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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07화 (80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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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 진짜 답...'

나는 다음으로 장백산 신시로 향하면서 제갈부의 말을 중얼거렸다. 제갈부는 아직 내게 다 설명해줄 수는 없으나 일련의 과정이 모두 필요한 거라고 말했다. 동시에 팽조를 쓰러뜨리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내게 말한 바가 있었다.

제갈사든 제갈부든 이번 전생에는 '답'을 내야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책사들은 그 문제를 내게 솔직하게 공유할 수 없는 듯 했다. 아무래도 고도로 짜여진 수순에서는 단 한 순간의 실수가 큰 실패를 불러오기 때문에 일단은 나를 장기말로 부려야 한다는 계산인 듯 했다. 납득되는 일이었기에 그 일은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문제는 내 전생능력의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책사들이 몸을 사리면서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는 것이다. 나는 자연히 최악의 경우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기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젠장."

24번째 전생 이후로 갑자기 벽에 막힌 기분이다. 분명히 알고 있는 건 많아졌는데도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기분! 지금까지는 내가 필멸자로 쌓을 수 있는 힘에 한계가 있다 여겨져서 신화의 비밀을 캐내는 데 집중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와서인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를 따라서 비등을 타고 온 진소청이 말했다.

" 백웅. 다 왔소."

" 흠."

역시 신시는 결계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신시 인근이라는 건 근처의 지형으로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음신지력을 모아서 과거에 미호가 가르쳐준 요령대로 한번 움직여 보았다.

우웅

역시 이건 요력처럼 움직이는지 마치 내 몸의 일부를 움직이는 것처럼 은빛 기운이 내 오른팔에 감돌았다. 나는 예전에 미호한테서 수련받을 때보다 음신지력이 몇 배나 늘어나서인지 그때보다 더욱 선명하고도 장중한 기운이 몸에 감도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오른팔에 맺힌 기운을 서서히 눈으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스아앗!

이윽고 눈에 음신지력의 절반이 이동했을 때, 나는 음신지력과 동시에 화안금정을 시전했다. 신시의 결계는 화안금정만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음신지력을 합치면 충분히 가능할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눈에 음신지력이 맺히자마자 눈이 불타는듯한 기분과 함께 모든 사물을 관통하는 시선으로 천리 밖을 볼 수 있다는 게 느껴졌다.

' 저거군.'

이제 선명하게 보인다. 틀림없이 신시를 감추는 결계는 십이율의 모든 힘을 동원한 것이겠지만 음신지력과 화안금정을 합치면 충분히 보고도 남는 것이다. 나는 신시의 위치를 명확히 확인한 후 진소청에게 방위와 거리를 알려 주었다. 진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 힘으로 뚫고 가도 될 것이고 삼사를 기다려도 될 것이오. 어느 쪽을 선택하겠소?"

가만히 있으면 삼사가 예지능력이나 감지능력을 동원해서 알아서 이쪽을 찾아온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다만 전자를 택하면 나와 진소청의 현재 역량으로 신시방어결계를 파괴할 수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앞뒤 안가리고 시도해보는 상황이 아니라 정밀한 수순을 밟는 중이었으므로 나는 눈을 슬며시 감았다.

" ... 십이율주를 자극하고 싶지 않소. 후자를 택합시다."

" 알겠소."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삼사 중 풍백이 찾아와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 그대들은 무슨 일로 여기를 방문했나?"

" 난 반천맹주 백웅이오. 중원 남해의 서양세력을 토벌하는 일 때문에 십이율의 조력을 구하고자 찾아왔소."

" 따라와라."

우리는 풍백을 따라서 신시의 내부로 들어가서 십이율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십이율주는 예전처럼 개탈을 쓴 채 기다리고 있다가 말했다.

" 중원에 명성높은 반천맹주가 바뀌었군. 정말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나는 이 자리에 평소처럼 무명지배가 아니라 반천맹주로 찾아왔기에 마냥 존대를 하지는 않고 적절한 평대로 말투를 바꾸었다.

" 앞으로 익숙해질 것이오."

" 흐음, 본론부터 얘기해 봐. 그럼 내 생각도 말해 주지."

십이율주는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길 원하는 듯 했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 남해의 상황은 심각하오. 삼만 이상의 총병과 수백 마리의 마도병이 있으며 서방의 강대한 대마도사나 연금술사도 다수 와 있는 상황이오. 그리고 그들은 세력유지를 위해서 인신공양과 마도의식을 벌이는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우두머리는 칠요 중 금요를 해방한 대라신선 팽조요."

" ......"

" 현재 수십 수백만 명의 남해 백성들이 마도세력의 인질이나 다름없소. 이대로 그들을 놔두면 중원을 장악하고 나아가서 동양 전체를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말 것이오. 그래서 동방무림의 지존인 십이율주의 도움을 구하고자 찾아왔소."

십이율주가 손가락으로 의자를 톡톡 두들겼다.

" 흐음, 이상한 말을 하는군."

" 뭐가 이상하오?"

" 넌 그놈이 대라신선 팽조이며 금요를 해방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데?"

단숨에 날카롭게 찔러보는 십이율주였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대꾸했다.

" 반천맹에는 마도와 고대의 비밀에도 능숙한 자들이 있소. 또한 팽조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주시하고 있었으므로 쉽게 정체를 알 수 있었지."

" ......"

" 그대가 표면적인 무림의 맹주일 뿐만 아니라 이면의 세계에도 접해있는 자라는 걸 잘 알고 있소. 우린 이미 백련교의 지원을 받기로 약속했으니 귀하의 현명한 선택을 원하오."

" 제법..."

십이율주는 의자에 턱을 괴면서 약간 감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 하는구만. 보통 녀석이 아니야... 이런 교섭을 한두번 겪은 게 아닌 거 같은데? 어디서 뭘 하던 녀석이지?"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 그저 반천맹에 인재가 많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겠소? 중원은 넓은 땅이니 인재도 많소."

" 하하! 넉살도 좋군. 맘에 들었어."

껄껄 웃던 십이율주가 중얼거렸다.

" 난 중원에 사람이 많은 게 참 싫지만 말이야... 예전부터."

" ......?"

십이율주가 감정같은 걸 내비친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십이율주의 방금 읊조림에서 느껴진 감정이 상당히 선명하다는 사실에 약간 의문을 느꼈다.

' ... 증오?'

왠지 모르겠지만 방금은 숨길 수 없는 증오가 드러난 듯 하다. 그저 교섭상대인 나를 압박하기 위해 한 말이라기엔 진심이 비쳤기에 당혹스러웠다. 십이율주가 어째서 중원에 증오를 갖고 있는지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십이율주가 옆에 있던 운사를 돌아보며 말했다.

" 운사. 놈의 말대로 적이 팽조인지 알아봐. 셋이 같이 가도 좋다."

" 존명."

파앗

잠시 후 깜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장내에 있던 삼사인 풍백, 운사, 우사 세 사람이 동시에 사라졌다. 아무래도 삼사가 힘을 합쳐서 내 정보의 신빙성을 알아보려는 듯 했는데 환신 천우진급 술력을 지닌 저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진소청이 십이율주에게 말했다.

" 율주께선 지닌 무공에 자신감이 굉장하시군요. 이 자리에 우리 둘과 남겨지는 게 두렵지 않으십니까?"

암살을 암시하는 말!

나는 진소청의 도발적인 말에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으나 십이율주는 별다른 감정표현 없이 느긋하게 대꾸했다.

" 네가 반천맹의 신창(神槍) 진소청이군. 그 영웅적인 활약은 많이 들었어. 실질적인 중원 최고수라는 명성답게 실제 실력도 꽤 대단해 보이는걸."

진소청은 반천맹에서 활동하는 십여 년 동안 혁혁한 무명을 쌓았으며 중원무림은 물론이고 새외에까지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십이율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되려 도발하듯 무방비한 자세로 상체를 쑥 내밀며 말했다.

" 근데 너희 따위를 두려워할 정도면 어떻게 한민족의 수장인 단군을 해 먹겠어? 그렇지 않아?"

" ......"

" 패기는 좋군. 자신 있으면 들어와 봐. 난 도전을 웬만하면 피하지 않으니까."

너무 태연하니 도리어 소름 끼친다. 나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두어 번 세게 움켜쥐었다.

' 현재의 진소청은 틀림없는 절대지경... 십이율주도 진소청의 실력을 보자마자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아.'

이게 의미하는 바는 딱 하나 뿐이다.

십이율주는 이 자리에서 우리 둘과 생사결을 벌여도 이길 자신이 있다!

또한 그의 절대지경인 천의무봉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을 의미하기도 했다.

파앗

다음 순간 삼사가 되돌아왔다. 그들 중 운사가 가까이 다가가서 십이율주를 응시했는데, 아무래도 전음같은 능력을 쓰는 것 같았다. 십이율주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확실히 위험한 상황이야."

" 도와주시겠소?"

" 물론! 하지만 너희 명령을 듣는 건 싫어."

" 그렇다면 우리의 공격계획을 말해줄 테니 그에 맞춰서 협공을 해 주셨으면 하오."

" 그게 좋겠군."

나는 십이율주에게 사흘 후 새벽에 남해의 적을 칠 거라는 계획을 말해 주었다. 아직 백련교주에게 확답은 받지 못했지만 나는 그가 참여할거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십이율주와의 동맹을 성사시킨 후 나는 진소청과 함께 반천맹으로 돌아왔다.

나는 진소청에게 말했다.

" 진소청. 이제 말해줄 때가 된 것 같소. 검마는 어디 있소?"

" ......"

" 십이율주의 천의무봉에 대한 연구결과를 듣고 싶소."

검마는 죽지 않았다.

반천맹주 검마는 실종 중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단독행동을 하기 위해 죽은 척 위장한 것이었다. 어차피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전생자인 나를 불러와서 비어있는 맹주 자리에 앉히고 자신은 몰래 팽조일행을 추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검마는 현재 남해성 적 본거지의 가장 깊은 곳까지 잠입해 있는 듯 했고 그 극비사실을 알고 있는 건 반천맹에서도 진소청과 사마경 뿐이었다. 아마도 검마는 우리가 남해의 적을 공격할 때 내부에서 호응해 줄 듯 했다.

진소청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그 말대로 검마가 반천맹을 설립하고 나 또한 거기에 가입해서 십여 년간 활동했고, 우리는 틈나는대로 당신의 전생기억을 토대로 천의무봉을 연구했소. 그리고 내놓은 결론은... 딱 하나요."

" 그게 무엇이오?"

" 천의무봉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절대지경이 아니오."

나는 깜짝 놀랐다.

" ... 뭣?! 설마 천의무봉의 경지가 말로만 듣던 신역(神域)의 무공이란 말이오?!"

신역!

잠재적으로 절대지경보다 더 위의 경지로 취급되며 투선 장삼봉과 여동빈 또한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50년 후의 진소청 또한 신역에 도달하여 절기 은하섬을 쓰는 걸 보여준 바가 있었다. 다만 정작 신역의 존재와 무신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그 실체를 말하기를 꺼려하고 있어서 정확히 뭔지는 몰랐다.

그러자 진소청은 고개를 흔들었다.

" 설명이 모자랐군. 그런 뜻이 아니오. 신역처럼 [옛 지배자]나 사도도 멸살시키는 수준의 무공은 아니지만... 천의무봉의 실질적인 난이도가 다른 절대지경과는 비교할 수 없으며,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란 말이오."

" 이해가 가지 않소. 뇌신지혼처럼 엄청나게 어려운 절대지경이란 말이오?"

" 그것과도 다르오."

진소청의 눈이 빛났다.

" 뇌신지혼은 말하자면 뇌신류 천 년의 정화. 뇌신류 달인들이 연구해 왔던 수십 수백개의 오의가 압축되어서 뇌신의 혼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오. 이건 압축률이 너무 높기 때문에 획득난이도가 높은 것인데, 달리 말하자면 어느 정도 압축을 풀고 해석에 성공한 후에는 획득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 왜냐하면 뇌신의 혼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확실하기 때문이오. 다들 뇌신지혼이 어렵다고 말은 하지만 일단 내가 알기로 나를 포함해서 두세 명 정도는 뇌신지혼을 얻을만한 재능이 있소."

그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 천의무봉은 다르단 말이오?"

" 그렇소. 뇌신지혼의 난이도가 최상급이라면 천의무봉은 불가능이오. 나와 검마는 대략 삼 년 전에 그 결론을 내렸소. 아마 내가 백 년이고 천 년을 수련해도 천의무봉을 얻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오."

난이도 불가능!

어째서 그런 무공이 존재하는 것일까?

내가 황당해서 진소청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 불가능한 이유는... 천의무봉이 완벽한 무공이기 때문이오."

" 완벽하다니?"

" 백웅. 천의무봉은 두 가지 특징이 있소. 언제나 후발(後發)로 선제공격을 제압할 수 있으며, 직접 싸워보면 천려일실(千慮一失)은 커녕 억려일실(億慮一失)조차 없소. 이 두 가지 특징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하는데, 그게 바로 완벽한 무공이라는 것이오."

나는 그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예지능력이란 말이오?"

" 아니오. 당신도 고수이니 알겠지만 절대지경 정도 되면 설령 다음 수순을 알고 있더라도 피하거나 막지 못하게 할 수 있소. 의념으로 법칙을 왜곡시키면 가능하지. 그렇기에 이 경지에서 예지능력이 큰 의미를 갖진 못하오."

" 음, 그렇지."

" 천의무봉은 예지가 아니라 관측이라고 할 수 있소. 억려일실조차 없는 이유는 그 관측의 시선이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관측자는 신(神)의 경지에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억, 아니 그 이상의 가능성을 모두 관측했다는 전제하에 천의무봉의 완벽함이 성립하오."

그렇게 말한 진소청은 한숨을 쉬었다.

" 쉽게 말하자면... 자연(自然) 그 자체를 계산하여 자신의 관측하에 두는 것이오. 거기에 필요한 계산능력이 얼마나 될지는 도저히 예측조차 불가능하고, 그건 인간의 능력으론 얻을 수 없으며, 심지어 절대지경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불가해(不可解)하기까지 하오."

" 불가해한 이유는 또 뭐요?"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천의무봉이 대체 어떤 경지이길래?

" 백웅. 절대지경은 무인이 쌓아온 일생의 압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소? 그러나 그 어떤 무인이 한 줌의 실수도 없이 인간의 수억 수조배를 넘어서는 연산능력으로 자연을 지배하는 완성형을 짜올릴 수가 있겠소? 그게 인간의 삶이겠소?"

" ......!!"

" 그런 건 불가능하오. 태어나서 세상의 빛을 본 순간부터 숨소리 한 번, 움직임 한 번조차도 의식적으로 계산에 넣어서 쌓아 올린 인생이 아니라면 천의무봉은 얻을 수 없단 말이오. 단 한 번의 움직임만 실패해도 그때까지의 모든 계산이 무효가 되는 극악한 수련을 할 수 있겠소?"

" ......"

진소청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 마치... 절대지경을 무(武)가 아닌 관점에서 파악한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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