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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사실 대라신선을 강림시키는 건 엄청난 정신력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예전에 망량이 신열 때문에 신기가 들끓을 때 장삼봉을 강림시키는 방법을 쓰지 못한 것도 장삼봉의 정신체가 비집고 들어오면 망량이 정신이 타버릴까 염려해서였던 것이다.
그러나 진소청과 이야기해보자 그는 지금의 자기라면 대라신선이 강신해도 괜찮을 것이라 단언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게 있어서는 꽤나 씁쓸한 거였지만 어쨌든 괜찮은 이유로 납득할 만 했다.
파앗
내 몸에 빙의한 여동빈이 진소청에게 빙의한 장삼봉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후학(後學)에게 보이는 건 신경 쓰지 말라. 보여주기 위한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
뭣?!
시작부터 여동빈이 난데없는 소리를 하자 장삼봉이 대꾸했다.
[그럴 생각이었소…. 연자가 원하는 걸 성취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심으로 맞부딪혀야 할 것이오.]
[그렇다. 또한 나는 그대가 무신에 대해 어떤 답을 내었는지, 순수하게 한 명의 무인으로서 알고 싶다.]
[그 또한 생각이 일치하는구려.]
스으으으
그들 사이에 잠시 소용돌이 같은 바람이 일어나더니 이내 멎었고, 잠잠한 공간 속에 소리조차 죽어버렸다. 낙엽은 이미 모두 떨어진지 오래였고 스산한 바람 속에서 월광(月光)이 말없이 비쳐 흐르고 있다.
월광을 벤 것은 바로 한 줄기의 검광(劍光)이었다. 창백한 월광의 단면을 마치 비단결을 베듯 헤쳐나간 천둔검기(天遁劍氣)가 순식간에 상대방의 면전에 짓쳐들었다. 마치 눈꺼풀이 꿰뚫릴 듯한 섬풍(殲風)이 불어 닥치는데도 장삼봉의 기세는 한 줌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서서히 좌수(左手)를 움직여 검광의 맞은편으로 쏘아냈다.
피잉!
마치 처음부터 양패구상하는 듯한 흉험한 일 초의 교환으로 보였으나, 그건 내 착각이었다. 천둔검기는 장삼봉의 몸 주위를 둘러싼 기이한 기운을 뚫지 못하고 미끄러졌으며 장삼봉의 반격 또한 여동빈이 이미 예상한 듯 피한 후였다.
그리고 서로간의 공격이 헛쳤다고 생각할 틈도 없이 여동빈의 검은 육의성천도 우결(雨決)을 운용하여 빗줄기 같은 공세를 퍼부었고 장삼봉의 쌍수(雙手)가 고요히 태극(太極)을 그리는 게 보였다. 그 일 초의 간합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에게 타격을 주지 못하고 풍화되었으나 또다시 두 절세고수는 새로운 공방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쩌엉
마치 유리창이 크게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장삼봉의 장심(掌心)에서 가공할 기운이 태극의 형상과 함께 다변적으로 뻗어오는 게 보였다. 공간은 연속되는데 시간은 끊기는 것처럼 태극의 위치를 알아보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칠대절학(七大絶學)
합체오의(合體悟意)
구궁천라십단금(九宮天羅十段錦)
과거 진소청과 검마의 합공을 상대할 때 장삼봉이 꺼냈던 합체오의 절학! 구궁천라십단금의 변화는 단순히 시각을 혼란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비가역적인 뒤흔들림이 연속되기 때문에 알고 대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총 열 개의 면장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서 불규칙적으로 급소를 공격해 오는데 단 한 번이라도 방어에 실패할 경우 얻어맞고 패배하기 일쑤였다.
‘나는 구궁천라십단금을 멸혼보 없이 피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저 공격이 강호의 흔한 변환절초와 격을 달리하는 이유는 제멋대로 튀어나오면서도 공격의 맥이 끊기거나 약해지기는커녕 점점 강해지며 범위를 넓혔기 때문이다. 변초가 거듭될수록 실린 힘이 약해져서 변화를 읽기 뻔해진다는 일반적인 단점을 완전히 극복한 완벽한 초식이었다.
현재 내 실력으로도 가상대련에서 구궁천라십단금의 십회 공격을 6회 이상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결국 멸혼보를 쓸 수밖에 없었는데, 멸혼보를 극성으로 써서 도주해도 한두 방 얻어맞는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구궁천라십단금 하나만으로도 강호를 오시하는 절세고수로 군림하는 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여동빈은 저 극악한 절기를 상대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좋은 무공이군!]
그러나 내가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는 것과 달리, 여동빈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아주 손쉽게 그 공격에 대처했다. 그의 검극은 마치 바닷물을 흠뻑 머금은 듯 찰랑이는 검기를 머금더니 마치 폭사하듯이 변화의 정중앙을 향해 돌진해버린 것이다. 육의성천도의 해결(海決)을 끌어낸 것이었다.
‘아니…!!’
저렇게 대응해도 되는 건가?
저렇게 하면 한 장의 장력을 뚫는다 해도 곧이어 사방에서 덮쳐오는 장력에 곤죽이 되고 말텐데! 나는 여동빈이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들짝 놀랐으나 이내 그 놀라움은 다른 성질의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우우우우우
해명(海鳴)이 검 끝에서 솟아나는 듯하더니 구궁천라의 첫 장력을 당기듯이 베어버렸다. 그리고 짙푸른 공진(共振)의 검이 종횡으로 아주 살짝 틀어지면서 공격의 궤도를 말아버렸고, 이윽고 여동빈이 더더욱 몸을 날려서 중심으로 돌진하자 구궁천라십단금은 중심을 잃고 와해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
어?! 저게 저렇게 파해가 되나?!
생각도 못 했다!
나는 나중에 내가 저 방식을 쓰면 구궁천라십단금에 대항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약간 들뜬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이어진 두 고수의 격돌을 보자 금세 그런 생각이 마음속으로 기어들어가게 되었다.
장삼봉은 구궁천라십단금이 깨어지자마자 이번에는 좌수에 삼절무극장(三絶無極掌), 우수에 현천구룡파(玄天九龍波)를 머금었다. 저 두 절기는 모두 칠대절학의 합체절기로서 보통 한꺼번에 펼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장삼봉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두 개의 절세신공을 이끌어낸 후, 가슴 앞에 거대한 태극문양을 소환하더니 찰나지간에 중얼거렸다.
[능어일념(能於一念)]
뭐지?!
그 순간 태극이 휘몰아치는 나선으로 변하더니 용두(龍頭)가 세 개의 서로 다른 힘을 머금은 채 폭발했다. 동시에 여동빈은 육의성천도의 윤회를 형상화시키더니 폭발하는 은빛 기운에 저항해서 허공을 박찼다. 그 일순간에 천지가 모조리 새하얀 빛에 휩싸이더니 두 선인의 검이 십자로 교차하는 게 내 눈에 보였다.
꽈과광!!
폭음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귀를 멀게 할 정도의 폭음보다는 장삼봉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기묘한 현기를 머금은 채 주위를 포위했다는 사실이 더욱 신경 쓰였다. 그는 어느새 환영을 만들어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동빈을 공격하고 있었고, 여동빈은 그에 맞서서 분신을 똑같이 만든 채 하나하나 다른 초식으로 대응했다.
위잉
벌떼 우는 소리가 울리더니 장삼봉과 여동빈의 환영이 하나씩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 남은 공간에 장삼봉의 현천구룡파가 장풍의 형태로 날아들었고 여동빈은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회전하며 현천구룡파의 힘을 화경으로 받아내었다. 총 81개의 분신이 천지사방에서 격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어둠이 파편처럼 일렁이는 전장(戰場)으로 보였다.
쿠구구구….
나는 이 무수한 격전을 펼치면서도 여동빈이든 장삼봉이든 한 치의 예봉도 꺾이지 않은 채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초식에는 일체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것처럼 아무리 격렬한 충격에도 정밀함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 대결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참고조차 되지 않는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월공투계를 깨닫지 못하는 이상, 아까 여동빈처럼 구궁천라십단금을 없앨 순 없겠지….’
알아봤자 따라할 수가 없는 파해법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장삼봉은 여동빈을 상대로 하자 지금까지 반 년 간 나를 상대로 하던 가상대련에서는 전혀 보여주지 않던 수법들을 계속 선보였는데, 달리 말하자면 나 정도를 상대로는 보여주지 않는 절대지경만의 상승수법이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능어일념이었으며 합체절기를 태극으로 승화시키는 기술인 게 분명했다. 그건 장삼봉이 일부러 가르치지 않은 게 아니라, 아마 내 수준이 아직 절대지경에 미치지 못하기에 괜히 알려줬다가 독이 될까 염려한 것이리라.
스윽
그리고 대결이 중턱에 이르렀다고 판단되었는지 장삼봉이 서서히 검을 들었다. 지금까지는 수공과 장공 위주로만 싸우고 있다가 이제야 검을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동빈은 절벽 위에 올라서서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그게 바로 태극검(太極劍)인가?]
[알고 계시는구려.]
[선계에서도 그대의 무예는 유명하다.]
잠시 침묵하던 여동빈이 입을 열었다.
[이미 그대와 나는 꺼낼만한 수법을 거의 다 꺼냈다. 검술이라 하여 딱히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겠으나 이제 와서 검을 보이는 건 연자의 수행을 고려하는 것인가?]
장삼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혜검(慧劍)의 심득(心得)은 본파에 남기지 못했으며 칠대절학에도 넣지 못했소. 그 이유는 혜검을 무쌍패를 깨닫고 난 후에야 구상할 수 있었으며 싸우기 위한 무공이 아니기 때문이오. 무쌍패에 귀속되는 것이므로 독립적인 무공이 아니기도 하오.]
[…알 것 같군. 내게도 비슷한 깨달음이 있다.]
여동빈이 공감하자 장삼봉은 기분이 좋아진 듯 허허 웃었다.
[한 마디로 알아듣다니 진정으로 오늘 지음(知音)을 만난 기분이구려. 연자를 수행시킬 때는 그 심득을 언어로 전달할 자신이 없었으니 이 기회에 경험으로 전달코자 하오.]
[좋다. 그럼 피차 한 초식으로 끝내도록 하자.]
[그 말 또한 옳소.]
저벅.
두 사람이 다시 검을 들고 일 장 거리를 유지했다. 둘은 한 번의 어검으로 십 리 밖의 산맥을 너끈히 벨 수 있는 존재들이었으나 굳이 이 거리를 유지한 이유는 검객의 초심(初心)을 상징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일 장!
이 거리 내에서 천지간 대부분의 무인들이 결투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이 빙의대련에서 우리에게 확실한 무언가를 남겨주고자 의지를 다진 셈이었다. 여동빈의 검극에서 한기가 새어 흘렀으며 장삼봉은 눈을 반개한 채 무당파의 가장 기본적인 검술인 태극검법의 기수식을 잡았다.
‘태극검…?’
무당파의 절기 중 사상류나 구궁영은 천하에 손색이 없는 절정검법으로 이름 높았다. 또한 예전에 만났던 현천도인이 익힌 태청검법(太淸劍法)또한 천하를 오시하는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태극검법은 갓 무당파에 입문한 자들이 익히는 기초검술로서 별다른 위력이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장삼봉은 거기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인 걸까?
천지간에 월광(月光)이 질식할 듯이 흐르는 어둠 속.
심의육합(心意六合)
무형검(無形劍)
여동빈의 안광이 번득임과 동시에 그의 무형검(無形劍)이 모든 것을 헤쳐 버리며 장삼봉의 가슴팍을 베어버렸다! 거기에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여동빈의 의지만이 남아있었기에 그 어떤 방어나 회피도 통하지 않았다.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심검(心劍)이자 검술의 최종경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무서운 점은 무형검에는 아예 초식조차 없기에 방어할 방법을 만들 수도 없다는 것이다.’
형태가 있는 것은 약점이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형태가 없는 것에서 어떤 굴곡을 찾을 수 있을까? 뜻이 존재한다면 여동빈은 그 어떤 자세나 어떤 간합에서도 무형검을 시전하는 게 가능했다. 무형(無形)이야말로 무적(無敵)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동빈의 무형검이었고, 나는 다음 순간 장삼봉의 가슴팍이 쩍하고 갈라지며 피분수가 솟구칠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러나 내 예측은 틀렸다.
스스스스
시간이 멈춘 듯한 정지의 순간 - 여동빈의 무형검의 궤도가 장삼봉의 가슴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 명치 앞에 빛이 괴여있는 듯한 그 형상 속에서 장삼봉의 태양혈을 중심으로 전신의 요혈이 마치 빛의 선으로 이어진 듯한 모습이 눈에 보이고 있었다. 천지인 상중하의 단전이 세상을 관통하는 완벽한 균형이었다.
태극(太極)이 일렁이더니 이내 천지간에서 원근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너울거렸다. 그리고 그 무한(無限)의 공간 속에서 장삼봉이 춤을 추는 것 같았는데, 그 한 동작은 마치 학춤을 보는 듯 맥없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그 동작이 사실은 태극검법의 제일초식이자 기수식이며, 이윽고 무형검에 맞서는 광검(光劍)으로 화하는 것을 보자 숨막힐 듯한 장엄함이 몰려왔다.
저 한 수에 - 무림의 태산백두, 청연무당의 혼(魂)이 담겨 있었다.
무쌍패(無雙覇)
혜검지무(慧劍之舞)
정적.
투선(鬪仙)들의 최강절기가 부딪힌 결과는 요란한 폭음이 소용돌이치는 아수라장이 아니었다. 여동빈은 중단세의 횡베기 자세로 멈춰 있었고 장삼봉은 그와 검을 맞댄 채 눈을 반개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우위라고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없는 고요함이 세상을 떨리게끔 만들었다.
먼저 검을 거둔 것은 여동빈이었다. 여동빈은 도호를 외우면서 말했다.
[이 한 수는 내 수십 년의 수행에 필적했노라.]
[본도 또한 마찬가지…. 위대한 검선의 무예를 직접 견식하게 되어 영광이었소.]
그들은 그 대결에 크게 만족하는 듯 했다.
“…….”
하지만 나는 어이가 없었다. 투선들의 최고절초가 부딪혔다면 산이라도 날아갈 줄 알았는데 아무런 변화 없이 무미건조한 일 초의 마무리로 끝났다니? 설마 내가 놓친 힘의 진동이 뒤늦게 무언가를 파괴할까 싶어서 주위를 관찰했으나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다.
장삼봉이 말했다.
[연자여. 그대는 정녕 복 받은 존재구려. 이번 대결을 겪었으니 그대는 머지않아 절대지경에 오르게 될 것이오…!!]
“아, 네에…. 그런데….”
[이 몸의 주인은 이미 그 깨달음을 추스르고 있구려…!! 허허! 홍복이오.]
장삼봉답지 않게 들떠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레 말했다.
“마지막 격돌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
[…….]
아직 천계로 되돌아가지 않은 여동빈은 물론이고 진소청의 몸에 있던 장삼봉도 순간적으로 크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특히 여동빈은 ‘정말?!’ 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나는 더더욱 쪼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마치 그걸 겪고도 아무것도 못 느꼈냐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삼봉이 당황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음…, 무형검과 무쌍패의 격돌 직후에…, 나와 검선은 무한의 공간에서 신역(神域)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격렬한 공방을 벌였소. 그걸 느끼지 못 했는가….]
여동빈이 말을 끊고 나섰다.
[그만. ‘문’을 열어서 신역의 존재를 알게 된 자가 아니면 모를 수도 있다. 우리가 그의 재능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그렇구려….]
[되려 낮은 경지에도 불구하고 그 영역을 느낀 놈이 괴물인 거겠지….]
진소청의 몸을 힐끔 바라보던 여동빈이 잠시 후 말했다.
[연자여. 이런 방식은 그대에게 맞지 않는 듯 했군. 내가 그대의 무공진전을 위해 다른 방식을 추천해도 되겠는가?]
여동빈이 솔선해서 저런 말을 꺼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금세 반색해서 대꾸했다.
“네!”
여동빈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워졌다.
[작은 그릇에 너무 거대한 걸 담으려 하니 그대에게 맞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릇을 더욱 두드려서 깨질 정도로 단련하는 게 나아 보인다.]
“무슨 말씀이신지….”
[살아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 그렇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라.]
여동빈은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졌다.
[검귀(劍鬼)의 방식이다. 그대와 동급 이상인 무인과 십연전(十連戰) 진검승부를 해서 살아남으면 뭔가 알 수도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