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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23화 (82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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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십이율주가 내 앞을 가로막아서 장삼봉 진인의 마무리를 막은 까닭. 그건 물론, 정말로 내게 천의무봉을 보여주려고 하는 순수한 마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자살하지 못하게끔 하려고.’

나는 정보에 목을 매고 있다. 하나라도 정보를 얻고 죽으면 이득이기 때문에, 그동안 크게 신경 쓰였던 십이율주의 절대지경인 천의무봉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다. 십이율주는 그런 내 심리를 파악했기 때문에 내 자살을 억지로 막기보다는 욕망 때문에 죽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살이라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나와 내 동료들이 십이율주의 밑천을 알아내고자 얼마나 부단한 노력을 해왔는지를 생각하면, 십이율주가 지금 제시한 기회는 결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살기가 사라졌군. 잘 생각했어.”

“당신도 흑요석의 기억을 본 겁니까?”

“물어서 뭣하나? 그러니까 여기에 왔겠지.”

“처음부터 천계를 염탐하고 있었군요.”

“…….”

십이율주가 문득 나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탈을 쓰고 있어서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탈 너머로 그가 어이없어하고 있다는 감정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이윽고 껄껄 웃었다.

“크크큭.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나랑 머리싸움 하자는 건가? 정말이지 유쾌한 건지 멍청한 건지….”

그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봐, 백웅. 너와 나는 이제 그럴 사이가 아니야.”

“서로 필요한 것만 얻는 관계가 된 거다.”

입장을 바꿔보라고?

내가 언뜻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머리를 굴리고 있자 장삼봉 진인이 십이율주에게 말했다.

“그대가 십이율주…, 어떤 존재인지 정말 궁금하구려. 아무리 고려가 기인이사가 많은 땅이라지만 그대 같은 자는 있을 수 없소.”

“백웅의 기억을 본 놈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더군. 백웅이 지금껏 전생하면서 나에 대해서 꽤 많이 밝혀냈기에 나로서도 등골이 서늘했어〜 자칫 잘못했으면 밑천을 털릴 위기도 꽤 있었던 것 같고?”

어깨를 으쓱한 십이율주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뭐 그 얘긴 됐어. 피차 시간이 없으니 어디 싸워 보자고, 장삼봉.”

“어리석은 욕심을 버리시오.”

“욕심이 세상을 움직이는 법이지.”

피잉 -

실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장삼봉 진인과 십이율주 하은천이 최초로 격돌했다!

까강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은천의 은하구절편과 장삼봉의 검이 한 차례 충돌했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장삼봉의 태극검결이 열다섯 번의 변화를 일으키며 하은천의 전면을 훑어 내렸다. 하나같이 무당파 검술의 정화가 깃들어 있는데다가 성질도 모두 달랐기에 한 번이라도 방어에 실패하면 상대는 그대로 사지가 찢길 게 분명했다.

투두둥

은하구절편의 쇄(鎖) 사이가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첫 태극검결인 추(推)의 기운을 흘려냈고, 그 다음으로 변환검의 일종인 탁(托)이 두 번째 쇄에 걸렸다. 세 번째로 환검인 절(截)의 성질을 가진 검류가 마치 송곳처럼 튀어나왔을 때 정확하게 세 번째의 쇄가 마치 원을 그리듯이 공격을 흘려내 버렸다. 그 방어는 면면부절(綿綿不絕)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장삼봉의 첫 공세를 자연스럽게 막아낸 것이다.

“……!!”

나는 등 뒤에서 십이율주의 방어를 보자 기겁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와…완벽해!!’

등골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하다!

장삼봉은 권법뿐만이 아니라 검법에 있어서도 여동빈에게 맞먹었으며, 두말할 것도 없는 천하무예의 지존이었다. 그런 장삼봉이 손수 태극검의 변화를 일으킨 공격을 막거나 피한다고 하면 아무리 애써 봐도 흐트러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십이율주는 마치 처음부터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방어동작에 티끌만큼의 낭비도 없었다!! 저것이야말로 고수들이 꿈에서라도 그리는 자연스러운 최상의 방어 그 자체!

“으음.”

장삼봉은 눈썹을 꿈틀거린 후 이번에는 삼절무극장(三絶無極掌)을 십이율주에게 뻗었다. 장중하면서도 거대한 힘이 상대를 분쇄하는 저 굴강한 장력은 웬만해서는 흘려내기 힘들겠지만 십이율주는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쇄를 마치 장검처럼 세운 후 삼절무극장의 장심으로 돌격시켰다.

빠직

마치 뇌류(雷流)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장력의 근간에 은하구절편의 쇄가 회전하며 뚫고 들어갔고, 도리어 장삼봉 진인 쪽이 약점을 노출하는 형상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번에도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한 십이율주의 예측에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삼절무극장은 정중앙이 가장 단단하지만 되려 정중앙을 뚫리면 최대의 약점이 생긴다…. 하지만 그건….’

장삼봉한테서 직접 전수받은 내가 아니고서는 절대 초면에 알 수 없는 파해법!

그러나 십이율주는 감인지 뭔지 단숨에 삼절무극장의 최대약점을 최소 동작으로 뚫고 들어가 버린 것이다. 저런 식이면 삼절무극장에 아무리 강대한 힘을 응축시켰어도 소용이 없었다.

콰과광

쿠쾅

약 육십여 초 남짓한 격돌! 시종일관 장삼봉 진인은 공격해 들어갔고, 십이율주는 방어하거나 회피하거나 간간히 반격을 했다. 한 번쯤은 공격해 볼만도 했으나, 십이율주는 이상할 정도로 공격에 욕심이 없어 보였다.

‘이길 생각이 없는 건가?’

아무리 완벽한 방어나 반격이라 해도 결국 수동적인 전략이다. 싸워서 이기고 싶으면 공격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십이율주는 기력 소모를 감수하고 일부러 방어에 전념하는 듯 했다.

따당

은하구절편과 장삼봉의 검강이 한 차례 충돌한 직후, 장삼봉 진인이 뒤로 세 걸음을 물러서서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불가능한 절대지경…, 완벽함…, 천의무봉…. 이제 무슨 뜻인지 알 것 같구려.”

“흐음, 무슨 뜻인데?”

장삼봉은 단호하게 말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만들어낸 절대지경… 일 듯 하구려. 그대와 싸우는 건 자연을 상대로 이겨야 함을 뜻하오. 극기(克己) 아닌 극기로군.”

“…….”

“더불어 그대가 결코 무신을 만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알 수 있었소…,”

십이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난 적 없어. 근데 왜 만날 수 없지?”

“그대는 무(武)를 결코 무 그 자체로 대하지 않기 때문이오.”

“후후후….”

장삼봉의 말에 십이율주 하은천은 놀라기는커녕 냉소를 지었다. 그는 잠시 후 냉소를 멈추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상관없어. 어차피 별 아래 모든 것이 고통 받던 그 날, 무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는 구원자를 찾아다닌다고 힘 빼는 취미는 없어.”

“무신은 구원자가 아니오.”

십이율주가 이죽거렸다.

“그럼 더더욱 알 바 아니겠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절대자가 방관자와 다를 게 뭔가?”

“음….”

“선량한 신이여,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면 판에서 내려가라! 인간에겐 거추장스러우니까!”

성내며 외친 하은천은 갑자기 안광을 폭사했다.

“자, 나야말로 네 밑천을 알 것 같다. 슬슬 투선을 해치워볼까!”

투둥!!

공기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하은천이 절대지경의 의념을 최대로 발휘해서 장삼봉에게 쏘아져 나갔다. 장삼봉은 즉시 무쌍패의 자세를 취해서 그의 공격을 무효화했으나, 하은천은 그 순간 장삼봉을 직접 치지 않고 밑의 땅을 향해 전력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다. 은하구절편의 쇄가 땅에 닿는 순간, 반경 십여 장이 순식간에 은백색의 얼음으로 뒤바뀌는 게 눈에 보였다.

쿠과쾅

무너진다!!

엄청난 괴력 때문에 단숨에 고치가 있던 이 지하신전의 땅이 붕괴되면서 지진이 일어났다. 나는 급히 야차를 들쳐 업으며 이 자리에서 빠져 나오려 했고, 내가 천상제와 경공을 써서 지상으로 뛰어올라가고 있을 때 장삼봉의 무쌍패가 펼쳐지는 게 눈에 보였다.

파앗

하은천이 은하구절편을 통해서 불러낸 듯한 빙룡(氷龍)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장삼봉을 휘감았으나, 이내 음과 양의 조화가 원으로 펼쳐지자 빙룡의 아가리가 폭발하면서 장삼봉이 상처 하나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정도론 소용없소.”

“그런 것 같군. 무공으로는 당신과 결판을 낼 수 없겠어.”

십이율주의 공격을 일차로 무효화 시킨 장삼봉은 마치 절대자와 같은 위엄을 발휘하며 자신의 등 뒤에 음양을 휘감고 있었다. 역시 아무리 십이율주라 해도 투선 장삼봉의 절대방어인 무쌍패를 뚫지는 못하는 것이다.

십이율주가 중얼거렸다.

“그럼 무공 이외의 것으로 결판을 내야지.”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눈을 크게 흡뜨고 말았다.

우우우우

우우우우우 -

기묘한 울음소리와 함께 하은천의 등 뒤에서 공간이 열리더니, 거대한 환염의 새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환염의 새는 잠시 용트림을 하듯 꿈틀거리다가 한 쌍의 날개를 펼쳤는데, 그 날개는 마치 공작처럼 화려하면서도 한 올 한 올이 영적인 불꽃으로 올올이 타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크기는 무려 삼십여 장은 될 법 했으며 그 붕조(鵬鳥)가 품고 있는 말도 안 될 정도의 영력 때문에 꽤 거리가 있는 곳에서도 숨이 막혀올 정도였다.

삐이이 -

하은천이 붕조의 등에 올라타서 허공에 떠오르자, 마주 떠 있던 장삼봉이 얼굴이 굳은 채 말했다.

“…봉황(鳳凰).”

“원래라면 이 녀석으로도 무쌍패를 완전히 부수진 못하겠지만, 지금 당신은 인과율을 소모해서 억지로 현계해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

“…….”

십이율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퇴장하셔야겠어.”

후와아악

다음 순간, 섬광이 눈앞을 가득 에워쌌다. 그와 동시에 십이율주가 소환한 봉황이 그저 입을 벌려서 섬광을 내뿜었을 뿐이고, 그 섬광이 외신의 제물이 설치되어 있던 공양제단은 물론이고 이 성 자체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걸 이윽고 깨달았다. 마치 빛의 기둥을 연상시키는 광량(光量)이 한도 끝도 없이 뻗어 나오더니, 나는 그 후폭풍에 휘말려서 미친 듯이 바깥으로 날아갔다.

‘으아아아아악!!’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밖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이윽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고, 땅에 쓰러진 채 굴렀다. 한참을 데구르르 구르고 있으니 전신에 격통이 쏟아져 왔고 잠시 고통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100번 죽고도 남았을 충격이었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긴 했다.

“으윽….”

내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갑자기 눈앞에서 달빛 같은 게 비치더니 공간의 문이 열리는 게 눈에 보였다. 공간의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바로 십이율주 하은천이었고, 그는 내게 한쪽 손을 흔들었다.

“어이! 괜찮아? 이거 보여?”

“…그건 월요의 능력입니까?”

“그런 거겠지? 정확히는 이론상의 술법을 구동할 수 있는 동력을 월요에서 빌려와서 쓰는 거지만. 공간전이술이란 건 정말 편하군.”

“장삼봉은….”

“천계로 되돌아갔지. 불쌍하게도 억지로 현계한 상태에서 그 정도로 피해를 입었으니, 대라신선에서 지선…, 아니 인선(人仙)까지 지위가 추락할지도 모르겠는걸? 큭큭.”

십이율주가 얄밉게 이야기했으나 나는 그의 왼쪽 팔을 빤히 바라보았다.

“당신도 멀쩡해보이진 않는군요.”

아니나 다를까 십이율주는 왼쪽 팔을 잃은 상태였고, 어깨 쪽은 완전히 피범벅이 된 상태였다. 장삼봉도 곱게 당해주지 않은 것이다. 십이율주는 그러자 바로 손을 내리면서 초록색 빛을 소환했고, 그의 사지는 곧장 완전히 재생해 버렸다.

“이제 멀쩡하네.”

그는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장삼봉이 대단하긴 하군. 봉황을 소환한 나를 상대로 이 정도 피해를 주다니. 무쌍패를 공격으로 전환하면 그 정도 파괴력이 나오는 건가?”

목요 신단수의 회복능력, 정말 사기적이다!

내가 내심 경악하고 있을 때 십이율주가 고개를 까닥였고, 잠시 후 나를 둘러싸고 삼사(三師)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순식간에 십이율주와 삼사에게 포위당한 형상이 되자 나는 긴장해서 십이율주에게 말했다.

“날 어쩔 셈입니까?”

“아까 말했잖아. 이제부턴 서로 필요한 것만 얻는 관계가 될 거라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뜻이냔 말입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 같구만. 이거 참….”

십이율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네게 필요한 건 세상의 평화잖아? 그러니까 네게 평화를 위해 싸울 기회를 주겠어. 대신에 내가 필요한 건 너의 전생능력이니까, 이제부터 그걸 뽑아내야겠어. 뽑아낼 만한 장소로 데려가 주마.”

“…….”

내가 굳어있자 하은천이 내 어깨에 턱하고 손을 올렸다.

“서로 돕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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