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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당연히 뻥이지!
라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나는 얼떨결에 무신을 내세워서 파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만한 부분을 건드렸고, 만일 거짓부렁이었다는 게 밝혀질 경우 그는 정말로 뒷감당하지 않고 폭주할 것이다. 나는 일단 침착하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무신을 이미 만난 자가 있소.”
“그런 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서 무신을 만날 방법을 알아내 주겠소. 뭣하다면 그를 소개시켜 주겠소.”
“…후후후!"
파순은 낮은 미소를 흘리더니 눈에 섬뜩한 빛을 흘렸다.
“내가 그런 자를 만나본 적이 없는 줄 아는가?”
파순은 자신의 검을 늘어뜨리며 말을 이었다.
“천축무림에도 이따금 절대지경에 이른 절세고수와 명인들이 나타났다…. 나는 수천 년간 살아오면서 그들을 만나왔고, 그들 중에 무신(武神)과 만나서 ‘길’을 얻은 자 또한 봤다.”
“그랬구려.”
“하지만 놈들은 내가 ‘자격이 없다’고만 하면서…, 내 모든 노력을 부정했지….”
“…….”
나는 파순의 말이 뭘 뜻하는지 알았다. 이전 생에도 들은 적 있었기 때문이다.
“죽였겠군.”
“그래. 죽일 놈은 죽였다. 몇몇은 살려뒀지만 날 얕본 놈들은 모조리 죽였다! 힌두교의 성인(聖人)과 법왕(法王) 라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살광(殺光)이 파순의 눈에 희미하게 맺혀있었다. 그리고는 날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인간이여! 똑바로 말해라. 너는 확실히 무신과 만날 방법을 알고 있느냐? 천상에서 감히 나 파순, 아수라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빌어먹을 놈을 만날 방법을 아느냔 말이다!!”
“....!!”
나는 파순의 감정이 엄청난 짜증과 질투, 선망으로 범벅되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무신을 만나려 하는 게 단순한 동경의 감정이 아니란 걸 알아채자 곤혹스러워졌다. 어린애를 달래듯이 그를 이용해 먹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파순은 무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몰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상대는 수천 년간 무예를 구도해 온 절대자이자 마왕!
나는 점차 설득이 벅차가는 걸 깨달았지만 침착함을 되찾으면서 말했다.
“방법은 알고 있소. 허나 궁금한 게 있군.”
“뭐가 궁금하단 거냐?”
“당신은 창힐의 여덟 사도인 팔부신중의 일원으로 알고 있소. 용병으로 여기에 왔다고 했는데 설마 창힐이 팽조에게 힘을 빌려주기로 한 거요?”
“…….”
파순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네게 그걸 말해줄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하지만?”
“무신을 만날 방법을 말해준다면 그 전모를 얘기해줄 수도 있지.”
좋아, 걸려들었다.
어쨌든 내 입장에선 ‘협상할 마음’ 이 들었다는 것 자체로 성공인 것이다. 조건까지 붙였다면 파순이 섣불리 나를 공격해서 판을 깨려 하진 않으리라. 나는 냉정을 잃지 않으며 차분하게 대꾸했다.
“다른 얘기요. 당신이 팽조의 용병으로 일해서 얻는 이득, 그리고 내가 무신을 만날 방법을 알려주는 이득을 비교하면 어느 한쪽이 낫다하기 힘들군. 그렇지 않소?”
“네놈…. 감히 나와 밀고 당기기를 할 생각이냐?”
“당신에게 팽조를 절실히 도와야 할 이유가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남을 위해 피 터지도록 싸우는 사냥개에 불과하지 않겠소? 우리는 딱히 서로에게 원한이 없으니 타협도 가능할 것이오. 나는 그 점을 말하는 것이외다.”
“으음….”
파순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신중한 표정으로 고민했고, 나는 쐐기를 박듯 말했다.
“신역(神域)의 경지를 알고 있소? 나는 그 경지를 바라보는 자를 두세 명 알고 있고, 결정적인 단서를 알고 있소! 이게 허언으로 들리면 맘대로 하시오.”
“신역…? 음…, 정말인가…? 다른 놈들도 그 얘기를 하긴 했는데.”
“정말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세긴 하지만 파순은 크게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좋아, 이 싸움에서 물러나 주마. 그 대신 넌 반드시 내게 무신을 만날 방법을 가르쳐줘야 한다!”
“물론이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팔부신중도 어떻게든 협상해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앞으로 나와라.”
“……?”
어?
파순이 손가락을 까닥이면서 나를 부르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파순은 자신의 검을 내게 겨누면서 말했다.
“네 세치혀는 대단한 경지에 이르러 있으나 나는 잔머리뿐인 놈을 싫어한다. 네가 무인으로써 어느 정도 역량이 있는지 입증하지 않는다면, 네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빨리 나와라. 한 수 겨루자.”
삽시간에 이목이 내게로 쏠렸다.
이게 뭐야?
좋게 풀릴 것 같더니만 갑자기 왜 싸우는 분위기가 된 거지?
‘인정받는 싸움인가.’
나는 기가 막혔으나 이내 헛웃음을 흘리고는 진소청에게 말했다.
“진소청. 내가 죽더라도 끼어들지 마시오.”
“…알겠소.”
“다른 사람들도.”
동료들은 다들 우려하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념이 깃들어 있었고, 단순히 걱정하는 심경만은 아니었다.
‘내’가 죽으면 세계는 어떻게 되는가?
흑요석을 받아들인 동료들은 그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죽음을 단순히 동료의 죽음만으로 받아들일 순 없는 것이다. 내가 죽는다는 건 단순히 슬픈 감정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본의 아니게 동료들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느낌에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제갈사와의 약속을 어기게 되었으나 어쩔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아수라의 제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본신의 무력을 부딪치지 않으면 아수라는 결코 납득하지 않으리라.
‘그래, 원했던 바다.’
강자와의 십연전이 이런 형태로 이뤄질 줄이야.
저벅
나는 파순의 십 보 앞으로 걸어가서 멈췄다. 그리고 서서히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대자, 파순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권법가인 줄 알았는데 특기가 검인가 보군.”
“당신은 한 눈에 그걸 알 수 있소?”
“나는 절대지경을 여러 가지 습득하여 상대의 숙련도 정도는 바로 알 수 있다. 꽤 하는 놈이구나.”
그의 말은 나를 인정해주는 듯 했으나 실상은 동급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얕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파순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싸우고 싶어 하오? 당신은 이미 창힐의 권속으로 천하에 삼황오제 아니고서는 상대할 자 없는 엄청난 힘을 손에 넣었는데.”
“싸우고 싶은데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가? 나는 무(武)를 수련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술가가 되고 싶을 뿐이다. 싸우는 게 즐겁기도 하고.”
“그래서 권능이 아니라 무예에 집착하는 거요?”
“그렇다.”
스으으
파순은 어둠의 힘을 살짝 일으켜서 손 위에 시꺼먼 구체를 만들어냈다. 그 구체에는 강대한 혼돈이 깃들어 있어서, 그 구체를 발사하는 것만으로 일개 도시를 소멸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역시 팔부신중 아수라 또한 혼돈의 권능만으로 절대적인 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순은 마음에 안 드는 눈으로 구체를 쳐다보더니 주먹을 쥐어서 없애버리곤 말했다.
“이런 혼돈의 힘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쓰면 쓸수록 위에는 더 위가 있다는 것만 알게 될 뿐이지…. 내가 이 힘으로 일국을 파멸 시킬 수 있다면, [지배자]는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지. 허무하기 그지없어. 재미없지 않은가?”
“그런 식이라면 창힐을 향한 충성도 무의미하오만. 창힐이 혼돈의 힘을 추구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부하가 된 이유가 뭐요? 모순이잖소.”
순간, 파순은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떫은 듯 표정을 구기더니 말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시작인가.
파순은 늘어뜨리고 있던 양손의 검을 상단세로 치켜들더니 이내 내리쳤다.
절대지경
천수관음(千手觀音)
“……!!”
시작부터 필살기인가?!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의념으로만 들어진 팔이 파순의 등 뒤에서 후광처럼 돋아남과 동시에, 무려 일천 개의 검강이 나를 찢어버리기 위해 사방팔방을 에워쌌다. 그 변화와 빠르기는 강호에서 변환검이나 쾌검으로 칭하는 일개 검술을 한참 뛰어넘어 있었고, 그저 인간의 반사신경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광선의 감옥에 갇혀버린 착각마저 들었다.
‘강하다…!!’
이번 생에서 극한의 수련을 거치기 전의 나였다면, 이 천수관음 한 번에 삼보절기와 굴공참을 동원해서 살아남는 데는 성공했겠지만 팔이나 다리 한 쪽은 내줘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절대지경의 무학에 대적하기에 격하의 수준에서는 아무리 무공 자체가 뛰어나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읽힌다.
삼보절기로 천지를 잡는다 해도, 천수관음이 지닌 일천 개의 손에는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상대는 의념의 천주를 세워서 법칙을 더 크게 왜곡시킬 수 있으나 삼보절기는 현상세계의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진짜’ 절대지경에 도달한 삼보절기라면 손쉽게 천수관음을 감당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무리다.
‘하지만, 절대지경이 아니라 해도 대적할 방법은 있는 법이지….’
그걸 위해서 지난 십여 년 동안 죽어라 수련한 것이다. 나는 자신감과 냉정함을 잃지 않으며 서서히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마보(馬步)의 자세를 잡은 후 다시 한 번 정권을 크게 앞으로 내질렀다. 과거 장삼봉 진인이 내게 절대지경과 싸우는 요령을 일러줬던 게 생각난다.
[모든 절대지경은 스스로 ‘이론상 무적’을 실천하고 있소. 가만히 놔두면 모든 절대지경은 최강의 무공이 틀림없소. 그러므로 절대지경의 고수와 싸울 때는, 일단 상대방의 무공이 가진 무결성을 헤집어놓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해야 하오.]
[무결성이요?]
[그렇소. 상대가 의념천주로 만들어낸 균형을 파괴해야 하오.]
모순(矛盾)을 만들기 위해서는 선행작업이 필요하다.
꾸웅!!
내가 파악한 공격의 결(缺)을 헤치고 권압이 떨쳐졌다. 나는 장삼봉 진인에게 상대방 공격의 흐름을 읽는 법을 꾸준히 배워온 것이다. 뇌신류 이청운에게서 묘예의 역을 배워온 기본이 있어서 비교적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파순은 그 찰나에 권압이 헤집어놓은 천수관음의 빈틈을 보완하며 내 요혈을 베어왔으나 나는 한 호흡도 뒤지지 않고 낭비 없는 움직임으로 태극권을 펼쳤다.
무쌍패(無雙覇)!
‘이것밖에 없어!’
아주 극한의 조그마한 경계. 그 사이로 칠대절학으로 상징되는 극강의 패도가 목울대까지 솟구쳐 왔다. 이대로 패도를 펼쳐서 천지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그래서는 몸이 터져나갈 뿐이다. 나는 극한의 강(强)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음(陰)의 힘을 끌어내어서 패도를 억제했고, 내부의 심상세계에 극한까지 몰입했다.
음양이 마주친다.
힘이 중화되어 무(無)가 된다.
하지만 무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다.(無無明亦無無明盡)
'제발…!!’
나는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무쌍패는 실패하고 나는 파순의 공격에 당하기 전에 몸이 뻥 터져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는 시도였으나, 나는 되려 그 덕분에 극한의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무쌍패가 눈앞의 칼보다 더 위험하기 때문에 나 자신과의 싸움에 몰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이잉
마치 시야가 빨려드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나는 파순의 천수관음이 품고 있던 무결성이 일그러지면서, 내 무쌍패가 상대의 모든 힘을 무(無)로 만들어버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음양교태(陰陽交兌)의 경지가 천하를 뒤덮었다.
파바밧!
“……!!”
천수관음의 일천 개의 손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엉거주춤 서 있는 파순의 형상이 보였다. 무쌍패가 천수관음을 박살낸 것이다! 나는 그에게 반격하고 싶었지만 순간적으로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체력과 내공이 무쌍패에 모두 쏟아 진 탓이었다.
‘제길! 아직 무쌍패를 펼친 직후에 움직일만한 실력이 안 돼….’
절대지경에 이르러야 반격의 자유가 생길 것이다. 아직까지는 방어가 한계였다.
“호오!!”
파순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는데, 이내 이번에는 또 다른 절대지경의 무학으로 나를 공격해 왔다.
폭광누멸검(爆光漏滅劍)
이번에는 패도적인 일격의 강검이 덮쳐왔다. 저 폭광누멸검의 위력은 전력을 다한 백련교주조차 애먹을 정도였으니, 방금 전보다 더하면 더 했지 약한 공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는 이번에는 삼보절기를 펼쳤다.
'이번에는 무쌍패 없이 버텨야 해.’
파바밧
무쌍패는 무적의 방어이지만 늘 혼신의 역량을 발휘해야하기에 자주 펼칠 수가 없다. 나는 이 점이 늘 불만스러웠지만 장삼봉 진인은 내게 설명해 주었다.
[절대지경의 고수라면 모두가 무예의 대종사이자 절세고수이니, 무쌍패와 일 초만 맞부딪혀도 그 정체를 깨달을 것이오. 그리고 무쌍패 시전 자의 허점을 유도하고자 연속으로 공격을 퍼붓겠지.]
[그러면 이쪽이 계속 무쌍패의 실패확률이 쌓여서 불리하지 않습니까? 안 그래도 전 방어밖에 못 하는데….]
[연자여. 하지만 그건 약점이 아니오. 방어밖에 못 한다는 건, 달리 말하면 방어만 해도 된다는 뜻이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나 무쌍패를 깨우친 후 심화수련에 들어갔을 때 그게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타닷
천지인(天地人)의 조화가 발끝에 맴돌면서 삼보절기가 자연스럽게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삼보절기는 굴공검을 기반으로 하는 무학이기 때문에 공간의 왜곡력을 지니고 있었다. 폭광누멸검의 검강이 무려 삼십 장 크기로 치솟으며 어둠의 칼날처럼 변했을 때, 내 몸은 폭광검이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서 버드나무처럼 움직였다.
쉬쉬쉭
마치 기름이 물에서 흐르듯, 폭광 누멸검의 잔영이 스치는 장소에서 나는 모조리 한끝 차로 피내면서 삼보절기를 완벽하게 시전해서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뒤로 한 번 더 물러서는 순간 파순이 칼끝을 비틀어서 치명적인 찌르기를 시도했으나, 나는 이번에는 번개처럼 발검(拔劍)해서 검뢰(劍雷)로 상대의 칼 끝을 쳐 내었다.
따앙!
일련의 과정은 마치 물 흐르듯 흘렀으며 마치 나와 파순이 둘이서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백련교주가 경탄했다.
[흐름을 읽었구나.]
그렇다.
무쌍패를 익힌 자는 흐름을 익혔다는 것. 상대의 무공에 존재하는 결을 읽어내서 피해를 무마하고 자기 자신을 호신(護身)할 수 있는 극의(極意)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자연히 무쌍패에 속하는 칠대절학 전반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비천원기영옥(飛天元氣靈玉)
이번에는 파순의 몸 주변에서 무수한 강기의 옥(玉)이 떠올라서 나를 공격해 왔지만, 이번에는 한숨을 돌렸기에 다시 무쌍패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내가 피할만한 공간을 선점하면서 다시 한 번 비천원기영옥의 강옥을 흘려내며 무쌍패를 전개했다.
지끈!
‘으윽’
나는 갈비뼈가 아파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의 공격 하나하나가 절대지경이었기에 조금씩 피해가 축적되고 있었고 몸에 고통이 느껴졌다. 일단은 근성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 고통 때문에 무쌍패가 실패하면 어떻게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으나 나는 도리어 정신을 더 집중했다.
받아서 넘긴다.
풀어헤쳐서 땅으로 힘을 흘린다.
방어의 기본에만 충실하게 싸운다!
'나는 아직 더 할 수 있어!’
그렇게 삼십여 초가 흘렀을 때였다.
부웅
파순은 화풀이를 하듯 강기덩어리를 내게 던지더니 뒤로 물러났다. 내가 강기덩어리를 검뢰로 잘라버린 후 나머지 힘도 무쌍패로 흘려 넘기자, 그는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묘한 놈이군. 그렇게 많은 무공을 익혔으면서 아직 절대지경은 아니고, 그러면서도 절대지경에 대적할 요령만 잔뜩 습득한 것 같구나.”
“…칭찬이오?”
“글쎄…. 내가 무림에서 수천 년을 살아왔으나 너 같은 놈은 처음 본다고 말해두지. 보통 그 정도로 다양한 무공을 습득할 재능과 노력이면 진즉에 절대지경에 도달했을 텐데 그게 아니라니.”
“…….”
그는 어이없는 듯 웃었다.
“그렇다고 재능이 없다면 거기까지 이르지도 못할 것이고, 절세무공을 여러 개 익히지도 못할 테니…. 크크, 네놈의 존재 자체가 모순이다.”
단숨에 파순에게 내 내력을 간파당한 느낌이다.
스르릉
내가 침묵하자 파순이 자신의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내 검을 삼십 초나 상처 없이 정면에서 받아 내다니, 네 실력은 인정하겠다. 무인으로써 경의를 표하며 이번 일에선 손을 떼 주지.”
한숨 돌렸다!
나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잠깐… 아직 아까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소.”
“어떤 질문 말이냐?”
“당신의 주군인 창힐의 명령으로 팽조를 돕는 것이오?”
“네가 어떻게 내 주군이었던 창힐 님과 내 정체를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파순은 떫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창힐 님은 갑자기 실종되셨다. 나를 포함한 팔부신중들은 세상을 떠돌면서 그분을 찾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