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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804화 (80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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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내공으로 노화를 막고있는지 현재 나이는 사십대일텐데도 이십대의 청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인 제갈부였다. 나는 놈을 보자마자 품 속의 순어구를 만지작거리며 제갈사에게 통신을 하려고 했다.

......

' 대답이 없군...'

제갈사가 가진 순어구를 향해 의지를 날려보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제갈사가 이혼대법의 달인이며 순어구가 있어야 나와 연락이 가능하다는 걸 생각하면 큰일이었다. 요즘 수련에 너무 빠져서 제갈사와 연락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이제서야 알아챈 것이다.

내가 침묵하고 있자 제갈부가 말했다.

" 날 믿지 못하겠나?"

" 생전 초면인 자를 믿으라는 게 더 이상하겠군."

나는 슬쩍 흔들어 보았지만 제갈부는 흔들림이 없었다.

" 네가 전생자라는 이야기는 이미 다 듣고 왔다. 괜히 시치미 뗄 필요는 없다."

" 들었다니 누구한테서 뭘 들은 거야?"

" 제갈사와 반천맹주를 만났지. 그리고 그들에게서 전생에 관한 걸 들었고, 그들의 이야기가 믿을 만 하다고 판단했다."

" 나는 널 못 믿겠는데."

아무리 이전 생에 제갈부와 흑요석을 공유하기로 약속했다지만 그것도 상황이 따라줄 때의 이야기였고, 제갈부는 기본적으로 적인 황궁의 간부였다. 지금 나를 현혹시켜서 제압하려는 수작이 아닌지 일단 의심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제갈부가 말했다.

"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사실 나도 널 한 번쯤 시험해보고 싶었으니까."

" 뭐?"

스윽

제갈부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무언가가 소환되는 기척이 느껴지더니, 이내 일백 장 이내에 정체불명의 인기척이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내가 장원을 둘러싼 숲 여기저기를 힐끔 둘러보자 흑의를 입은 자들이 잠복해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파앗!!

이윽고 제일 가까이에 있던 흑의인이 신검합일의 기세로 쏘아져와서 검극으로 내 명치를 가르려고 했다. 호흡도 절제되어있고 무척 깔끔한 기습이었으며 검기(劍氣)도 만만치 않아서 강호에서도 꽤나 알아줄 만한 실력이었다. 실력만으로 치면 중소문파의 장문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스으

하지만 나는 부드럽게 태극권으로 그의 칼날 끝에 손가락을 갖다대어 검기를 흘려버리고는 공간 그 자체를 뒤집어서 그를 일격에 기절시켜 버렸다. 요혈을 때리는 건 아주 순간적인 동작이었고, 허공에서 당해버렸기 때문인지 그는 순식간에 의식을 잃었다. 내게 있어서는 거기까지가 한 동작이었지만 습격자들은 내 의식흐름에 따라오지 못하는지 선두 습격자의 이상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삼보절기

마치 땅에 구름이 흐르듯 내 몸은 유려하게 오 장 이내를 이동했고 이내 분영(分影)이 만들어져서 적 개개인에게 튀어나갔다. 분신들 또한 태극권을 써서 가볍게 적을 제압했고 나는 눈을 반개한 채 앞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며 한 걸음에 세 명씩을 땅에 패대기쳤다.

태극권(太極拳)

무위탈력(無爲奪力)

내 권법의 공간 내에 있던 자들은 그 어떤 내공이나 기술을 쓰든간에 태극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힘을 빼앗겼다. 이것이 무쌍패를 수련하면서 얻은 태극권의 효능으로, 수준 이하의 적들이 어설픈 힘을 끌어낼 경우 화경에 말려들어 자신의 몸조차 추스리기 힘들었다.

무위탈력에 당해서 자연스럽게 몸이 공중에 붕 뜨고 곧이어 내가 튕겨낸 지공에 요혈이 제압당한 놈들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쿠웅

쿠웅

" 으... 으으..."

" 괴물..."

숨을 세 번 내쉬기도 전에 나를 향해 덮쳐오던 칠십여 명의 흑의인들은 모조리 제압당해서 땅바닥에서 꿈틀거렸다. 절정고수 수준에 이른 자가 십여 명이나 되었고 나머지도 일류 이상의 실력이었지만 내게 있어서는 일초지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쓰러진 자들 중에 죽은 자는 없었고 중상을 입은 자 또한 한 명도 없었다.

수십여 명이 태극 모양의 원 모양으로 패대기쳐진 모습을 본 제갈부가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절세고수군..."

나는 습격자 중 한 놈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가 신경질적으로 땅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

" 대체 어쩌자는 거지? 네 말대로 내가 전생자라면 이런 짓을 해서 얻는 게 있나?"

" ... 제갈사가 거짓말로 나를 함정에 빠뜨렸을 경우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례함을 용서해 다오."

제갈부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놈이 고개를 숙이는 건 의외였지만, 나는 놈의 본성을 알고 있었기에 큰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라면 뭐든 하는 간웅(姦雄)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정도는 큰 의미가 없으리라.

나는 냉담하게 제갈부에게 말했다.

" 미안하지만 지금은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내 쪽에서 거절이다. 정 흑요석을 받고 싶다면 내게 상황설명을 더 해야할 거다."

" 흠, 좋다."

제갈부가 입을 열었다.

" 지난 십여 년 간 반천맹이 우리 황궁의 계획을 늘 방해해 왔고 그 때문에 번번히 헛물을 켜던 중, 반천맹 측에서 내게 비밀리에 만날 것을 요청해 왔다. 나는 그 회담에 응했는데 그 자리에서 제갈사에게 '진실'을 듣게 되었지. 그리고 나는 그 말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널 만나러 온 거다."

" 이 놈들은 금의위 아닌가? 잘도 신빙성을 주장하는군."

" 금의위가 아니다. 내가 몰래 키운 세력인 아랑대(牙狼隊)다. 이 녀석들 정도면 구파일방 중 하나 정도는 작전을 써서 멸문시킬 수 있을텐데."

널부러져 있는 무사들을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던 제갈부가 말을 이었다.

" 네가 전생자라는 게 사실이면 내가 황궁을 버리고 네 편에 붙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안 그런가?"

" 아버지인 제갈유룡을 배신할 각오로 왔단 말인가?"

" 배신이고 뭐고 전생자가 적이라면 무의미하지. 하물며 이미 네 힘이 나를 넘어선다면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 ......"

맞는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사건에 휘말리기를 싫어해서 끼어들지 않았을 뿐, 원한다면 전생을 시작하고 하루만에 제갈부를 족칠 수도 있다. 다만 사건의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이제 놈 하나를 어찌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

나는 제갈부에게 말했다.

" 약속할 수 있나?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고."

" 배신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여길 오지 않았겠지."

" 그런건 나도 안다. 네 입으로 약속을 하란 말이다."

" ... 배신하지 않겠다."

"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갈부에게 흑요석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기억을 전송하자, 제갈부는 잠시 몸을 파르르 떨었다.

" 으윽...!! 설마... 이럴수가."

제갈부는 내가 전생자라는 사실을 듣고 왔는데도 전생의 내용과 분량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잠시 허우적거리다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잡으며 비틀거렸고, 잠시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 날 따라와라. 제갈사를 구해야 하니까."

" 뭐?! 무슨 말이냐."

" 후우... 상황설명부터 해야겠군. 이제부턴 내 주군이니."

그는 잠시 못마땅한 눈으로 날 쳐다보다가 말했다.

" 일의 발단은 지금부터 칠 주야 전, 제갈사의 요청으로 내가 회담에 응했을 때였다. 놈은 내가 사실 전생동료로 예정되어 있으며, 네가 전생자라는 사실을 그 자리에서 밝혔지. 당연히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서 무시하려 했으나 제갈사는 믿을 수밖에 없는 증거를 여러 가지 들이대었다..."

" ......"

"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제 삼자가 끼어들었고 황궁과 반천맹은 다같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고 말았다. 나는 간신히 피할 수 있었지만 금의위는 전멸했고 반천맹주는 실종, 제갈사도 납치당한 듯 하다."

" 제 삼 자...? 납치?!"

제갈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적은 아주 강대하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는 사건은 내 능력의 범주를 벗어나 버렸다... 나는 고민하다가 널 찾아오게 된 거다."

나는 너무 급박한 상황전개에 어이없는 걸 느꼈다.

' 난 분명히 종리권의 가호를 받고 있을텐데?!'

그 가호는 운명이 급박하게 흐르는 걸 막아주고 수련에 집중하게끔 해 주는 가호였다. 그런데 황궁과 반천맹이 반파당하고 제갈사까지 납치당하는 급격한 사건이 일어나는 건 가호와 맞지 않는 것이다.

설마 벌써 가호의 효력이 떨어진 건가?

내가 고민하다가 제갈부에게 말했다.

" 제 삼자라는 건 누구지? 백련교나 십이율인가?"

" 아니. 그놈들이었다면 난 굳이 제 삼자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정말로 제 삼자이기 때문이다."

" 누구냐?"

이어진 제갈부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 서방(西方)!"

" ......?!"

" 서방의 마도사들이 무리지어 습격해 왔기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었다. 놈들의 출현은 정말 예상 외였기 때문이다..."

서방 마도사라고?!

서방이라고 한다면 나도 익히 잘 아는 놈들이었다. 이미 서방은 마도에 완전히 잠식당했기 때문에 마도의 수준도 동방과는 격이 달랐으며 마도사의 숫자와 질도 높았다. 그런 놈들이 습격해 왔다면 황궁과 반천맹이 동시에 망한 게 납득이 되지만, 문제는 그런 게 아니었다.

'왜'인가?

왜 이 상황에 서방이 끼어들지?

' 변인(變因)이 부족해!'

여태껏 내가 전생을 겪어오면서 황궁과 반천맹이 대립한 상황은 많았고 대부분의 경우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기만 했다. 현재의 내 상황과 가장 유사한 것은 바로 10회차로써 내가 미호와 함께 고려에서 여행을 하다가 결국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과 동귀어진을 했던 경우였다. 기간상으로도 가장 비슷했으며, 그 때도 중원에 서방이 침공하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나는 초반에 보물을 좀 챙긴 것 이외에는 계속 사천에 틀어박혀서 무공수련만 했으므로 세상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세상에 영향을 끼칠만한 변인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을 짓자 제갈부가 말했다.

" 왜 그러는줄 안다.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전의 전생과 상황이 달라져서겠지."

" ......"

나는 침묵하다가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 제갈부. 그 사건으로부터 칠 주야가 지났다고 했지. 그러면 어째서 네 아버지인 제갈유룡과 상담해서 서방을 이기려 하지 않고 굳이 전생자인 나를 찾아온 거냐?"

" 조금 어리석은 질문이군. 내가 아버지의 명령에만 맹종하는 걸로 보이는가?"

어이없다는 듯 대꾸한 제갈부가 말을 이었다.

" 난 바보가 아니다. 아버지가 날 이용해서 뭔가 거대한 계획을 꾸미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 내게 피해를 입히는 게 없었으므로 그냥 따르고 있었을 뿐이지... 그러나 네가 전생자라는 걸 알게 된 이상 황궁세력에만 무턱대고 의존하는 건 멍청한 짓이 아니겠는가?"

"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제갈유룡에게 하지도 않은 거겠지?"

" 물론이다. 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

" 제갈사가 납치되었다고 했는데 어디에 납치당했는지는 알고 있나?"

내 질문에 제갈부가 말했다.

" 팽조(彭祖)가 그를 데려갔다. 위치는 대충 짐작이 간다."

" 팽조라고! 넌 어떻게 놈의 정체를 알지?"

" 방금 전 흑요석을 받을 때까지는 전혀 몰랐다. 그러나 흑요석의 기억을 받고 보니, 서방의 마도능력을 쓰면서 수많은 보패를 사용하는 대라신선급 존재가 팽조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다."

" 으음. 팽조가... 회담장을 습격했다고."

팽조는 고대적에 창힐과 결탁해서 동방의 선계를 배신한 후 수많은 보패를 가지고 서방으로 탈주한 대라신선이자 신의 현손이었다. 그는 서방 대마도사들의 우두머리로써 강력한 힘을 가지고 군림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금요의 봉인지인 팔리아스를 위협해서 금요를 얻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팽조는 여태껏 금요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동방일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걸로 보였고, 그렇기에 나도 전생회차가 꽤 넘어간 뒤에나 놈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나는 혹시하는 생각에 말했다.

" 설마 팽조 놈이 금요를 들고 있었나?"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그렇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빛나는 구슬... 그건 금요였던 것 같다."

" 제기랄!"

놈이 금요를 얻어버렸구나!

' 봉인지 팔리아스가 뚫렸어!'

안 그래도 강력한 팽조가 칠요 중 금요를 얻어서 수십 명의 대마도사와 습격했다면 답이 없을 수밖에!

나는 난데없이 팽조가 적수로 등장한 상황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고는 제갈부에게 말했다.

" 방금 전에 제갈사가 잡혀간 장소를 알고 있다고 했지. 어디냐?"

" 해남성(海南城)이 일 년 전부터 서양세력에게 점거당한 상황이란 걸 알고 있나? 그 곳에 사는 수백만 명의 인간들은 현재 서방의 통제를 받고 있다."

" ... 몰라."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제갈부를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 그 남해에는 인간세상에서 전혀 본 적도 없는 시꺼멓고 거대한 함대가 주둔하고 있다고 하지. 내 밀정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제갈사는 그 함대의 내부에 잡혀간 듯 하다."

" ......"

함대.

그건 틀림없이 서방의 최신 마도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리라. 그리고 그 안에는 마도병이나 마도사들이 드글거리고 있을 것이고, 팽조가 현재 임시거점으로 삼는 장소가 분명했다. 강력한 마도기술과 과학기술이 장비되어 있는 장소가 틀림없다. 십만 대군이 주둔한 요새보다 몇십 배는 위험한 장소였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제갈부에게 명령했다.

" 당장 반천맹과 연락해. 내 동료들과 힘을 합쳐서 팽조를 죽이고 제갈사를 구해낸다."

제갈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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