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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제갈부와 함께 사천에서 즉시 낙양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낙양에 돌아오자마자 보인 초현실적인 광경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건….”
우우우우우
낙양의 중앙에 거대한 검은 탑이 불규칙적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모든 법칙을 무시하듯 제멋대로 탑의 창문에서 뻗어나온 기이한 촉수가 상공에 일렁이는 게 보였다. 마치 ‘나무’를 연상시키는 그 탑 무더기 사이사이에서는 이질적인 마물(魔物)들이 꿈틀거리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마물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악몽에나 나올 법한 끔찍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단숨에 어둠의 꿈이 세상에 옮겨온 것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제갈부가 나와 함께 근처의 언덕에 올라 낙양을 보며 말했다.
“마법의 일종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아마 암천향의 일부 지역을 소환해 와서 공간 채로 붙여 넣은 거라고 생각한다.”
“낙양을 습격한 마도사들이 한 짓인가?”
“정확히는 팽조가 했다. ‘씨앗’이라고 하면서 저 마법을 전개해 버렸고, 저것만으로도 낙양 중심부의 3할이 침식당했지.”
“…….”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내가 그 참극을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리자 제갈부가 말을 이었다.
“저 마법은 무한대로 확장하려는 성질이 있었던 것 같지만, 어찌된 일인지 딱 저기에서 멈추더군. 아마 망량선사 덕분이 아닌가 싶다.”
“애매하군. 놈은 처음부터 팽조를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왜….”
“망량선사가 지키려는 ‘낙양’은 우리의 개념과 다른 범위 같다. 대결계만 파괴되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는 게 그의 본래 성향이야. 저 정도만 해줘도 감지덕지지.”
나는 제갈부에게 말했다.
“제갈부. 넌 반천맹과 연락할 방법이 있다고 했다. 이제 그 방법을 말해.”
“안 그래도 말할 생각이었다. 반천맹과 접선하는 건 지금 즉시라도 가능하다.”
나는 제갈부와 함께 용운궁(龍雲宮)으로 향했다. 나는 용운궁이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 옛 황실의 폐궁(廢宮)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의아했다. 내가 용운궁을 알고 있는 이유는 예전에 여기에 와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는 마도팔문 수라문의 비밀 본거지야.’
과거 내 전생에서 검마와 함께 투마를 토벌하러 이 용운궁에 잠입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검마는 용인으로 변신한 투마를 상대로 의념절기를 사용해서 승리했던 것이다.
내가 설명을 요구하듯 힐끔 제갈부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투마를 비롯한 마도팔마와 모든 세력은 반천맹주에게 복종했다. 현 반천맹주는 사파의 지존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으음.”
“정파 또한, 신승을 위시해서 대부분이 반천맹에 호의적이었으니 황궁은 그간 무림 전체와 싸우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그 동안 반천맹주의 엄청난 능력의 근원이 궁금했지만, 이제 흑요석을 받았으니 그 이유를 알겠군….”
아무래도 반천맹주로서 검마는 대단한 능력을 보인 모양이었다. 제갈부는 잠시 후 용운궁의 심처로 들어왔고, 당장이라도 기와가 떨어질 것 같은 낡은 건물의 정원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소청. 약속한 대로 백웅을 데리고 왔다.”
슈욱!
그 순간 공간이 일렁이더니 그 장소에 진소청이 나타났다. 진소청은 거의 나이를 먹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반가워서 외쳤다.
“진소청!!”
“백웅. 제갈부에게 흑요석을 줬소?”
“그렇소. 당신은 그 동안 잘 지냈소?”
“…음, 역시…. 제갈사는 당신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연락을 하지 않았던 모양이군.”
침음성을 흘리던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해야 할 이야기가 많소. 제갈부에게 어디까지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빨리 이야기를 전해주겠소.”
진소청은 우리를 데리고 용운궁의 내부로 들어갔는데,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을씨년스러운 폐궁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깔끔하게 정돈된 실내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방 안에는 내가 아는 다른 얼굴들도 기다리고 있었다.
“소개하지. 현 반천맹의 간부로서 맹을 이끌고 있는 이들이오.”
연종휘, 백리정운, 사마경, 독고성, 등곽, 무영검제.
“……!!”
연종휘는 십대고수 궁왕으로 불리게 될 인물이었으며 백리정운은 나와 사천에서 우연한 만남을 가졌던 명문세가의 후예였다. 또한 사마경은 뛰어난 책사이자 결계술사였으며 독고성은 뇌신류의 초절정고수였고, 등곽은 유림의 수장이었다. 무영검제 남궁조는 남궁세가의 전대고수로서 한때 천하제일검으로도 불렸던 고수였다.
드르륵
의자에 앉아있던 여섯 명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에게 포권을 했다.
“만나서 반갑소, 백웅!”
아무래도 반천맹주 검마는 그동안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전생의 인연들 중에서 쓸만한 자들을 추려서 모아놓은 모양이었다. 또한 그들의 인사를 보면 그들 또한 내 전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개성 강한 자들을 다 모아놓을 수는 없겠지….’
내가 마주 화답해서 인사하자 이윽고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내 맞은편에 앉은 진소청이 내게 말했다.
“백웅. 다들 익숙한 얼굴일 거요.”
“…….”
내가 잠시 둘러보는 기색이자 진소청이 전음을 보내왔다.
[미호와 천우진은 지금 비밀작전 때문에 밖에 나가 있소. 명룡자와 신승은 각자의 문파에서 정천맹을 움직여 우리를 돕는 중.]
그렇군.
내가 납득하는 기색이자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현재 상황을 어디까지 알고 있소?”
“반천맹과 황궁의 회담 중에 서방 마도사들과 그 수장인 팽조가 회담장을 습격하여 제갈사가 잡혀가고 반천맹주 검마가 실종되었다는 걸 들었소. 또한 납치된 제갈사는 남해성의 서방함대 내부에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소. 이 낙양에 흉물스럽게 솟아있는 저 검은 탑의 무덤은 팽조의 마법이라는 것도….”
“웬만큼 다 들은 것 같군.”
“진소청. 팽조가 얼마나 강대했소? 도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내 질문에 진소청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팽조 본신의 힘만이었다면 어떻게든 우리끼리 감당할 수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 그가 금요의 힘을 활용하기 시작하자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소. 전멸위기를 앞두고 있을 때 제갈사가 최후의 수단으로 팽조와 교섭에 나섰고, 그 결과 간신히 전멸을 면하고 팽조를 물러가게 했던 것이오.”
“그럴 수가! 그 자리에 진소청 당신과 천우진도 있었는데 말이오?”
내가 깜짝 놀라서 말하자 진소청이 말했다.
“칠요의 힘이오. 원래부터 강했던 존재가 칠요를 하나라도 얻어서 해방한다면 그 힘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걸 직접 실감했지. 물론 팽조 하나를 우리 전부가 합공했다면 승산이 있었겠으나 그의 곁에 따라온 서방 마도사들도 하나같이 대마도사들이라 전력에서 지나치게 밀렸소.”
그렇게 말한 진소청이 갑자기 내게 크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 내가 좀 더 강했다면 이런 불찰은 없었을 것이오.”
“아니오. 내가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겠소? 도리어 이렇게 살아서 다시 보게 되어 다행이오.”
나는 손을 젓고는 말했다.
“다른 건 됐고 제갈사를 빨리 구하러 가야겠소. 순어구로도 그와 연락이 되지 않으니 그가 큰 위기에 처한 게 틀림없소. 같이 남해로 갑시다.”
“…….”
그러나 진소청은 내 말에 대꾸하지 않았고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기묘한 정적이 감돌고 있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윽고 옆에 앉아있던 자들 중 유림의 수장, 등곽이 입을 열었다.
“…승산 없는 싸움을 할 수는 없소.”
“뭐?”
“그 날 보았던 팽조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소. 전생자인 당신이나 당신의 동료들은 익히 보아왔던 초월적 존재의 힘이라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걸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소.”
등곽은 나를 고요히 바라보며 말했다.
“전생자 백웅이여! 당신은 금요를 해방했으며 보패를 전신에 십여 개 이상 장착하고 있는 대라신선이자 삼황오제의 현손을 상대로 싸워 이길 자신이 있소? 당신이 그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 한 움직일 수는 없소.”
“……!!”
나는 등곽 뿐만이 아니라 좌중의 모두가 그의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들 모두는 습격 당일에 금요를 해방한 팽조의 압도적인 힘을 직접 목격했고 전의를 잃어버린 게 분명했다.
나는 내게로 시선이 쏠리자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이길 수 있소.”
“하! 맹주에게 들은 바로 그대는 아직 절대지경에도 이르지 못했다 들었는데 정작 팽조는 절대지경의 고수조차 정면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초월자요. 그런데도 자살행위를 할 생각이오?”
등곽이 염세적으로 뇌까렸지만 나는 기세를 잃지 않고 좌중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나요. 물론 직접 싸운다면 내가 팽조에게 지겠지만, 나는 전생자이고 당신들은 그렇지 않소. 그리고 내가 붕우이자 내 책사를 구하는데 있어서 힘의 차이 같은 건 사소한 문제요.”
“무슨 소리요? 전생자라면 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단 말이오?”
“물론이오.”
“어이없는 소리를…, 후!”
등곽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외쳤다.
“정 그렇다면 지금 실력이라도 증명해보는 게 어떻소?”
“어떻게 말이오?”
이어진 등곽의 제안은 나를 꽤 놀라게 했다.
“여기 간부 모두가 당신에게 합공하겠소. 그 합공을 삼백 초 이상 견딘다면 당신 말을 들어주겠소!”
어이없는 제안이다. 등곽 하나만 해도 세상에서 손꼽히는 초절정고수인 데다가 무영검제나 독고성은 원래부터 절대지경을 바라보던 인물들이었다. 또한 연종휘나 백리정운도 그 동안 검마가 신경 써서 가르쳤다면 지금 실력이 만만치 않을 확률이 높았다. 사마경도 결계술사이니 싸워보면 성가실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본래라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소.”
그러나, 나는 그 제안을 받자마자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자 되려 등곽이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뭐…라고? 진심이오?”
“용운궁에서 싸우면 궁이 무너질 테니 좀 더 넓은 곳에서 싸우지.”
“…알았소. 죽어도 원망 마시오.”
“물론.”
우리는 이윽고 용운궁에서 이십 리 떨어진 인적 없는 산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반천맹 간부 여섯 명이 자신의 병기를 들었다. 나는 스치듯이 일견하여 개개인의 역량을 대충 판가름 해 보았는데, 그 결과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내 눈은 백리정운과 연종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등곽이 선언하듯 외쳤다.
“그럼 가겠소!”
파앗!
제일 처음 나를 공격해온 것은 독고성이었다. 초절정고수들이 공유하는 극히 찰나의 순간에 독고성이 다소 노한 기색으로 마음의 독백을 걸어왔다.
[전생자. 멋대로 내 검뢰의 비전을 다 털어갔다고 했겠다. 그럼 어디 그 실력을 보여 봐라!]
아무래도 검마가 할 얘기는 다 해버린 모양이다. 나는 내심 쓴웃음을 지으면서 독고성이 펼치는 어마어마한 검뢰의 기세를 쳐다보았다. 본디 독고성의 검뢰는 엄청난 쾌검이었으며 그 궤적 또한 불규칙했기에 피하는 게 불가능했지만, 나는 끝까지 그 변화를 살피다가 천천히 태극권의 기수식을 잡았다.
그리고 반 박자 늦게 태극권이 펼쳐지며 검뢰의 공격에 맞닿았고, 나는 그 순간에 탈력(脫力)을 행하며 굴공(屈空)의 묘리로 그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자 본디 물리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검뢰가 마치 실처럼 변해서 내 허리춤 옆을 통과했으며 독고성 또한 균형이 무너져서 주춤거렸다.
독고성에게 생긴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은 나는 즉시 좌장(左掌)을 뻗어서 그의 어깨를 공격했고, 독고성은 그 공격을 빠르게 흘려내며 뒤로 튕기듯이 삼 장을 물러났다. 하지만 독고성은 물러난 순간 헛바람을 들이켰다.
“헛!”
기우뚱
독고성은 잠시 휘청거렸다. 그 이유는 내가 어느새 검을 뽑아서 그의 심장 쪽 피부에 조그마한 칼자국을 냈는데, 내 공력이 워낙 높았기에 그의 몸이 내상을 입은 것이다. 독고성이 엄청난 반사 신경으로 피했기에 요혈은 공략하지 못했으나 어쨌든 나는 반격까지 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독고성에 이어서 이번에는 등곽이 공격을 해 왔다. 나는 등곽의 광대한 공력에 대항해 공간의 중심으로 헤집고 들어갔다. 보통은 알아채기 힘든 사각으로써 이 방위를 점하면 크게 유리해진다는 걸 지난 태극권의 수행 동안에 장삼봉 진인의 가르침으로 알 수 있었다.
주르륵
마치 내 몸이 액체처럼 흐르는 듯 했다. 나는 빠르게 기세를 전환해서 좌수로 음(陰), 우수로 양(陽)의 균형을 잡고는 그 자리에서 회전했다. 회전과 동시에 강기가 등곽을 공격했고, 등곽은 태연히 막강한 호신강기로 버텨내면서 도리어 반격을 해 왔다. 그러나 도리어 그 반격은 내가 노리던 것이었기에 나는 히죽 웃으며 다시 한 걸음을 내뻗었다.
투쾅!
“크윽!!”
등곽은 내 반격의 반격으로 뻗은 정권을 급히 양손을 교차시켜서 막았지만 버티지 못하고 하늘로 날려갔다. 무려 이십여 장이나 날려간 등곽은 땅에 착지하고도 십 장이나 더 뒤를 굴렀는데, 정권에 실린 내공을 무마하는 게 그만큼이나 힘들어 보였다.
퓨퓨퓽!!
이번에는 연종휘가 소리 소문도 없이 쏘아낸 다섯 발의 화살이 지척에 다가와서 요혈을 가격하기 직전이었다. 사실 나는 연종휘가 화살을 쏘아내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고수들의 합공이 너무 급해서 알고도 막을 틈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호신강기를 쓴다고 하더라도 연종휘의 특기 때문에 이대로는 치명상을 입는다는 걸 알아챘다.
‘일시백살(一矢百殺)!’
연종휘의 별호이자 특기였다. 사실 그 실체는 그의 가문에 내려오는 가전무공의 오의로써, 그는 이미 쏘아낸 화살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데다가 기(氣)를 분열시켜 단숨에 한 발을 백여 발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 일시백살의 오의는 대량학살은 물론이고 단발집중으로 강력한 적을 암살할 때도 응용되었다. 즉 뭣도 모르고 호신강기만 믿고 한 발을 내버려두었다가는 그 100배의 관통력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나는 삼보절기를 써서 천지인을 점하면서 동시에 검을 휘둘러서 검뢰(劍雷)로 화살촉을 끊어 내었다. 태극권을 써서 흘려낼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그 정도 자신은 없었기에 후발선제로 검뢰를 쓴 것이다.
“하앗.”
검뢰로 화살을 막아내자 연종휘는 손가락을 휘둘렀는데 그와 동시에 굴공의 묘리와 함께 이기어시가 펼쳐지며 내 뒤통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그 습격을 또다시 삼보절기로 회피했다.
연종휘의 습격을 막자마자 이번에는 무영검제가 달려들어서 호승심 넘치는 외침을 내질렀다.
“이런 고수는 처음 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