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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꿈을 꿨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수레바퀴가 돌고 있다. 쉴 새 없이 윤전(輪轉)하며 어둠과 빛을 쉴 새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그 수레바퀴의 틈새에는 또 다른 소용돌이가 있었고, 소용돌이 내부에는 마치 혈관이나 신경처럼 생긴 것이 마치 풀뿌리처럼 뻗어나가 있었다. 수레바퀴는 성천(星天)보다 더욱 거대했으며,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무(無)로 보였다. 천천히 눈을 위로 향했다.
그 곳에는, 거대한 좌(座)가 있다.
좌의 주위에는 알 수 없는 환영들 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그들은 고즈넉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노래를 듣자 나는 편안함과 들뜸을 동시에 느꼈다.
정말 좋은 노래다. 노래의 울림이 좌에 울려 퍼지고 있을 때, 먼저 와 있던 ‘누군가’가 말하는 게 들렸다.
그게 너의 선택인가?
* * *
“…….”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전신을 쑤시는 듯한 격통이 갑작스럽게 덮쳐오자 정신이 확 들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깨어났군.”
“당신은.”
“나는 나지.”
타다닥
동굴 안이었다. 타들어가는 모닥불의 열기가 느껴졌고 내 맞은편에는 도(刀)를 끌어안은 채 벽에 몸을 기댄 사내가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근방 오 리 이내에 누구도 없다는 걸 확인한 후 말했다.
“파순…, 아수라! 내가 왜 당신과 같이 있…?”
“파순이라고 불러라.”
자칭 파순 - 팔부신중 아수라는 짜증스럽게 대꾸하더니 말을 이었다.
“모스크바에 쳐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천계에서 난리가 났더군. 내 계획에 큰 도움이 될 네 녀석이 죽으면 귀찮아지기에, 서둘러서 구하러 갔다. 네 녀석은 [옛 지배자]의 강신을 당하고 죽을 위기 였는데 내가 구해 줬다.”
“…….”
“고맙단 말이라도 한 마디 하는 게 어떤가?”
“고맙…습니다. 파순.”
나는 파순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다.
‘저 녀석…, 천계에서 왜 난리가 났는지 몰라. 그리고 내가 전생자라는 것도 모르는 것 같군.’
이런 건 일부러 모른 체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내 죽음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 셈이기에 일부러 모른 척 해 봤자이기 때문이다. 내 진실을 알게 된 자는 내 동료가 되거나, 나를 조종하려 들던가,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파순이 말하는 걸로 봐선 그는 제천대성을 통해 유출된 내 전생기억을 얻지 못한 걸로 보였다.
그 때 동굴 밖에서 누군가가 공간이동으로 이동해오며 말했다.
“어이. 깨어난 건가?”
나는 그 자의 모습을 보자 깜짝 놀라서 외쳤다.
“…다, 당신은!”
“어, 나를 아는가?”
“새… 새머리시군요.”
“…….”
“…….”
나타난 자는 조류의 두상에 인간의 몸뚱이, 그리고 등 뒤에 한 쌍의 날개를 달고 있는 괴인이었다. 물론 그 자의 정체는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팔부신중 가루라!!’
신염(神炎)을 뿜어서 신급 존재에게조차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존재! 가루라 또한 절대지경의 고수를 일격에 가루로 만들만큼 강력한 존재로 마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얼빠진 소리를 하자 가루라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왜, 인간의 모습을 해줬으면 하는 건가? 이렇게?”
슈욱!
가루라는 순식간에 잘생긴 천축 미남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방금 전의 조인(鳥人)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바꾼 가루라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오며 말했다.
“웃기는군. 다른 종족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족의 최고미남이나 미녀도 그저 원숭이에 불과하다. 도리어 인간 따위에게 미추의 기준을 맞추는 게 농담 같은 일이지.”
“죄송합니다…. 팔부신중이셨군요.”
“그렇다.”
아무래도 아수라와 가루라는 팔부신중 중에서도 서로 친한 관계로 보였다.
“그보다 널 살려낸 대가로 알아야 겠군.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천계가 저토록 뒤집혔고, 네놈은 [옛 지배자]에 강림되어 싸우고 있었는 지.”
내가 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가루라가 눈에서 화광을 일으켰다.
화르륵!
“우리를 물로 보지 마라. 너 하나 고문하는 건 식은 죽 먹기야.”
“…그렇겠죠.”
저 말은 사실이지만 가루라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자살하고자 하면 언제든 자살할 수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고민하는 건 과연 이 국면에서 삶을 더 끌고 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포기하느냐 때문이었다.
좀 더 얻어낼 게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그들을 끌어 들이는 게 맞을까? 아니면 고문의 위협을 생각하고 슬슬 포기해야 할까.
‘당연히 전자지.’
천계에서 섣불리 자살하지 않은 덕에 이렇게 아수라와 가루라가 친한 사이라는 정보를 추가로 알게 되지 않았는가? 억지로라도 명줄을 이어 나가면 당연히 더한 정보를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선행되는 명제가 있다는 걸 즉시 알아차렸다.
“저는 천계에서 서왕모와 구천현녀가 싸우는 걸 봤습니다.”
“그건 우리도 봤다.”
“그들이 싸운 이유는 바로 서왕모가 삼황오제 여와의 화신이었으며, 거짓된 정보로 천계를 기만하며 윤회전생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천현녀는 스스로 반고의 화신임을 각성하고 그 서왕모를 토벌하기 위해 싸웠으며, 그 와중에 옥황상제 또한 삼황오제 요순의 화신인 게 알려졌던 겁니다.”
“……!!”
가루라와 아수라는 둘 다 당황했다. 그들은 천계의 정보를 거의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듣고 있던 아수라가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그럴 수가…. 그럼 전욱이 소환되었던 이유는 뭐냐.”
“천계의 신선들이 절 공격하려 하길래 제가 소환했습니다. 한때 전욱의 사도였으니까요.”
“무슨 소리지? 사도라는 게 자기 맘대로 탈퇴할 수 있는 거였던가?”
아수라의 눈이 날 노려보았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연히 전욱에게 사도의 끈이 닿아서 사도위에 올랐으나, 전 태생이 인간인데다가 가진 힘이 미천해서 금세 버려졌습니다. 모든 힘을 빼앗기고 치명상을 입었다가 인간 동료들 덕분에 겨우 살아났죠. 전욱은 제게 있어서 원수입니다.”
“원수를 소환했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
나는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눈앞의 두 놈들은 술법이나 마도에 그리 밝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사도의 지위는 빼앗겼어도 인과율의 흔적은 남아있으니까요. 그 인과율의 맥을 이어서 전욱의 권능을 임의로 쓰며 힘을 빌리는 수법이 존재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너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엄청난 대마도사이다.”
아수라는 의혹 가득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은 데다 설득력도 있었기에 쉽사리 뭐라 하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거기에 쐐기를 박 듯 말했다.
“고문하려면 고문하십시오. 하지만 제 목표는 창힐이나 팔부신중이 아니라, 저를 이용해먹고 버린 전욱을 비롯한 삼황오제에게 복수하는 겁니다. 공동의 목표가 있다면 서로 협력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아수라는 가루라와 영언으로 뭔가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일단은 믿어주지. 그런데 네놈은 야차를 잡는데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생각이냐?”
“그건….”
“방법을 말해라. 네가 도움이 안 된다면 널 잡아 죽일 수밖에 없다.”
나는 곤란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아수라와 가루라는 완전히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날 이용하려 하는 것 같았는데, 일차적으로 내가 전력이 되는지 아닌지부터 따지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야차 또한 팔부신중이고 지금의 나로서는 절대 일 대일로 못 이기는 괴물인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가진 무공, 술법, 음신지력 등 순수한 무력만으로는 티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에라이 젠장…. 죽는 건 쉬운데, 살아남으려면 계속 머리를 굴려야 하는구나!’
나는 속으로 푸념하면서 죽어라고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가 뭔가 번뜩 떠올라서 말했다.
“제 인간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큰 도움이 될 수 있….”
“필요 없다!”
“네?”
“네 동료들의 힘 정도는 남해항에서 싸울 때 다 봤다. 인간치고는 쓸 만하고 인간세상에서는 수위를 다투겠지만, 그 정도는 우리 본체의 힘에 비하면 미약할 뿐이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지체할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다니요?”
“야차가 긴나라는 물론이고 다른 놈들까지 끌어들이는 것 같다. 시간을 끌면 놈들을 우리 둘이서 치는 게 불가능해진다. 우린 너와 얘기가 끝나는 즉시 출발할 거다.”
“……!!”
“빨리 말해라. 네놈은 야차의 약점이라도 알고 있어서 내게 그런 제안을 했던 거 아니냐?”
이제 보니 시간이 없는 건 핑계고 내 정보를 끌어내려는 속셈 같았다. 하지만 대답하지 못하면 즉시 고문 당할게 분명하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생각을 거듭하다가 말했다.
“축융을 소환하겠습니다.”
“뭣이!”
“전 전욱도 소환한 적 있습니다. 팔부신중에 상극인 축융을 소환하면 놈들 쯤이야….”
“…….”
“축융은 최초의 문자를 알고 있으니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아수라와 가루라는 흠칫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또한 축융이 어째서 두려운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문자!
본디 창시자와 삼황오제만이 공유 하던 것이었으나 축융도 그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객관적 전력에서는 축융이 팔부신중 본체보다 그렇게 앞서지 못하지만, 약점을 쥐고 흔든다면 축융 혼자서도 팔부신중을 전멸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아수라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보다가 말했다.
“…좋다, 그럼 가자.”
“아, 잠깐만, 그래도 제 동료들이랑 같이 좀….”
“필요 없다!”
“…….”
더럽게 말 안 듣네!
내가 속으로 푸념하든 말든, 잠시 후 나는 둘과 함께 아라사 제국의 수도, 모스크바의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가루라가 마치 개전(開戰)을 알리듯 자신의 입을 벌려 거대한 화염을 쏘아냈다.
쿠콰콰쾅!!
가루라의 환염은 단숨에 모스크바의 면적 중 절반을 불태워버릴 듯 했다. 그러나 가루라가 뿜어낸 불꽃이 덮치려는 순간 반투명한 방어막이 떠오르며 막아내었고, 이윽고 우리 앞에 누군가가 공간이동으로 나타났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너희들 미쳤나?”
“긴나라. 역시 너도 천인처럼 야차에게 붙었구나.”
“무슨…, 붙다니?”
나타난 자는 팔부신중 긴나라였다.
두툼한 체형의 장년인인 긴나라는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말했다.
“됐어. 나는 너희가 왜 여기에 왔는지부터 알고 싶다.”
“왜 왔냐고? 그야 무신(武神)에 향하는 길을 얻고 싶어서다.”
“뭐…?”
“야차가 과거 사대신기를 찾으려 했다고 알고 있다. 만일 야차가 그 때의 정보를 솔직히 내게 말한다면 싸우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다.”
“사대신기…, 무신…, 흠, 그런 얘길 누구한테서 들었나.”
긴나라의 눈빛이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아수라가 적당한 말에 꼬여 넘어간 걸 알아차린 듯 했다. 나는 긴나라와 얘기가 이어지면 위험하다고 생각하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수라 님! 어쩌면 창힐님이 실종 된 게 야차와 긴나라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뭐, 뭐라고!”
“진짜냐?”
아수라와 가루라가 나를 쳐다보았고, 긴나라가 나를 성난 눈으로 노려 보았다.
“헛소리! 네놈이구나! 이 두 녀석을 교란시킨 게!”
으윽!
나는 긴나라가 마력을 돋우어 나를 노려보자 몸이 섬찟해지는 걸 느꼈다. 그러나 여기서 쫄아 버리면 진짜 아무것도 못 얻고 죽는 셈이므로, 나는 이판사판으로 외쳤다.
“그렇다면 일부러 아라사 황제 이반 4세를 개조해서 놈에게 신화(神化)능력을 부여한 이유가 뭐지? 완전히 창힐의 권능을 따라한 게 아닌가. 창힐을 유폐시키고 나머지 팔부신중들을 휘둘러 왕처럼 군림하려고 야차와 짠 거 아닌가!”
“……!!”
“너무 의심스럽습니다! 야차와 긴나라를 쳐야 합니다! 놈들은 반역자 일지도 모릅니다.”
아수라는 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긴나라를 쳐다보았고, 긴나라는 황당한 듯 헛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흐흐…, 아수라. 저딴 헛소리에 속는 건 아니겠지? 애초에 넌 우리가 뭘 계획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뭘 계획하는가.”
“창힐님의 실종에 관여한 인과율을 탐색하기 위해, 원래 신화병(神化兵)을 양산하는 기지로 만들려 했던 이 아라사 제국을 통째로 제물로 밀어 넣기로 한 거다. 외신(外神)에게 인신공양 한다면, 틀림없이 창힐님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괜히 우리를 방해하지 마라!”
그러나 아수라 옆에 있던 가루라가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야차는 어디 갔지? 녀석 말을 직접 들어야겠다.”
“그녀는 바쁘다. 인신공양이 막바지 단계라서 직접 ‘조정’에 들어갔다. 예전 측천무후 때처럼….”
“못 믿겠군.”
뭔가 예감이 안 좋다.
이대로 이야기가 흐르면 내 거짓말이 들통 날 게 분명해 보인다. 내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였다.
쿠구구궁…!!
“앗!”
갑자기 모스크바의 일각에 있던 성벽이 붕괴되며 정체불명의 검은 파도가 휩쓸려 들어왔다. 그 파도를 본 긴나라는 경악하며 파도를 향해 날아갔고, 아수라는 그 모습을 보더니 가루라에게 말했다.
“가루라. 따라가서 상황을 살펴 다오. 난 야차를 찾아서 결판을 내겠다.”
“그러지.”
슈욱!!
아수라는 나를 힐끔 돌아보더니 말했다.
“따라와라.”
“긴나라를 믿으십니까?”
“안 믿는다. 너도.”
“…….”
“야차에게 이야기를 듣고 결정할 것이다.”
안 좋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잠자코 따라 갔다.
‘이 기회에 야차가 뭘 꾸미는지 확실히 알 수 있겠지….’
우리가 황궁 내부에 들어가자, 우리 앞에 천인(天人) 삼장법사가 나타났다. 그는 아수라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아수라.”
“너흰 너무 수상하다. 주군이 실종 된 틈에 반역을 꾸미는 건 아니겠지?”
“하…, 힘만 쎈 외골수 놈. 하나도 도움이라곤 안 되는 주제에 어깃장을 놓으려고 찾아왔나?”
“…….”
“썩 꺼져라. 너 같은 바보랑 할 얘기 없다. 그 인간 놈은 뭔지 모르겠다만 얼른 죽여 버리던가.”
“외골수…, 바보…. 넌 언제나 날 그렇게 무시하는군.”
아수라가 다소 성난 표정으로 천인을 노려보자 천인이 더욱 이죽거렸다.
“흐흐흐, 꼴에 천축의 전쟁영웅이었답시고 놀리는 게 뭔지도 아느냐? 같은 팔부신중이라지만, 난 네놈을 딱히 동료라 생각지 않는다. 창힐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도 모르고 무신이라는 신기루나 찾아다니는 병신 노… ”
스으으
그러자 아수라가 본체로 변했다. 대뜸 아수라가 본체로 변하자 천인이 크게 당황한 듯 했다.
“…지, 진심이냐? 이 정도는 늘 했던 얘기였는데, 정말로 우리 팔부신중끼리 싸울 생각….”
[네 입으로 동료가 아니라 생각했다고 했지!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
[네놈만 그리 생각한 건 아니었다고 말해두마.]
아수라의 안광이 짙은 잿빛으로 번득였다.
[이제 진실 따윈 상관없다. 일단 네놈을 이 자리에서 묻어버리겠다!!]
적멸무극(寂滅無極)!!
여섯 개의 절대지경 기술이 한 점이 응축되서 아수라의 도신(刀身) 끝으로 뿜어져 나왔다. 천인은 즉시 시간정지 술법을 시전해서 막으려 했으나, 그 순간 적멸무극이 시공간의 폐곡(廢曲)을 그대로 깨뜨려버리고는 천인의 일 장 앞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천인 또한 자신의 본체로 변신하면서 만다라처럼 생긴 방어막을 소환했으나, 아수라는 거침없이 방어막을 베어서 갈라버렸다.
쿠콰콰쾅
천인이 연속으로 뒤편으로 순간이동하며 피하려 했으나 아수라는 그를 따라붙으며 삼면육비에서 쉴 새 없이 절대지경의 기술을 뿜어냈다. 순식간에 천참(千斬)이 천인의 전신을 난자했고 천인은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천인은 상당한 부상을 입은 듯, 비틀거리다가 하늘 높이 떠오르며 분노해서 외쳤다.
[건방진 놈! 내가 팔부신중 최강이다!! 넌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거 아느냐? 내가 너와 제대로 싸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아수라가 지상에 서서 그를 올려다 보며 씨익 웃었다.
[네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깨닫게 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