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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22화 (82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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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참극을 만들지 말라니?

나는 장삼봉 진인이 나를 죽이려 하는 상황 자체는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자의 전생을 알게 된 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려 할지는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참극을 피하고자 내 목을 치려 한다는 명분에는 뭔가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저를 왜 죽이려 하십니까?”

“그래야 무고한 자들이 덜 고통 받을 것이오.”

“고통이라니….”

“그대에게 이생은 한 번의 생이겠지만, 그대를 제외한 모든 이는 운명의 뒤틀림에 고통 받을 것이오. 세계의 연속성이 보장받지 못한다면, 나는 그대를 죽이는 게 정답이라 생각하오.”

“…….”

“앞으로 나를 미워하고 전생자로서 복수하려 한다면 그 또한 좋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이 세상이 멸망한다는 관점, 그리고 어쩌면 세계가 평행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장삼봉 진인처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구하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만물에 고통을 주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직은 아냐.’

나는 침착하게 장삼봉 진인에게 말했다.

“진인.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야차에게서 사대신기의 행방만 알아낸다면 저 스스로 죽겠습니다.”

장삼봉 진인이 불쑥 말했다.

“그게 삶이오?”

“네?”

“연자여. 그대가 지나치는 하나하나의 생(生)은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대는 [옛 지배자] 와는 다른 의미로 세계의 법칙을 벗어난 존재….”

“…….”

“그대가 아무리 열생(熱生)의 일념으로 노력한다 한들 - 그저 살아가기 위해 살아가는 것보다 더욱 못한 것이니, 차라리 겁(劫)이라 할 수 있소.”

그의 말은 내 마음속에 아프게 박혀들었다. 평소부터 나 또한 그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장삼봉 진인에게 말했다.

“제가 인간의 영역을 갈수록 벗어나고 있음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니, 저는 여정을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합니다. 그리고 제 자신이 인간성을 잃기 전에 성취를 얻으려면, 어떻게 든 단서를 모을 수밖에 없습니다.”

“연자여. 그대는 인간성에 크게 집착하고 있소. 그 이유는 무엇이오?”

“인간이 아닌 채로 끝을 보아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장삼봉 진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

“무엇이 이해가 가지 않는단 말입니까?”

“신들과의 전쟁에서 그 ‘의미’를 찾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이오? 전생자에게 선악흑백은 무의미할진대 굳이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대가 마도(魔道)인지 아닌지 보다 그게 더 의아하게 느껴지는구려."

“…….”

나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의미.

단순한 질문 같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핵심을 찌른 느낌이 들어서 나는 한동안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

나는 이미 팔부신중조차 교란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과 경험을 쌓았을 진대 - 어째서 저 간단한 한 마디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걸까? 대체 뭐가 어려워서?

나 스스로도 내가 이해되지 않아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자 장삼봉 진인이 말했다.

“백웅. 자살하진 마시오. 그건 도망치는 행위요.”

“그런 결말은 허용치 않겠소.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무인으로써 검을 드시오.”

나는 장삼봉 진인의 말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게 편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제가 원하는 흐름을 허용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사대신기의 정보를 얻지 못하고 제가 죽으면 또다시 어떤 시간낭비가 생길 것 같습니까? 결국 이 세상을 위한 일입니다.”

장삼봉 진인의 흰 눈썹이 서서히 아래로 쳐졌다.

“백웅이여, 명분을 포장하지 마시오. 이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대 자신을 위한 일이오. 그마저도 확실치 않고.”

“…….”

“내 말을 부정하고 싶다면, 무인답게 그 무예로 증명해보시오. 그대가 참극의 왕이 아님을 증명하시오.”

“무슨….”

“…무신을 만나기 위한 길에서 너무 어긋나지 말라는 이야기요.”

그는 왠지 슬픈 표정이었다.

알 수가 없다.

장삼봉 진인은 대체 뭘 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내게서 뭘 보고 싶은 걸까?

‘자살하려면 지금 당장도 자살할 수 있어.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뭔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장삼봉 진인이 나의 자살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내게 지니고 있는 살의(殺意)는 진짜이지만,  그만큼이나 장삼봉 자신도 결연한 각오를 한 채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것은 같은 무인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육감이었다.

하아.

문득 나는 지친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는데도 사태만 급박하게 돌아간다.

이 세상을 구하고자 하지만 복안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그런 절망적인 현실을 늘 의지력으로 견뎌내 왔지만 문득 허무감에 휩싸이며 지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뭔가를 놓아버리듯, 장삼봉 앞에 마주서서 검을 뽑아들었다. 복잡한 머릿속이 선명하게 이어지더니 집중력이 대결에 모아져 있었다.

스으

“좋습니다.”

내게 무쌍패를 전수해 준 장삼봉에게라면 죽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스승에 대한 예의로써 그에게 내 삶의 종지부를 찍는 역할을 맡겼다. 나 또한 자살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극강의 무인과 싸우다가 죽고 싶었다.

채앵 -

내가 검을 들자 장삼봉 진인이 세 걸음을 다가온 후 나와 검을 가볍게 교차시켰다. 이것은 무당파 대련의 예식 중 하나로써, 십자로 교차한 양인의 검이 떨어지는 순간 대결이 시작된다. 나는 여기까지 와서 장삼봉과 결투를 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묘한 감흥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하….’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야차에게서 사대신기의 정보도 알아내지 못하고 자살이나 다름없는 대결신청에 호응해서 죽을 위기인데, 어째서 심장이 뛰는 것일까? 무인의 호승심이란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쩌엉!

시간이 멈추는 듯한 간극 사이에서 장삼봉 진인의 일검과 내 검이 떨어지더니, 최초의 일 초식을 나누었다. 나는 십자의 교차가 끝나자마자 바로 검뢰에 혼연의 집중력을 실어서 장삼봉에게 검극을 향했다. 단순한 찌르기에 불과하지만 모든 거추장스러운 허례를 벗어뒀기에 이 일격은 내 최선의 일첨(一尖)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반월(半月)이 장삼봉 진인의 몸 주위를 맴도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으며, 반월 한 쌍이 고적한 어둠 속에서 빛을 일으키며 내 목을 베어왔다.

‘진심 맞구나.’

나는 장삼봉 진인과 많은 대련을 하면서 이 일섬이 어떤 무공인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체념하는 마음이 들었다.

북명건곤(北冥乾坤)

무쌍영(無雙影)

천계에서 북명건곤참(北冥乾坤斬) 이라는 별명도 있는 무쌍영은, 장삼봉 진인이 미처 인간계에 남기지 못 한 무공이었지만 칠대절학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삼봉 진인이 선계에 오른 후 그는 무쌍영을 이용해서 신장을 일격에 절명시키기도 했으며,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는 검술의 오의였다.

후웅

시간이 느려지는 체감.

반월은 어느새 내 목까지 다가와 있었고, 나는 여기에서 방어나 회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쌍영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아무런 시간낭비 없이 연속으로 상대를 베어버리는 게 가능했다. 방어를 선택하면 방어채로 깨질 것이고, 회피하면 그대로 사지 중 하나를 내줘야 한다.

투선의 절학인 만큼, 난 아직까지 본신의 실력으로 무쌍영을 파해할 수가 없다. 다른 합체절기는 대충 파해가 가능하지만 무쌍영만큼은 그게 안 된다. 무쌍영을 썼다는 건, 장삼봉이 날 기필코 죽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가히 막강한 검기였으나 이게 칠대 절학에 속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쌍패에 필요한 원리를 담지 않았으며 넘치게 담을 경우 무쌍패의 터득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무쌍영을 상대로는 삼보절기 외에는 답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삼보절기로 천지인의 축을 부여잡으면서 최대한 회피했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반월 하나가 내 검을 땅하고 때린 직후에 다른 하나의 반월이 내 목젖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잇

목젖에 혈선(血線)이 죽 그어졌으나 그저 피륙의 상처에 지나지 않았다. 예상보다 잘 피한 느낌인지라 나는 다시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곧장 몸을 반회전시키며 장삼봉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장삼봉 진인이 어느 새 양 손으로 고요히 음양을 조율하는 모습을 보자 얼굴이 굳어졌다.

무쌍패!

‘으윽, 늦었….’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하고 있었으며 거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 검뢰가 상대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가는 순간 장삼봉의 무쌍패가 발동했고, 나는 그대로 전신에 탈력(脫力)이 덮쳐오는 걸 느꼈다. 어느 새 검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나는 힘을 잃은 검과 함께 급히 삼보 뒤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

이것이 무쌍패의 진짜 무서운 점이었다. 일단 즉각 반격까지는 하지 않는 게 무쌍패지만, 한 번 공격을 무효화당한 자는 큰 탈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탈력감은 고수끼리의 싸움에서는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할 수가 있었으며 일격에 쏟은 기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탈력감은 더욱 강해졌다.

지금까지 무쌍패를 상대로 공격해 왔던 자들이 너무 수준 높은 대존재들이라서 이 효과가 부각되지 않았으나, 격하의 상대가 무쌍패에 공격을 무효화당할 경우 여파가 장난 아니었다. 결전에 임하는 고수의 집중력이 크게 하강할 수밖에 없다.

한 호흡을 강제로 빼앗긴 느낌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걸 느끼고 움찔했고, 장삼봉은 무쌍패의 자세를 거두지 않은 채 다시금 어검절초를 써서 나를 공격해 왔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갖고 놀듯 내 대응을 다시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는 장삼봉의 어검을 막아내며 방어자세로 돌변했다.

무쌍패는 능동적인 무공이 아니다.

방어로 전환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러나 장삼봉 진인은 예상을 했다는 듯, 어검을 다시 검에 잡더니 두 발짝을 앞으로 나왔고, 나는 마치 태산이 덮쳐오는 듯한 압박감에 이를 악물었다. 역시 무쌍패에 당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의외로… 할 만하다!!’

밀린다는 점은 변함이 없으나, 장삼봉과 자나 깨나 무공연마를 하며 대련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리어 지금은 실력차를 감안했을 때 잘 싸우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용기를 주며 장삼봉에게 덤벼들었고, 장삼봉은 합체절기인 현천구룡파를 한 손으로 내쏘며 응전했다.

콰광!!

나는 그렇게 약 백 오십 초 정도를 장삼봉과 겨루었다.

내가 하는 공격은 모두 막히거나, 흘려지거나, 무쌍패에 무효화되었으나, 장삼봉 또한 나를 일격에 없애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숱한 합체절기가 쏟아졌으나, 나 또한 삼보절기나 호신강기 등으로 어떻게든 버텨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길 수 있는 건가?

저 장삼봉을?

내가 내심 희망을 가졌으나 이윽고 뭔가를 깨닫고 멈칫했다.

“…….”

내가 손을 멈추자 장삼봉 진인 또한 손을 멈추었다. 나는 그를 허망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장 진인…. 어째서 봐준 것입니까?”

“봐줬다 생각하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여기까지 버틸 리가 없습니다. 평소라면 오십 초 내에 제가 쓰러졌을 텐데 어떻게.”

“…허허.”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잘못 생각했소. 난 최선을 다하고 있소. 끝낼 기회를 신중하게 살피긴 했으나 봐준 적은 없소.”

“그런….”

“그대의 실력이 진일보한 것이지. 그대는 나와 적어도 오백 번 이상 겨루었으며 내 사소한 버릇이나 절기, 수법을 꿰고 있소. 아무리 나라고 해도 그런 자를 상대로 단시간에 결판을 낼 수는 없소. 그리고 오늘의 그대는 예전과 달리 잡념을 모두 떨치고 죽음에 발을 걸쳤기에 자신의 실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오.”

“그대는 이제 절대지경의 고수와 자웅을 겨룰 만하오. 예전에 여동빈에게 쉽게 쓰러졌던 건 배운 걸 다 쓸 줄 몰랐기 때문이오. 이제야 쓸 만하구려….”

나는 장삼봉 진인의 칭찬에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얼굴이 굳었다.

“허나 이미 회심의 한수를 당한 걸 눈치 채지 못했으니, 아직은 멀었소…,”

“뭣….”

끼이이이 -

불길한 소리가 내 귓전에 울려퍼졌다. 그건 바로 내 몸 안에서 혈류가 회전하는 소리였고, 나는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고 있었다.

퍼엉!!

“크헉!!”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심장 뒤쪽에서 격렬한 와류가 일어나 등 쪽이 터져나가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치명상이었으며, 순식간에 등짝의 삼 할이 날아가 버린 듯 했다. 나는 피를 토하며 쓰러지며 생각했다.

‘…칠대절학 합체절기…, 용음나선경(龍音羅線經)!’

혈명(血鳴)이 소쇄하면 용음(龍音)이 상대를 찢어발기는 절세신공! 나선경과 침투경을 응용해서 펼쳐지는 용음나선경은 상대방이 당한지도 모르게 심어놓을 수가 있었고, 시전자가 원할 때 폭발시킬 수가 있었다. 무림에서도 최상승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 극상의 내가절학!

다만 세상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무당파의 무공치고는 너무 음험하고 잔인하다는 이유로, 장삼봉은 용음나선경을 후대에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용음나선경은 나선침투경의 성질을 갖고 있으며 무려 다섯 번이나 체내에서 회전을 거듭하기 때문에, 호신강기를 완전히 무시하고 상대를 갈기갈기 찢을 수 있었다. 장삼봉은 용음나선경으로 오백 년 묵은 교룡을 잡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대…대체 언제 당한거지.’

나는 피바다 속에서 꿈틀거리며 말했다.

“장법(掌法)에는… 한번도… 당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용음나선경은 장법뿐만이 아니라 검법에도 실어낼 수 있소. 그대와 검을 부딪쳤을 때 나선경을 침투시켰소….”

“이런 날이 있을 듯하여 이 수법은 그대에게 알려주지 않았소….”

괴물이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가.

내가 알고 있던 무공의 상식을 통째로 부숴버리는 일이었다.

용음나선경은 일단 장법이므로 장력이 상대에게 접촉해야 한다는 기본조건이 있었다. 그러나 장삼봉은 검경으로 용음나선경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건 무림에서 한 번도 없었던 일이며 모든 무공의 상리를 뒤집어엎는 행위였다.

달리 말하자면 장삼봉과 싸울 때는 일단 검과 검이 부딪히는 일을 모두 피해야만 한다. 그러나 장삼봉 같은 투선급 강자를 상대로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장삼봉을 상대로 검격을 검으로 방어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나는 또 한 가지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이를 악물고 질문했다.

“여동빈을… 상대로는… 왜….”

“여동빈은 내 용음나선경을 모두 눈치 채고, 경력이 혈류에 맺히기 전에 흘려내었소. 그러나 그대는 싸우면서 겸사겸사 쓰는 용음나선경의 흐름을 모두 눈치 챌 만큼의 실력과 감각이 없는 것이오…. 물론 그대뿐만이 아니라 절대지경에 미치지 못 한 자들은 모두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것 또한 수준차인가.

나는 잠시 후 한숨을 쉬었다. 전신에 힘이 빠져서 더 이상 싸울 힘이 남지 않았다.

“…깔끔하게 마무리 해 주십시오.”

결국 이렇게 되는 거군.

“잘 가시오.”

장삼봉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그대로 엄청난 속도의 쾌검으로 내 미간을 관통해 버렸다.

퓨웅

이것이 내 26번째 죽음인 듯 했다.

“…….”

그러나 죽음은 닥쳐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내 앞을 누군가의 등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생자를 죽여서는 안 된다구. 내 목표로 가는 지름길이야.”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장삼봉의 쾌검을 가로막은 존재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지금부턴 내가 상대해 드리지.”

철컹….

구절편의 마디가 철그럭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장삼봉이 기를 끌어올리는 것에 반응해서 미세한 흐름 하나하나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것만 보아도 내게 등을 보이고 있는 저 자가 엄청난 고수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는 양손에 은빛의 수투를 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전신탈을 쓰고 있어서 단숨에 그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투웅!!

눈에 비치지도 않는 속도로 두 절대고수가 허공에서 일 초를 교환했다.

장삼봉은 그의 빈틈을 뚫고 나를 절명시키려는 듯 했으나, 대신 흰 눈썹을 늘어뜨리며 나직이 그의 정체를 말했다.

“동방의 지존이여…. 백웅을 이용 하려 드는 행위 자체가 그대의 목을 죌 것이오.”

상대는 가소롭다는 듯 웃는 기색이었다.

“하하하. 최고의 기회가 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데.”

“백웅, 죽는 건 기다려라.”

우웅

초록빛 광채가 갑작스럽게 내 몸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용음나선경에 입었던 치명상이 한꺼번에 회복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목요로 신단수의 힘을 끌어 올 때 사용할 수 있는 회복술이었다.

“네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천의무봉을 볼 기회니까.”

십이율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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