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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795화 (79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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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제갈무후의 한마디에 좌중이 잠시 싸늘해졌다.

‘흠….’

나는 진소청, 서문혜 등과 눈빛을 교환했다. 특히 나는 진소청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천신경의 술법을 물 흐르듯 쓰긴 했지만 어쨌든 제갈무후의 빈틈을 파고들어서 그의 진의를 끌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눈을 감은 제갈무후에게 말했다.

“그런 건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가?]

“아마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현인의 눈으로 나를 관조하더니 말했다.

[과연 천신경의 술법을 얻은 이도 보통 인간은 아니라는 건가.]

“제갈무후여. 당신이 말하는 절망이 혹여 오백년 후 세계의 멸망을 뜻하는 거라면, 나는 계속해서 그걸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

“이미 저와 동료들은 칠요의 시련에도 도전한 적이 있습니다. 일요의 시련까지 돌파했었고.”

[뭣…?]

순간 제갈무후가 흠칫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눈꼬리가 약간 떨리는 듯 했는데, 잠시 후 궁금함을 참지 못했는지 입을 열었다.

[틀렸다. 칠요의 시련이 진행되었다면 이 세상은 이미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무엇을 바라고 내게 허세를 늘어놓는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제갈무후는 칠요의 시련이 개방되면 어떤 재앙이 생기는지 알고 있어!’

완전히 아는지 대략적으로 아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일요의 시련에서 직접 겪은 바에 따르면 응룡의 몸뚱이를 이루는 여섯 개의 칠요란 바로 행성 그 자체였고, 나는 행성을 직접 무너뜨려야하는 지경까지 갔었다. 만일 시련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파괴된 채로 현실에 반영되었을 확률이 컸으니 제갈무후의 말은 상당히 들어맞는 부분이 있었다.

일요의 시련에 도전한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그의 말을 그저 알쏭달쏭한 떡밥으로만 여기고 지나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천신경의 술법으로 제갈무후를 과거에 만났다 해도 별 소득이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나는 제갈무후에게 말했다.

“허세도 거짓도 아닙니다. 그 전에 한 가지 불공정한 점이 있습니다만.”

[무엇인가?]

“이쪽에서 별 것 아닌 질문 하나만 해도 천신경의 술수를 깎아버리시니 제대로 이야기를 하기 힘들군요. 제게서 진실을 듣고 싶으시면 진지하게 대화에 임해 주십시오.”

[…….]

“적어도 이 대화를 하는 동안에는 트집을 잡아서 술수를 깎아내지 마십시오.”

제갈무후는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그러지. 그대들은 분명 흥미로운 자이며 준걸이니 그에 맞는 대우를 하겠다.]

“고맙습니다.”

이제야 겨우 대화를 제대로 할 상황이 된 것 같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말했다.

“말씀을 드리기에 앞서서 여쭐 게 있습니다. 제갈무후께서는 혹여 천계의 소속이거나 이 자리에서 이야기한 내용이 천계의 대존재들에게 보고됩니까?”

[그대들은 천계와 적대하고 있는가?]

“아직은. 하지만 천계에 이 대화내용이 흘러간다면 이쪽이 곤란합니다.”

내 말에 제갈무후는 선선히 부채를 저었다.

[나는 천계소속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럴 수가 없었다. 등용문을 통과하여 대라신선으로 한 번 등선한 적은 있으나 그 직위를 버리고 다시 인간계에 내려왔다.]

“…으음.”

[천계에 보고할 의무 같은 건 없고 이 장소도 감시받지 않으니 안심하게. 대화한 내용도 알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여하튼 괜찮다는 말이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전생자로, 이번 삶은 26번째입니다….”

나는 그동안 내게 일어났던 전생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약 한 식경에 걸쳐서 간략한 이야기를 하고 칠요의 시련, 그리고 일요의 획득 등을 이야기하자 제갈무후의 표정이 심하게 복잡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야기를 하다가 계속 이것저것 많이 생략되는 걸 깨닫자 속으로 푸념했다.

‘제길. 너무 겪었던 일이 많아서 다 설명하지 못하겠어.’

말로 설명하자면 장편소설과 같은 분량이 아닐까? 자화자찬은 아니지만 그만큼 내가 26번이나 전생하면서 겪은 일은 굉장히 많았다. 차라리 흑요석을 줘서 쉽게 알아듣게 하고 싶었지만 제갈무후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야기가 얼추 마무리되자 제갈무후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백웅이라고 했던가….]

“네.”

[그대는 우둔하고 재능 없는 주제에 앞길이 창창한 내 후손들을 마음대로 부려먹는군.]

“…….”

사실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허나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음부경(陰符經)의 정통 전수자로서 그대에게 내가 겪었던 일과 광성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의무가 있다.]

“음부경이라면 그….”

[술수공부를 하여 그대도 알고 있겠지.]

“음부경의 전설적인 명성을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 술수를 가르쳐준 사람들은 그게 환상의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제갈무후께서 음부경을 수련하셨던 겁니까?”

[그렇다.]

음부경(陰符經).

황제(黃帝)가 지었다 하는 병서(兵書)로써, 도가에서는 전설적인 술법서였다. 447자의 단문으로, 구성은 신선포일연도(神仙抱一演道), 부국안민연법(富國安民演法), 강병전승연술(强兵戰勝演術)의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었다.

447자의 단문이면 오래 수련할 병서로는 가치가 없다고 여겨질 수도 있으나 음부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내용이 심오해지며 현기가 강해져서, 뛰어난 학자라 하여도 첫 문장에서 무수한 해석을 도출하며 심마(心魔)에 빠진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심마를 극복한 자는 뛰어난 깨달음을 얻어 강력한 술법을 손에 넣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음부경의 진본(眞本)이 어디에 있는지가 늘 도사나 술법사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제갈무후의 말을 잘 납득할 수 없어서 재차 말했다.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제갈세가의 후예들과 오랫동안 동료가 되어 함께 고락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음부경을 수련하거나 전수받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음부경은 틀림없이 강력한 술법서일 텐데 제갈무후께서 후손에게 전하지 않으신 이유가 있는 겁니까?”

[있다. 일부러 나는 전수하지 않았다.]

“왜입니까?”

[…음부경은 병가에 속하는 주서음부(周書陰符)와 도가에 속하는 황제음부(黃帝陰符),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지. 나는 소년 시절부터 병가 주서음부와 도가 황제음부를 둘 다 수련하였으나 세속에서는 병가 주서음부의 능력밖에 쓰지 않았다. 그건 음부경에 존재하는 제약 때문이었다.]

제약?

내가 제갈무후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내가 음부경의 부작용을 깨달은 것은 음부경을 8할 이상 익혔던 시점이었다. 젊은 시절에 대성을 앞두고 있어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몸에 용린이 돋기 시작해서 크게 당황했지. 그리고 더 이상 술법을 연마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주군을 따라서 속세에 발을 담근 것이다. 속세에 쉴 새 없이 치이면 섣불리 술법을 쓸 수 없게 될 테니.]

“그랬군요.”

[내 생전에 음부경에 존재하던 금술(禁術)을 썼다면 천하통일이 그리 어렵진 않았으리. 형주가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수만 대군을 이끌고 한달음에 달려가 치명적인 파멸을 막았을 터이지만, 도가 황제음부의 술법을 쓰면 쓸수록…, 제약이 닥쳐온다.]

스윽

제갈무후가 자신의 맨 팔뚝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영체상태인데도 거기에 용린(龍鱗)이 울긋불긋 선명하게 돋아있는 게 보였다. 긴 옷으로 가리고 있어서 몰랐지만 이미 팔뚝의 상당부분이 용린에 휩싸여있는 듯 했다.

[삼황오제 복희에게 그 영혼을 바쳐 사후에 먹히게 된다.]

“……!!”

[선체를 얻은 지금도 먹히고 있는 중이다.]

삼황 복희!

그 존재는 내가 분명히 만난 적이 있었다. 과거 원시천존과 태상노군의 스승이었으나 의문의 마신(魔神)에게 가면을 강제로 벗겨져서 혼연의 용으로 되돌아간 삼황오제. 그 앞에 소환되어버리는 바람에 한 번 죽을 뻔 했었지만 작은 굴레를 돌려서 간신히 되살아난 적이 있었다. 나는 혹시 해서 물었다.

“복희가 사실 가면이 벗겨져서 혼돈의 용으로 되돌아갔는데도 영혼을 먹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지…?]

역시 자세한 사정은 제갈무후도 모르는 듯 했다. 복희를 그저 삼황오제의 일원으로 생각할 뿐 고대에 복희가 가면이 벗겨진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저게 필멸자의 한계일 수도 있었다. 아무리 똑똑한 자라고 해도 직접 파보지 않으면 고대신화의 비밀은 절대 알 수가 없다.

나는 복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걸 이야기해줬고, 제갈무후는 그 얘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온갖 세상의 비밀을 다 알고 있군…. 그대 말대로라면 음부경의 목적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겠군.]

“무슨 목적 말입니까?”

[나는 음부경 자체가 황제가 만든 척하고 복희가 만든 위서(僞書)이며 영혼을 잡아먹기 위한 함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대의 말대로라면 역시 음부경의 원작자는 황제인 것이며 숨겨진 목적이 있는 거겠지.]

“……?”

[쉽게 말하자면 황제는 복희를 유지시키려는 것이다. 혼돈의 용으로 화한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먹이를 주려고 음부경을 세상에 뿌린 거겠지.]

뭔가 얘기가 계속 복잡해지고 있다. 나는 지금 얻은 정보가 귀중한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한 자 한 자 모두 기억하기 위해 뇌정경을 계속 돌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경악했다.

“잠깐. 그럼 당신의 가호인 귀곡신산(鬼哭神算)을 얻게 되면 음부경의 지식도 저절로 배우게 된다고 했는데 그러면 가호를 얻은 자 또한 당신처럼….”

[복희에게 천천히 먹히게 되지…. 일회용 술법은 그와는 별개로 장인어른께 배운 거니 걱정 안 해도 되네.]

“…….”

대체 이 인간은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불러내자마자 가호를 달라고 해서 돌려보냈으면 큰일 날 뻔 했잖아!!’

사후에 신적 존재에게 영혼이 먹히는 게 두려워 자손에게도 전수하지 않는 게 음부경이었다. 그 지식을 얻게 되어 익히게 되면 멀쩡할 리가 없다.

제갈무후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엿 먹이고 있었다는 걸 깨닫자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생전 한번 본 적도 없는 천신경의 소유자에게 이토록 적대적으로 대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진소청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 했다! 내가 멍하니 있자 진소청이 그에게 물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음부경에 대해서는 알겠으나 무후께서 삼황내문과 광성자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설명해주지 않으셨습니다.”

[관계라. 아주 간단한 관계지.]

제갈무후는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음부경과 삼황내문은 형제 같은 관계다. 음부경은 황제가 만들었고 삼황내문은 자부신선(紫夫神仙)이 만들었다고 전해지지만, 두 개의 술법서는 원작자가 똑같다.]

“설마….”

[그래. 음부경도 삼황내문도 광성자가 만들었다. 음부경은 황제가 지었다지만 사실 광성자가 지은 것이고 삼황내문의 저자라는 자부신선도 광성자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자부신선이 광성자의 분신이거나 가명일거라는 예상은 익히 하고 있었다. 일단 삼황내문을 처음으로 얻었던 망량 본인이 그런 가정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도가의 전설로 불리는 두 술법서가 모두 동일인물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건 좀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순간 위기의식을 느끼고는 그에게 외쳤다.

“서, 설마 삼황내문도 술법성취가 극성에 이를수록 복희에게 잡아먹히는 겁니까?”

[아니. 거기엔 또 다른 제약이 걸려있는 것 같았다. 아마 음부경과는 다른 제약일 것이다.]

서문혜가 가만히 듣던 중 끼어들었다.

“무후님께서는 음부경의 제약을 풀 수 있는 수단을 찾다가 삼황내문을 찾아보게 되신 거군요.”

[그렇다. 허나 둘 다 함정이었기에 무의미한 헛수고라는 걸 말년에야 깨달았지…. 그래서 기껏 찾아낸 삼황내문을 수련하다 말고 공동산에 봉인한 후 내 숙명을 받아들였다.]

무후가 잠시 후 탄식했다.

[내가 음부경을 대성하여 당대 최고의 술법사가 되었으며 광성자의 지식 덕에 칠요와 세계의 절망적인 미래까지도 깨달았으나, 그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살았든 죽었든 절망밖에 없는 세상에 염증을 느꼈으나 나는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내가 속세에 머물던 파촉국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걸 감수하고 백우선을 제작해서 내 후대의 인물에게 도움이 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역시 무의미했노라.]

“…….”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장원에서 연명의 술수인 척 복희에게 잡아먹히는 시기를 늦추는 것밖에 없었지….]

지극히 암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역사적인 영웅인 제갈무후에게 이런 비사가 있었단 말인가.

[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광성자와 천신경의 술수에 대해 알려주지. 음부경의 말미에는 세계의 진실과 더불어 천신경의 술수의 실체도 기록되어 있었다.]

“알려주십시오.”

제갈무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복희에 먹히고 있듯, 천신경의 술수 또한 마찬가지로 함정이다. 천신경과 계약하여 ‘구원’을 얻었다는 존재는 술수가 끝나는 순간 만신전으로 소환되어 박제 당한다. 나보다 더 비참한 처지가 될 것이다.]

“네? 박제?”

이어진 말은 충격적이었다.

[천신경에 응한 자는 만신전 황금(黃金)의 관에 영혼이 갇힌 채로 영겁토록 지내는 거다. 광성자가 직접 음부경 말미에 적어둔 천신경의 진실이니, 거짓은 아니겠지.]

“…….”

[나는 어차피 복희에게 잡아먹히나 황금관에 들어가나 끝장이었기에 천신경 사기계약의 피해자를 최대한 막아보려고 이 세상에 남아있었다.]

천신경의 술수로 ‘구원’을 얻은 자는 관짝에 박제당한다고?

나는 도무지 제갈무후의 말이 믿기지 않았으나 제갈무후가 내가 전생자라는 걸 믿고 모든 비밀을 이야기해주는 현 상황에서 그가 거짓을 이야기할 리는 없었다.

‘박제….’

세상이 끝날 때까지 황금관에 갇혀있는 건 과연 구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의도를 모르겠다.

광성자는 어째서 그런 술법을 만든 거지? 차라리 죽이려면 죽일 것이지 왜 사람을 속여가면서 영혼을 관짝에 넣어놓으려는 걸까.

그 때 진소청이 말했다.

“광성자는 참 악취미군요. 그렇다면 삼황내문의 수련자 또한….”

제갈무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부경의 말미에 삼황내문의 부작용과 단점이 적혀있는 것처럼, 삼황내문을 극성으로 수련한 자가 이후에 음부경의 단점을 알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겠지.]

“으음.”

정말 악취미다.

그저 두 명의 전수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즐기는 듯한 구조였다.

[광성자의 정체는 나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가 황제의 모든 뜻을 대리해서 움직이는 만신전의 사도(師徒)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대가 전생자라면 광성자의 정체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 번쯤 캐 보는 것을 추천하지.]

“…….”

[더 물어볼 게 없다면 슬슬 가호를 주고 나는 가보겠다. 멸망 전의 침묵이 그립군.]

나는 깜짝 놀라서 거절하려 했다.

“아, 아뇨. 가호는 됐습….”

음부경의 부작용을 이렇게나 들어놓고는 귀곡신산의 가호를 받는 게 미친놈일 것이다. 음부경의 지식을 깊은 경지로 익히게 되면 복희에게 저절로 잡아먹히게 된다는데 뭐 하러 가호를 받겠는가? 더욱이 나는 이번 생에 무술수련만 하기로 마음먹었으므로 딱히 귀곡신산의 가호가 필요 없기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옆에 있던 서문혜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게 귀곡신산의 가호를 주십시오!”

[알겠다.]

슈르륵

빛이 일어나더니 제갈무후의 모습이 사라졌다.

“……?!”

서문혜?!

“무슨 짓이오!”

내가 놀라서 그녀를 돌아보자 그녀가 말했다.

“백웅 님이 직접 귀곡신산의 가호를 얻으면 나중에도 업(業)이 되어서 발목을 붙잡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갈무후의 말에 따르면 귀곡신산의 가호는 음부경의 지식이 들어있으니 향후 귀중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음부경을 익히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무슨… 방금 저 말 못 들었소? 익히게 되면 복희에게 먹히게 되오!”

“하지만 백웅 님께서 없던 일로 해 주시겠죠.”

“…….”

서문혜가 웃었다.

“저도 늘 애물단지로 있긴 싫어요. 백웅 님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은 애물단지가 아니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크나큰 제약이 걸려있는 음부경의 지식을 서문혜가 얻은 이상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고 지금은 빨리 망량에게 갑시다. 그에게 삼황내문의 위험성을 경고해줘야 하오.”

“음, 알았소.”

파앗

우리는 낙양으로 비등을 타고 갔다. 그리고 망량이 아마 찾아갔을 사마양저의 집을 찾아서 돌아다녔는데, 나는 사마양저의 가명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었다.

이윽고 사마양저의 집 안에 들어가자 역시나 망량이 있었다. 그는 사마양저와 기(基)를 두고 있었는데 흑돌과 백돌이 현란하게 놓여 있었다. 망량은 기를 두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백웅. 갑자기 무슨 일이오?”

“큰일 났소.”

나는 이윽고 흑요석의 술법으로 방금 전 제갈무후의 영혼을 불러내서 알아냈던 사정을 망량에게 전해주었다. 망량은 기억을 전송받고 난 후 꽤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윽고 상황을 정리했는지 차분한 표정이 되어서 말했다.

“삼황내문의 부작용이라…. 알아봤자 그리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소.”

“아니, 어찌 그런 말을 하오?”

“당신이 알아낸 진실 덕분이오. 하등 달라질 게 없으니 더 이상 잡스러운 일에 신경을 쓰지 말고 이제 무공수련에 몰두하면 될 거요.”

“진실이라니?”

망량이 잠시 후 순어구를 이용해서 옆의 사마양저에게 들리지 않게 내게 말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죽으면 지배자의 뱃속에 들어가지. 복희에게 잡아먹히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소?]

“…….”

[내 선조인 제갈무후는 저주를 대물림하는 게 의리상 좋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오. 이 세상의 진실을 알게 된 이상 삼황내문이나 음부경의 부작용은 의미가 없어졌소. 절망적 진실의 순기능이군….]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긴 하다….

내가 할 말을 잃자 망량이 말했다.

“다만 그렇다면 여기에 서문혜 소저를 놔두고 가시오. 그녀가 술법수련을 선택했다면 나와 함께 연마하는 쪽이 성취가 빠를 테니.”

“알겠소.”

이젠 더 이상 빙빙 돌아갈 때가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무공수련에 몰두할 것이다!

파앗

나는 다시 사천에 돌아와서 금괴로 장원을 구입하고 한적한 곳에 수련장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폐관수련에 필요한 식량이나 물, 기타 등등 생필품을 모두 구입한 후 준비가 끝나자 장삼봉을 불렀다.

“장 진인, 와 주십시오!”

장삼봉 진인이 나타나자마자 나는 그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무엇을 말인가?]

나는 눈을 빛내며 외쳤다.

“저희를 절대지경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그리고 수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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