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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후와 계도가 뭐지?
나는 망량에게 물어보았다.
“망량. 저 쌍둥이별이 뭔지 알고 있소?”
“…….”
하지만 망량은 방금 전의 말로 모든 정신력을 탕진해버린 듯 눈이 풀려 있었고 말도 못할 정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듯 했다. 나는 급히 망량에게 내공을 불어넣어서 정신을 되찾게 하려 했지만 지금 그에게는 그런 충격요법이 통하지 않는 듯 했다. 나는 의술을 배운 자로서 이런 경우가 왜 일어나는지 알고 있었다.
생명체가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체념하고 순응하게 되는 단계!
삶과 죽음의 중간이라고 볼 수 있는 그 상태가 되면 아무리 대단한 약과 치료법을 써도 듣지 않게 되었다. 정신 자체가 죽음을 인정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량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자가 이렇게 쉽게 정신이 죽어버리다니?
나는 제갈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제갈사 또한 아무리 광기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공포를 느끼는 건 마찬가지인지 후들거리며 거의 말을 못하는 기색이었다. 광기로도 극복하기 힘들 정도의 존재감이라는 뜻이었다.
내가 제갈사와 시선이 마주치자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크…큭큭…. 넌…, 무서워하지 않는군. 역시…, 그럴 것 같았어….”
“제갈사. 나후와 계도가 뭐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론이지…. 본디 북두칠성을 기반으로 세계의 성좌성신은 칠요를 중심으로 하게 되었으나…, 고대천문학에선 구요(九曜)를 말했고…, 황도(黃道)를 역행(逆行)하는 흉맹한 두 개의 성좌…. 본디 관측할 수 없다 알려진 흉성 두 개를 나후와 계도라 했고…, 그 두 개의 별은 칠요에 더해져 구요라고 칭해졌다.”
“……!!”
“백웅…. 저 쌍성이 나후와 계도라고 추측한 이유는…, 천공의 흔적을 봐…라….”
툭
나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망량과 제갈사의 숨이 끊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들의 죽음에 일일이 슬퍼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재빨리 제갈사의 마지막 조언대로 천공을 바라보았다.
우웅 -
‘저렇게나 많은 길이….’
방금 전 태양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고 있었지만 천공은 태양의 빛 너머로 무수한 별의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 궤적은 무려 수만 개나 되어 보였으며 사이사이로 조그마한 천체들이 날아다녔으며 그것들은 유성이나 혜성처럼 보였다. 그 중에서도 거대한 천체들이 있었고 총 일곱 개였다. 아마 저 커다란 천체가 칠요의 행성일 것이리라.
그리고 천상의 궤적을 잘 보니 칠요의 행로는 선명한 무지갯빛을 내뿜으며 눈에 띄었으며, 저마다의 궤도가 타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 행로를 자세히 살펴보자 그제서야 제갈사의 마지막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태양을 따라오는 저 쌍성의 궤도는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아….’
흔적이 보이지 않기에 황도를 거스르는 역행의 흉성이자 쌍둥이별인 나후와 계도라고 추측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짧은 시간에 저 별의 정체를 유추해 낸 망량과 제갈사의 지력과 천문지식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 때 내 옆에서 비척거리며 바닥을 기고 있던 신승이 말했다.
“백웅이여…. 나후는 용의 머리…, 계도는 용의 꼬리…, 그러므로… 곧 용이 나타날지도 모르오….”
“신승. 무슨 뜻이오?”
쿨럭!
신승은 잠시 후 피를 토해내더니 죽었다. 신승의 엄청난 내공으로도 이 자리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호법사자를 제외한 무림인 중에서는 나 다음으로 강력한 내공의 소유자인 신승이 이렇게 쉽게 죽을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나는 움찔했다.
“음….”
도대체 지금 나 이외의 동료들은 어떤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거란 말인가?
다만 신공표와 제천대성, 유이(有二)하게 남은 내 동료들은 다른 자들처럼 존재감만으로 사망하는 상황에 이르지는 않은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필멸자 중에서도 상대할 자를 찾기 힘들 정도이며 마왕 이상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리라.
둘은 이제 압박감과 공포를 견뎌내고 서서히 안색을 되찾았다. 다만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다음날 숙취에 시달리는 듯한 표정이었고 크게 피로해 보였다.
신공표가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정녕 칠요의 시련이란 게 이런 것이란 말이냐? 도저히 필멸자에게 부과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구나. 아무리 육요를 지닌 자가 도전한다는 가정 하라고 하더라도 말이 되지 않는다.”
“신공표. 일요의 수호자는 저 태양일까?”
“…모른다. 하지만 도전해볼 수밖에.”
신공표의 목소리에서는 자신감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제천대성이 내게 말했다.
“백웅. 다섯 개의 칠요를 신공표에게 몰아줘라.”
“네?”
뜻밖의 제안에 내가 눈이 둥그레져서 그에게 반문하자 제천대성이 대답했다.
“감이 좋지 않다. 그리고 네가 죽으면 다 끝이니까 넌 일단 나서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는 편이 좋겠다. 나도 일단은 관전이다.”
그 말에 신공표가 코웃음을 쳤다.
“흥! 내가 싸우는 걸 먼저 구경하고 일요를 관찰하겠단 말이구나.”
“그래. 꼬우면 내가 먼저 할까?”
“됐다! 너희가 나서지 않아도 나 혼자서 해치워주마.”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군.”
나는 제천대성의 말대로 진시황에게 넘겨준 화요를 제외한 오요(五曜)를 신공표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신공표는 나와는 달리 오요를 해방한 힘을 고스란히 쓸 수 있는 듯 했고, 이윽고 그녀의 전신에 엄청난 힘이 흐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방금 전까지보다 적어도 몇 배는 강해진 듯한 느낌! 수요 하나만 있어도 팔부신중을 가볍게 회칠 정도로 강한 신공표였는데 지금은 설령 [옛 지배자]를 상대로 싸운다 해도 할 만할 것처럼 보였다.
[이거나 받아라!]
슈웅!
신공표는 그대로 사보검을 소환해서 중앙에 있는 태양을 향해 날렸다. 사보검은 한 개만 소환된 게 아니라 한꺼번에 네 자루가 모두 나타났는데, 신공표가 지금까지 한두 자루만 날리던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칠요를 여러 개 갖고 있어서 사보검을 한 번에 쓸 수 있는 건가?’
그와 동시에 진시황은 자신의 군세를 소환해서 허공을 향해 돌격시키기 시작했고, 제천대성은 분신술을 써서 수백 개의 분신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일요의 수호자를 향해 첫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태양을 향해 사보검이 날아가던 중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위잉 -
“크핫….”
신공표는 기괴한 비명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난데없이 태양의 앞에 반투명한 거울이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거울은 우리가 이미 만나본 적 있는 것이었다.
‘월요(月曜)의 거울?!’
틀림없다.
아니나 다를까 신공표는 사보검을 급히 회수해서 피하려 했으나 이미 늦어 있었고 고스란히 사보검의 공격이 반사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냥 월요의 거울이었다면 지금의 사보검이 깨어버렸을 텐데 일요가 소환한 거울은 사보검에도 멀쩡한 듯 했다. 거대한 규모의 은광(銀光)이 비치면서 신공표가 있던 장소가 송두리째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범위에는 나뿐만 아니라 제천대성, 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뭐야?
진짜?
공격반사 한 번에 전멸이라고…?
나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칠요 다섯 개의 힘을 모두 해방시켜서 날린 최강의 사보검이 반사된 바에야 내게 남은 길은 죽음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제천대성이나 진시황조차 답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시황이 그 순간 화요의 힘을 해방시키며 자신의 능력을 시전했다.
[시간이여. 되돌아가라!]
쉬리리릭
그러자 반사되던 사보검의 힘이 마치 거짓말처럼 거꾸로 되돌아갔다. 또한 나나 제천대성, 신공표의 위치도 과거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시간 회복!’
[작은 굴레]를 되돌리는 능력과 비슷해 보였지만 다른 점은 시간회복의 범위에 들어온 자는 과거가 되돌아왔다는 걸 쉽게 인지할 수 있다는 점으로 보였다. 아직 내게는 [작은 굴레]에 저항할 능력이 없는데도 진시황이 시간회복을 썼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공표는 사보검이 먹히지 않자 이를 부드득 갈더니 외쳤다.
[이것도 반사할 수 있겠느냐…! 영진포일술(營鎭抱一術)!!]
신공표의 외침과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세계가 송두리째 어둠에 먹히는 듯하더니, 신공표만이 홀로 백광을 내뿜으며 빛났다. 그녀는 양손을 내뻗으며 태양을 겨누었는데, 그 순간 시공간이 부서지면서 태양이 존재하던 공간이 소멸되면서 시야가 사라져 버렸다.
쨍그랑
동시에 영진포일술을 막으려 하던 거울 또한 소환되자마자 바로 박살나면서 공간의 틈새에 먹혀버리고 말았다. 또한 성천이 두 동강나면서 은하 저편까지 파멸의 휘광이 치솟는 게 육안으로 보였다. 사보검 동시전개 이상의 엄청난 위력이었기에 나는 저걸 보자 깜짝 놀랐다.
“아니!!”
세상에 저렇게 강력한 기술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예전에 봤던 영진포일술과는 차원이 달라!’
예전 구천현녀의 시해지술과 같이 쓸 때도 강력하긴 했지만, 오요를 가진 지금의 신공표가 영진포일술을 쓴다면 거의 대부분의 칠요정령들이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았다. 삼황오제의 본체나 낼 수 있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소멸의 권능을 보고 내가 경악하자 제천대성이 인상을 찡그렸다.
“쳇…. 벌써 저걸 쓸 줄이야.”
“무슨 소리입니까?”
“영진포일술은 아무리 저 녀석이라도 하루에 한번밖에 못 쓰는 권능이다. 선계에서도 시해지술과 함께 3대 최강술법으로 꼽힌다. 그래서 일요까지 아껴둔 건 눈치 챘는데 초반부터 써버린 거다.”
“…….”
쿠구구구
태양이 부서진 파멸의 흔적에서 그저 혼돈만이 흘러나올 때였다. 설마 이걸로 칠요의 시련이 끝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인 듯, 나머지 셋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일요가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나 또한 허공에 떠 있는 두 개의 별을 보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영진포일술이 시공간을 찢어발겼는데도 나후와 계도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멀쩡한 것이다.
우우우우 -
부유하던 나후와 계도는 갑자기 귀곡성을 내면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두 개의 별은 마치 지평선 끝으로 가는 듯 했고, 제천대성이 버럭 외쳤다.
“신공표!! 빨리 하나라도 부숴야 해!”
“알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전투에는 이골이 난 존재들이라서 나후와 계도를 이대로 내버려두면 큰일이 벌어진다는 걸 직감한 듯 했다. 제천대성은 분신술과 축지술을 동시에 쓰며 나후를 쫓았고 신공표는 반대로 가서 계도를 쫓았다. 진시황은 제천대성 쪽이 약하기 때문인지 그를 도와주기 위해 나후 쪽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 가만히 남은 채 허공을 쳐다보았다. 파멸의 흔적 속을 주시하고 있자, 나는 그 안에서 울려 퍼지는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침내 여기까지 왔군요…. 역시 그대에게는 왕의 자격이 있었군요.]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그 정체를 눈치 챌 수 있었다.
“……?!”
아니, 그렇지만 그게 가능한가?
왜 그렇게 되는 거지?
내가 상대방 목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고도 당황스러워서 눈만 꿈뻑거리자 그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 또한 시조(始祖)의 존재. 수십억 년 전에 이 별이 우주의 혼돈 속에서 탄생하여 대지를 이루게 되자 탄생한 정령(精靈)들의 왕. 인간의 모습과 인격은 황제의 뜻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
[현세에 부활한 진시황제를 맞닥뜨렸을 때 저는 천명(天命)을 얻어 그 동안 지니고 있던 가면을 벗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황제가 계산한 인과율에서 진시황제는 거대한 조각이었으며 저 또한 그 인과율에 공명하여 제약을 벗게 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가면을 벗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제가 뭘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스스스스
그 때 파멸의 흔적 속에서 다시 잔광이 일렁였다. 그 잔광은 주황빛을 서서히 흘리더니 점점 더 크고 강해졌고, 잠시 후에는 원형을 되찾으며 둥실 떠올랐다.
혼돈의 중심에서 태양이 부활하며 그 빛을 더욱 강하게 하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저의 본체가 제게 제안했습니다. 흐름에 순응하라고…. 저는 그 말에 따라 가면을 벗어 본체로 되돌아갔습니다. 고대 삼황오제와 치우(蚩尤)와의 전쟁에서 황제가 승기를 잡기 위해 이 땅의 진짜 주인에게 제안하기 전의 그 때로…. 제가 인격체로 화하기 전의 원시적인 형상으로.]
“…….”
[그리고 기다린 결과 백웅, 당신은 왕의 자격을 얻어 이 자리에 왔군요.]
“…어째서…. 당신은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서왕모를 쓰러뜨리지 못한 겁니까?!”
나는 울부짖듯 외쳤다. 이래서야 기만당한 꼴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외치자 태양이 빛을 발했다.
[이 땅의 진짜 주인이 잠든 사이에 여와(女媧)는 충실하게 대지모신(大地母神)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었지요…. 여와는 본디 외계의 최상위 신좌(神座)였으나 그 분과의 계약에 충실하였으며 크게 엇나가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녀를 쓰러뜨릴만한 명분과 인과율을 얻지 못하여 본래 힘을 해방하지 못했습니다. 서왕모도 저도 화신이었을 뿐.]
“…….”
[그러나… 이 자리는 칠요의 시련. 진정한 인간의 왕이 될 자의 자격을 판단하기 위해, 저는 고대에 봉인했던 모든 힘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대의 몸을 빌어 창힐이 난동을 부리는 것조차도 황제가 계산한 인과율에 들어있었을지도 모르지요.]
나는 그 순간 뭔가를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시해지술이란 건…?
내 머릿속에 떠오른 가정대로라면 시해지술을 그 동안 그 누구도 대성하지 못했던 이유가 명확해졌다. 아니, 애초에 필멸자에게는 대성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술법’이 아니니까.
잠시 후 ‘그녀’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백웅. 구천(九天)이 명동(鳴動)하고 있군요…. 이제 저를 따르는 쌍요(雙曜)가 용을 불러내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반고(盤古)의 화신(化神)으로서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그녀와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인격’이 사라지고 최후의 정령왕이자 일요의 수호자로 되돌아갔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
일요의 수호자는 바로 구천현녀(九天玄女).
창세신(創世神) 반고(盤古)의 화신이자 이 대지를 수십억 년 전부터 다스려온 정령(精靈)의 왕(王)이 최후의 수호자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