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767화 (76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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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동료로 들이지 말라고?

"무슨 소리야."

나는 극호에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냥 알겠다고 하고 넘어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령 목요의 시련이 실패한다해도 극호에게 똑바로 이유를 듣고 싶었다.

그러자 극호가 말했다.

"말그대로인데."

"이유를 말해 줘."

"이유…."

극호는 잠시 침묵하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다소 그답지 않게 다소 슬픈 기색이 담겨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 응? 이자리에서 술이나 진탕 마시면서 너한테 얘기하고픈게 아주 많다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군."

"……."

"신을 쓰러뜨리는 행로가 거칠고 험난해서 포기하거나 하는 건 아니야. 어차피 [큰굴레]를 지나면 그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느껴지거든. 그런 변명은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럼 뭐가 문젠데?"

극호가 입을 열었다.

"백웅. 네가 흑요석을 주지 않았다면 나는 불행했을까?"

"뭐?"

뜻밖의 질문이었다. 나는 곤혹스러운 눈으로 극호를 쳐다봤지만 극호는 진지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어서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니…, 그다지."

극호는 불행한 뇌신류 전승자처럼 보였지만 그 나름대로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때의 그를 불행하다 하면 극호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극호가 훗하고 웃었다.

"솔직한 대답, 고맙다. 바로 그게 내 이유야."

"……."

"백웅, 그게 내 인생이야. 복수할 희망도 없어졌고, 하루하루 백련교 용비천에 대한 분노만 삭히면서 술집 호위나 하고 있던 그 인생 또한 내 인생이었다는 거지."

뭔가 알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그와 친구로 지내왔던 시간 덕분에 그가 말하려는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진소청이 말했다.

"사형. 그러나 이미 전생자 백웅은 역사 속에 존재하오. 그는 역사의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존재요."

"그렇겠지."

"오롯이 사형만의 인생을 누리겠다고 하더라도, 그가 전생을 하는 이상 그런 도피는 무의미하오. 사형을 제외한 모든 세상이 움직일테니."

"알아. 그걸 누가 모르겠어? 알고 있으니까 당산인지 뭐시긴지도 백웅한테 붙어서 꿀빨고 있겠지. 앞으로도 개나소나 백웅의 동료가 되려 할 거다."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극호가 팔짱을꼈다.

"하지만 그래도 난 내 의지를 굽히지 않아."

"……."

"나는 이 반복되는 고리에서 내려가겠어."

진소청 또한 극호의 의지가 굳어진걸 느낀듯 더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서 극호에게 외쳤다.

"극호!! 용비천에게 복수한 다음에 허무해진 거냐? 삶의 의미를 너무 쉽게 이룬다고 생각한거야? 그게 끝이 아냐!!"

"끝이 아니면?"

"…날 도와줘. 친구로서 이 길의 끝을 볼 수 있게 도와줘!! 친구잖아. 너는 은원을 확실히 하는 놈이었잖아!"

내가 버럭 소리를 치자 극호는 흠, 하고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말했다.

"사실 그외에도 이런저런 이유가 있긴해. 그래서 그냥 미안하구만."

"뭐? 어떤 이유인데?"

"휴, 내가 참 구질구질 하구만. 내가 너랑 다시 만났을때 이런 얘기가 길어지는 건 별로 바라지 않았는데…. 술 한잔이 아쉬워."

한숨을 쉰 극호가 말했다.

"좋아. 이렇게 하자고. 이 칠요의 시련에 통과해서 네가 왕이 된다면 나는 내 말을 취소하겠어. 하지만 실패한다면 내 부탁을 들어줘. 알겠냐?"

"너무 제멋대로잖…!!"

내가 반발하려 할 때였다.

터억

뒤에서 망량이 내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망량이 다소 슬픈 눈으로 나를 응시하다가 말했다.

"백웅. 그의 말대로 합시다."

"……."

망량의 눈빛에도 진심이 담겨있다. 그는 극호의 말에서 뭔가 이면을 읽어낸듯 했다. 나는 망량 뿐만 아니라 제갈사나 진소청도 마찬가지 기색이라는 걸 깨달았고, 심지어 검마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건 극호를 싫어하거나 무시하는 냉담한 태도가 아니다. 그들은 극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심전심으로 뭔가를 느낀 것이다. 그렇기에 동료로서 보내주려는 태도에 가까웠다.

'아냐, 그건….'

문득 나는 내가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전 처음으로 내 전생 동료가 자기자신의 의지로 나를 떠나려 한다는 생경한 경험.

그 파열감을 느끼기가 싫어서 극호의 마음이 어찌되든 붙잡아두려 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극호의 능력이라던가 배경사정은 둘째문제였고 일단은 내 이기심이 먼저였다.

나는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약속할게."

"고맙군."

극호는 싱긋 웃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제갈사가 뒤에서 말했다.

"이걸로 사람은 다모였는데 이제 뭘 할 생각이지? 진소청."

"무인 셋이서 칠요를 공명(共鳴)할 것이오."

"칠요공명이 안먹히는 건 이미 알텐데."

"증폭시키는 대상을 바꿀 뿐."

그 대답에 제갈사는 뭘하려는지 알아챈 듯 했다. 그러더니 히죽 웃었다.

"여기까지 와서 또 도박이라니. 심심할 틈이 없군."

스스스

잠시 후 극호, 진소청, 검마가 삼재진의 형태로 칠요를 들고 잠들어 있는 목요의 동체를 둘러쌌다. 그들은 제각기 가지고 있는 쌍요(雙曜)의 힘을 끌어올리며 점차 몸이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그들이 뭘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칠요의 공명으로 발생하는 힘…. 그걸로 태허(太虛)에 도달하는 능력을 강화 시키려는 거구나!'

발상의 전환!

공명 자체만을 쓸 생각을 했지 저런식으로 사용해 보려고는 하지 못한 것이다. 제일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도야 시킨 것은 검마였다. 검마가 쌍요공명을 제대로 해방시키자마자 그의 백발이 더욱 새하얗게 변하더니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장중하게 흘렀다.

검마에 이어서 진소청 또한 '다른 영역'에 도달하기 시작한 듯 했다. 그리고 극호의 몸도 이윽고 공명의 빛에 먹혀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가 사라지기 전에 하는 말이 마음을 통해서 들린 듯 했다.

[그동안 재밌었다. 친구.]

파아앗

잠깐이 지난 걸까, 아니면 상당한 시간이 지난 걸까.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목요가 사라져 있었고 칠요가 모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또한 칠요공명에 나섰던 세명의 고수들의 모습도 온데 간데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망량, 제갈사, 천우진, 제천대성 등은 모두 멀쩡해 보였다. 나는 망량에게 물었다.

"망량. 어찌된 일이오?"

"목요의 시련을 극복한 듯 싶소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소."

우리는 제천대성과 신공표를 쳐다보았지만 그들 또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 찰나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는 목요에 감돌고 있는 무지갯빛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무지갯빛이 감도는 걸 보면 셋이 목숨을 걸고 태허의 힘으로 목요를 해치워준 건 확실해 보였다. 그 와중에 셋이 실종된 걸 보면 육체가 통째로 날아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목숨을 걸어 준 세사람에게 감사하며 곧장 소환하려 했다.

'극호! 검마! 진소청!!'

…….

어라?

나는 정신을 집중 했는데도 세사람이 나타나지 않자 어리둥절해졌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왜 이런 거지? 내 행동에서 이상함을 느꼈는지 망량의 표정이 안좋게 변했다.

"…소환되지 않소?"

"그렇소…. 이게 어찌된…."

그러자 제갈사가 급히 나서서 이혼대법을 쓰는 듯 했다. 그는 이혼대법 중에서 대기 중의 혼력을 감지하는 술수를 쓰더니 말했다.

"그들의 혼이나 백조차 남아있지 않다…. 역시 그때 같군."

"그때라니?"

"…과거 진소청이 나인교주를 쓰러뜨렸을 때."

짤막하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했다.

"짚이는 건 있다. 아마 내 생각대로라면 그 셋은 이 시련에서 두번 다시 소환할 수 없을거다."

"뭐? 어째서?"

"그들의 혼을 저당 잡은 존재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말을이었다.

"그럼 시간 낭비할 때가 아냐. 셋이 벌어준 귀중한 시간을 살려서 빨리 다음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

"……."

"최악의 난이도를 넘겼으니 이제 숨통이 트였어."

나는 느닷없이 무인들이 공략에서 빠지가 되자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제갈사의 말대로 지금은 그걸 깊게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일일히 슬퍼하기보다는 지금은 슬퍼할 힘도 아껴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다른 방위를 쳐다보았다.

"금요의 시련이 열려 있어."

키이잉 -

금광이 빛나는 방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바로 금요로 향하려 했으나 그때 망량이 나를 제치했다.

"잠깐!"

"왜그러시오?"

"뭔가 이상하오. 금요의 시련 쪽에서도 함성이 들려오고 있소."

"함성…?"

그 말에 신공표가 술법을 써서 자세히 그쪽을 살피더니 말했다.

"진시황의 군대가 이미 싸우고 있군."

"……."

뭐?

하지만 나는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시황이 지닌 군대가 수만에서 수십만씩이나 된다면 하나의 칠요에만 투자하는게 아니라 다른 전장에 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잘됐소. 이렇게 된 이상 바로 덤비지 말고 놈들의 군대가 어찌 싸우는지 근처에서 자세히 봅시다."

우리는 망량의 말대로 금요의 전장으로 가서 군세가 어떻게 싸우는지 관찰부터하기로 했다. 그리고 진시황의 군대가 금요의 정령에게 어떻게 덤비는지를 보게 되자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황제를 위하여!!]

[놈을 해치워라!!]

천우진이 말했던 그대로였다. 고대의 갑옷과 병기로 무장한 군단들이 새까맣게까지 보이는 인파를 이끌고 마치 금빛 사슴처럼 빛나고 있는 금요의 정령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이윽고 금요의 눈에서 광선이 비치자, 전방에서 뛰어들던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쿠콰콰쾅

순식간에 지평선을 가로 지르는 상흔이 생겨나며 병사들이 최소한 일만명은 즉사한 듯 했다. 그리고 금요는 짜증이 나는지 비의 인장 같은 걸 허공에서 소환해서 망치처러 땅에 쿵쿵 내려 찍었는데 그때마다 또다시 병사들이 피떡이 되었다. 지독한 광경이었다.

[카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악!!]

개중에 어떤 병사는 고통과 공포 때문에 마구 울부짖고 있었다. 내장을 흩뿌린 채 상하체가 동강난 자가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아파, 아파아아아아!!!!]

[내가 왜 이런 곳에….]

뭐지?

나는 저들이 진시황에 대한 철저한 충성과 의리로 무장한 군대일거라 생각했는데 반응이 많이 달랐다. 그들은 마치 원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 나온 징집병처럼 사기가 크게 저하 되어 있었고 금요에게 용맹하게 덤벼드는 것은 전방에 있는 약 수백여명, 소수의 전사단 뿐이었다.

나머지는 그저 자리에 서서 창을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군대 뒤에서 피해를 지켜 보고 있던 지휘관이 제관을 쓴 채 명령했다.

[부활하라.]

슈슈슉

그러자 방금 전 금요 때문에 전신이 박살 났던 병사들이 순식간에 부활했다. 부활한 자들은 사망의 충격에서 못 벗어난 듯 비틀거렸다. 그리고 지휘관은 그 모습이 영 못마땅 한 듯 쳐다보다가 말했다.

[너흰 황제의 노예다. 열심히 싸워라!!]

[으아아아아 죽어라!!]

몇번이나 처참하게 죽자 악에 받친 듯한 병사들이 되려 지휘관을 죽이려고 창칼을 들고 달려들었으나, 지휘관의 옆에 있던 상위무관들이 마치 절정고수를 연상 시키는 움직임으로 그들을 가볍게 퇴치했다.

[크아악.]

지휘관은 자신에게 반역하는 걸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너희는 진 제국의 소유이며 영겁토록 그분의 노예이다! 너희에게 죽음은 허락되지 않는다.]

우우웅

이윽고 지휘관이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자, 병사들은 마치 홀린 듯이 광전사가 되어서 다시 금요에게 뛰어들기 시작했다. 저런 과정은 곳곳에서 반복 되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금요를 향한 공세는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언덕 위에서 저 모습을 보다가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저런 건 헛수고야! 저렇게 백날 천날 해봤자 칠요의 정령에게는 스친 상처도 줄 수 없어."

"진시황이라고 그걸 모르겠나? 그냥 자기가 도착할 때까지 힘빼려는 용도일 뿐이다."

"병사들이 수백번이나 죽어나가는데?"

"알게 뭐냐. 제놈들이 몇백번을 죽든 말든 진시황이 그거 알아서 뭐하게. 그 괴물놈이 불쌍함이나 자비를 느끼긴 할까?"

"……."

제갈사는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시련의 성격을 잘 이해했군. 아주 잘 짠 전략이야. 역시 진시황은 천하를 지배할만한 재목이군."

"무슨 소리야. 저런 막가는 짓거리가 잘 짠 전략이라고?"

"법칙을 생각해봐라. 이곳에서 왕만이 자신을 왕이라 인정한 존재를 소환할 수 있다. 그러나 저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 생전부터 자신을 왕이라고 인정하게끔 하는 노예계약을 먼저 체결한 것처럼 보이는군."

"음…."

"그리고 지휘관들을 생전에 왕후장상으로 임명해서 소환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로써 절대로 전멸하지 않는 무한의 군대가 완성 된 거지. 진시황 본인이 일일히 소환할 필요도 없고."

"……!!"

"병사들이야 불쌍 하지만 전략으로서는 최상이야. 어찌되었든 힘빼기용으로 잘 싸먹고 있잖아?"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자 답답해졌다.

확실히 칠요의 정령도 가진 힘이 무한이 아니니 기술을 쏟아내서 힘이 빠질 때가 찾아올 것이다. 그걸 노리고 일부러 지연작전을 쓰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걸 위해서 수백 수천번이나 상대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정령에게 발버둥 치다가 학살 당하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노예.

나는 병사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 자들은 진시황릉(秦始皇陵)에 있던 병마용(兵馬俑)이었군."

진시황릉에 매장 되어 있던 정체불명의 군대모형들, 병마용.

그들은 사실 죽은게 아니라 고대부터 사악한 노예계약에 매여서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로 줄곧 매장 되어 있었던 것이리라. 오로지 칠요의 시련에서 진시황의 칼받이로 쓰이기 위해서 수천년간 고통 받아 온 존재들이 바로 병마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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