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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확률이 무(無)에 가까울수록 성공한다고...?!
불가능한 일을 염원할수록 성공한다는 뜻 아닌가!
나는 화룡진인의 말을 이해하고는 곧장 전신에 기를 곧추세우며 외쳤다.
" ... 그럼, 파천의 가호로 일격에 응룡을 베어버리겠습니다!"
[ 글쎄... 그건 과연...]
화룡진인은 회의적인 말을 하고 있었지만 이거야말로 최선이다. 불가능한 확률이 역전되는 능력을 손에 넣었다면 여러 번 낭비할 것 없이 일격에 적을 썰어버리는 게 최고 아닌가.
타닷!
나는 힘을 끌어모으며 다음 순간 응룡의 머리에서부터 꼬리 끝까지 베어버리는 상상을 하며 허공으로 달려들었다.
꾸웅!!
" 컥!"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일까?
내 몸은 허공에서 그대로 튕겨져 나오며 대지에 처박혔다. 호신강기로 막았기에 치명상은 없었지만 꽤 아팠기에 나는 몸을 뒤틀다가 잠시 후 일어섰는데, 하늘을 쳐다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치지지직
치지직
성좌의 용은 두 개의 몸뚱이로 분리되어 있었다. 하나는 멀쩡한 상태의 응룡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두쪽나버린 상태의 응룡이었다. 두 마리의 응룡이 허공에 마치 환영처럼 떠 있었는데 그 기묘한 상태와 함께 응룡이 무언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 용제(龍帝)로서 인과율을 무마하노라!]
후웅!
이윽고 성좌의 용은 다시 하나로 합쳐졌다.
' 어떻게 된 거야?'
파천의 가호가 분명히 발동한 것 같긴 한데 어째서 놈을 일격에 죽이지 못한 거지? 내가 의혹을 느끼고 있을 때 응룡이 내게 말을 걸었다.
[ 과연... 설마 망량선사의 가호를 갖고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군. 방금은 정말로 죽을 뻔 했다.]
" 응룡!! 당신은 어떻게 파천의 가호를 버틸 수 있소?"
내가 외쳐서 질문하자 그가 여의보주를 문 채로 지긋이 내 쪽을 내려다보았다.
[ 그 가호는 평행세계의 확률으로 존재(存在)와 비존재(非存在)의 경계를 가른 후 네게 유리한 쪽을 강제선택하게끔 한다... 그렇기에 나는 신의 권능으로 가호의 본질을 드러내어 내가 소멸될 가능성에 저항한 것이다!]
" ......!!"
[ 그대는 위험한 존재군...]
응룡은 명백히 경계하는 기색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당장 공격이나 방어를 할 생각은 아닌 듯 했는데, 아마 파천의 가호 때문에 반격당할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설마 일요의 수호자로서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응룡조차 위축시킬 수 있는 가호라니!
동시에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에 빠졌다.
' 파괴된 금요는 다시 회복하지 않고 있어... 놈이 '편법'이라고 판단하지 않은 모든 피해는 정당한걸로 인정하고 재회복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응룡을 일격에 해치우는 게 무리라면 일단은 칠요성신을 파괴해서 놈의 동력(動力)부터 끊어버려야 한다.'
내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완전히 희망도 없는 상태였는데 이제 좀 싸워볼만 하다고 생각하니까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욱 필사적으로 머리를 돌렸다.
' 하지만, 칠요성신을 한번 부수는데 파천의 가호를 한번 쓴다고 하면... 앞으로 6번을 더 써야 하고 본체를 없애는데 한번 더 써야 해. 만일 이 가호가 횟수제한이라고 하면 일일이 다 부수다가 다 소모될지도 몰라.'
그러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나머지를 한번에 몰아부숴볼까!
나는 마음속으로 전략을 정한 후 화룡신검을 들어서 단번에 칠요 중 세 개를 부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콰과광!!
역시나 아무런 맥락도 없이 나는 우주공간에 떠 있었고 내 주변에서는 월요, 수요, 목요가 폭발하고 있었다. 이로써 나는 단숨에 칠요성신 중 세 개만을 남긴 상태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응룡의 말이 들려왔다.
[ 우주의 바람이 몰아치노니...]
무슨 말이지?
치지징
내가 그 말 뜻을 생각할 틈도 없이 난데없이 또다시 우주 저편까지 뻗는 빛의 나뭇가지가 내 앞에 보였고, 그건 아마 파천의 가호가 발동해서 '미래의 확률'을 직접 보여주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향해 뻗어나간 단 하나의 직선이 우주 저편을 꿰뚫는 순간이었다.
푸화악!!
" 으아아아아아악."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난데없이 성간(星間)을 휘몰아치는 어마어마한 기류가 덮쳐왔기 때문이다. 생명체라면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말도 안 되는 규모였고 세계를 휩쓸어버리는 듯 했다. 물리적인 방어력을 논하는게 의미가 없을 정도의 극류(克流)가 혼돈을 머금고 용권풍을 일으켰다. 별 서른 개 정도는 가볍게 휩쓸어버릴 정도의 규모였다.
쿠구구구
부숴진 목요의 잔해와 고리가 우주의 폭풍에 휩쓸려서 흡수되기 시작했다. 나는 용권풍 주변으로 빨려들어가는 기분에 이마에서 땀이 송골거리며 새어나왔다. 아마도 내가 아직까지 죽지 않은 것은 파천의 가호가 확률을 반전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 응룡은 내가 파천의 가호를 쓸데없이 소비하기를 원하는거군!'
이 자체가 응룡의 공격이며 수비였다. 응룡은 본디 고사(古事)에 바람을 다루는 존재라 되어 있었으니 우주의 성간풍을 다룰수도 있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내가 가진 파천의 가호가 유한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내 가호를 빨리 소모시키면 무조건 이기게 되리라.
그렇다면 한 번 더 칠요를 부술 뿐이다!
쿠구구구구
" ......"
와 이건 너무한데...
나는 성간 폭풍으로 여지없이 끌려들어가는 나 자신을 느끼며 발버둥쳤다. 분명히 파천의 가호로 보호받고 있는데도 지속효과라서인지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가호가 없었다면 이미 죽어도 수천 번은 죽었으리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염원할 수밖에 없었다.
파앗
내가 지상으로 내려오자 응룡이 말했다.
[ 그대여... 황제를 만나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가?]
" 그의 힘으로 이 지상의 필멸자들을 구하기를 부탁하려 합니다."
[ 답답하구나! 황제의 이 거대한 계획이 느껴지지 않는가? 스스로 야망의 톱니바퀴가 되기를 원하는 것인가?]
응룡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 말해두겠노라. 나를 쓰러뜨리더라도 만신전으로 향하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전에도 말했듯 그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걸 알아두도록!]
" ......"
확실히 그렇다. 지금까지는 일단 칠요를 다 모아보자는 마음으로 닥치고 모으고 있었지만, 예전에 의식을 통해서 지상에 응룡을 소환해서 물어보았을 때 그는 분명히 [일요를 얻는 것]과 [만신전으로 들어가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했었던 것이다.
' 잠깐... 설마...'
지금까지는 그 모순된 말이 그저 암시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며 책사들 또한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응룡이 너무 많은 걸 숨기고 있는 상태에서 억측해봤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 왠지 전투 이상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나는 파천의 가호를 사용하며 말했다.
" 응룡이여! 내 질문에 진실되게 대답하시오!!"
[ 으음...!!]
그 순간 응룡의 거대한 동체가 꿈틀거렸다. 미래의 나뭇가지 중 하나가 뻗어나가서 그의 몸을 꿰뚫었으니, 틀림없이 파천의 가호가 그에게 작용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는 파천의 가호를 응용하는 법을 알아채고는 그대로 질문했다.
" 설마 일요(日曜)는 만신전에 없는 겁니까?!"
질문을 하면서도 나는 스스로 파천의 가호를 낭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럴 수가 있을까?
나는 왜 이런 질문을 할까?
그러나 방금 전 응룡과의 대화에서 묘한 위화감과 감각 때문에 나는 헛수고일지라도 이번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두 개의 전제가 다르다는 걸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그 모순된 명제가 존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응룡의 충격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 그렇다!]
" 뭐, 뭐라고..."
[ 일요는 만신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이 시련에서 이긴다 하여 만신전에 올 수는 없다.]
도리어 질문한 내가 충격을 받았다. 여기까지 와서 응룡이 거짓말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파천의 가호의 권능까지 써서 참을 강제했기 때문이다. 설마 진짜로 일요가 만신전에 없었던거라니?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서 육요를 필사적으로 모으고 칠요의 시련에 도전하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내가 망연자실해서 서 있자, 응룡의 말이 이어졌다.
[ ... 그러나 이 시련에서 이기면 일요를 얻을 수 있다는 건 보증하지.]
" 응룡이여. 당신은 대체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 무슨 뜻이지?]
" 당신은 마치 이 시련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만신전과 황제에 도달하지 않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보이는 건 시험관의 태도가 아닙니다!"
[ ......]
정곡을 찌른 듯 했다. 나는 자신감을 얻고 계속 질문했다.
" 대체 무슨 의도입니까? 당신은 황제의 권속이 아닙니까?"
[ 구천현녀에게 들었을 텐데. 우리는 그와 거래하여 만신전의 권속이 되었다고... 때문에 황제의 명령을 따르되 충성심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다.]
" 예전 지상의 의식에서 하시던 말씀과는 다르군요."
[ 그 때는 삼황오제가 다 쫓아오고 있었고 온갖 잡놈들이 그 만남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멍청하게 내 속내를 밝혔겠는가?]
" 음..."
[ 개인적으로는 칠요의 시련을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일은 일일지니...]
응룡의 여의보주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 소멸하라!]
번쩍
그 순간 세계가 빛으로 화했다. 지금까지는 진심이 아니었다는 듯 응룡의 숨결은 천지는 물론 칠요의 성천 모두를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태양의 빛이 전륜(轉輪)처럼 휘몰아치는 것 같았고 빛의 수레바퀴가 별똥별을 갈아버리면서 수억 개나 튀어나왔다. 그 현란한 빛의 물결 속에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지징
다시 한 번 파천의 가호가 발동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까처럼 맥락없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도리어 내 주변의 시간이 느려진 듯 했다.
쿠구구구구
쿠구구구
쿠구구....
마치 내 피부에 닿일 것처럼 살인적인 백광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지만 결코 나를 꿰뚫지는 못했다. 내가 진땀을 흘리며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자, 화룡진인이 말했다.
[ 시공간의 역설(逆說)이군. 무한히 공간이 나눠지기 때문에 그 어떤 공격도 파천의 가호를 뚫고 네게 도달하지는 못한다.]
" 그, 그게 가능합니까?"
[ 본녀도 처음 본다. 망량선사는 정말 격이 다른 존재구나.]
경외심을 담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던 화룡진인이 말했다.
[ 하지만 여기까지 파천의 가호를 끌어썼으니 아마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 이제 와서는 칠요성신의 나머지 셋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 아니, 내가 생각할 때는 아니다.]
" 네?"
[ 나는 응룡의 화신. 그리고 얼마 전 힘을 완벽하게 각성했기에 본체가 생각하는 게 어느정도 읽히고 있다. 응룡은 칠요성신이 다 부숴져도 그리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 어째서죠?"
[ 지금 저 형상은 구천현녀와 합체한 것이기 때문이다. 칠요성신을 다 부수는 건 구천현녀가 타격을 입는 것 뿐이니, 칠요성이 다 부숴지게 되면 응룡은 합체를 해제하고 너와 싸우려 들 것이다. 그러면 너는 파천의 가호를 쓸만큼 다 쓰고 피폐해져서 일격에 죽겠지.]
" ... 으음."
설마 그런 전략이었다니...
하마터면 최강의 가호를 갖고도 농락당하며 죽을 뻔 했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화룡신검을 갖고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토요의 정령의 말이 떠올랐다.
[ 마지막 호의로 충고를 해 줄까...?]
[ 너는... 쌍요를 쓰고 있어서 화룡신검을 이번 칠요의 시련에 내놓지 않은 것 같지만... 화룡신검을 꺼내놓는 게 좋을거다...]
그게 바로 이런 뜻이었단 말인가?
영수왕 응룡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토요였기에 화룡진인이라는 존재가 일요시련 공략에서 어떤 중요성을 갖고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내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릴 때 화룡진인이 말했다.
[ 내 생각에는 왕의 권능과 파천의 가호를 함께 써야 한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파천의 가호가 대단해도 응룡은 오제와 동격의 존재이니 결코 그것만으론 이길 수 없다. 응룡쯤 되면 파천의 가호를 직접 쓰더라도 저항하는 걸 눈앞에서 보았지 않으냐?]
나는 그녀의 말에 혹하는 기분이 들었다.
" 왕의 권능을 같이...? 아군을 소환하는 게 파천의 가호를 낭비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까?"
[ 그래. 이 상황에서는 낭비가 아니라 상승효과를 노릴 수 있다.]
화룡진인이 말을 이었다.
[ 왕의 권능은 인연의 힘. 또한 인연의 힘은 파천의 가호를 증폭시켜줄 수 있으니, 너의 인연이자 창칼이 되어줄 수 있는 자에게 파천의 가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