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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27화 (82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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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율주가 입을 열었다.

"왜지?"

나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천암비서를 내놔야 하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고, 당신은 아까부터 내게 믿으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렇게 하면 당연히 잘 될 것처럼.... 하지만 내가 천암비서를 내놔서 좋을 점은 사실 확실치 않습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될 일이 아니다.

천암비서를 넘겨준다는 건 내 모든 것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생능력을 추출한다고 했잖아."

"추출하면 내게 뭐가 좋은 겁니까?"

"그 얘기를 자세히 하지 않았군. 전생능력을 추출해서 너와 동반해서 전생할 수 있게 된다면, 네가 일일히 흑요석으로 기억을 주면서 동료들을 키우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지."

"......"

"예를 들어서 50년 후의 진소청을 전생을 시작하자마자 동료로 얻으면 어떨까?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세계의 비밀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혹하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건 그렇군요."

"이제 설명이 된 거 같으니 천암비서를...."

그러나 나는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주지 않겠습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태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좀 더 이야기해주고, 당신이 미래에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어야 합니다. 전 아직 당신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할 수 없으니, 천암비서를 넘길 순 없습니다."

그러자 십이율주가 앉아서 턱을 괴며 말했다.

"전생자의 나쁜 버릇이 나왔군. 일단 상대방의 정보부터 캐고 보는 버릇. 넌 무한전생이니까 일단 나한테서 정보를 얻고 나면 볼일이 없다 이거지? 사람을 NPC 취급하는군."

"그렇게 생각하면 할 말이 없군요. 하지만 사실상 당신이 미래인이라는 것 외에 제대로 밝혀진 게 뭐가 있습니까? 선심 쓰듯 많이 말해준 것 같지만, 정말 중요한 건 하나도 말하지 않은 당신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호오.... 하지만 나로서도 네가 전생자로서 정보만 듣고 튈까봐 불안하다고 말했을 텐데? 너는 전생자라서 나 같은 필멸자보다는 훨씬 유리하니까 그 정도는 감안해줘야 교섭이 성립되는 게 아닐까?

내 말이 틀린가? 어차피 내가 네 전생을 막을 순 없으리라고 서로 알고 있는 상태 아닌가?"

"맞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럼 더 이상 내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나는 결국 본심을 말하고 말았다.

"...없지만, 있습니다."

"크크크... 전생자의 감(感)이라 그건가."

"......"

사실 거절하는 이유는 이것뿐이다.

감!

말랑말랑하게 머리 뒤편이 간질거리는 이 기분은, 전생을 하면서 뭔가 크게 잘못 되고 있을 때 나타났다. 그리고 이런 기분이 들었을 때 뭔가 선택을 바꾸지 않으면 크게 피를 보곤 했다.

사실 감처럼 불확실하고 믿을 수 없는 것도 없겠지만, 늘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혼돈 속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견명한 이성이나 논리보다 더욱 확실하게 붙잡을 수밖에 없다.

십이율주는 왠지 믿을 수 없다 -

정말 단순한 한 문장이지만 나는 그 문장 하나만 붙잡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를 믿는 순간 뒤통수가 얼얼해질 것 같은 감각 -

살갗이 뒤집어지는 듯한 불안감 때문에!

십이율주가 말했다.

"좋아, 뒤통수 맞는 게 정말 싫은 모양이군. 그렇다면야...."

십이율주의 눈이 빛났다.

"특별히, 미래세계에서 연구했던 태허가 뭔지 설명해 줄까나."

"......"

끈질기다!

포기할 줄 알았는데!

나는 십이율주의 집념에 기가 질려서 중얼거렸다.

"...그것도 제가 완전히 원하는 해답은 아닙니다만."

십이율주의 과거사를 정확히 알려줘야 할 텐데 계속 말을 돌리고 있다.

내가 보기엔 태허의 정보가 더 중요해 보이는데, 왜 저렇게 말을 아끼려는 걸까?

십이 율주가 푸념했다.

"아 됐어 그만해. 욕심 좀 적당히 부리면 안 돼? 서로 손잡으면 대박이라는데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

"이 설명으로도 납득이 안 되면 완전히 포기해주지. 천암비서에 태허의 파장을 쏘아 보낸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 주십시오."

속는 김에 한 번만 더 속아보자.

손해될 건 없으니까.

십이율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의 화면으로 걸어가더니 입체영상을 띄웠다.

위잉

그 영상에는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서양인이었는데, 다소 우묵한 눈에 초췌한 안색이었지만 눈 내면에 강인한 의지가 느껴졌으며 눈과 코가 다소 커다란 인물이었다.

전형적인 서양인의 외모였으며 머리카락이 갈색이었다. 약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자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던 십이율주가 말했다.

"이 인물이 누구인줄 알아?"

"모르죠."

"바로 독일의 파우스트 박사야. 지금부터 할 얘기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

"파우스트 박사라면 그...."

"그래. 네 24번째 전생에서 서방의 수호자를 구출할 때 베루스와 함께 널 도왔던 인물이었지."

기억난다.

[베루스. 파우스트 박사. 그들을 도우시오.]

[시선을 끌어줄 사람이 필요하오. 어차피 여기 쳐진 결계를 안 걸리고 돌파할 순 없소.]

[백웅이여, 그 역할을 내가 하겠소. 시끄러워지면 들어가시오.]

[그는 독일 최고의 학자이자 공생자(共生者)이며 이율배반자(antinomie). 인류가 지배자와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낸 기술을 연구하다가 그 자신이 모순을 풀게 되었소. 그가 아직 이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 어서 들어가야 하오.]

그 당시에 서방마도사의 본거지인 대영제국의 총독부에 침입할 때 전방에서 적의 이목을 끄는 역할을 파우스트 박사가 맡았었다. 그는 변신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마치 시꺼먼 혼돈의 덩어리 같은 괴물로 변신하자 절대지경 고수의 신체능력을 상회하는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에는 별로 마주치지 않았으나 그가 베루스와 멀린 등의 동료인 것을 보면 서방인간들을 이족에게서 지켜주는 세력의 일원이란건 알 수 있었다.

나는 파우스트 박사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당시는 중절모와 흑사병 의사의 가면을 쓰고 있어서 맨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그래서 못 알아봤군."

"현 시점의 파우스트 박사라면 아마 250세 정도일 거야. 그리고 지금은 유럽의 흑사병이 구제되었는데 파우스트 박사가 노스트라다무스라는 가명을 쓰면서 노력한 덕이지."

"노스트라다무스?"

"예언가 이름이지만 파우스트 박사가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가명이기도 해."

들어본 적 없다.

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아무튼 파우스트 박사가 500년 후에도 살아있다는 말입니까?"

"물론 그것도 인류의 과학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대종사가 되지. 그리고 내 스승이기도 해."

"...뭐라고요?"

스승?

내가 십이율주를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고."

"당신은 과학을 공부하는 학자였습니까?"

과학이라 함은 자연과학으로서, 자연계에 관한 체계적 지식 체계이자 철학을 뜻했다.

마도에는 과학 또한 일부 포함되어 있었고 연금술 또한 과학과 공생하고 있었기에 내가 모를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죽어라 산술이나 수학도 배운 게 아닌가?

그러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하여튼 그는 마도사 이븐 시나, 토마스 아퀴나스 등과 함께 마도에서부터 과학을 따로 분류해서 민간에서 발전시킨 인물이지. 다만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과학발전이 유난히 빠른 것 같다만.... 원래 역사와 달라졌오."

"........"

"그는 본디 강력한 연금술사였으나 인간을 구하려고 마음먹고 과학과 연금술에 매진했다. 파우스트 박사는 순수한 과학의 힘이 마도의 힘을 능가해서 인간의 독립을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 달리 말하자면 모든 인신공양과 [옛 지배자]의 간섭을 배제한 물리법칙의 신(神) - 기계장치의 신(Deus Ex Machina)이 차원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예정된 '계시'가 일어나기 전에 최대한 순수과학을 발전시켜서 기계장치의 신에게 닿고, 인류를 이 행성에서 탈출시키려고 했어."

"으음."

"물론 그 모든 사실은 보통 인간에겐 철저히 비밀로 했다. 전기가 발명되고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전자화폐로 모든 경제활동을 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누구도 그의 세력과 의도를 눈치 채지 못했지.... 세상은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웠어."

나는 십이율주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지금의 대영제국이나 서양열강은 대놓고 마도의 세력에 침식당했습니다. 당장 몇 십 년에 세상이 멸망할 것만 같은 판국인데, 500년 후가 평화롭다고요?"

"그게 이상한 거라고. 그리고 그건 아마 너 때문이 아닐까?"

"뭐라고요?"

십이율주가 문득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살던 역사속에선 지금 시점에 총기가 탄피(彈皮)까지 개발되진 않았어. 탄피를 응용한 최신총기의 수준이 앞으로 3세기는 지나야 온다는 거 알고 있어? 원래 이 시대는 무림고사나 마법사들이 날아다니는 초인(超人)의 시대였고 서양열강에서는 아직까지 총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화승총이었단 말이야. 그런데 네가 전생을 시작한 후부터 엄청난 속도로 서양의 기술력이 탄력을 붙였단 말이지. 네가 아니면 뭐가 원인이지?"

"......"

"뭐 그 얘기는 제쳐두고.... 그리하여 계시의 날까지 몇 년을 남겨둔 시점에서 사건이 터졌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교(邪敎)가 폭동을 일으키고, 차원문이 세상 곳곳에서 열려버렸다. 절대 악인 [옛 지배자]는 정면으로 나서지도 않았는데, 그 부하들의 힘만 해도 인간문명의 힘을 아득하게 뛰어넘어버렸지."

"나인교입니까?"

"우리 시대에는 나인교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어. 그렇다기보다 나인교같은 추종세력이 수십 개나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났었거든."

"수...수십 개?"

"너희처럼 무공초인들이 나서서 주교나 교주급을 토벌할 생각은 거의 하지도 못했어. 대비가 안 되어있었으니까."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인교 같은 게 수십 개라니!

나인교의 주교나 교주만 하더라도 말도 안 되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천계를 통째로 쓸어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들이었는데,

그런 사교단이 수십 개나 나타나는 혼란이란 건 대체 무엇인가?!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십이율주가 키득 웃는 듯 했다.

"중세인(中世人) 백웅. 내가 살던 시대는 말세(末世)였다구. 비유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세상의 종말을 앞둔 시대였으니,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는 뭘 해볼 여지가 없었어."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최선을 다해서 비벼봤지만 뭐... 말했다시피 멸망했지?"

"......."

"다만 그 말세의 대전쟁을 지내오면서 파우스트 박사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어. 그건 바로 혼돈의 존재들에게는 무공(武功)이 가장 잘 먹힌다는 거였다."

"무공...말입니까?"

십이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네가 상대했던 혼돈이 전부 신급이라서 실감 못하겠지만, 일반적인 마물이나 괴물들은 무공을 수련한 자일수록 잘 잡았어.

혼돈에 기반한 마법이나, 복희의 힘을 빌리는 술법(術法)은 혼돈의 마물에게 효과가 반감되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옛 지배자]들이 자기 종복들에게 가호를 내려줘서 힘을 강화시켰거든..."

"......"

정말 최악이다. 지금도 마법이나 술법으로 마물을 썩 잘 잡는다고 할 수 없는데 세계에 혼돈이 가득차면서 마물들이 신의 힘으로 강화되면 어떤 혼란이 일어나는 걸까?

"그래서 인류는 전쟁의 막바지로 갈수록 고대나 중세의 무공을 발굴해서 연구했지. 그리고 기(氣) 그 자체를 연구하던 중..., 네가 알아냈던 태허(太虛)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거기까지 말한 십이율주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기가 최종단계까지 분해된 후 만들어지는 정수(精髓), 태허! 태허의 파장을 발견한 덕분에 인류의 명줄이 몇 년은 더 늘었지. 왜냐하면 태허의 파장을 쏘면 혼돈의 존재들이 녹아버렸거든."

"녹았다구요?"

"그래, 녹았어. 완전히 상극이니까."

나는 그 말을 듣자 뛸 듯이 기뻐졌다.

'역시!! 태허의 힘을 쓰면 신살(神殺)이 가능한 거야!'

무공에 좀 더 파고들어서 절대지경에 이르겠다는 내 선택은 틀린 방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내심 기뻐하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 태허의 파장을 내뿜는 무기가 어딨습니까? 그것만 있으면...."

"아쉽지만 양산형 무기가 아니었고 인류의 기술력을 총동원해서 딱 한 대밖에 만들지 못했어. 그리고 그 최종병기는 바로 여기, [옛 대륙]에 있지."

따악

십이율주가 손가락을 튕기자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여섯 개의 포신(砲身)을 가진 기묘한 무기가 나타났다.

최종병기라고 불리기에는 겨우 사람 하나만한 크기라서 작아보였으나 십이율주가 말했다.

"최종병기라고는 말했지만 이 윤회포(輪回砲)는 사실 전투용으로 잘 쓰지 않아. 다중우주 현상을 관측하기 위한 실험용으로 쓰지."

"다중우주현상?"

"태허의 진짜 가치는 혼돈을 분해하는 극상성이 아니야. 진짜 능력은 바로 혼돈과 융합(融合)을 일으켰을 때 생기는 현상이지."

이어진 십이율주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태허와 순수한 혼돈이 결합하면 다중우주를 건널 수 있다. 그 능력을 이용해서 시간을 도약할 수 있지."

"......!!"

"물론 윤회포만으로는 필요한 특이점의 출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이 시대로 올 때는 세계수의 열매인 선악과의 도움을 받았지. 두 개의 신물(神物)을 합쳐도 아슬아슬한 도박이긴 했지만."

나는 그제서야 십이율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천암비서가 다중우주를 건너는 능력이 있다면, 태허를 지닌 윤회포에 반응해서 자유자재로 [전생]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말이군요."

"그래, 그거야. 흐흐. 귀찮게 세계수의 열매를 수확하지 않아도 다중우주를 넘어갈 수 있다구."

십이율주는 웃는 듯 하며 윤회포의 옆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날 동료로 해서 그 천암비서를 연구하는데 성공하면..., 네가 열심히 키운 동료들이 초기화(初期化)되는 걸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다른 동료들도 다 함께 다음 회차로 넘아갈거고, 한 백 년치만 노력해도 너와 네 동료들은 삼황오제를 우습게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나? 특히 진소청이나 천우진만 잘 키워도 웬만한 사도쯤은 쉽게 잡을 거야."

"으음."

"더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이제 천암비서를 줘."

나는 십이율주의 말에 엄청나게 혹했다.

확실히 이제는 더 이상 '감'이라는 한 마디로 거절할만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 정도로 막대한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면 안 주는 게 이상하다!

좋아 결정했다.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그래도 거절합니다!"

"........"

"천암비서는 못 줍니다."

휘청

십이율주는 큰 당혹감을 느꼈는지 잠시 휘청댔다. 정말로 예상치 못한 말이었던 모양인지 탈 너머로도 당황함이 느껴졌다.

방금 전 거절할 때와는 큰 차이였고, 십이율주가 마음의 빈틈을 드러낸 순간으로 보였다. 그가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나는 그 말에 신념을 담아서 대꾸했다.

"다중우주가 뭔지 몰라도, 그걸 넘는다는 게 꼭 '재시작'이 가능하다는 말은 아닌 것 같군요."

"뭣...."

"안 그렇습니까?"

스르릉

나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를 노려보았다.

"십이율주 하은천. 당신이 내 천암비서를 탐내는 이유는 윤회포로 전생을 계승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닐 겁니다.

그저..., 내 천암비서를 대체할 방법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겠죠."

"......"

"'다중우주'와 '큰 굴레'는 똑같은 게 아닌 것 같군요."

이건 단순한 감이 아니다.

그저 -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확실한 불쾌감!

그는 '다중우주'와 '큰 굴레'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넘어갈 뿐이었다.

그저 내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던져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화법을 할 때는 상대를 속이려 할 때뿐이다!

만일 다중우주와 큰 굴레가 다른 거라면"

그리고..., 애초에 다중우주를 넘는 게 세계수의 열매를 따는 것만으로 가능했다면, 하은천은 어째서 기회가 '한 번'뿐이라고 말했던 건가?

하은천은 윤회포 옆에 선 채로 침묵했다.

그는 그저 물끄러미 나를 바로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단호하게 외쳤다.

"이제 결정했습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더 이상 당신과 타협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

다음 순간, 나는 십이율주가 씨익 웃는 것을 느꼈다.

"바보는 아니었군. 그럼 봉인해서라도 그 능력은 내가 가져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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