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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신승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달마대사나 신녀를 만일 부활시킬 수 있다면 엄청난 비밀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한번쯤 생각했던 일이지만 지금 할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무예에 전념하려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진소청의 말대로, 나는 무예를 대하는데 진심이 되지 못하고 있다.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부딪히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신화적 단서를 하나라도 빨리 찾아내려고 갈팡질팡할 때가 아니었다. 도리어 이번 삶에서 그 방법을 시도하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하나의 목적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여태껏 책사들이 생각 못 해본 계책도 아니기도 하고요.”
“으음….”
“문제는 그런 게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힘’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렇다. 제갈사나 망량 등 내 주변의 뛰어난 책사들은 다들 지나가듯 그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뿐더러, 계속해서 상황에 휩쓸리는 일만 계속되었으니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이래서는 아무리 훌륭한 계책이라고 하더라도 형편없이 주위를 겉돌 뿐이다.
‘가장 단순한 접근이 필요해.’
내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
물론 강해진다 하더라도 그 한계를 가볍게 초월하는 존재들이 천지간에 산더미처럼 많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게는 본신의 힘만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보물, 정보, 책사, 영웅들이 함께 하고 있으므로 강해지는 폭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단결의 힘이 일정수준에 이르게 되면 비로소 문제의 중심으로 파고들어갈 돌진력이 생기게 되리라.
신승은 내 말을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이미 남의 말에 섣불리 흔들리지 않게 되었구려. 이번 삶의 성취가 기대되오.”
“신승. 반천맹주를 앞으로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그와 그 동료들에게 시설을 무제한 제공하겠소. 또한 정천맹이 섣불리 반천맹을 적대하지 않도록 힘을 쓰겠소이다.”
그 때 제갈사가 끼어들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너희 소림사에는 사대신기에 관한 전승이 전해져 오지 않나?”
“으음…, 예상했던 질문이구려. 우리의 기원이 달마이며 백련교와 배다른 형제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겠구려.”
“중요한 질문이다. 신중하게 대답해.”
“소림사의 모든 비밀을 전해 받았다 해도 노납은 사대신기에 대하여 들은 바가 없소. 알았다면 백웅의 24번째 삶에서 미리 얘기했을 것이오. 비슷한 전승이라고 한다면….”
신승이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미륵불(彌勒佛)의 전설밖에 없구려.”
“미륵불?”
“그렇소. 미륵불…. 우리 소림사와 백련교가 아마 거의 유일하게 공유하는 전승. 그 전승에 따르면 본사 심생멸문(心生滅門)의 깨달음을 전할 때 인용하곤 하오. 달마 이전, 불법을 세상에서 최초로 얻은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이르신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나 도솔천에서 이 세상으로 하생(下生)하는 것이 바로 미륵불.”
신승의 말에 제갈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리고 미륵불은 중생들을 구제하여 이 세상에 그 가르침을 펼쳐 모조리 깨우침의 경지에 들게 해 버린다고 하지. 그건 굳이 네놈 같은 땡중이 아니라 학문 좀 팠다는 학사들도 웬만하면 알고 있는 유명한 전설 아니냐? 무슨 대단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제갈사가 투덜거렸지만 신승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렇소. 허나 노납은 방금 전 백웅의 기억을 전승받으면서 큰 의혹이 생겼소. 그건 소림사 내부에 전해져오는 미륵불의 전설이 민간의 것과 조금 다르기 때문이오.”
“다르다고? 어떻게 다른가?”
신승은 불호를 외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 하생하는 것은 같으나, 그는 팔식(八識)을 얻은 대신 심진여(心眞如)를 잃어버린 불완전한 존재라고 전해지는 것이오. 본디 세상은 심진여(心眞如)에서 무시무명(無始無明)한 망념이 일어나 혼돈 속에 전변(轉變)하여 만상(萬象)이 이뤄지는 법…. 그러나 미륵불은 특이하게도 심진여라고 하는 전제를 잃어버린 채 깨달음만을 가지고 도솔천에서 하생하는 것이오.”
“…….”
“그렇기에 본사의 승려들을 비롯한 전 세계의 불법(佛法)을 수련하는 자들은 그런 미륵불에게 진여법을 전해서 완성시킬 의무가 있다고 전해지오…. 그를 돕는 것이 불법의 완성이며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온누리에 퍼지는 것이기 때문.”
뭔 소리야?
나는 불법공부에는 밝지 않아서 신승의 말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제갈사는 천재답게 한번 듣자 알아들은 듯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재밌군…. 그건 영지주의의 데미우르고스와 매우 흡사한 존재다. 그런 건 아이온이 아니야.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거짓 창조주의 속성 또한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음…, 노납은 영지주의란 학문을 잘 모르겠소만, 미륵이 거짓 창조주란 표현도 그리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오. 왜냐하면….”
이어진 신승의 말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미륵은 패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오.”
“그게 무슨 소리지?”
“만상만여에 이르는 모든 존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는 팔식뿐만 아니라 심진여도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라 하오. 그래서 도솔천에서 하생하고도 무수한 세월을 고련하며 고뇌하는 것이 미륵…. 그는 무한히 패배하는 존재요.”
“무슨 그런 전설이 있지? 그것도 천하 불법의 중심지라는 소림사에….”
“노납도 그런 의문을 품고 있소. 이 존재에 대한 전승은 워낙 기오막측해서 소림사에서도 일천 년간 결론을 내지 못했소. 허나 아마도 백련교와 공유하는 전승은 이것뿐일 것이고, 달리 말하면 백련교 또한 미륵에 대한 전승을 비슷하게 보유하고 있을 것이오.”
“…….”
제갈사는 뭔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신승에게 말했다.
“신승. 조만간 내가 당신을 이용해서 시도할 일이 있을 것 같군. 목숨을 바쳐서 내 계책을 성공시켜 줘야겠어.”
“알겠소.”
대놓고 제갈사가 이용하겠다고 하는데도 신승은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아마 이 세계가 나를 중심으로 전생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인 듯 했다.
우리는 소림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제갈사가 내게 말했다.
“백웅. 최초로 도전하고 싶은 호적수나 계획이 있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은 없어.”
“왜지?”
“장삼봉의 절학을 배우고 있는데 부족한 점이 너무 많고 배울 것도 너무 많아. 이걸 정리하려면 적어도 십 년은 걸릴 것 같아서….”
“그렇군. 그러면 네게 최초의 상대를 제시해 주지.”
제갈사가 눈을 빛냈다.
“절대지경에 이르기 위한 생사결 첫 상대는 무조건 백련교주다. 그렇게 알아 둬.”
“뭐? 안될 건 없지만….”
“안될 게 없다면 된다는 소리 아니냐? 하여간 물러 터져서는.”
“…….”
퉁명스럽게 말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일단은 십 년을 잡고 수련하고, 십 년 후의 상태를 살펴본 후 백련교주에게 도전한다. 구체적인 계획은 그렇게 잡는 게 좋을 것 같군.”
“백련교주가 일대일로 싸워줄까?”
“그 상황은 내가 만들어 주마. 그리고….”
제갈사가 뒤따라오고 있던 진소청에게 말했다.
“진소청. 너는 나랑 얘기 좀 하자.”
“알겠소.”
이윽고 그들은 둘이서만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되돌아왔다. 나는 대체 무슨 비밀을 꾸미고 있는지 궁금했으나 그들의 안색이 워낙 태연해서 캐내려고 해봤자 무의미할 듯 했다. 나는 제갈사에게 약간 섭섭함을 느끼며 말했다.
“쳇! 왜 나한테까지 숨기는 거야?”
“팔랑귀인 네놈이 알아서 득이 되기보다는 실이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지. 양심 좀 챙길 수 있을까?”
“…….”
“걱정 마. 별 얘기 안 했어. 그리고 진소청은 오늘부터는 네 곁에서 수련하는 게 아니라 소림사의 시설에서 수련할 거다. 그래야 내공을 더 빨리 극치까지 올릴 테니까.”
“알았어.”
“잘 가라.”
별 얘기 안 했을 리가 없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는 혼자서 수련하나….’
어차피 진소청과는 무예진도가 달라서 서로 도움 되는 것도 없었지만 왠지 섭섭했다. 그래도 장삼봉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를 게 분명했기에 나는 제갈사를 뒤로 하고 사천의 수련장으로 되돌아왔다.
장삼봉 진인을 불러내어서 소림사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자 그가 말했다.
[흐음…, 목표가 백련교주라는 기인이라…. 그의 주된 무공은 어떤 것이오?]
“백련교 수신류의 무공이지만 사대무류의 무공을 모두 시전할 줄 압니다. 또한 절대지경이며 아마…, 검선 여동빈과 대등한 무공을 지니고 있습니다.”
[호오! 엄청나군. 내 시대의 백련교 교주는 그렇게 강하진 않았는데…, 인간이 어찌 그렇게 강할 수 있지?]
“인간의 경지가 아닌 건 확실합니다.”
[백련교에서 뛰어난 후인을 배출했구려. 허허….]
장삼봉은 꽤 놀란 듯 했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아마 장삼봉 시대의 백련교 교주는, 시기상 현 교주의 바로 윗 세대겠지….’
전대교주는 현 백련교주만큼 강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삼봉은 무난하게 천하지존의 자리를 움켜잡았으리라.
장삼봉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확실히 그대의 생사결 수련에는 제격인 상대구려. 다만 현재 상태로 그와 싸우면 길어도 백 초 이내에 살해당할 것이오.]
“…….”
[다만 아무리 생사결 수련이라 해도 상대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워봤자 아무런 성취가 없는 법…. 그 자의 최소한의 수법이나 기술 정도는 알아야 대비책을 세워줄 수 있소.]
“대비책이라구요?”
[그렇소. 지금은 그저 무난하게 부족한 저변을 다지며 수련하고 있으나, 상대에 맞춰서 수련하는 건 그 집중도가 다르게 마련이오.]
“흐음! 백련교주의 기술을 말씀드리면 되는 겁니까?”
[그 정도 실력자라면 필설로는 형용이 안 되는 무예일 게 분명할 터. 직접 보는 게 더 좋겠소만….]
“…알겠습니다.”
흑요석을 쓸 수밖에 없겠군.
나는 크게 고민하다가 내 기억 속에서 백련교주의 전투장면만 추려내서 장삼봉에게 전해주었다. 물론 상대가 여동빈, 달기, 혹은 신적 존재였기에 장삼봉의 의심을 크게 살 수 있었으므로 일부러 기억의 장면을 뭉그러뜨려서 상대방의 모습을 드러나지 않게끔 했다. 장삼봉에게 모든 기억을 줄 수는 없어도 이 정도는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우웅
[…….]
장삼봉은 백련교주의 원영신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을 눈을 감은 채 감상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과연…, 그대의 말이 틀리지 않소. 나조차도 목숨 걸고 싸워보고 싶은 상대군.]
“…어쨌든 현 무림 최강자니까요.”
[원영신의 근간은 아마 무한의 혼돈으로 보이고, 혼돈화는 전혀 근본을 알 수 없는 기술이군. 아쉽지만 현재의 나로서는 그대가 혼돈화에 맞설만한 기술을 가르쳐주기 힘드오.]
“무쌍패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가능하겠지만, 현재 그대가 십 년 내에 무쌍패를 익히는 건 불가능하오. 백 년으로도 꽤 힘들 것 같소.]
“으윽….”
[하지만….]
장삼봉 진인이 빙긋 웃더니 말했다.
[혼돈화를 쓰지 않은 상태의 백련교주와 결전을 겨룬다면 답은 있지…. 그대가 여태껏 배운 걸 바탕으로 십 년 동안 충분히 강해지게 만들어 주겠소. 버티기가 가능하게 만들어 줄 것이오.]
“고맙습니다!”
[우선은 삼 년이오. 삼 년 동안 예고했던 대로 기초를 충실히 다진 후에 백련교주 대비훈련을 시작하겠소.]
그리고 그 날부터 나는 장삼봉 진인의 지도 아래에 열심히 칠대절학과 팔선신공을 수련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얼마나 겉핥기로 무공의 기술만을 썼는지를 알 수 있었고, 심도 있게 파고들면 칠대절학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실감하게 되었다. 딱히 특별한 기술이나 필살기를 배우지는 않았으나 연계기와 기초를 다지는 것만으로도 매일 안목이 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청운에게서 뇌신류의 묘역을 배울 때의 기분이야….’
수행이 시작되고 일 년이 지나자 장삼봉 진인이 내게 말했다.
[그대는 먹고 마시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군.]
“내공이 극치에 이르러서 신진대사가 자유자재라서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의 나라면 30년 동안 한 줌의 음식물이나 물을 먹지 않고도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잠도 일 년 내내 자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내공이 너무 강력해서 이런 일이 가능했고 내심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장삼봉 진인이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그런데 왜 환골탈태가 이뤄지지 않소…? 이미 인세에 무적이나 다름없는 내공이거늘.]
“그건 저도 잘….”
환골탈태!
거기에 대해서는 예전에 미래의 진소청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과거 명룡자는 당신에게 환골탈태란 기가 극점에 이르러서 최상의 상태로 몸을 바꾸는 현상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었소. 허나 그것은 반만 맞는 소리요.]
[내공이 초절정수위에서도 상위수준에 이르는 건 환골탈태의 기본조건에 불과하오. 실제로는 필요(必要)와 의지(意志). 바로 이 2가지가 있어야 하오.]
[의지는 다른 뜻이오. 바로 몸(體) 자체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오.]
[무학의 세계에서는 다르오. 당신이 쌓아온 무(武)의 업(業)이 몸에 쌓여서 몸 그 자체가 무학의 경지로 발현되는 것. 그리고 의념의 심상세계를 뒷받침해주는 것. 하지만 당신은….]
[전생자(轉生者). 정신이 쌓아온 업(業)과 육체의 업이 상응하지 않아서 늘 모순을 일으키는 것이오. 왜냐하면 이미 백수십 년이나 무예를 수련해 온 달인의 정신이건만 몸뚱이는 10대의 어린 소년이기 때문이지. 그 때문에 정신과 육체가 맞물리지 않는 모순이 생기고, 몸은 당신의 숙련도에 감응해주지 않아서, 환골탈태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오.]
[내 생각에 당신에게 재능보다 더욱 필요한 것은 내면의 모순을 해갈할 돈오(沌悟). 그리고 자신만의 절대지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필요할 것이오.”]
나는 문득 그의 말이 생각나서 장삼봉에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아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진소청의 가설을 이야기하자, 장삼봉은 금세 진중한 표정이 되어서 내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 했다. 장삼봉은 그 말을 음미하다가 말했다.
[설명해준 그 자는 누구요? 적어도 절대지경 이상…. 대단한 존재 같소만. 나도 그 이상 정확하게 그대의 상태를 설명할 방법이 없군.]
“하하하….”
나는 50년 후의 진소청이라고 말할 수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장삼봉이 말했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해결책이 단순할 수도 있겠군.]
“네? 무슨 말입니까?”
[몸과의 부조화가 문제라면 몸을 키우면 되는 게 아니겠소? 그럼 얌전히 나이를 먹어서 그 기(氣)에 어울리는 몸을 얻는 것도 방법이오.]
“……!!”
[어린아이의 몸으로 원래 감당하기 힘든 기(氣)인 건 사실이니.]
나이를 먹는다!
나는 그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지금까지 워낙 금방 죽었다가 되살아난지라 제대로 나이를 먹어본 일이 드물었던 것이다.
“어…, 몇 살 정도 먹어야 할까요?”
[나도 모르지. 허나 그대가 이렇게 수련하면서 자신의 기질과 무예숙련을 맞춰나가면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오.]
“흐음.”
[그건 미래의 일. 지금은 지금에 집중하는 게 좋겠소.]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이 년 동안 장삼봉 밑에서 기본기를 쌓았다. 물론 훈련강도는 매일같이 높았으며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불철주야 부족한 부분을 갈고닦았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보다 숙련도가 비교도 되지 않게 높아졌다고 자부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절대지경은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수련하는 동안 제갈사나 다른 동료들은 아예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바깥사정은 전혀 몰랐지만 나는 동료들을 믿었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수련을 시작한지 삼 년째 되는 날, 장삼봉이 말했다.
[그대가 열심히 한 덕에 기간에 맞춰서 기본기 수련을 끝낼 수 있었구려.]
“당연한 일을 한 거 같아서 민망합니다….”
[아니오. 평범한 재능을 가진 자가 평범하게 수련했으면 결코 삼 년 내에 끝낼 수 있는 수련은 아니었소. 그대는 삼 년간 열심히 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좋소.]
나를 칭찬해 준 장삼봉이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백련교주를 대비해서 칠 년에 걸쳐서 맹훈련을 시작하도록 하겠소.]
“지금까지 그 훈련에 대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으셨는데 그게 어떤 훈련입니까?”
[백련교주의 원영신이란 혼돈을 기반으로 사상오행의 변화를 바꾸는 것이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우웅
순간 장삼봉이 연못 위에 손을 올렸는데 연못 전체에 불길이 일어나는 듯 했다. 나는 난데없는 변화에 놀라서 외쳤다.
“앗!”
[단순히 수(水)에 화(火)를 접목시킨 것 뿐. 이 기술을 더욱 발전시키면 그 자처럼 수극화(水克火)로 응용할 수 있겠지.]
“진인께서도 혼돈의 힘을 다루실 수 있습니까?”
[전혀…. 내게 그런 힘은 없소. 원리는 다르지만 오행을 다룬다는 점이 같을 뿐.]
고개를 저은 장삼봉이 말을 이었다.
[혼돈을 쓰지 않아도 오행을 조종하여 변화시키는 건 의념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기법이고, 그 기법은 내가 세상에 남긴 칠대절학 속에 내재되어 있소. 본디 수행자가 스스로 깨닫는 것이지만 그대가 이 기법을 알지 못하면 백련교주가 진심으로 그대를 죽이려 할 때 대처할 수 없으니 지금부터 가르쳐 주도록 하겠소.]
그렇다면 나도 이제부터 오행 수극화 같은 강력한 수법을 쓸 수 있단 소리인가?!
나는 기뻐서 외쳤다.
“오오! 그렇다면 오행변화를 알게 되면 백련교주의 현겁에도 대처할 수 있습니까?”
장삼봉은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소. 현겁에 대처할 기술도 따로 배워야 할 것이오. 그것도 절대지경의 기술이니 대처법을 배우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소. 생각해 둔 방법은 있으니 걱정 마시오.]
“…….”
[오행변화의 수련에 삼 년, 현겁에 대처하기 위해 삼 년…. 기술을 마무리하는데 일 년을 생각하고 있소만, 솔직히 빠듯하구려…. 죽을 각오로 수련하지 않으면 십 년 내에는 하나 익히기도 힘들 것이오.]
“뭐, 뭐가 이렇게 힘듭니까? 아직 절대지경은 제대로 밟지도 못했는데….”
나는 기가 막혔다.
절대지경에 이르기 위해 십 년이 걸리는 게 아니라 그저 생사결을 위해 대처법을 익히는 데만 십 년 이라니? 그러자 장삼봉이 말했다.
[연자여. 그대의 재능으로는 천 년을 배워도 절대지경이 된다는 보장은 없소. 사실 아직도 그대에게는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소. 여기서 우는 소리를 하면 결코 목표에는 다다를 수 없을 것이오.]
“…….”
나는 이를 악물었다.
“알겠습니다.”
재능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
그나마 길이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수련에만 매달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행변화의 수련이 시작된 지 삼 년이 지났다.
‘젠장…. 아직 완전히 다 못 배운 것 같다….’
그저 기술일 뿐인데 의념으로 오행을 구현화시켜서 조작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나는 오행 상생상극의 변화 중에서 절반도 익히지 못했다. 당초 예상으로는 삼 년 정도면 오행변화를 다 배울 줄 알았는데 너무 머나먼 길이었다. 기술 하나 배우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건 칠대절학 하나하나를 익히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어려운 이유를 장삼봉에게 물어보자, 이건 본디 내가 배웠던 무공계통과 약간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칠대절학의 수행으로 기본을 갖췄기에 망정이지 본래는 내 재능으로 배울 수도 없는 최고급 난이도의 기술이라는 뜻이었다. 이 고생을 할 바에 차라리 술법을 배워서 오행술을 쓰는 게 더 빨랐기에 세상에 수련자가 별로 없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백련교주처럼 원영신으로 자유자재로 오행을 조작하는 괴물 같은 존재를 상정하는 이 또한 무림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별 수 없이 장삼봉에게 말했다.
“…일 년 더 수행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소.]
그 때였다.
“백웅. 오랜만이구려.”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기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외쳤다.
“망량!”
망량은 예전과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모습을 보자 헉하고 놀라서 말했다.
“당신 설마….”
그는 약간 감격했는지 눈물을 훔쳤다.
“이게 다 백웅 그대 덕분이오. 제일 먼저 알려주고 싶어서 찾아왔소.”
그는 학창의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 생소한 도관을 쓰고 있었다. 사뭇 다른 모습이었으며 전생하며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모습이었다. 망량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제 정식으로 지선(地仙)이 되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