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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나는 망량에게 부탁해서 원하는 신을 부르기로 했다. 망량은 잠시 동안 주문을 외웠고, 신비스러운 구름이 그의 몸 주위를 둘러싸더니 이윽고 태허천존이 나왔다.
우우웅
그리고 태허천존에 이어서 약 서너 번의 차례를 건너뛴 후, 태공망 강자아가 소환되어서 재선택권을 제시했다. 망량은 즉시 재선택을 받아들였고 그제서야 망량은 본론을 꺼냈다.
“오시오 종리권!”
천우진에게 신열을 겪게 해야 그가 좀 더 강해질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종리권을 부를 수 있는데도 일부러 번거로운 차례를 겪은 것이었다.
파앗
[나를 불렀는가?]
이윽고 팔선(八仙) 종리권이 앞에 있던 천우진의 몸에 빙의하자, 나는 계획대로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본론은 바로 꺼내면 안돼….’
나는 그 전에 제갈사에게 이야기를 들은 대로 종리권에게 추가로 말했다.
“종리권이여. 수기의 공양으로 받을 수 있는 축복 이외에 몇 가지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게 알고 싶은가?]
“팔선(八仙) 전체를 부를 경우 개개인이 내려줄 수 있는 축복이 어떤 건지, 나머지 7가지를 모두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어…, 그걸 수기의 축복 대신 알려줘도 괜찮겠지?]
“아니오. 정보의 대가로는 여기 흑백련과 금괴를 드리겠습니다.”
나는 슬며시 목갑에서 흑백련 몇 송이와 금괴덩어리를 내놓았다. 그러자 종리권이 다소 불쾌한 듯 대꾸했다.
[날 얕보는군! 신선이 인세의 영약과 금괴에 크게 혹할 것 같은가?]
예상 밖의 반응이었다.
‘이런. 종리권은 장난스러운 성격과 달리 본분에 충실하네.’
물론 나나 제갈사로서는 이런 걸 바칠 경우 교섭이 통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신선들마다 성격차이가 있는지 흑백련이나 금괴는 종리권에게 그리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곤란했으므로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종리권에게 요도 무라마사를 내놓았다.
“그럼 이 요도(妖刀)를 바치겠습니다.”
[흐음…, 귀기서린 물건이로다. 가치는 있으나….]
“…이 지주(蜘蛛)의 내단(內丹)도 바치겠습니다. 이것은 영약일 뿐만 아니라 영성도 갖고 있으니.”
[그 연꽃과 크게 다를 바는 없어 보인다만…, 흠….]
종리권은 한참 고민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말해주겠네. 수기를 공양한 자가 이렇게까지 원하는데 말은 해줘야겠지.]
“감사합니다.”
종리권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먼저 나의 축복은 무사태평만사평안일념일로용맹정진(無事太平萬事平安一念一路勇猛精盡)의 축복일세.]
이윽고 그의 입에서 하나하나 팔선이 지닌 축복의 이름과 종류가 흘러나왔다.
종리권(鍾離權)은 무사태평만사평안일념일로용맹정진(無事太平萬事平安一念一路勇猛精盡).
한상자(韓湘子)는 생륜우화(生輪羽化).
장과로(張果老)는 탈원영술(脫元嬰術).
이철괴(李鐵拐)는 차시환혼(借屍還魂).
하선고(何仙姑)는 선약(仙藥)의 술(術).
남채화(藍采和)는 무공만투(無空萬透).
조국구(曹國舅)는 청허(靑虛).
여동빈(呂洞賓)은 천둔검법(天遁劍法).
나는 그 축복들 하나하나의 자세한 효과를 알고 싶었지만 종리권이 고개를 저었다.
[축복의 이름 정도는 알려줄 수 있으나 자세한 건 본인의 동의를 얻지 않는 한 알려줄 수 없네.]
“어째서입니까? 그 내용을 아는 게 뭔가 신선에게 해가 된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 왜냐하면 우리가 내려주는 축복이란 팔선 모두가 인간시절에 득도(得道)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연마했던 최고의 장기이자 특기였다네. 축복을 내린다는 건 그대를 임의로 가제자(假弟子)로 들인다는 의미도 있어.]
“……!!”
[만일 축복을 받은 자가 천계 등용문에 도전한다면, 당연히 우리 입장에서는 자기 축복을 받았던 자를 좋게 봐 주겠지.]
“가산점 같은 겁니까?”
[임의통과 수준일지도.]
나는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여동빈의 축복이 천둔검법의 축복인 이유는 그가 천계에 승천하기 위해 가장 열심히 연마했던 특기였기 때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선고도 선약의 술법을 달인의 경지로 익혔을 것이고 이철괴의 차시환혼은 세간에 유명한 전설로까지 남아있었다. 제갈사 또한 마왕 벽지상이 이철괴의 차시환혼에 큰 영감을 받아서 이혼대법을 완성했을 거라는 추측을 하고 있었다.
[또한 예의상 안 될 일이니, 나머지는 직접 알아보게. 칠요의 수기를 제거할 정도의 영웅이라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걸세.]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수기의 대가로 종리권님의 축복을 받고 싶습니다.”
[좋네. 하아앗!!]
파앗
나는 종리권의 축복을 받은 후 의식을 끝내고 제단을 정리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천우진을 내부로 옮기고는 망량에게 말했다.
“망량. 지금 생각난 건데…, 제물을 모을 만큼 모아서 최대한 많은 대라신선에게 별개의 축복을 받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소?”
“흐음. 중복이 아니니 일단 가능할 거요. 왜냐하면 그게 불가능하다면 여동빈의 단말과 천둔검법이 이후의 전생에서 받은 축복과 충돌하지 않는 걸 설명할 수 없으니까…. 중복과 달리 별개의 축복을 받아들이는 건 상관없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지난 생에서도 관우의 축복을 추가로 받고도 멀쩡했으니….”
“내 생각이 그거요.”
“아무래도 팔선 전체의 축복을 받는 경우를 생각한 모양이구려.”
잠시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2회중복과 달리 그 경우 가능은 하겠지만 비효율적이오. 여태껏 책사들이 얘기 안한 건 이유가 있소. 여태 그걸 생각 못했겠소?”
“비효율적이라니?”
“일단 아무리 다양한 축복을 몸에 넣어봤자 실질적인 힘은 크게 상승하지 않소. 물론 하나하나의 축복은 일반인이라면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오시할 능력을 지니겠지만, 결코 대라신선의 힘을 넘어서진 못하오. 격(格) 그 자체를 올릴 수 없는 이상 당신의 목표에 비하자면 시간낭비이며 제물낭비에 불과한 것.”
“으음.”
“설령 엄청난 제물을 들여서 천계의 대선들의 축복을 한 몸에 받는다 한들 서왕모를 이기진 못할 거요. 그러나…, 같은 제물을 쓰더라도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있지.”
“…….”
나는 망량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파천의 가호!’
아무리 가호를 많이 받아봤자 망량선사가 내려주는 파천의 가호만은 못하다. 별다른 능력도 없는 내가 삼황오제에 맞먹는 고대의 용신 응룡과 정면대결을 할 수 있게 하는 사상최강의 가호!
결국 가호나 축복도 그걸 내려주는 존재의 격에 좌우되므로, 망량선사를 뛰어넘는 존재가 딱히 없는 지금 시점에서는 파천의 가호가 최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책사들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굳이 제물을 낭비해가면서 여러 개의 가호를 받지 않고 칠요를 모으는데 제물을 전략적으로 소모했던 것이리라.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이로써 당신은 종리권의 가호를 얻어 얌전하게 수련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얻었소.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황궁의 만행과 사악한 계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오. 숙부는 거기에 대해서는 대책을 내놓지 않았소?”
나는 망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갈사는 제갈부에 직접 접촉하는 걸 뒤로 미루라고 했소. 제갈부를 꼬셔서 초반부터 황궁의 계획을 훼방 놓으며 이중간자로 운용하는 것도 좋겠지만, 제갈유룡의 지력(知力)을 고려하면 함부로 시도할 수 없다고 말했소.”
“흐음…, 역시 그렇겠지. 내 아버지라면 당연히 눈치 챌 것이오.”
“대신에 제갈사는 망량 당신에게….”
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망량이 피식 웃었다.
“반천맹을 설립해서 대신 황궁을 견제하면서 시간을 벌라고 했겠지.”
“…그렇소. 망량 당신이라면 최소한 10년은 버텨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상관없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할 뿐. 도리어 당신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의욕이 나는구려.”
“…….”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계책은 내가 거절했소.”
내 말에 망량이 도리어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말이오?”
나는 탄식하듯 말을 쏟아냈다.
“나는, 지금까지 너무 당신에게 빚을 많이 졌소. 그리고 당신이 대의를 이루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다소 이용해서 너무 큰 짐을 지운 느낌이오. 또한 당신이 강해지고 싶어 하는 열망이 다른 동료에 비해 못한 게 아님에도 대의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접었던 걸 많이 보아왔소….”
제갈사는 잘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겠지만, 나는 직접 근처에서 다른 동료들을 보아오면서 절실하게 느꼈다. 망량이 얼마나 많은 걸 희생해왔는지 알고 있었기에, 지난 24회차에서 명경을 내게 넘겨주고 희생한 망량을 생각하면 차마 이번 생에도 희생하란 말은 할 수 없었다.
“음….”
“그렇기에, 나는 당신이 술법을 익혀 등용문을 올라 천계의 신선이 되었으면 하오. 이번 생에 당신은 반천맹주가 굳이 될 필요가 없소.”
“내가 시해지술(尸解之術)을 익히기를 바라는 거구려.”
나는 강하게 외쳤다.
“그렇소! 이번 생에 당신은 책사로써 나를 돕기보다는 강자(强者)가 되어 나를 힘으로 도와주시오! 당신이라면 시해지술을 완벽하게 익혀낼 수 있을 거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에게 흑백련을 먹여서 내공과 영성을 동시에 향상시키고, 삼황내문을 줘서 강력한 술력을 갖추게끔 한다면 기본은 충분히 갖춰지고도 남는다. 더욱이 이번 생의 망량은 명경과 지식까지 갖추고 있으므로 잠재력은 역대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내 말에 망량은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고맙소. 반드시 이뤄보겠소.”
“나도 반드시 내 뜻을 이루겠소!”
나와 망량은 손을 맞잡았다. 각오가 되어있으니 이젠 두려울 게 없는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그건 그거고, 그러면 황궁의 견제는 어찌하기로 했소? 내가 반천맹으로 견제하지도 않고 초전박살을 내지도 않고 제갈부를 등용하지도 않는다면 어찌할 셈이오?”
“…음, 제갈사가 계책을 내 줬소. 바로 제 3의 세력의 힘을 빌리는 것이오.”
“제 3이라면 설마…?”
스윽
나는 은빛 봉황조각을 손에 들었다. 그 조각을 보자 망량이 바로 알아챈 듯 말했다.
“마테오 리치…. 서방 예수회를 이용하려는 거군.”
“이 봉황조각을 미끼로 그들에게 현 황실의 상황을 모두 폭로할 생각이오. 그럼 그들이 황궁을 알아서 억눌러 주리라는 계산이오.”
“숙부가 너무 위험한 수를 두는 게 아닌가 싶구려.”
“예수회가 황궁을 견제할만한 힘이 없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이오?”
내가 반문하자 망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 반대요. 숙부가 예수회를 이용하는 책략을 쓴다고 하면, 예수회뿐만이 아니라 서방세력 전체를 끌어들이게 된다는 소리. 그렇게 되면 억누르는 수준이 아니라 서방외세가 중원에 눈독을 들이게 될 것이오.”
“흠. 그게 그렇게 걱정할 일이오? 서방을 배후에서 지배하는 [옛 지배자]들이 강력하다 해도 그들은 삼황오제와 칠요의 휴전조약 때문에 직접 쳐들어올 수가 없소만….”
“[옛 지배자]가 직접 나설 필요도 없을 것이오.”
망량이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현 서양을 지배하는 건 바로 신성 로마제국이며 그 지배자는 카를 5세. 당신은 수도사 벨로프의 부탁으로 파리의 카트린느 드 메디치 태후에게 편지를 배달한 적이 있어서 서방정세를 자기도 모르게 탐문한 적이 있기에 나도 얼마 전부터 대충은 조사했소. 그리고 신성 로마제국의 현재 전력이라면….”
그의 말이 천천히 이어졌다.
“함대를 통해서 서방 정예병력 5만 정도만 중원에 상륙하더라도 중원의 100만 대군이 몰살당하고 말 것이오. 엄청난 대혼란이 예상되는군….”
“…너무 비관적인 거 아니오? 그리고 아무리 총기가 강하다고 하더라도 중원에도 황연장군이 운용하는 북룡대가 있고 그들도 총을 쓸 수 있소.”
망량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혀…, 당신의 전생경험에 따르면 서방은 이미 탄피개발을 끝마쳤고 아마 본토 최신예라면 그 이상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오. 어쩌면 자동연사총기가 나와 있을지도 모르오. 이미 일류급 이하의 무림인들은 총병 서너 명도 당해낼 수 없을 정도의 기술격차가 생겨났다고 판단되오. 뿐만 아니라 서방이 개입한다면 슬며시 마도병(魔道兵)이나 마도사들이 같이 들어올 테지.”
“…….”
“제갈유룡이 이 시대를 버리고 침묵을 선택한다면 중원이 서방의 식민지가 되는 미래도 충분히 있을 수 있소.”
“그럴 수가….”
“숙부는 그래봤자 속세의 일이니까 모조리 무시하고 황궁과 서방을 싸움 붙여놓은 채 당신은 수련만 하게 둘 생각인가 보군…. 마도(魔道) 세력끼리 이이제이(以夷制夷)라…. 전생자의 목적은 이룰 수 있다지만…, 하아.”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한참동안 생각에 골몰해있던 망량이 말했다.
“백웅. 나를 숙부에게 데려다 주시오. 그 계책은 틀린 계책까진 아니지만, 그와 계책을 조정해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