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787화 (78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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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가향(眞空家鄕)

수해를 박살낸다니?

나는 제갈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자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너는 네 특이점이 뭐라고 생각 하냐?”

“모르겠어.”

“나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 누구도 모르겠지.”

“……?”

뭐든 알고 있는 것처럼 얘기하곤 하던 제갈사가 저런 말을 하다니 의외였다. 제갈사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지만 그는 전혀 장난을 치는 기색이 아니었다.

“모르니까 가 봐야 하는 거다. 그것도 가능하면 빨리. 왜냐하면 그건 현 시점에서 형태를 알 수 없는 숙명(宿命)이니까.”

“아….”

“그것이 인물인지, 사건인지, 혹은 거대한 인과 그 자체인지 부터 알아야 해. 인물이라면 그 인물을 제거하면 되고 사건이라면 그 사건을 피해야 하는 거지. 그걸 위해서는 가장 확실한 대상지인 수해를 최대한 빨리 탐색해야 하는 거고.”

“음, 그건 이해했는데 왜 수해를 박살낸다는 거야?”

“수해가 생사입멸(生死入滅)의 4단계로 나눠진 건 알고 있지? 그리고 깊게 들어갈수록 마물들의 수준도 높아진다는 것도.”

“당연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해를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제갈사의 말이 이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그 입해의 무사가 위험해. 놈을 제거하거나 정체를 알기 위해선 최단시간에 최대의 힘을 모아서 수해를 공략하는 게 필요하다.”

“입해의 무사?”

“…인지 못하고 있었냐? 제길, 진짜 생각도 안 했단 말이야? 위기감 없는 새끼….”

제갈사는 잠시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다가 말했다.

“그 당시에는 생존에 급급해서 잘 살펴볼 수 없었지만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존재가 입해에서 무사수련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4단계 중 차상위단계의 지옥 같은 환경에서!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냐?”

“고수겠군….”

“지금 내 생각으로는 그 놈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야. ‘특이점’으로 손꼽힐만한 존재라면 그놈일 거라고. 책사로써 해야 하는 당연한 진언이다.”

“음….”

제갈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알겠어. 근데 망량은 왜 찾아갈 필요가 없는 거야?”

“네가 현이와 만난다는 건 이번 생의 망량에게도 네 전생(轉生)의 과업을 지운다는 뜻이지. 그렇겠지?”

제갈사가 문득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다.

“네가 현이 입장에서 생각해 봐라. 뜬금없이 전생자가 나타나서 자신에게 기억을 전달해줬는데, 정작 자신이 성장할 여유도 없이 효율만을 위한 계책을 실천하러 수해에 꼴아 박아서 뒤지러 가는 거잖냐. 녀석 입장에서는 쓸데없이 억울하기만 한 거잖아.”

“아….”

“모르면 모르는 대로 좋은 거다. 그리고 녀석을 키워줄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괜히 건드리지 마. 자, 더 이상 쓸데없는 설명은 됐고 이제 계책을 설명해 주지.”

“알았어.”

“네가 제일 먼저 할 일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마도서를 다 모아오는 거다.”

나는 뜬금없이 마도서라는 말이 나오자 어리둥절해졌다.

“마도서…?”

제갈사는 자신의 왼손을 쫙 펼쳤다. 그리고 설명을 하면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기 시작했다.

“지금 현재 네가 모을 수 있는 마도서는 총 5개가 있다. 하나는 지금 네가 갖고 있는 천암비서, 또 하나는 당연히 황궁의 무명제사서이다. 그리고 황연장군이 잡혀있는 대뢰옥에 있는 나인성본전. 여기까지 3개이고 나머지 2개가 기억 나냐?”

나는 곰곰이 기억을 되살리다가 말했다.

“백련교 수신류 본단의 수신의 서.”

“그래. 잘 기억하고 있군.”

“마지막 하나는 뭐지?”

“‘황금가지’다. 이건 내가 거래할 수 있는 경매장에서 얻을 수 있으니까 일단 나머지 4개를 빨리 모아와.”

“알았어!”

“아, 마도서를 모으기 전에 수요를 비롯한 보물들은 당연히 다 모아둬라. 이번에는 후환걱정하지 말고 일단 모을 수 있는 만큼 모으는 거다.”

파앗!!

나는 비등을 써서 먼저 대뢰옥으로 향했다. 그리고 달의 괴물을 해치우고 안에 있던 나인성본전과 목갑, 소열제의 쌍검 등을 챙겨서 나왔다. 또한 목갑이 생기자마자 바로 황산으로 가서 수요와 천년설삼, 흑백련을 비롯한 각종 보물을 모두 집어넣었다.

‘흠. 이제 황궁의 무명제사서와 수신류의 수신의 서를 얻어야 하는데….’

나는 황산 근처에서 날듯이 빠져나온 후 어느 쪽을 먼저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다만 어느 쪽이든 간에 꽤 귀찮은 게 분명했기에 나는 일단 수요의 유적에서 얻었던 전욱의 동상을 들었다.

“윽…, 아프겠지만.”

일단 힘을 좀 축적하고 도전하는 게 낫겠지!

우우웅!!

‘천우진이 음신지력 흡수에 좋은 제석천의 진언을 가르쳐줬지.’

나는 이윽고 제석천의 진언을 외우면서 전욱의 동상에 있는 거대한 음신지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천우진에게 배웠던 대로 거대한 영기가 내 몸속으로 스며들어오는 게 느껴지자 헛숨을 들이쉬게 되었다.

‘견딜만하군….’

찌르는 듯한 통증은 이전보다 훨씬 덜했는데, 그건 전생에 신공표를 해방시키면서 소모했던 음신지력을 해방칠요 3개를 장비하면서 회복했기 때문이다. 전생에 쓸데없는 소모를 하지 않은 채 이번 생에 음신지력이 추가로 쌓이고 있기 때문에 난이도가 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쉬리리릭!!

“어?”

그런데 내가 음신지력을 거의 다 흡수해서 재차 15년 치의 음신지력을 얻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허공에서 요이(妖異)한 기운이 떠오르더니 안개처럼 뭉게뭉게 변했고, 난데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닌가?

나는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했지만 이윽고 내가 뭘 실수 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만에 하나 음신지력이 세상에 뛰쳐나가서 새로운 요괴를 만들 확률이 있어서 결계를 친 거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냐?]

[음신지력이 뭐라 생각하는 거냐? 신의 힘이다. 강대한 대요괴나 대라신선의 힘이 편린만으로도 요괴를 만드는 일은 세상에 허다하지. 하물며 음신지력쯤 되면 신종 대요괴를 만들어낼 확률도 충분해.]

[음…, 그렇군. 잠깐. 그럼 나도 다음 생부터 전욱의 동상에서 힘을 뽑아 쓸 때는 이런 결계를 펼칠 줄 알아야 한다는 거냐?]

[결계 정도는 기문둔갑을 할 줄 알면 어렵지 않다. 그 정도는 가르쳐줄 테니 걱정 마라.]

천우진과의 대화가 지금 기억난 것이다.

“…으아앗!!”

분명히 천우진은 그때 음신지력의 흡수가 끝나고 나서 내게 요괴방지결계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었다. 그런데 나는 음신지력의 흡수로 힘을 쌓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결계를 쳐두고 흡수하는 걸 깜박한 것이다!!

‘어, 어떻게 하지?’

저 요상한 기운은 십중팔구 강력한 요괴를 만들어낼 게 분명하고, 강력한 요괴는 뛰어난 퇴마사가 없으면 민간에 큰 피해를 입히기 일쑤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가 일단 저 기운을 따라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타다닷!

멸혼보를 쓰는데도 저 기운의 속도를 따라가기조차 벅찼다. 나는 기운이 날아가다가 문득 산 두어 개를 넘은 후 땅에 떨어지는 걸 발견한 후 그 곳으로 달려갔다.

슈욱 -

‘민가? 아니 꽤 사는 부잣집이군….’

나는 기운이 떨어진 곳이 꽤 으리으리한 민가라는 걸 알아차렸다. 재산이 제법 되는지 꽤 넓은 정원을 보유하고 있었고 집도 컸다. 당연히 부잣집이리라. 다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 요이한 기운은 물리적으로 뭐가를 파괴하진 않은 듯 했고 그저 부잣집 내부로 홀연히 사라졌을 뿐이었다.

나는 마음이 급해져서 재빨리 집 안으로 뛰어든 후 사람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자 하인들은 전부 자고 있고 내부에서 집주인 내외가 잠을 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요이한 기운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찾아보았지만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요력의 편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

이제 어떻게 하지….

나는 고민하다가 일단 집주인을 깨워서 즉시 그에게 이혼대법을 걸고는 그의 신상명세와 이곳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집주인은 잠결에 이혼대법이 걸려서인지 대답을 아주 잘 했고, 나는 그가 조영춘(趙泳湷)이라는 만석꾼이며 이곳이 황산 근처의 누상(樓詳)이라는 지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아봐야 뭐에 쓴단 말인가?

‘이, 일단 할 일부터….’

나는 당혹감을 느끼다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나는 즉시 남궁세가의 비밀공간으로 가서 순어구를 훔쳤고, 용문석굴 빈양남동으로 가서 청룡언월도와 보물 등을 재빨리 손에 넣었다. 그리고 나서 제갈사가 있는 장령곡으로 가서 상황을 설명했다.

“…….”

제갈사는 내 말을 듣자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백웅. 혹시 조영춘의 집에 임신한 여인이 있지 않았냐?”

“응?”

나는 그 질문에 곰곰이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조영춘의 옆에 누워서 자고 있던 그의 아내가 만삭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내가 그 사실을 말하자, 제갈사가 흥미를 잃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뭐 대단한 일이라고…. 보나마나 네가 음신지력을 흡수하다가 튕겨나간 요력이 그녀의 뱃속에 있는 태아에게 깃들었을 거다.”

“뭐?! 그럼 어떻게 되는데.”

“둘 중 하나겠지. 조영춘의 아이는 이제 인간이 아니야. 천재적인 술법재능을 타고난 반인반요(半人半妖)로 출생하게 될 것이다. 삼황오제 전욱의 먼 후손이나 다름없으니 꽤 강하겠는데?”

심드렁하게 설명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신경써봐야 시간낭비니까 그냥 무시하고 할일이나 해. 다음 행보는 황궁으로 가서 제갈부에게 흑요석을 주고 놈을 끌어들인 후 교섭해서 무명제사서를 바로 얻어내라.”

“…….”

무시하라고?

정말 무시해도 되는 일인가? 물론 내 실수긴 하지만 왠지 제갈사가 ‘관심 없어’ 하는 일은 실제로는 굉장히 큰일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대꾸했다.

“…알았어.”

“말해두는데 백웅. 현이나 천우진 찾아가서 괜히 그 일을 상담하지 마라.”

“뭣….”

“이번 생에 내가 특이점 소멸을 위해 시도할 방법은 비인외도의 경계에 걸쳐있는 일이다. 녀석들은 십중팔구 반대할 테니까 괜히 동료끼리 핏대 세우게 하지 마.”

나는 제갈사의 그 말에 고개를 돌리고는 말했다.

“제갈사. 전부터 말했지만 나는 그 누구도 희생시킬 생각 없어. 내가 죽는 거라면 상관없지만, 사실 난 네가 네 목숨을 맘대로 버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제갈사가 어깨를 으쓱했다.

“후. 누가 뭐래냐? 네가 걱정할 정도로 도를 넘는 일은 아니니까 걱정 마라. 다만 본격적으로 마(魔)에 몸을 담게 되는 일이니 도맥(道脈)에 속하는 녀석들을 괜히 끌어들이기 싫은 거다. 특히 천우진은 기를 쓰고 날 죽이거나 봉인하려 들겠지.”

“알았어.”

“안 찾아가기로 약속한 거다?”

“약속하지.”

나는 제갈사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내 실수로 벌어진 사단을 가만히 놔두는 것도 도리가 아냐….’

나는 고민하다가 비등을 써서 태경촌으로 향했다.

파앗!!

‘일단 봉황조각부터.’

나는 태경촌으로 간 후 화씨세가의 비밀공간에 있던 은빛 봉황조각을 손에 넣었다. 이 봉황조각은 마테오 리치에게 한 개가 더 있었는데, 괜히 지금 시점에 예수회를 건드려봤자 무의미했기에 일단은 이 조각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발해의 고대유적을 얻어서 은봉황을 완성시키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 할 일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태경촌 근처에 있는 태정관(太正館)으로 향했다. 태정관 내부로 들어가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초로(初老) 나이의 도인(道人)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은 약간 말랐으나 전체적으로 기품 있고 선한 인상이었으며 머리에 쓴 도관도 단정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매우 정갈했으니 정파의 고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그가 누군지는 모를 수가 없다. 이윽고 도인이 포권을 하며 내게 인사를 했다.

“본도는 무당파(武當派)의 현천도인(玄天道人). 그대는 반로환동한 엄청난 고수로 보이는구려…. 무슨 일로 본 태정관을 방문했는지 알 수 있겠소?”

“…….”

정말 오랜만이다. 그와 함께 싸웠던 예전 일이 기억났다. 이후에도 그를 찾아오고 싶었지만 갈수록 모험이 급박해지고 적들의 수준이 급격히 높아졌기에, 태정관의 도인들을 통솔하는 현천도인에게 괜히 부담을 주기 싫어서 찾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아, 면목이 없군요. 제 실수를 도와주셨으면 해서 찾아왔습니다.”

“실수?”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짧게 한숨을 쉰 후 흑요석을 내밀었다.

“이걸 받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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