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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791화 (79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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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26번째 삶이 시작되었다.

지난번 삶이 시작하자마자 너무 순식간에 끝난 느낌이 있었기에, 나는 외양간의 천장을 보고도 그리 감회가 생기지는 않았다. 다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죽음은 아니었기에 나는 발끝에 힘을 주고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힘을 키워야 해.’

여동빈과의 사투 끝에 죽음.

그 전투가 내게 있어서는 여동빈과의 역량차를 보여줌과 동시에, 어느 정도로 힘을 쌓아야 여동빈이 원하는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우선은 완전한 절대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여동빈의 가공할 검기에 대항할만한 나만의 무공을 완성한다!

사실 이 정도를 이루더라도 여동빈과 겨뤄서 이길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는 여동빈이 대라멸진을 허용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내가 원숙한 절대지경을 이루기만 한다면 대라멸진의 힘으로 일단 여동빈을 쓰러뜨릴 순 있게 된다.’

물론 쓰러뜨릴 수만 있다는 소리다. 대라멸진을 쓰고 나서 생존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제갈부나 다른 술사의 생명력을 공유하는 것 뿐인데, 그 방법은 여동빈이 인정해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 무신을 만나기위한 관문은 멀고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예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들이든 간에 여동빈을 상대로 100초를 버틸 정도의 실력을 갖추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든 것이다.

나는 외양간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천암비서를 얻고, 이어서 비등을 얻으러 갔다. 그리고 비등을 얻자마자 흑요석을 재빨리 얻고는 대뢰옥에 있는 마물을 쓰러뜨리고 목갑과 기타 보물들을 습득했고, 황산에 가서 천년설삼, 흑백련, 수요 등의 보물들을 바로 얻었다. 기본적인 과정이 끝나자마자 나는 장령곡으로 가서 제갈사를 만났다.

파앗!

나는 제갈사를 찾아가서 약간 시간을 들여 설득한 후 그에게 흑요석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흑요석을 받은 제갈사는 잠시 후 내게 인상을 찌푸렸다.

“…거지같군. 내 계책은 대체 뭐가 된 거냐?”

“미안.”

“뭐 됐다. 애초에 그런 놈이란 걸 알고 네 여정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 같으니.”

제갈사는 의외로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듯 했다. 나는 궁금해져서 그에게 질문했다.

“제갈사. 전생의 네가 짰던 계책이라는 게 뭔지 혹시 알겠냐?”

“모를 이유가 없지. 단순무식한 계책인데.”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네가 모을 수 있는 5개의 강대한 마도서를 모두 모은 후, 네가 가진 유물과 보물을 싸그리 다 모아서 공양 제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마도서에 수록되어있는 강력한 [옛 지배자]를 모조리 소환한 후 수요를 대가로 아오키가하라 수해의 왕을 쓰러뜨려줄 자를 모집하는 거지.”

“……?!”

이건 무슨 계책이란 말인가?!

하지만 제갈사가 전생의 자기 자신의 계책을 못 읽어낼 리 없었기에 저 말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나는 그 말에 황당해서 반문했다.

“그러니까 [옛 지배자]들을 단번에 여러 마리 소환한 다음에…, 경매를 한다는 말이냐?”

“이해 잘 했군. 말 그대로 경매였겠지. 상급 마도서 5권에다가 칠요, 그리고 온갖 가치 높은 보물들을 한꺼번에 얻는 [옛 지배자]는 단번에 이 대륙에 자기만의 종파를 창설할 정도의 인과율과 영향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저마다 기를 쓰고 힘을 빌려주려 했겠지?”

경매라니!

나는 입을 벌리고 놀라워하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음…, 하지만 놈들처럼 잔인하고 영리하고 오만한 존재가 그렇게 쉽게….”

“다른 건 몰라도 칠요 하나의 가치가 매우 높다. 그건 [옛 지배자]가 흔히 즐기는 필멸자 파멸의 오락으로 넘어갈 수준이 아니야. [종말]과 [계시]에 직접 연관되어 있는데다 삼황오제까지 인과율에 엮여있는 물건이 아니냐? 향후 절대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주도권이 걸려있으니 [옛 지배자]라고 해서 오만하게 굴 수는 없지.”

“그렇군.”

“그리고 경매에서 제일 괜찮은 조건을 내놓은 [옛 지배자]가 있다면 그의 막강한 힘을 빌려서 생사입해까지 다 뚫어버리고 수해의 왕을 쳐 죽여 버리는 거지. 그 다음에 그 [특이점]이란 걸 느긋하게 찾아볼 생각이었겠지.”

“…….”

“특이점에 대한 정보만 찾으면 뭐, 나머진 알 바 아니지. 네가 심맥 끊고 자살해서 다음 생으로 가 버리면 그 뿐.”

확실히 단순무식하고 과격한 계책이다. 또한 저 계책을 쓸 경우 우리에게서 엄청난 제물을 공양 받은 [옛 지배자] 때문에 천지에 파멸이 덮쳐올 게 뻔했고, 그 대책조차 없었다. 그 때문에 제갈사는 일부러 망량과 천우진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던 것이리라.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삼황오제 중 삼황인 염제 신농은 인간에게 호의적인데다가 수해의 왕을 직접 때려잡는 걸 봤었잖아? 염제를 부활시키는 계책은 안 되었던 거냐.”

“여와가 염제를 싫어해서 직접 봉인시키고 있고 그녀는 현 삼황오제 중에서 필두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지난 생이 지나치게 특수한 경우라서 염제가 부활한 것 뿐 실질적으로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럴 일은 없어.”

“으음.”

“아무튼 네 마음이 변했으니 이 계책은 더 이상 고집할 필요가 없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제갈사가 의자에 앉아 피식 웃었다.

“무신을 만나겠다라…. 지금 특이점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위기상황에서 그런 뜬구름 잡는 방안이 희망이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무신이란 놈이 엄청난 존재인 건 사실이야. 그리고 놈을 만난다면, 내가 훨씬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어. 안전하기도 하고.”

“그렇긴 하지. 근데 지금까지 널 돕던 우리 책사들이 그 방법을 몰라서 그걸 네게 진언하지 않았겠냐?”

“…….”

“넌 재능이 없잖아. 그런데 유사 이래 손꼽히는 무의 달인들에게만 손을 뻗은 의문의 절대자에게 선택을 받겠다니, 차라리 다시 칠요를 모아서 시련에 도전하는게 더 빠르고 쉽지 않을까? 이미 한 번 모아봤으니까 운만 한 두 번 따라주면 10번의 죽음 이내로 도달 가능할 텐데.”

제갈사의 말에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일 뿐더러 지금으로서는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난 생에 의지를 굳혔기 때문에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래도 할 거야!!”

“그래 한다고 치자. 특이점은 어쩌고?”

나는 억지를 쓴다는 걸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말했다.

“어차피 망량선사 놈이 말하기를 특이점이란 건 신조차도 피할 수가 없다고 했어! 오면 오는 거지! 그 전에 내가 목표를 달성하면 되잖아!”

“흐음….”

나는 제갈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줄 알았으나, 제갈사는 의외로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말이 그렇게까지 바보처럼 들린 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더니 제갈사가 말했다.

“그 말도 맞군.”

“어? 이해해주는 거냐?”

“나라고 특이점이 회피불능인 걸 몰랐던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끝장나는 걸 지켜보고만 있는 게 책사의 도리가 아니니까 해볼 만큼은 해보려 했던 거지.”

“아….”

“그렇지만 네 각오가 그렇다면야 그 문제는 던져버리도록 하지.”

제갈사가 시원스럽게 말해버리자 나는 왠지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제갈사에게 엄청나게 갈굼 당할 것을 걱정했지만 다행히 넘어간 것이다. 제갈사가 말했다.

“그러면 계책을 세우기는 꽤 쉬워지는군. 아니 계책이랄 것도 없겠고 이제부턴 네가 죽어라 무공을 수련해서 강해지는데 집중하기만 하면 되겠어.”

“이제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아직 넌 할 일을 다 한 게 아니니까 마저 하고 와야지. 보물은 다 찾아오고 인간도 다 구해내. 기존 동료들도 필요한 만큼 여기 데려와.”

“알겠어.”

“이야기는 그 때부터 시작하지.”

파앗!!

나는 다음으로 태경촌으로 가서 봉황조각을 입수한 후 망량에게로 갔다. 망량에게 흑요석을 주자 그가 말했다.

“백웅, 그렇다면 이제부턴 신과 대적할 확률이 줄어들겠구려.”

“내가 힘을 키우는데 보탬을 주시오.”

“물론이오.”

그렇게 말한 망량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시간이 아까우니 수요 수기공양의 의식은 나 혼자 처리하겠소.”

“음? 그게 가능하오?”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명경의 지식도 받아들이고 지선 망량의 방대한 술수지식을 융해시킨 덕분에 나는 수기공양의 의식을 처리하며 유예를 시키는 방법을 깨달았소.”

“오오!”

“수기를 일단 천계에 바쳐놓고 차후의 보상만을 받는 과정을 남겨둘 테니 나중에 다시 찾아오시오. 또한 사제를 미리 설득해 놓겠소.”

“고맙소.”

나는 그 후 서문혜가 갇혀있는 해적 섬으로 가서 해적들을 물리치고 포로들을 구해냈다. 그리고 해적 섬에 있던 보물들을 입수하고 흑패도 손에 넣은 다음 서문혜에게 흑요석을 건네주었다.

우우웅

서문혜는 흑요석을 받자 아주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문득 슬퍼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힘들겠군요. 이렇게나 고된 모험을 했건만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니….”

“당신은 현천도인처럼 절망스럽지 않소?”

“절망이라 해도 어차피 무투대회에서 패배한 후 해적 섬에 갇혀있던 시간 모두가 절망이었습니다. 제게는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구려….”

서문혜의 정신력이 딱히 현천도인보다 강한 게 아니라 그녀는 이미 인생의 나락을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에 절망을 쉽게 버틴 것이다. 그녀는 대회에서 패배하여 해적의 노리개가 될 뻔 했을 때 느꼈던 절망이 너무나 컸던 것이다. 나는 서문혜에게 말했다.

“이제 알고 있겠지만 그대의 원수인 용중일은 풍신류 후계자, 황산파 장문인이란 신분 이외에 환생자라는 진짜 정체가 하나 더 있소. 그래서 그에게 복수하는 건 당분간 자제해 줬으면 하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섣불리 건드리면 모두에게 위험부담이 오고 상황이 멋대로 흘러가게 된다는 걸….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대화를 끝낸 후 그녀를 데리고 무영문으로 가서 사후처리를 한 후 검마에게 흑요석을 주었다. 검마는 흑요석을 받아들인 후 말했다.

“으음! 그렇다면 이번 생에서는 칠요를 모으러 다니는 게 아니라 자네 개인의 역량을 올리는데 집중하겠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차피 황제의 속셈이 구리게 느껴지는 이상 더 이상 칠요의 시련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 역량을 모은 후 도전하는 게 낫고요.”

“특이점이란 게 걸리긴 하지만…, 알았네. 내 최선을 다해 도와주지.”

나는 서문혜와 검마가 포로들의 처리를 끝낼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이번에는 남궁세가의 비밀공간으로 가서 순어구를 훔쳐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난 생에는 뒷감당 생각 안했기에 무명제사서를 바로 훔쳐냈지만 이번에는 안 될 말. 수정석비와 전국옥새도 가만히 놔두자.’

마찬가지 이유로 수신류에 존재하는 수신의 마도서를 억지로 가져오는 것도 안 된다. 그리고 금오도에 있는 웬 구슬이라든가 봉래도에 보패 반황주라든가도 현재로서는 가져올 수 없다. 사실 금오도나 봉래도의 경우는 아직 내 힘만으로 가져올 능력이 안 되는 탓이 컸다.

나는 이번에는 진소청을 찾아갔다. 그리고 진소청을 끌어들여 한바탕 대련을 한 후, 승리해서 그에게 흑요석을 넘겼다.

우우우웅

진소청은 흑요석의 기억을 받아들인 후 말했다.

“으음…, 무신을 만나겠다니. 이제 진심으로 절대지경에 도전하는 거구려.”

“그렇소.”

“그리고 흑요석의 잔류기억을 읽어보니 아마 당신의 생각은…, 흐음.”

진소청이 뭔가 고민하더니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좋소.”

나는 진소청을 장령곡으로 데려다놓은 후 이번에는 동영으로 가서 미호를 만났다. 그리고 미호를 설득해서 그녀에게 흑요석을 주었는데, 흑요석을 받은 미호는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리는 기색이었다.

“…….”

그녀가 한참 후 말했다.

“백웅…. 너는…, 나를 구해주려 하는 것이냐?”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까지는 망설였지만 이젠 아냐. 네가 여와이자 서왕모의 조각이고, 달기의 꼬리라고 하더라도…, 이젠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야.”

“정말로 그게 희망이느냐?”

미호가 회의적인 얼굴로 말했다.

“본녀는 여태껏 태어나서 지금까지 서왕모님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못했다. 내가 내쫓긴 것은 모두 내가 잘못해서라고 생각했었지…. 그 분께서 나를 이용하려 하셔도, 나는 그 사실을 원망하지 않으리라.”

“…….”

“네 기억대로 내가 음양사 필두 세이메이와 동화하여 동영의 기신이 된 상태에서 여와님의 강대한 힘을 얻어서 운명에서 탈출할 가능성도 있겠지. 허나, 내가 나로써 살아간다는 게 정말로 오롯한 행복일지 모르겠구나.”

“미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완벽히 독립된 자아와 자유의지를 모든 이가 바라는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은가. 백웅…, 네 험난한 모험의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이 자리에 멈춰서서 최후를 기다리고 싶다.”

“왜 그런 생각을 해? 지금까지는 그렇게 대답한 적 없었잖아!”

“지금까지의 ‘나’는 천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너를 이용하려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네가 얻은 진실을 직접 대면하니 도저히 미래를 직시할 수가 없노라.”

“…….”

“나는 서왕모님에 대적할 수 없어.”

나는 몸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설마 미호의 반응이 이렇게나 변할 줄이야….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좋아, 서왕모, 아니 여와와 이번 생에서는 결코 반목하지 않겠어. 그녀와 맞설 일이 생긴다면 패배를 선택하겠어.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할게!”

“뭣…, 진심이냐?”

“그래! 어차피 수련만 할 생각이니까 그럴 일도 없을 거야. 그러니까 날 따라와!”

“좋다…. 그러면 널 따라가겠다.”

나는 미호를 설득한 후 동료들을 차례대로 장령곡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망량에게로 다시 찾아갔다.

슈욱

“왔구려, 백웅.”

망량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와 의논하고 왔을 테지. 천계에서 어떤 축복을 받을지 생각해 왔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했소.”

이번 생에 받을 축복은 딱 하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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