다!

나는 각오를 하고는 십이율주와 첫 초식을 맞부딪혔다. 나는 검뢰를 일으켜서 은은하게 발동하고 있던 약식 대라멸진의 기운을 휘감고 십이율주를 공격했는데, 산조차 쪼개버릴 듯한 내 참격에 십이율주는 난데 없이 왼손에 은빛 검을 꺼내어서 휘둘렀다.

까앙!

나는 십이율주가 휘두른 검의 정체를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월요(月曜) 천총운검(天叢雲劍)!”

동영 최강의 검이자 월요를 이루는 삼신기 중 하나!

역시 그는 월요를 차지한 게 분명 했다.

“자살할 국면이 아니라 이건가? 크크.”

“그래. 무예를 겨뤄보자.”

“좋다. 너도 수요를 꺼내라. 그래야 격이 맞겠지.”

“알았다!”

나는 한 차례 물러나서는 그 때까지 쓰던 강철 검을 집어넣고는 목갑에서 수요를 꺼냈다. 수요는 아직 해방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상대의 월요 천총운검은 강대한 빛을 내뿜고 있어서 이미 해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반 강철 검으로 해방칠요를 상대하면 내가 너무나 불리했기에 하은천이 한 번 봐준 듯 했다. 미해방이긴 해도 칠요는 칠요로 상대해야 정상이었다.

내가 수요를 든 채 하은천의 빈틈을 노리며 가만히 있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이봐, 백웅. 내가 네 흑요석의 기억을 보고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게 뭔지 아나?”

“뭔데?”

위잉

다음 순간, 하은천의 전신에서 폭포수 같은 은빛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에 잡혀있던 은하구절편에서 힘이 뻗어 나왔고 월요 삼신기가 회전하며 공명했다. 그는 빛 무리를 전신에 휘감으면서 히죽 웃었다.

“진짜 사용법도 모르는 네게는 칠요가 아깝다는 거다.”

퍼억!!

“…….”

나는 내 가슴에 크게 뚫린 구멍을 보고는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단 일격.

하지만 나는 십이율주의 공격을 조금도 파악하지 못했다. 너무나 엄청난 힘과 속도였기 때문이었다. 초절정고수가 느끼는 찰나의 기척에조차 잡히지 않았고, 무언가를 초월해버린 듯한 경지였다.

설마 이게….

팔부신중 셋을 율주 혼자서 해치웠던 그 때의….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던 십이율주가 은하구절편을 철그렁거리며 말했다.

“내가 한 판 이겼군.”

“…….”

“일어나.”

우웅

목요의 기운이 내 가슴팍에 감돌더니 치명상이 단숨에 회복되었다. 내가 비틀거리며 다시 자세를 잡자 십이율주가 천총운검을 내 미간을 향해 겨누며 말했다.

“네 역량부족을 깨달을 때까지 계속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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