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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뭐, 뭐라고! 언제?”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뿐만이 아니라 동료들 모두가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자 파순이 말했다.
“이후에 팽조가 괜찮은 조건을 제시하며 날 용병으로 고용했을 뿐이야.”
“그 조건이 뭐요?”
“그것까지 말할 이유는 없다만. 안 그래도 이제 보수를 받으러 가야겠군.”
파순은 내 질문에 대충 대꾸한 후 등을 돌렸다.
“넌 팽조 따위에게 당할 놈은 아닌 것 같군. 이번 일이 끝난 후 다시 널 찾아오겠다. 그 때 무신을 만날 방법을 말해주기를 바란다.”
“잠깐….”
파앗!!
파순은 갑자기 순간이동으로 사라져 버렸다. 무공이 아닌 마법의 일종이었기에, 그가 무인처럼 보여도 역시 마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긴장이 풀려서 잠시 검을 늘어뜨리자 옆에 있던 백련교주가 말을 걸어왔다.
[백웅이여. 정말로 그대는 무신과 만날 방법을 알고 있는가?]
윽, 역시.
백련교주 또한 무신을 만나는데 관심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부터 그가 내게 집착할 거란 사실을 깨달았기에 나는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대충 이 자리를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무신은 ‘문’을 열 수 있는 존재를 원합니다. 그 숫자는 총 100명인 것 같고, 그럴만한 자질이 있는 존재에게만 나타나는 것 같더군요.”
[그건 나도 안다. '문’을 열 수 있는 자질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글쎄요…. 그건 지금 이야기할 일이 아닌 것 같군요. 여긴 적지(敵地), 마도결계 내부에서 언제까지고 시간만 때울 수는 없습니다.”
천우진이 내 말을 거들었다.
“잘 말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모두가 마력에 침식당해 죽을 거다. 빨리 팽조나 죽이러 가자.”
[으음….]
백련교주는 석연치 않아했지만 일단은 납득한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백웅이여. 나중에 그대가 익힌 그 방어술에 대해 내게 알려주도록….]
무공욕심이 굉장하군.
한 눈에 무쌍패의 위력을 알아내고 그 안에 섞인 칠대절학의 가치도 알아본 게 분명하다. 나는 성가신 인간에게 찍혔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는 일단 앞으로 전진하기로 했다.
타다닷!
우리는 마도에 물든 항구의 최심처에 도착했다. 그러자 점액질의 괴물들이 수천 마리나 돌아다니고 있고, 질척거리는 촉수들이 땅에 뿌리를 박고 나무처럼 자라는 장소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시꺼먼 어둠으로 물든 바닷가 위에는 핏빛 함선이 잔뜩 떠 있었는데 확실히 그 크기가 일개 함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 했다.
미호가 함대를 보더니 말했다.
“저 배…, 살아 있다. 그 자체가 마도생명체 같구나.”
“윽…, 질리는군.”
“어떻게 할 거냐? 잠입하기엔 너무 위험하다.”
미호의 말 대로였다. 마도생물이 잔뜩 둘러싼 장소인데다가 함선 자체가 마력에 침식되어 생명체로 변해있다면, 함대에 들어가면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팽조가 함선 내부에 있는 건 아마 틀림없다.
‘이럴 땐 특수능력을 쓰자.’
나는 전생에 얻어낸 제천대성의 화안금정을 발휘해서 함대를 몇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함선 내부에 주황빛으로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저건?’
인간형태의 형상과 구슬 하나.
나는 그게 바로 팽조와 금요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화안금정을 얻은 덕분에 손쉽게 상대의 위치를 탐색 할 수 있는 것이다. 화안금정은 칠요처럼 강력한 기물을 손쉽게 알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내심 전생하면서 얻은 성과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깄다! 팽조를 없애자.”
“공격!”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제갈부는 호령을 내려서 용인과 마인 부대로 그 함선을 공격했다. 그들이 달려들자 질척거리는 마도생물들이 달려들었으나 이쪽도 마(魔)의 생명체인지라 그저 힘 싸움에 불과했고, 몇 차례 푸닥거리를 하자 이쪽이 우세한 상태로 밀어붙일 수 있게 되었다.
슈슉
여기저기에서 서방 마도사들이 등장해서 갑자기 소환술을 쓰며 온갖 공격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놈들의 포위공격이 시작되자 백련교주를 비롯해서 아군동료들이 나서서 놈들에게 맞서 싸웠다.
콰콰쾅!!
[끼엑.]
[께게겍.]
그 때 갑자기 폭음과 함께 용인부대들이 단숨에 고기조각이 되어서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공격당하던 함선 내부에서 새하얀 빛과 함께 팽조가 떠올라서 거대한 외침을 내질렀다.
[하찮은 필멸자놈들! 감히 칠요를 얻은 내 상대가 될 거라 생각했느냐?]
드디어 이번 싸움의 주인공이 등장 한 것이다. 저 놈을 해치우고 나면 이 이변도 종식될 게 뻔했기에, 나는 내심 팽조의 등장을 반겼다. 나는 팽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팽조! 천계에서 보패를 훔친 탈주 신선 주제에 삼황오제가 두렵지도 않은가? 남해에서 이렇게 분탕질을 치면 그들이 머지않아 널 죽여 버릴 것이다. 네가 전욱의 현손이라는 신분조차 네 죽음을 막아줄 순 없다.”
[…뭣…! 어떻게 그걸….]
팽조는 당혹했는지 멈칫거렸다.
[…호오오. 꽤나 신화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 같구나. 하지만 그런 건 네깟 놈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네깟 놈이 삼황오제를 감당할 힘은 없어 보이는데.”
내가 되려 비아냥거리자 팽조는 화가 난 듯 표정을 일그러뜨리더니 외쳤다.
[필멸자 주제에 감히 날 비웃느냐? 삼황오제의 개입은 그 분께서 막아 주시기로 했다!! 이제 휴전의 시대는 끝났으니, 혼돈과 어둠이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리라.]
“그 분?”
[오거라, 태초에 서방의 수호자에게 봉인된 자여. 새벽의 명성(明星)이여!]
위이이잉!!
팽조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손에 들려있던 금요가 찬연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광선은 공격인 줄 알았는데, 광선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투영하듯 비치면서 인간처럼 보이는 형상을 만들어냈다.
오오오오
금요가 떨쳐낸 빛은 이윽고 마치 날개달린 인간처럼 보이는 것을 소환해냈다. 그 존재는 한쪽 날개가 백색, 다른 한쪽이 흑색이라서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생긴 게 무척이나 잘생겼으며 아름다운 존재라서 심상치 않아보였다. 나는 그 형상을 보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천신경에 소환되었던 서방인이 말했던 날개달린 존재…, 그게 설마 저 놈인가!’
날개달린 인간은 소환되자마자 눈빛에 흉광을 띄우며 외쳤다. 그의 흑백날개가 거대해지며 마력을 떨쳐냈다.
[나는 금성, 빛을 옮기는 자! 내가 이토록 강한 힘을 얻었으니 하늘은 잠잠히 있고 별들은 넘어져 내 발밑에 깔려야 하리라!!]
퓨퓨퓽
하늘에서 광창(光槍)이 만들어져서 지상에 수만 개나 쏟아지기 시작했다. 실로 무시무시한 기세인지라 이 쪽의 무림인들은 말 그대로 혼비백산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이, 이게 뭐야?!”
여기에 쳐들어오면서 온갖 마도생물과 괴변을 보아왔던 자들이었지만 지금 천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광창은 말 그대로 세상을 뒤덮는 물량이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힘인 것이다.
‘제길! 금요에 봉인되어 있던 사도급 존재인가?’
아무래도 서방의 강력한 불멸자 같다! 팽조는 금요로 특수한 존재를 소환할 줄 아는 건가?
그러나 나와 내 동료들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전생하며 숱하게 보아왔기에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급급여율령!! 이 결계에서 나가지 마라!”
천우진이 재빨리 강력한 결계를 만들어서 광창을 막아내었다.
또한 진소청과 미호, 제갈부가 동시에 뛰어들어 자칭 [빛을 옮기는 자]에게 공격을 개시했다.
“하앗!!”
진소청의 창이 극미의 영역을 찌르며 괴물의 날개를 한차례 뜯어냈고, 미호의 여우불꽃이 제갈부의 부적을 싣고 폭풍처럼 쏟아졌다. 그 동안 우리쪽 동료들도 많이 강해졌기 때문인지 [빛을 옮기는 자]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저쪽은 셋이서 감당할 수 있겠군.’
나는 백련교주와 한차례 눈빛교환을 하고는 이쪽의 초절정무인들과 함께 팽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백련교주는 허공에 떠오르며 자신을 따르는 호법사자들에게 명령했다.
[저 자의 보패를 그대들의 힘으로 파괴하라.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존명!”
화신류 호법사자 한백령이 전방으로 날아들며 쌍검을 휘둘렀다.
십이무극용왕참!!
꽈과광
팽조는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한백령의 십이무극용왕참을 맞았다. 팔괘자수선의의 방어력을 믿는지 방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팽조가 입은 팔괘자수선의는 손쉽게 그 힘을 흡수하는 것 같았고, 이내 팽조가 비웃음을 흘렸다.
[크하하하!! 겨우 무림인 따위가 내 보패를… 엇?]
그러나 십이무극용왕참에 무한의 내공이 가중되면서 한백령의 눈빛이 진홍빛으로 일렁였다. 여우가면 너머로 한백령의 흉흉한 살기가 피어오르며 그녀가 화신지혼(火神之魂)을 운용하는 게 느껴졌고, 이내 십이무극용왕참의 마지막 십이참이 쏟아지면서 팽조의 팔괘자수선의의 앞섶이 크게 잘려나갔다.
푸콱!!
[……이, 이럴 수가!!]
“죽어라!!”
한백령은 쌍검을 교차하며 화신류 검술비기, 화영미리참으로 파괴력을 가중시켰다.
콰과광
[크아악.]
팽조는 경악성을 내지르며 함선에 꽂아넣듯 떨어졌다. 큰 타격은 없어 보였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커 보였다. 무림인이란 존재를 벌레처럼 얕보고 있었는데 팔괘자수선의의 방어가 뚫렸기 때문이리라.
‘있을 수 있는 일이야.’
하지만 그건 팽조가 호법사자의 역량을 너무나 간과했기에 생긴 일이었다. 호법사자가 지닌 무한의 내공은 결국 가장 위대한 [지배자]의 옥좌에서 가져오는 것이며, 심지어 한백령의 화신류는 사대무류 최강의 공격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녀가 화신지혼까지 쓰면 모든 능력이 증폭 된다. 아무리 팔괘자수선의가 선계 최강의 방어보패라 해도 무방비 상태에서 맞으면 찢겨나가는 것이다.
[이놈.]
“합체기를 받아라.”
이어서 수신류 호법사자 독고준과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이 동시에 자연지기를 이끌어내더니 각자 수류(水流)와 풍류(風流)의 소용돌이를 허공에 만들어냈다. 두 사람은 압도적인 자연지기를 끌어내더니 허공에 서기(技)를 합하며 용권풍을 팽조에게 쏘아 보냈다.
꽈과과과광!!
자연 그 자체가 적의를 가지고 덮쳐버리는 기세! 호법사자가 지닌 압도적인 화력이란 게 뭔지 다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순수한 무공으로 치면 절대지경 고수에 미치지 못하지만 인외의 존재와 힘대 힘으로 싸운다면 호법사자들은 충분히 강력한 것이다.
[이놈들…, 감히 날 얕보다니…. 응?]
팽조가 보패의 힘으로 용권풍 속에 서 다시 일어나고 있을 때, 백련교주가 눈에서 불빛을 뿜어내며 원영의 경지에서 현겁을 시전했다.
[얕보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죽여 주마.]
투두둥!!
백련교주가 무한의 힘을 쏟아내며 일 순간에 수백 장(掌)을 쏟아내며 팽조를 짓누르듯 공격했다. 쉴 새 없이 폭풍처럼 쏟아지는 장력의 세례는 하나하나가 수십 장 대지를 통째로 박살낼 정도로 강력했고, 팽조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맞을 수밖에 없었다.
[……!!]
팽조는 억울한 표정으로 계속 버티고는 있었지만 반격이 불가능해 보였다. 저 압도적인 공격을 버티는 것만 해도 놈이 굉장한 존재라는 증거이긴 했다.
'흠. 이제 어떻게 한담….’
나는 괜히 백련교주와 삼대 호법사자가 합공하는 저 현장에 괜히 끼어 들면 방해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팽조를 상대로 방심하지 않았고, 이대로 화력으로 내리눌러서 팽조의 팔괘자수선의가 터질 때까지 몰아붙일 게 분명했다.
‘제갈사를 찾자.’
나는 본래의 목적을 수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만 먹으면 팽조 따위는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었지만 이렇게 성가신 과정을 거쳐 온 것은 제갈사의 계책에 합을 맞춰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팽조의 제압이 반쯤 성공했으니 제갈사에게서 진의를 들을 때가 된 것이다.
우웅
화안금정을 발휘해서 함대 내부를 살펴보자, 외곽의 떨어진 함선에 독특한 결계감옥이 만들어져 있는 게 보였다. 보나마나 저기에 중요한 게 있을 게 분명했기에 나는 눈치를 보다가 재빨리 등평도수를 운용해서 바다 표면을 뛰어서 외곽 함선으로 향했다.
부웅
나는 소리 없이 외곽 함선에 오른 후 내부로 들어갔다. 이 함선 자체가 마도생명체라고 하지만 여차할 경우 힘으로 빠져나올 자신은 있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벽면 전체가 질척거리는 점액과 마물로 뒤덮여 있어서 마치 지옥 같은 풍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츄르륵
저벅
나는 계속 안으로 들어가자 제일 깊은 곳에 도착하자 마물의 기척이 적어지고 극심한 한기로 뒤덮인 결계감옥을 마주칠 수 있었다. 나는 결계감옥이 단단하게 닫혀있는 걸 보고는 몸 내부에 있던 음신지력을 끌어올렸다.
‘무공보다는 음신지력의 순수한 파괴력으로 부숴야 이런 결계가 더 잘 부서질 거야.’
나는 미호에게서 배운 요령대로 음신지력을 뭉쳐서 허공에서 창의 형태로 만들었고, 이내 감옥을 향해 내쏘았다.
꽈과광!!
결계감옥은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 받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내가 지닌 음신지력의 양 때문인지 맥없이 터져나갔다. 나는 생각지 못했던 파괴력에 꽤 놀랐지만 이내 안쪽의 풍경을 살폈다.
그리고 무언가가 내 머릿속에 직접 말을 걸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이. 여기야. 잘 찾아왔군, 백웅.]
"제갈사?!”
[맞아.]
“어디야! 어디에 있어?!”
내가 격렬하게 외치자, ‘제갈사’가 말했다.
[벽 쪽이야. 벽에 있는 둥근 단추를 누르면 나를 볼 수 있을 거다.]
나는 즉시 벽에 있던 새빨갛고 둥근 단추를 꾹 눌렀다. 그러자 위잉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가 뒤집어 지더니 안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 투명한 유리장치와 함께 밖으로 끼익 거리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모를 보는 순간 나는 머릿속이 얼어붙었다.
털썩
“…….”
내가 비틀거리며 땅에 주저앉자 제갈사가 낄낄거렸다.
[큭큭, 왜 그래? 내가 좀 가벼워지긴 했지.]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 미친 새끼야!! 이런 상황에 웃음이 나와?!”
[예상했던 일이라서 별로? 마도사 한테 잡혀갈 때는 종종 있는 일이야.]
“…….”
온갖 일을 다 겪었지만 이번 일은 너무 심하다!
뇌(腦).
투명한 유리용기 내부에 뇌가 둥둥 떠서 척추와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제갈사는 팽조의 손에 몸과 뇌가 분리되어버린 것이다.
[뭐 이런 건 중요한 일은 아니고.]
슈악
다음 순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육체 같은 건 그저 정신의 시종에 불과해. 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혼대법?”
“당연하지. 내가 그 정도 대비도 못하는 줄 아냐?”
“네 원래 육체는 어떻게 됐는데?”
“산채로 분해되어서 촉수의 먹이가 됐지.”
“…….”
안 아팠냐? 하는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제갈사 쯤 되면 육체가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조차 광기로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제갈사는 근처에 있던 ‘인형’ 의 몸에 들어간 듯 했다.
물론 초상기인 같은 건 아니었고 기초적인 형태의 호문클루스라서 어색한 점이 많았다. 인형의 몸을 이혼대법으로 가지는 걸 보면 제갈사는 애초부터 탈출이 가능했던 것이다.
‘제갈부의 말이 맞았어…. 제갈사는 처음부터 팽조의 배후를 조사하러 왔던 거야.’
제갈사는 앉아서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백웅.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아주 큰일 났다.”
“뭐가 큰일 났는데? 팽조가 설마 예상보다 더 강력한 놈이란 거냐?”
제갈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알게 뭐야? 설령 그놈이 지금보다 두 배 강해져도 못 죽일 놈은 아냐. 그래봤자 신의 찌꺼기이고 대라신선에 불과하니까 이 빌어먹을 세계에서는 잔챙이라고. 진짜 문제는….”
이어진 제갈사의 말에 나는 뻣뻣이 굳었다.
“네 전생(轉生)에 끼어든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