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794화 (79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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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내가 장삼봉 진인을 스승으로 삼으려 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무쌍패(無雙覇).’

칠대절학, 정확히는 무쌍패를 제외한 육대절학을 조화롭게 익혀 극성에 도달하면 얻게 된다는 전설의 극의. 또한 그 위력은 과거 [옛 지배자]의 화신체를 상대하면서 증명된 바가 있었으며 장삼봉 진인이 투선으로 불릴만하다는 걸 알게 했다. 다만 여태껏 그 누구도 육대절학의 끝을 보지 못했고 그저 그 탁월한 기본기를 이용해서 파생절학을 만들었을 뿐, 무쌍패를 직접 시연한 인간은 존재치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무쌍패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이다.

또 하나는 현재 내 무공에서 최소한 3할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칠대절학과 거기서 파생된 팔선신공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싸울 때 주로 뇌신류의 검술과 보법을 운용하지만 그 움직임의 근간에는 굴공참이나 삼보절기 등의 강력한 절학이 섞여 있어서 상승효과를 보고 있었다.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 만큼 그 무공의 근간이 되는 종사에게 가르침을 받는 게 토대를 다지는데 좋을 것이다.

“진인. 전 지금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나중에 가르침을 필요로 할 때 다시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원한다면 그리 하지….]

나는 당장은 장삼봉 진인에게 가르침을 받지 않고, 그를 천계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일단은 전욱의 동상에 섞인 음신지력을 흡수하는 의식을 치렀다. 지난 생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천우진에게서 제대로 결계술을 쳐서 음신지력을 흡수했다.

스아아아앗!

‘뭔가 확실히 경지에 오른 느낌이….’

강력한 힘이 심장 언저리에서 소용돌이치면서 응집되는 게 느껴진다. 아마 몸에 흡수된 음신지력이 저절로 핵을 이루면서 마치 요괴의 심장처럼 작용하려는 것이다. 이제부터 음신지력을 흡수하게 되면 이 핵에 달라붙어서 점점 크기를 키우게 될 것이고, 그때마다 내 힘은 더욱 강해질 것이리라.

옆에서 보고 있던 천우진이 말했다.

“어이, 약속해라.”

“뭘?”

“음신지력을 대성한 후에는 너는 더 이상 이런 흡수의식을 치를 필요 없을 거다. 그때부터는 나한테 음신지력 넘겨.”

“…….”

이 자식, 음신지력을 먹고 강해질 생각인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반문했다.

“아니 줄 수는 있는데 넌 이미 천하제일의 술사잖아. 음신지력이 필요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군. 그 전욱의 동상에 있는 음신지력을 지금 내가 1회분이라도 얻었다면, 나는 즉시 천계의 대라신선과 대등 이상이 될 수 있다. 내가 얼마 전에 겪은 신열과 동격 이상이야. 그 가치를 실감 못하는 건가.”

“음….”

“네가 전회차에 흡수했던 음신지력의 찌꺼기만으로도 최강의 반인반요가 태어날 뻔 했다는 걸 명심해. 그건 술법계에 속한 자와 요괴에게 있어서는 천년설삼에 준하는 기연이다.”

“그렇군.”

나는 그렇게 대꾸하곤 말했다.

“…근데 너 말고 미호한테도 유용한 거 아니냐? 꼭 너한테 줄 필요는….”

“…….”

“신열도 겪어서 세졌잖아….”

그러자 천우진이 반색하며 노려보았다.

“이 개자식, 치졸하구나! 네 전생하는 동안 그렇게나 도와줬는데 그거 하나 못 챙겨주느냐? 네놈이 날 얼마나 헐값에 부려먹는지 알고는 있어?! 봉인결계나 제석천의 주문이나 전부 원래 문외불출이라서 가르쳐주면 안 되는 걸 전생자이기 때문에 특별히 도문의 규칙을 어기고 전해줬단 말이다! 나 없었으면 흡수할 수나 있었을까?!”

“어…, 그, 그게.”

“치사한 놈. 그렇게 살지 마라.”

천우진이 기함을 토하자 나는 크게 당황했다. 그냥 살짝 긁어본 것뿐인데 천우진이 엄청나게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알았다. 대성하고 나면 음신지력을 너한테도 주지. 다만 미호한테도 필요하니까 방법은 생각해 볼 거야.”

“흥, 뭘 생각하는지 알겠군. 근데 네가 무예를 수련한다면 그쪽은 당분간 쳐다볼 수도 없을 거다.”

“…알고 있어.”

내가 생각하는 건 바로 북부 고원지대에 있는 심장의 유적이었다.

그 곳은 과거 내 전생에서 검마가 처가의 연원을 찾던 중 전설을 알게 되었고, 그 진실을 더듬어가다가 도착한 곳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장소에 도착하긴 했으나 검마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과거 검마의 죽음을 생각하자 찝찝한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맹렬한 호기심이 끓었다.

‘심장은 다섯 개나 되는 창으로 봉인되어 있는데, 그 창 하나하나가 전욱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창은 분명히 음신지력을 품고 있음이 틀림없다.

다만 아직은 그 모험을 시도할만한 상황이 아니다. 심장유적의 ‘문’을 여는 방법도 아직 확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욱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힐 게 뻔했다. 무예를 수련하는데 전념하기로 한 이상 지금으로서는 회차마다 전욱의 동상에 있는 음신지력을 흡수하는 정도가 최선인 것이다.

나는 흡수가 끝나자 이번에는 공동산의 삼황내문을 찾아서 망량에게 전달했다. 망량은 삼황내문의 힘을 얻은 후 내게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오. 나는 당분간 술수의 수련에 전념하려 하오.”

“등용문에 오르기를 바라오.”

“후후! 이 정도 기연을 받고도 오르지 못하는 자가 어디 있겠소. 과분하지.”

그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다만 선계에 도전하기 전에 사마양저를 잠시 만나야 할 듯하오.”

“사마양저? 아….”

나는 잠시 누굴 얘기하나 싶었지만 이내 기억을 더듬고서 깨달았다. 과거에 망량이 자신에 못지않은 기문진법의 대가라고 소개했으며 오승은을 감금해서 글을 쓰게 도움을 준 뛰어난 학사였다. 나는 망량이 인정할 정도의 학사면 대단한 인물인걸 알고 있었지만 의아해서 말했다.

“그는 왜 만나려 하는 거요? 대단하다지만 그가 당신이 술법을 연마하는 길에 도움을 줄 수는 없지 않소.”

“그렇지 않소. 사마양저는 사마가문의 직계손인데, 그 때문에 그는 진(晉)의 시조이자 천재전략가였던 사마중달(司馬仲達)의 병법서와 술법서를 정통으로 이어받았소. 그래서 그는 나와 달리 기문둔갑을 더 강력하게 펼칠 수 있는 결계사요. 상급 술사라고 할 수 있지.”

“헛!”

“물론 그는 세조 무황제 사마염(司馬炎) 이후 위진남북조의 악독한 황제들이 중원에 저지른 전횡 때문에 가문대대로 은거하는 처지요. 팔왕의 난(八王之亂)은 그대도 알고 있잖소?”

“음… 그렇지.”

“그렇기에 출세를 할 수도 없으며 목숨의 위험 때문에 자기 진짜 이름을 밝히는 일도 거의 없지. 처음 그를 만났을 때도 가명이었소.”

“당신에게는 왜 이름을 밝힌 거요?”

망량은 멋쩍은 듯 말했다.

“고대 제갈무후(諸葛武侯)와 사마중달은 국운을 걸고 경쟁하는 영웅들이었소만, 그 후예인 우리는 처참한 꼴이 되어 있었기에 동병상련의 처지로 친구가 되었소. 나는 술수재능이 없어서 가문에서 천대받았고 사마양저는 사마가문 자체가 중원의 원망을 사고 있어서 평생 이름을 내놓을 수 없었으니 동지의식을 느꼈소. 배운 건 많은데 펼칠 도리가 없는지라 같이 놀고먹다가 붕우가 되었지….”

“…….”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물인 줄 알았는데 그런 능력이 있었단 말인가? 망량이 씁쓸하게 말했다.

“지금까지의 전생에서 ‘나’는 아마 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질까봐 그대에게 사마양저의 능력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던 듯싶소. 어차피 천우진 사제가 있으니 술법방면에서 더 필요하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했을 거고….”

“별로 큰일도 아니군. 아무튼 사마양저를 왜 만나려는 거요?”

“결계술에 있어서 사마양저는 초일류의 반열에 올라 있소. 나는 그의 결계술을 배워서 내 기문둔갑을 더 완벽하게 할 생각이고, 내 성장속도가 더 빨라질게 분명하기 때문이오.”

“흠. 알겠소.”

“앞으로는 필요하다면 사마양저도 전생동료로 끌어들일 수 있을 거요. 그는 염세적인 성격이지만 의사(義士)이니.”

망량은 사마양저에게 결계술을 배우러 떠났다. 나는 얼추 상황이 정리되자 이제 한적한 수련장을 찾아서 검마에게 의논하러 갔다. 그러자 검마는 진소청, 서문혜와 함께 있던 자리에서 말했다.

“미안하지만 황궁을 견제하려면 지금 눈썹이 휘날리게 움직여도 부족한 상황일세. 그리고 차후의 문제도 있으니 이 무영문에서 백웅 그대와 동료들이 무공을 수련하는 건 좋지 않아. 당장 나는 흑요석의 기억으로 무공만 약간 다듬고 바로 낙양으로 올라가서 새로운 세력을 펼칠 생각일세.”

“그럼 어떻게 하지요?”

“사천(四川)으로 떠나게. 재물은 많으니 그곳에서 인적 없는 장원 하나를 구입해서 지내면 되겠지. 또한 그곳은 무림에서도 꽤 변방일세.”

“사천은 어째서…, 그렇다 해도 꼭 사천일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가 있네. 이건 제갈사가 나를 통해 자네에게 전하라고 한 책략일세.”

지금 제갈사는 마물과 마도서를 이용해서 뭔가 하고 있기 때문에 바쁜 듯 했다.

그리고 검마가 천천히 제갈사의 책략을 말해 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꼭 부를 필요가 있을까요?”

“글쎄. 허나 제갈사에게 있어서는 큰 의미가 있겠지. 또한 망량에게도…. 또한 그 정도 거물의 영혼이라면 틀림없이 얻는 게 있지 않겠는가?”

“그렇긴 하군요.”

“본격적으로 자네가 폐관수련에 들어가면 세상일에 거의 신경 쓸 겨를이 없을게야. 그 전에 할 만한 건 다 해본다 생각하게.”

“알겠습니다.”

나는 진소청, 서문혜와 함께 금괴 몇 개를 들고 비등을 써서 사천으로 갔다. 그리고는 사천 무후사로 가서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잘 살폈다. 옆에서 함께 염탐하던 서문혜가 말했다.

“백웅 님. 해시쯤이면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군.”

우리는 무후사에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내부로 잠입했다. 여기저기에 병사들이 불침번을 서고 있긴 했으나 나와 진소청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들의 수혈을 짚어서 잠시 재워 놨다.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제압당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준비가 끝나자 나는 천신경의 술법을 사용해서 외쳤다.

“오시오…!!”

파앗!

잠시 후 십지(十指)의 불꽃 중 하나가 꺼뜨려지며, 허공에 강한 푸른빛을 내는 환영이 소환되었다. 이곳과 인연이 있는 상태로 떠돌고 있던 고대의 혼령이 천신경의 술법을 받아들이며 소환된 것이다. 새하얀 깃털로 만들어진 듯한 부채를 팔락거리던 문사차림의 사내의 영혼은 무심한 눈빛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역시 천신경의 계약의 소유자가 존재하긴 했군….]

“……?”

[광성자, 위대한 존재. 미래를 읽으려 해봤자 농락당할 뿐이라…. 후후.]

저건 무슨 뜻이지?

나는 일단은 불러낸 김에 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이렇게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혹시 귀하께서 전설의 제갈무후이십니까?”

[알고 불러냈겠지. 굳이 확인하지 마시게.]

“아, 네.”

뭔가 상대는 지금까지 천신경으로 불러냈던 영혼들과 분위기가 달랐다.

‘하나같이 약간 들떠서는 날 위해서 뭐든 들어주고 싶어 했는데….’

차라리 권태마저 느껴지는 저 반응은 대체 뭐란 말인가?

하지만 확실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게, 중원역사상 가장 유명한 책사의 일인이자 촉한 소열제를 도와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성립시킨 제갈무후, 제갈량(諸葛亮)!

무후사라고 하는 강력한 매개체와 사당이 있기에 나는 천신경의 술법을 이용해서 쉽게 그를 불러낼 수 있었고, 그게 바로 제갈사의 책략이었다.

“험험.”

나는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럽게 청룡언월도를 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제갈무후시여. 이 무기를 혹시 기억하십니까?”

[…….]

그는 잠시 살펴보더니 무심하게 말했다.

[재수 없는 긴 수염놈의 무기군.]

“……”

[미안하군. 죽은 지 오래 되서 예의를 차리는 법을 잠시 까먹었네.]

자, 잘못 들은 거겠지?

나는 염증을 내는 듯한 제갈무후의 말에 꺼림칙함을 느꼈으나 이내 머리를 털고는 말했다.

“이, 이게 본론은 아닙니다. 아무튼…, 혹시 가호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가호라… 그걸 소원으로 치면 되겠나?]

“일단 어떤 가호인지부터 알고 싶습니다.”

[그럼 소원이 3개군.]

“어….”

[내가 줄 수 있는 가호는 귀곡신산(鬼哭神算)의 가호일세. 내가 생전에 배웠던 술수들을 즉시 쓸 수 있으며 연마할 필요도 없으나, 모두 1회성 소모로 끝나지. 다만 음부경(陰符經)의 지식이 이어지니 그대가 술수를 배우는 자라면 큰 보탬이 될 걸세. 설명은 끝일세.]

내 반응 따위 들을 기색도 없이 자기 할 말만 쏟아내는 듯 했다. 나는 제갈무후의 빠른 말에 다소 당황하며 말했다.

“왜 3개입니까? 가호를 아는 게 소원이라고 해도 2개인데….”

[방금 전에 그 무기들을 기억하는지 내게 물어봤지 않은가? 그것도 소원일세.]

“…….”

[방금 그 질문도 포함해서 4개. 이걸로 자네 천신경의 십지 중에서 4개의 불꽃이 사라졌군.]

쪼잔하다!

다른 영웅들의 영혼은 저렇게까지 질문에 인색하지 않았는데!

‘이, 이런 건 내가 생각한 거랑 다른데….’

내가 전설과 다른 제갈무후의 모습과 극도의 후려치기에 망연자실해 있자 옆에 있던 진소청이 말했다.

“제갈무후여. 당신은 다른 영들과 달리 이 계약의 이름이 천신경의 술수라는 걸 알고 있으며 천계 광성자(廣成子)의 술법이란 것도 확실히 이해하고 있군요. 다른 영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는 건 당신 또한 광성자의 삼황내문을 알고 있거나 생전에 직접 공부했던 게 아닙니까?”

뭐?

진소청이 옆에서 뜻밖의 질문을 하자 내가 그를 쳐다보았는데, 제갈무후가 진소청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대답했다.

[그 말대로 나는 삼황내문을 알고 있네. 이걸로 5개.]

진소청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백웅이 지니고 있는 천신경의 술수를 소모시키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6개.]

“술수를 소모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기계약의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서. 7개.]

…어?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당신은 천신경의 술수에 존재하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네. 8개.]

“그 진실을 아는 대로 다 말해 주십시오.”

[…….]

이어진 제갈무후의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크게 굳었다.

[포기하게.]

“네?”

그는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이 세상은 절망. 알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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