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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21화 (82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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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아수라는 천인이 손을 앞으로 죽 뻗자마자 자신의 삼면육비 중에서 제일 아래의 쌍비(雙譬)를 움직여 수인(手印)을 맺었다. 그리고 천인의 입에서 소리 없는 비명처럼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오며 주문이 터져 나왔다.

당기(當機)

그와 동시에 마치 새하얀 달걀처럼 눈코입이 없는 천인의 몸뚱이가 수 백 배로 거대해졌다. 단숨에 그 몸의 크기가 한 손으로 궁전을 으깰 정도로 산악과 같은 크기가 되었다. 또한 그저 몸이 커진 것뿐만이 아닌 지, 검지를 겨누어 아수라를 가리키자, 그 즉시 아수라의 몸 근처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쿠과과과광

그 폭발은 그저 화약이 폭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녹색 빛과 청색 빛이 서로 엉겨, 마치 실선처럼 얽히면서 계속해서 폭발범위가 확장되었다. 종래에는 모스크바의 하늘을 모조리 잡아먹을 듯, 구름처럼 번져 나오는 식이었기에 나는 옆에서 쳐다보다가 기겁했다.

‘무슨 저런 술법이….’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삼장법사나 환신 천우진 정도가 되면 일반 술법 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술수를 사용가능한 듯 했다. 저 술법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도시를 전멸시키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스스스!

아무리 아수라라고 해도 저 폭발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만 같았으나, 아수라의 몸 주위에는 기이한 빛이 감돌면서 천인의 술수를 막아내고 있었다. 아마 방금 전에 쌍비로 맺었던 수인은 미리 상대의 공격을 예상하고 방어하려는 거였던 게 분명했다.

아수라는 흉흉한 안광을 발출 하며 다시금 천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꽈광!!

이번에는 천인이 방어에 집중했는지 아수라의 적멸무극을 비롯한 모든 강기가 그저 폭음만 낸 채 무산 되었다. 한 번씩의 공방을 주고받았으나 딱히 우세는 없이 서로 백중세 인 듯 했고, 천인은 신령스러운 구름을 몸 근처에 휘감은 채 하늘에 떠올라서 말했다.

[이해가 안 되는 놈이군. 마왕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굳이 근접전을 고집하는가? 혼돈을 숨 쉬듯 호흡하며 거대한 힘을 사역하지 않는가?]

[하하! 생전에 힘없는 땡중이라서 완력싸움은 겁나나 보지?]

[…흥.]

아수라의 도발에 천인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우리정도 마력을 지니고 있다면 더 이상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권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데, 뭐하러 근접전을 하며 약점을 노출 하냐는 말이다.]

아수라는 삼면(三面) 중 중앙의 얼굴을 천천히 들면서 대꾸했다.

[그게 재밌나?]

[뭐?]

[난 재미없어. 그것뿐이다.]

파밧

다시 한 번 아수라가 뛰어들며 적멸무극을 쏟아 부었다. 천인은 적멸무극을 정면으로 방어할 수는 없었는지 연신 피하기만 했고, 시공간을 왜곡하는 수법도 쓸 수 없는 듯 했다. 아무래도 적멸무극 그 자체에 시공간계열 기술을 파해하는 공능이 깃들어 있는 걸로 보였다.

천인은 양손을 뻗어 강력한 결계를 치며 외쳤다.

[정말 네놈은 수천 년 전부터 재미로 싸운단 말이냐? 난 네 녀석의 전투광적인 기질이 정말 싫다!]

[알게 뭐냐. 난 재미로 싸운다.]

[지면 소멸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 면의 혼돈을 받아들인 우리들에게 ‘다음’이란 없다!]

[그게 어쨌단 말이냐.]

[뭐라고!]

[모든 것은 태어났으니 죽고, 흥했으니 소멸할 뿐이다. 결과를 두려워하면 과정은 얻을 수 없지. 따지고 보면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패배했는데도 ‘다음’을 기대한다는 게 몰염치한 게 아니냐?]

[나는 원래 무인이었다. 그렇기에 예전부터 과정에서 뭔가를 얻고 싶었을 뿐이다.]

담담하게 대꾸한 아수라가 도를 겨누었다.

[날 방해하지 마라!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무신을 만나고 말 것이다.]

[창힐님은? 우리가 창힐님을 구하려 하는 것까지 방해하려 할 생각이냐?]

[내가 언제 너희 일에 어깃장을 놓는다고 했나? 야차가 나와서 내게 사대신기의 행방만 말해주면 된다. 그게 못할 일인가?]

아수라의 말에 천인이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그녀는 지금 남을 만날 수가 없다. 오늘 이만 돌아간다면 야차가 널 찾아갈 것이다.]

[못 믿겠다. 왜 못 만나지?]

[그녀가 스스로 제물이 되는 의식을 치러서 ‘고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뭐? 무슨 소리지?]

[외신에게 인신공양을 하는 의식은 일개 공양의식과 차원이 다르다. 그렇기에 고도의 마법 술식과 엄청난 제물이 필요하며, 술자 스스로까지 바쳐야만 한다. 야차는 창힐님의 행방을 구하기 위해 그 역할을 자처했다. 스스로를 고치로 만들어서 외신의 공양물로 변화시켰지.]

[……!!]

[이제 작작 좀 해라! 야차가 본디 창힐님의 친딸이었단 사실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주군을 찾기 위해 모든 걸 걸었는데, 네놈은 네 목적만 소중히 해서 동료와 충정을 다 내팽개친단 말이냐!]

천인이 분노하며 외쳤지만 아수라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래?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널 베고 지나가야겠군. 그녀가 제물로 바쳐지면 나는 두 번 다시 무신의 행방을 좇을 수 없을 테니까. 야차 또한 내가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하지 않겠는가.]

[이…이 놈!]

[아가리는 그만 놀리고 결판을 내자.]

[오냐!! 없애주마!]

콰과과광

다시금 아수라와 천인이 싸우기 시작했지만 나는 더 이상 관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에 그들의 이목에서 기척을 숨기며 슬쩍 뒤로 물러난 후, 내부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을 신중하게 살폈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이 격렬한 국면에 접어들어 나를 신경 쓰지 못하게 되자, 나는 재빨리 멸혼보와 축지법을 쓰며 엄청난 속도로 안으로 들어갔다.

“아수라님!! 제가 야차를 확보하겠습니다!”

[큭, 벌레 같은 놈!!]

지잉

천인이 술법의 고리를 내뻗어서 날 붙잡으려 했으나 아수라가 의념절기로 그 고리를 끊어버렸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는 걸 도와준 것이다. 나는 한순간의 틈새로 천인의 방어를 뚫고 안으로 휙 들어갈 수 있었다.

타다닷

‘역시 나선형 계단이군.’

이족 특유의 양식이었다. 나는 공간 자체가 마법으로 재편성되어서 바깥보다 안이 넓다는 걸 알아챘다. 최소한 백여 장은 되는 깊이의 미궁이자 계단이었다. 나는 계단을 쭉 돌파해서, 떨어지듯 최하층 공간에 도착했다. 그리고 흉측하며 거대한 생물의 내장 같은 게 늘어뜨려져 있고, 곳곳에 '고치’가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내장은 정말 거대해서 오십여 장은 되어 보이는 크기였다. 나는 고치가 한두 개가 아니란 걸 알아챘다. 고치 중 하나를 절반으로 갈라보자, 내 검뢰에도 완전히 잘리지는 않고 절반만 베였다.

‘이 고치들, 마법적인 보호를 받고 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금강석도 베어버리는 내 검뢰로 일격에 자르지 못할 리 없다.

절반쯤 잘린 고치 속에서 진물이 매캐한 냄새를 내며 흘러나온 후, 잠시 들썩이던 고치 내부에서 인간의 형상이 툭 튀어나왔다. 나는 그 인간의 형상을 보자 깜짝 놀랐다.

“으윽.”

인간이 소, 벌과 반반씩 융합한 듯 한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 끔찍하고 기괴해서 보통 사람은 보는 것만으로도 토할 수준이었다. 인간의 이성도 남아있지 않은지, ‘아아’ 거리는 소리만 내며 바닥을 기어 다니는데, 뇌에서 삐죽하고 검은 촉수가 삐져나와 있었다. 나는 나머지 고치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고치의 숫자는 무려 백여 개가 넘었다.

‘야차는…, 내장 안에 있을 것 같군?

내장 안쪽에서 검은 잔영이 비치고 있었다. 제갈사에게서 마도의식을 공부해 온 나는 이 의식의 구조를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백여 개의 일반 고치에서 영력과 생명력이 내장으로 연결되고, 내장 내부에 있는 진짜 제물이 그 힘을 받아들여 위대한 제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나는 내장을 일격에 자르려고 힘을 모아서 검뢰를 펼쳤다.

스캉!!

“흠!”

역시나 칼이 반밖에 안 들어간다. 그리고 일반 고치와는 달리 이 정도 베인 상처는 순식간에 재생해버려서, 도리어 칼날이 내장에 파묻힐 뻔했다. 나는 급히 칼날을 빼낸 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화요에 음신지력을 불어넣자.’

그리고 음신지력과 검뢰를 합친 공격으로 내장을 자르는 것이다! 물리적인 힘과 마법적인 힘이 동시에 깃든 것이기에 충분히 부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나는 음신지력을 최대한 화요에 밀어 넣으며 다시 한 번 내장을 베었다.

추와아악

내장이 힘없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핏물이 마치 개천을 이루듯 흘러나왔다.

성공이다!

잠시 후 핏물이 어느 정도 나오고 나자, 여인의 형상이 폭포를 타듯 흘러나왔다. 나는 여인의 모습이 야차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어떻게 할 지 고민했다.

‘야차를 제압해서 정보를 알아내야 해. 하지만….’

과연 팔부신중에게 고문이 통할까?

뇌신류 고문수법은 굉장히 탁월한 효과를 갖고 있었으나, 팔부신중은 하나같이 마왕급 존재다. 그런 놈들에게 기경팔맥을 이용한 고문은 효과가 없을 확률이 컸다. 게다가 이렇게 기절하고 있는 동안에 그녀를 속박할 방법도 있어야 했다.

결론은 하나다.

이혼대법!!

이혼대법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임시땜빵으로 그녀를 비등에 넣어버리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팔부신중이기에 마력이 너무나 거대했고, 일개마도구인 목갑은 그녀를 가두지 못하고 깨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나는 이혼대법의 원리를 떠올렸다. 이혼대법이란 결국 혼 그 자체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백(魄)을 움직임으로써 혼을 간접적으로 움직이는 술법이다. 그렇기에 이혼대법 술사는 상대방의 백을 먼저 강탈해서 지배권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팔부신중에게 과연 백(魄)이 존재할까?

이 세계에는 혼을 가진 존재가 있는 반면 혼이 없는 존재도 있다. 생명과 혼은 다른 것으로써 생명이 있어도 혼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초상기인 같은 ‘인형’은 거의 절대다수가 그런 존재였다. 혼이란 의지를 지닌 존재가 필수적으로 지녀야만 하는 표상이다.

백 또한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는 혼은 있어도 백이 없는 존재가 있었다. 이 경우는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지를 모르겠지만,  이혼대법이 원천 봉쇄되어 버린다. 제갈사는 물론이고 이혼대법의 창안자인 마왕 벽지상조차 그 원인을 모르는 상태였는데, 백이 어째서 발생하는지도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다. 생명과 죽음, 혼돈과 질서 같은 대칭축의 원리로는 백의 유무를 확정할 수가 없다. 인간 중에도 아주 가끔 그런 놈이 있었고 혼돈의 존재, 이족 중에도 있었다.

‘인공 혼백을 연구했던 원시천존이나 태상노군이라면 그 이유를 알지도 모르지만….’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눈을 감고, 피 웅덩이에 잠겨 있는 야차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밑져야 본전이므로 일단 시도나 해 봐야 한다. 야차가 제물로 바쳐져서 정신이 없는 지금 이외에는 팔부신중에게 이혼대법을 시도해 볼 기회 따윈 앞으로도 없을 것이리라.

우우우

나는 이혼대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갑작스럽게 내 몸이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우우웃!!”

엄청난 크기의 혼이 감지된다!

이게 팔부신중의 혼인 것인가?

‘이렇게 거대한 혼은 이혼대법으로 처음 느껴본다….’

보통의 생명체는 혼이 마치 노른자처럼 떠 있고, 그 위를 백이 흰자처럼 둘러싼 형태였다. 그러나 팔부신중은 혼 그 자체가 너무 거대해서 혼 이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바로 혼돈에 잠식된 혼돈의 존재가 지니는 혼의 정체성인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영력을 돋우면서 혼을 둘러싼 껍질 속에서 백을 찾아보려 했다.

‘어…없어….’

마왕이란 존재는 순수한 혼의 덩어리란 말인가?

나는 좌절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 순간이었다.

[연자여.]

뜬금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곳에는 장삼봉 진인이 영체의 형태로 서 있었다. 어느새 와 있던 장삼봉 진인은 장내의 상태를 지켜보다가 말했다.

[이 곳에서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려….]

나는 장삼봉 진인의 출현에 당황해서 말했다.

“장 진인! 제가 가진 전생자의 기억을 받으셨습니까?”

[받았소.]

…역시.

장삼봉 진인이 말을 이었다.

[위대한 전생자 백웅이여. 그대가 절대지경을 갈구하는 이유…, 그리고 무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그 대의를 모두 알게 되었소. 그러나…, 나는 그대의 생각이 옳다 생각지 않소.]

“네?”

[그대는 위험하오. 너무나… 위험해.]

스스스스스 -

장삼봉 진인의 영체가 서서히 현실감을 띄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장삼봉 진인이 억지로라도 현세에 간섭해서 육체를 만들어내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대라신선들은 영체뿐이라서 현실에 간섭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스스로 제약과 피해를 감수한다면 얼마든지 일반적인 몸뚱이를 만드는 게 가능했다. 이윽고 완전히 구현화한 장삼봉 진인은 태극검(太極劍)의 자세를 잡았다.

“준비하시오.”

그리고 나는 이어진 장삼봉의 말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의 전생은 멈추지 않겠으나, 적어도 이번 생에서의 의리로 그대의 목을 손수 치겠소. 더 이상의 참극을 만들지 말고 사라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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