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764화 (763/1,615)

764====================

암천향(暗天鄕)

시련이 시작되었다고 울려 퍼지는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칠요의 힘을 끌어올려서 공명시켰다.

육요공명!!

환한 무지갯빛이 터져 나오더니 근처에 빛을 뿌렸다. 그러자 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순간이동능력으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쉬익

공명을 이룬 상태에서 제갈사가 내 쪽으로 오며 말했다.

“방금은 분명히 놈이 시간정지를 쓰려 했다가 실패했다.”

“…역시 공명을 하면 놈의 능력이 먹히지 않는군.”

“그렇다 해도 장기전으로 끝장을 보려하지 않는 걸 보면, 제천대성이 놈을 크게 약화시킨 건 확실하다. 이 육요공명도 펼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있으니까.”

그렇다.

육요공명 쪽이 좀 더 힘에 부담을 가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진 입장에서는 그냥 시간정지를 쓰면서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지쳐버린 우리를 몰살시키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놈은 육요공명의 역습을 감당할 역량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처럼 막강한 권능을 무제한으로 사역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공포의 대상까진 아닐 거야. 삼요 정도로도 저항이 쉬울지도….’

정면으로 싸우면 승산이 충분하다.

나는 힐끔 저만치 지평선 근처에 나타난 백색 빛 무리를 보며 말했다.

“저게 시련인가?”

“아마도. 원래라면 육요를 가진 자들끼리 협력하기만 하면 되겠지만 진 때문에 뒤통수를 조심해야 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제갈사는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내 형님을 초기에 섣불리 봉인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생겼군.”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말했다.

“…그럼 우리도 시련에 바로 도전하지 말고 몸을 사릴까?”

“지금은 그게 좋지. 그리고 제갈부를 이제 꺼내라.”

“알았어.”

스윽

“팔진도를 설치해라, 제갈부.”

나는 목갑에서 제갈부를 꺼낸 후 팔진도를 설치하게끔 했다. 그리고 칠요의 힘을 제갈부에게 불어넣어서 진이 한층 더 강하고 빠르게 펼쳐지도록 만들었다. 아까처럼 대비를 하기도 전에 습격을 받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고, 팔진도 외의 다른 술법으로는 전혀 대비가 안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우웅

팔진도가 서서히 발동하며 팔괘가 사방에 떠올랐다. 우리 주변 약 이십 장을 채운 팔괘가 촘촘하게 이어졌고, 진소청이 내뿜은 해방토요의 힘이 팔진도를 굳건하게 떠받치는 게 느껴졌다.

“진이 습격해 온다면 아마 팔진도에 걸려서 틈이 생길 거다. 놈을 한 번 잡고 가자.”

그렇게 약 반 시진을 기다렸을 때였다.

쿠오오오오 -

갑자기 다른 방위의 지평선에서 시뻘건 빛 무리가 치솟아 올랐다. 그 붉은 빛은 마치 살아있는 듯한 화염처럼 보였고, 이윽고 최초로 나타난 백색 빛 무리와 다른 방향에서 넘실거리며 치솟기 시작했다.

“……?”

어떻게 된 거지?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제갈사가 지시를 내렸다.

“천우진. 신공표. 각각 영체나 천리안으로 저 근처를 탐색해 봐라. 천우진은 백색, 신공표는 적색 쪽으로.”

제갈사의 말에 두 술법사는 거의 동시에 술법을 사용해서 두 개의 빛무리를 향해서 보냈다. 해방칠요를 가진 상태라서 그들의 술력은 평상시보다 훨씬 증폭되어 있었기에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휘리릭

그리고 다음 순간, 천우진이 잠시 비틀거렸다. 그는 두통을 느꼈는지 신음하더니 말했다.

“제길. 까다롭겠군….”

“동감이다.”

신공표가 말을 받았다. 그녀는 제갈사를 언짢은 눈으로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마도 예상이 맞겠구나. 저 화염의 중심에는 환염의 정령(精靈)이 있었다.”

“통천교주의 술법이 정령의 손에 파해 당했나?”

“물어서 무엇 하는가? 저건 평범한 정령이 아니란 걸 이미 알고 있을 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잠시 후 제갈사가 말했다.

“백웅. 아마 이 시련은 전체 제한시간이 있을 확률이 높다.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3시진 반 정도겠군.”

“제한시간이라니?”

“최초로 나타난 빛 무리는 백색. 두 번째는 적색. 여기서 연상되는 게 없나?”

“…….”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번뜩 생각이 났다.

“칠요(七曜)?!”

“그래.”

제갈사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각 방위에 칠요의 정령이 하나씩 소환되는 거다. 반 시진 간격으로 한 마리씩 나오는 걸 보면, 한 마리를 잡는데 적어도 반 시진 이하로 잡아야 한다는 거겠지. 이런 식으로 3시진 반이 지나면 모든 정령이 소환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

그런 구조였나!

제갈사의 말에는 굉장한 설득력이 있었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는 거의 맞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탐색한 술법사들의 반응을 보니 진의 견제 같은 걸 걱정할 때가 아니겠군. 칠요의 정령은 굉장히 강력할 거라고 짐작이 된다. 해방칠요를 안 쓰면 도전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강하겠지.”

“순서는 월화수목금토일(月火水木金土日)이겠군.”

“그렇겠지.”

나는 제갈사에게 반문했다.

“일단 처음으로 등장한 월요(月曜)의 정령을 안 잡고 내버려뒀어도 시련이 바로 실패로 끝나지는 않았어. 이대로 지켜보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잘 봐. 방위와 각도를 생각해 보면 이건 육망성의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건 칠요의 진이 아니라 육요의 진이야. 6방위란 말이지. 그럼 변방에 7마리가 다 소환되는 건 아닐 거다.”

“아…!! 그렇군.”

“6방위를 제외한 나머지 위치는 단 하나, 정중앙뿐이다. 그래서 최후의 시련인 일요의 정령은 바로 이 중앙에서 소환이 될 것이다. 지금은 칠요의 정령이 그저 변방에서 도전자를 기다릴 뿐이겠지만, 일요가 등장하면….”

“전투를 피할 수 없겠군.”

“뿐만 아니라 제한시간도 고스란히 다 지나가서 설령 일요를 어찌어찌 쓰러뜨린다 해도 남은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남은 6마리를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해질 거다.”

그렇게 말한 제갈사는 말을 이었다.

“어쩌면 제한시간이 다 되면 소환된 육요의 정령들이 도전자에게 합공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혹은 그냥 제한시간이 채워지는 순간 시련실패로 간주되고 우리가 즉사당할 수도 있고.”

“…그건 진짜 최악인걸.”

“이대로 중앙에 버티고 있으면 무조건 시련은 실패한다. 어떻게든 움직여서 칠요의 정령을 잡아야 해. 이건 제한시간 내에 칠요의 정령을 다 잡아야 하는 시련이 분명하다.”

“…….”

골치 아프다고 한 천우진의 말이 그런 뜻이었던가.

여기 있는 5명이 다 같이 칠요를 들고 덤벼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지 의문인 정령을 상대로, 진의 뒤통수까지 조심하면서 싸우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련에 도전하고 싶어도 제대로 도전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제길, 어떻게 하지?

나는 제갈부에게 말했다.

“제갈부. 팔진도를 움직일 수는 없나?”

“…인간의 역량으로는… 불가능…. 본디 진법은 정(靜)이며 강력한 결계일수록 설치된 장소에서 벗어나기 힘드니….”

“쳇.”

그러자 천우진이 의견을 내었다.

“해방칠요의 힘이 더해지면 가능할지도 몰라. 칠요의 소유를 바꾸지. 진소청, 토요를 제갈부에게 줘 봐.”

진소청은 말없이 토요를 제갈부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해방토요의 힘으로 제갈부가 팔진도를 옮길 수 있는지를 지켜보았다.

쿠구구구

되긴 되지만 제갈부가 팔진도의 중심축이 되어서 움직이는데 딱 걷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런 속도로는 지평선 너머에 있는 시련의 빛 무리까지 가는데 하루 종일 걸릴게 분명했다. 나는 내가 가진 칠요 중에서 한 개를 꺼내서 제갈부에게 주려고 했으나 제갈사가 말렸다.

“그만둬. 해방 칠요가 2개나 되면 놈에게 걸어놓은 이혼대법의 세뇌가 풀려버릴지도 몰라.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신의 보물이니까.”

제갈사는 곧장 토요를 뺏어서 진소청에게 던져주었다.

“그럼 어떻게 하지?”

“일단은 기다려 보지. 아직 수가 있어.”

“수라고?”

“한번 정도는 우리와의 교섭을 위해서 진이 나타날 거다. 놈도 시련을 통과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일 테고 혼자서 육요의 정령을 다 잡을 생각은 없겠지. 그 때가 바로 분수령이야.”

“…알았어.”

제갈사의 말을 믿기는 하지만 제한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답답해졌다. 그렇게 약 한 식경 정도를 더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슈아아악!

갑자기 허공에서 혼돈이 뭉치더니 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치 가소롭다는 듯 우리 일행을 보며 말했다.

“겁쟁이들이군. 내가 그렇게 두렵나? 이게 제한시간이 있는 시련이란 것도 모르는가?”

“괜히 나섰다가 네놈한테 육요를 빼앗기고 시련은 시련대로 실패하는 게 더 멍청한 짓이라고 보는데.”

나는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네놈 좋은 일은 시켜줄 수 없어!”

“뭐라고.”

“망할 거면 같이 망해도 돼. 너만 손해일 거라고 장담하지.”

내 말은 진심이었다. 설령 이 자리에서 육요의 시련을 실패하고 우리 일행이 몰살한다고 하더라도 내게는 전생능력이 있으므로 다음번에 재도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진시황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조건이 있으므로 다음 전생부터는 무조건 농락이 가능했다.

‘그리고, 날 엿 먹이고 있는 네놈은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나는 내면에서 조용히 분노를 불태웠다. 더러운 수단을 쓰는 한이 있어도 저놈만큼은 갈아 마셔버리겠다. 내 말의 진심을 느꼈는지 진시황은 잠시 눈빛이 흔들리다가 말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면 피차 위험하다. 휴전하자.”

“뭘 믿고 휴전하자는 거지? 네 약속을 믿을만한 건덕지는 조금도 없는데.”

“서로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하면 된다. 칠요의 정령을 토벌할 때까지는 서로 공격하기 없기로 하면 되지 않겠나?”

“…….”

“칠요의 정령을 토벌한 후에 결판을 내면 되겠지.”

진의 제안은 합리적이고 매혹적이었다. 사실 우리도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한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아니, 그걸론 안 되겠는데.”

“뭐가 부족하지? 이름을 걸고 하는 약속의 공신력을 부정하는 건가? 설마 공투(共鬪)라도 하자는 건가?”

“그게 아냐. 거짓을 말하지 않고도 상대를 기만하는 방법은 있다는 거지.”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당신… 봉선의식에서 아마 이 최종시련에 대해서 들을만한 건 다 들었을 거야. 그래서 우리가 모르는 추가적인 법칙을 더 알고 있겠지. 그걸 말해주셔야겠어.”

“억지군. 그런 게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같이 죽는 거야. 알겠나? 당신 좋을 대로 한다면 우린 결코 협력하지 않아.”

“…흐음. 너희도 실패할까봐 몸이 달아서 움직이게 될게 뻔하다.”

“그럴 리가. 우리는 주군의 뜻에 따를 뿐이다. 시련에 실패해서 죽는다 해도 각오한 바야.”

“…….”

제갈사의 눈에 담긴 각오를 읽은 진시황은 곤란한 기색이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좋다. 그렇게 하지.”

잠시 후 나와 진시황은 서로 이름을 걸고 칠요의 정령을 토벌할 때까지는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진시황은 약속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법칙은 한 가지 뿐. 이 공간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술법이나 마법이 아니라 인연(因然)의 힘이다. 인간의 왕이 될 자는 그에 걸맞은 자격을 보이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없다.”

“……?”

“그럼 난 화요를 쓰러뜨리러 가겠다.”

파앗!

진은 그대로 공간이동으로 사라졌다. 나는 놈과의 약속이 성립되었으므로 제갈부에게 팔진도를 풀게끔 한 후 제갈사에게 말했다.

“인연의 힘이란 게 무슨 뜻일까?”

“지금으로선 모르겠군. 우선 월요를 쓰러뜨리러 가되 화요에도 정탐을 보내라. 놈이 싸우는 것에서 단서를 얻어야 할 거다.”

“알았어.”

우리는 다시 천우진과 신공표에게 정탐술을 쓰게 한 후 곧장 월요의 시련에 도전했다. 서로 나누어서 육요의 정령을 토벌하기로 암묵적인 합의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지금까지 낭비된 시간을 만회하는 게 가능했다.

우리가 지평선 끝으로 와서 백색 빛 무리와 마주쳤을 때였다.

일그러진 거울 수백 개가 사방에 띄워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새하얀 달덩이 같은 기운이 둥둥 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이 나를 보자마자 말을 걸어왔다.

[나는 월요의 정령. 백웅이여,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구나.]

“응?”

나는 월요의 정령이 나를 아는 체 하자 뜻밖이었다. 나는 눈을 껌벅거리다가 대꾸했다.

“설마 너는 계속 칠요 내면에 있었던 거냐?”

[그렇다.]

“헉….”

혹시 했지만 정말로 칠요 내부에 있던 정령이 이 공간에 소환된 거였다니? 다른 곳에서 임의로 소환된 정령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확인할 겸 물었다.

“그럼 너희 칠요의 정령들은 그동안 소유자들이 보고 들었던 내용을 기억하고 있는 건가?”

[물론이다.]

“전국옥새나 강력한 기보들에는 너희들처럼 자아가 깃들어있었고 혼자서 활동하고 말을 걸어오기도 했었어. 칠요의 정령들은 왜 여태까지 가만히 있었던 거냐.”

내 질문에 월요의 정령이 말했다.

[창힐의 봉인이 우리들의 자율행동을 막고 있었다. 또한 우리는 사감(私感)을 배제하고 칠요의 도전자를 시험해야하기에 굳이 나서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최초의 문자로 만들어진 봉인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

“그 봉인은 칠요해방의 봉인과 같은가?”

[다르다. 해방을 위해 풀어야 하는 봉인과 별개로 우리를 억누르는 봉인은 이중으로 걸려있다.]

“그래서 칠요가 해방되어도 너희는 전면에 나오지 않은건가….”

[그렇다. 우리는 평소에는 칠요의 활력을 유지하고, 마지막 시련의 시험관으로 소환되는 운명이다.]

창힐의 봉인이 새겨져 있었던 이유는 바로 칠요의 정령을 억누르기 위해서였던 건가?

내 옆에 있던 제갈사가 말했다.

“그럴만도 하지. 칠요만으로도 강력한데 정령까지 힘을 빌려준다면 3차 해방이라고 할 만 할 거야. 인간 세상에 허용되기에는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황제가 창힐을 시켜서 봉인시킨 걸지도 몰라.”

“음… 다음번에 시도할만 하지 않을까?”

“최초의 문자로 만들어진 봉인을 풀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겠지. 그런 건 지금 우리한테 없잖아.”

“…….”

칠요의 봉인을 풀어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건가.

지금까지는 해방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요소였지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듯 했다. 나는 또 다시 궁금한 걸 질문했다.

“시험체계를 설명해줄 수 있어? 너희는 반시진에 한명씩 소환되는 것 같은데 만일에 육요의 정령이 모두 소환될 때까지 다 못 잡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가 정해진 위치에서 움직여서 시련자를 함께 공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일요가 소환되어서 너희를 마무리할 것이다.]

“그렇군. 다 쓰러뜨리지 못해도 일단 일요는 소환되는 거고, 바로 우리가 전멸당하는 건 아니지?”

[맞다. 하지만 우리가 합공한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으리라.]

“일요만 쓰러뜨려도 시련을 통과한 걸로 인정하는 건가? 다 쓰러뜨릴 필요는 없지?”

[그렇다.]

제갈사의 추측이 어느 정도는 맞아 들어갔다. 완전히 최악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높은 난이도의 시련으로 보였다.

옆에 있던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아무래도 지연책을 쓸 만한 시련이 아닌 듯하오. 순수하게 실력을 평가하는 시련이라 생각되오. 몰아잡기는 불가능할 것이오.”

“내 생각도 그렇소.”

나는 진소청의 말에 동감했다.

‘쉽지 않아. 꼭 육요를 다 쓰러뜨려야 되는 건 아니라지만, 육요의 정령을 남겨둔 채 일요를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해.’

칠요의 정령이 얼마나 강한지는 아직 가늠이 되지 않지만, 어쨌든 간에 육요의 정령을 최대한 처리해둔 후 일요를 쓰러뜨리는 게 공략의 정석으로 보였다. 남겨진 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건 어린애도 알고 있을 사실이리라.

괜히 진시황이 먼저 몸이 달아서 찾아온 게 아니었다. 궁극의 초상기인의 힘을 갖고 있는 놈으로서도 칠요 없이 단독으로 돌파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인간의 왕을 결정하는 시련이라고 할 만 했다.

월요의 정령이 내게 재촉하듯 말했다.

[그대, 시련에 도전하겠는가?]

“도전하겠다.”

[좋다…. 싸워라.]

쿠콰콰쾅

그 순간이었다. 수백 개의 거울 중 하나가 이쪽에 광선을 발사했는데 그 순간 제갈사가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해방칠요, 금요가 떨어졌다.

투둑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너무 빨라서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는 건 머릿속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도 도저히 방금 전의 일격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제갈사도 마력이 칠요 덕에 크게 급증해서 방어마법을 펼치고 있었는데 일격에 당했다는 건가?

동시에 제갈사가 당했다는 분노 때문에 나는 이마에 핏줄이 뻗쳤다. 또다시 동료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

퍼벅!

내가 분노해서 힘을 끌어올리는 순간, 엄청난 기세로 누군가가 달려들어서 내 뺨을 주먹으로 때렸다.

“컥.”

내가 얻어맞아서 땅에 널브러지자 뇌신지혼으로 나를 때린 진소청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냉정해지시오! 우린 왕의 소모품, 당신이 죽으면 다 끝이오!”

“……!!”

“저 놈의 공격은 빛의 속도이며 회피와 방어가 불가하며 전 방위로 날려 오는 포격이오. 우리들 중 누구라고 해도 선공을 맞았으면 즉사했을 거고 제갈사는 운이 나빴을 뿐! 백웅 당신이 아닌 게 다행이오.”

“음.”

“지시를 내려주시오!”

맞는 말이다.

나는 빠르게 머리를 식혔다. 그리고 입가의 피를 닦고 일어선 후 재빨리 제갈사가 갖고 있던 금요를 주워서 진소청에게 던져주었다.

나는 칠요를 치켜들며 외쳤다.

“육요공명!!”

파아앗

그 순간 우리는 동시에 해방칠요를 공명시켰다. 그와 동시에 월요의 정령이 날려 오던 가공할 광속(光速)의 빛줄기들이 허공에서 휘어지더니 도리어 월요의 정령을 가격했다. 다만 놈은 자신의 공격에 맞아도 치명상은 아닌 듯 빛 덩어리 몸체를 가볍게 떨 뿐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육요공명의 충격파를 놈에게 날리려 했으나 갑자기 허공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뭣?!”

그러자 옆으로 다가온 천우진이 말했다.

“육요공명은 너무 강력한 칠요의 정령에 맞서서 전략적으로 써야하는 것 같군. 지상에서처럼 직접공격으로는 못 쓰도록 되어있는 거다. 이 공간에만 적용되는 또 다른 법칙이겠지.”

“빌어먹을!! 정령인데 뭐 저렇게 강하단 말이냐!”

“인계에 남아있는 정령들이 약해빠졌을 뿐 원래 순수한 정령은 강하다. 인간이 상대할만한 게 아냐. 하물며 칠요의 정령이라면 영수왕의 직속에 있는, 수억 년 먹은 정령과 동급이겠지. 지금 우린 신적 존재를 상대하는 거다.”

냉정하게 말한 천우진이 말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칠요의 시련이겠지. 백웅, 공격과 방어를 나눠라.”

“알았어.”

나는 제갈사의 죽음으로 확 끓어올랐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아군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금요를 신공표에게 던져주었다.

“신공표! 진소청과 함께 공격해.”

“좋다. 상황 판단력은 있군.”

신공표는 금요를 얻어서 기분이 좋은지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자신의 사보검을 꺼내서 거대한 외침을 내질렀다.

[함선검이여!! 적을 꿰뚫어라!]

쿠콰쾅

거검(巨劍)이 천공에서 떨어지더니 사보검의 가공할 위력이 월요의 정령을 덮쳤다. 월요의 정령은 함선검에 당하자 많이 아픈 듯 몸을 비비 꼬더니 갑자기 전방에 거대한 거울을 만들어냈다.

[강한 자여. 자신의 칼에 죽거라.]

월요의 정령이 싸늘하게 말하는 그 순간, 함선검의 공격이 그대로 신공표에게 되돌아갔다.

“앗….”

제갈사가 죽을 때처럼 말 그대로 빛의 속도라서 신공표는 그저 멍한 표정만 지을 뿐 피할 수가 없는 듯 했다. 설마 사보검이 반사되는 상황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 했다.

슈욱!

그러나 그 순간 진소청이 반응해서 뇌신지혼으로 재빨리 신공표를 공격의 궤도에서 구출했고, 그는 그대로 신공표를 놓으면서 토요의 힘을 살려서 의념절기를 내뿜었다.

창극(槍戟)이 둔중하게 움직이며 시공간을 갈랐다. 진소청은 마치 이 공간에서 홀로 움직이는 것처럼 천천히 일보, 이보 째를 내딛은 후 삼보 째에 경(經)을 실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가장 작은 것을 찌르는 움직임이 월요의 정령에게 꽂아졌다.

투웅

월요의 정령은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뒤로 주춤대며 물러났다. 의념절기로 놈의 방어막에 큰 구멍을 뚫어버린 것이었고, 저건 과거에 사도 달기에게 먹였던 일격이 더욱 발전한 기술로 보였다.

[오오…. 받아라….]

위이이이잉

위이이잉

사방에 빛이 울려 퍼지며 마치 노래가 들려오는 듯 했다.

월요는 피해를 입자 다시 한 번 거울을 모아서 아까처럼 광범위한 공격을 하려 했고, 그 위용은 마치 수만 개의 빛이 아지랑이처럼 떠도는 것 같았다. 실로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지만 나는 재차 소리를 질렀다.

“육요공명!!”

파캉!

다시금 공명의 힘이 정령의 공격을 막아내었고, 우리는 잠시 숨을 돌리듯 뒤로 물러섰다. 천우진은 나를 힐끔 바라 보더니 말했다.

“공략법은 알았다. 이제 반쯤은 잡은 것 같군.”

“그래! 선제공격이 아니면 육요공명으로 방어할만한 틈이 있어.”

“다음 공격은 쌍요공명으로 참여해서 끝장을 보자.”

“알았어.”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신공표가 다시 사보검을 내질러서 선공을 시작했다.

“주선검(註仙劍)이여!”

신공표는 공격이 반사 당하자 경계했는지 함선검과 성격이 다른 주선검을 꺼내서 던졌다. 월요의 정령이 다시 빛을 내뿜으면서 큰 거울을 만들어내서 바로 반사해버렸지만, 신공표는 이번에는 자동으로 회피해 버렸다.

“두 번은 안 당한다!!”

지금이다!

신공표가 공격하며 시선을 끄는 사이 나와 진소청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파고들었다. 다시 절기를 퍼부을 만큼의 거리로 접근하자, 월요의 정령은 갑자기 이 공간에 거울의 미궁을 구현화 시켜버렸다.

[갇혀라….]

쿠구구구

동료들은 온데 간데 없고 나는 좁은 거울로 천지사방이 가득한 미로에 갇혀버린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게 결국 환술의 일종이란 걸 알고 있었으므로 정신을 집중하고 양손에 들려있는 화요와 수요를 공명시켰다.

‘이 자리에서 본신의 무력 이상으로 중요한 건 칠요의 활용이다.’

아무리 단일무력이 강하더라도 칠요의 정령들은 만만한 존재가 아니므로 방금 전 신공표처럼 반사를 당해서 죽을 가능성이 있다. 이 자리에 칠요를 갖고 도전하는 것은 칠요만이 그런 참사를 막아주는 대비책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시련의 공략법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칠요여, 울어라.

형제로 만들어진 자들이여 - 내게 신조차 죽일 수 있는 힘을 다오!

윙윙윙

그 순간 화요와 수요가 평상시의 몇 배나 되는 강렬한 공명을 일으켰다. 나는 이 쌍요의 공명이 다른 칠요의 쌍요공명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직접 느낄 수 있었고, 삼보절기를 운용해서 앞으로 뛰쳐나가며 내 앞을 가로막는 모든 거울을 깨부쉈다.

콰칭!

마치 화요와 수요가 극양과 극음의 기운을 일으키며 내 몸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의념으로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저절로 앞서나갔고, 형제검은 그런 내게 만족하듯 연속해서 빛을 뿜어내었다.

쉬익

마침내 거울의 미궁을 뚫고 허공으로 치솟았을 때, 월요의 정령의 몸뚱이가 바로 눈앞에 보였다. 나는 화요와 수요를 교차시키며 외쳤다.

“공명!!”

[어림없다….]

파밧

그 순간 월요의 정령은 방금 전처럼 신공표의 함선검을 반사시킨 거울을 바로 내 앞에 소환했다. 본래라면 이 상황에서 공명을 시도했다가는 자멸하겠지만 나는 화요와 수요가 이끄는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이를 악문 채 계속 공명을 시켰다.

“하앗!!”

서로 교차해서 날아가는 극양과 극음의 기운은 허공에서 하나의 빛줄기가 되더니 그대로 월요의 거울을 뚫어버렸다.

투쾅!!

[크아아악…!!]

이윽고 월요의 정령은 몸을 작살에 꿰뚫린 듯 퍼덕거렸고, 크나큰 빈틈이 노출되자 연속으로 진소청과 신공표의 공격이 쏟아졌다. 특히 신공표는 아까 공격이 반사된 게 열 받았는지 쉴 새 없이 사보검을 하나씩 투척하고 있었다.

“아하하하!! 죽어라!!”

콰과광

삽시간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섬광에 휩싸이면서 대지가 통째로 붕괴되기 시작했다. 시공간이 부서지는 듯한 압도적인 힘이 쏟아지자 월요의 정령은 계속해서 수십 겹의 방어막을 쳤지만, 그 때마다 진소청이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방어막을 뚫었다. 신공표의 공격을 보조하는 역할로 전환한 것이다.

[우오…오오오오…!!]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한 걸까?

월요의 정령은 이내 폭발해 버렸다.

퍼어엉

어떻게든 칠요의 시련 중 하나를 통과해낸 것이다. 하지만 땅에 착지한 나는 기뻐하는 마음보다는 제갈사가 죽었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제길….’

내가 낙담하고 있자 진소청이 소리쳤다.

“백웅! 아직 끝이 아니오!!”

“뭐?!”

슈슈슈슉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 같은 형태가 폭발한 자리에서 새하얀 영체가 일그러지더니 세 조각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각각의 형태가 소리 높여 외쳤다.

[나는 월요의 검(劍)이다!]

[나는 월요의 령(鈴)이다!]

[나는 월요의 거울(鏡)이다!]

스스스스

은빛으로 빛나는 세 개의 영체는 인간처럼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검으로 자칭한 월요는 은빛의 거검을 소환해서 자세를 잡았고, 령이라 칭한 자는 주변에 주술문자를 소환했다. 또한 거울이라고 칭한 자는 방금 전처럼 사방에 뭐든지 반사하는 거울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한 번 쓰러뜨리는 걸로는 안 되는 거냐?

세 마리로 분열이라고?!

천우진이 내게 외쳤다.

“월요는 삼종신기니까 당연한 거다! 아마 각 칠요마다 저런 식으로 특징이 따로 있을 거니까 당황하지 마라!”

“큭… 저 새끼들을 잡으면 끝이겠지.”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다시 한 번 싸울 준비를 했다. 그리고 놈들과 어떻게 상대할지 생각하다가 지시를 내렸다.

“각개격파다! 우선 검부터 공격해!!”

척 봐도 제일 방어력이 강해보이는 건 거울의 월요였다. 그리고 검 쪽이 공격력을 담당하고 있을 게 뻔했기에,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검부터 깨부숴야 이후의 공략이 쉬워질 것이다. 제일 가까이에 있던 신공표가 절선검(絶仙劍)을 내뿜자 검의 월요가 은빛의 거검을 휘둘렀다.

[월요절영(月曜絶影)!]

설마 저거, 월요를 해방하면 쓸 수 있는 고유기술인가?

콰과광!!

다음 순간 하늘이 염옥으로 불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월요절영이 밀리는 게 눈에 보였다. 역시 해방칠요를 두 개나 갖고 있는 신공표의 힘은 파천지경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흐음, 막강한 도전자구나…!!]

투웅!

검의 월요는 감탄하며 허공을 물수제비처럼 뒤로 튕겨나갔다. 힘에서 크게 밀린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절선검의 파괴력이 상쇄되었고 검의 월요는 사보검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합이 나눠지는 걸 보자 기가 막혔다.

‘제길, 정령들이 너무 강해…!!’

신공표가 아군인 덕분에 어떻게든 대등하게 싸울 수 있지만 절교 최강의 보패인 사보검의 위력과 일개 월요의 분신이 지닌 공격력과 큰 차이가 없다니?! 칠요의 시련과 거기에 배치된 정령들의 위력이 도저히 인간의 수준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어쩌면 도전자가 육요를 보유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생겨난 난이도이기에 그럴지도 몰랐다.

그 때 진소청이 검의 월요에게 접근해서 그의 목젖을 찌르려 하자 옆에 있던 령의 월요가 주문을 외웠다.

[월령(月靈)으로서 명하노니 너를 일만 년 간 봉인한다!]

쩌적

그 순간 진소청의 전신이 돌로 변해서 석상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아앗!”

후두둑!

다행히도 토요를 준 덕일까? 진소청은 가슴에 넣어둔 토요 팔괘도가 빛을 내뿜자 석상 상태에서 원래대로 즉시 되돌아왔다.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진소청 정도의 초고수라고 해도 술법봉인에 걸릴 경우 칠요가 없으면 즉사라는 걸 의미했기에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는 검의 월요의 공격력을 주의하면서 령의 월요에게 봉인당하지 않게 신경 쓰면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렇다.

분명히 공략법은 보이지만 수준이 너무 높아서 속이 갑갑해지는 싸움터였다.

제길! 힘든 싸움 한두 번 하나!’

작전대로 간다!

나는 속으로 우는 소리를 하는 걸 참으면서 쌍요공명을 내질러서 진소청 등과 함께 검의 월요부터 박살냈다. 우리가 단숨에 공격을 집중하자 검의 월요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분쇄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술법을 쓰는 령의 월요에게 덤벼들자, 령의 월요는 갑자기 거울의 월요와 손바닥을 마주치며 외쳤다.

[합체!]

[합체!]

우우웅

그러자 두 마리가 합체하며 이번에는 술법과 거울을 같이 쓰기 시작했다. 나는 놈들이 합체와 분열을 제멋대로 하는 걸 보자 기가 막혀서 외쳤다.

“이것들아, 장난 하냐!!”

세상에 첫 시련인 월요에서부터 이렇게 고전할 줄이야!

그러자 합체한 월요가 중후한 목소리를 내었다.

[도전자여. 그대는 어찌 주어진 인과율을 사용치 않는가? 충분한 힘이 주어졌으나 사용치 않고 우리를 탓함은 안 될 일이로다.]

“뭐? 무슨 소리야. 인과율이라니….”

[칠요의 시련은 황제께서 정한 위대한 시련. 그대들의 모든 수단과 인연을 동원하는 게 좋을 것이다.]

무슨 소리야?

두쿵!!

그 때 거대한 소리와 함께 저만치에서 강대한 파장이 울렸다. 잠시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월요의 정령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수요의 시련이 개방되었다.]

“…….”

그의 말대로 청색 빛 무리가 새롭게 저만치 지평선에 생겨나 있었다. 3번째 시련이 열렸다는 건 아까 2번째인 화요가 열렸을 때부터 벌써 반 시진이 지나버린 셈이었다. 정신없이 싸우다보니 이렇게나 시간이 지나버린 셈이다.

그 순간 나는 머릿속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안 돼….’

수많은 전투경험을 통해서 즉시 직감해버린 것이다.

이대로는 시간이 부족해서 끝장이다. 아직 1개의 시련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3개째가 열리다니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인과율…, 인과율…, 그게 대체 무슨 뜻이지?’

나는 월요의 정령이 한 이야기 중에 단서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모은 내 동료들과 칠요의 전력은 결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약하지도 않다. 도리어 나중에 신공표를 뺀다면 이만큼의 전력을 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칠요의 시련이 이렇게나 고되다면 틀림없이 뭔가 빠진 부분이 있다는 소리다. 왜냐하면 여기서 난이도가 더 올라가버리면 아예 인간에게 공략하지 말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진이 말한 대로라면 그건 시련을 제작한 황제의 의도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된다.

인과율이란 게 무슨 뜻일까?

문득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게 있어서 월요에게 소리를 질렀다.

“잠깐 작전 짜게 시간을 줘!”

[그렇게 하라.]

보통의 생사결에서는 어림도 없을 일이지만 월요는 시련을 담당하는 자라서 허락을 해주는 듯 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천우진에게 외쳤다.

“천우진!! 화요 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그쪽은 진이 갔잖아.”

“대군(大軍)이 개미떼처럼 화요의 정령에게 달려들고 있다.”

“뭐? 대군?”

천리안으로 화요 쪽의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요의 정령이 태우고 또 태워도, 되살아나는 무한의 병사들이 놈에게 개미떼처럼 달라붙고 있는 중이다. 숫자는 최소한 수만 명이고, 저쪽은 완전히 고대의 전장터처럼 보인다. 그리고 진이 빈틈을 타서 계속 화요의 정령을 공격하고 있다.”

“…….”

이상하다!

진은 분명히 맨몸이었을 텐데 대체 무슨 수로 수만 명이나 되는 군세를 소환한 거지?

‘아까 이 공간에 느닷없이 소환된 건 놈이 봉선의식에서 참여권을 소망했기 때문이라고 쳐도….’

놈의 소원은 두 가지. 칠요의 왕선 참여권과 불멸이다. 그걸로 소원이 다 이뤄졌다고 가정하면 여기에 자기 군대를 불러오는 것까지는 소원으로 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만으로도 3번째 소원이라고 취급하기 족하기 때문이다.

즉 - 저건 봉선의식 때 빌었던 진의 소원이 아니라 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초상기인에게 저런 능력이 있다고 들은 적은 없다. 있었다면 지난번에 삼황오제의 어전세력들이 소환될 때 사용했어야 정상인데 그때도 쓰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 자리에서만 쓸 수 있는 소환능력…?’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인연이라는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

그렇다면…, 한 번 해볼까.

“나타나 주시오.”

우우우우 -

내가 간절히 원하는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내 눈 앞에 공간이 왜곡되더니, 그 자리에 머리가 새하얗게 샌 중년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고, 난데없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게 이해가 되지 않는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나를 발견하자 말했다.

“잘 이해되지 않으나…, 이 자리에 자네 도움이 되기 위해 불려왔나 보군.”

“…….”

“여긴 칠요의 시련인가.”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검마 어르신.”

검마 서문대룡이 소환된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바라는 순간 인연이 생전의 모습 그대로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도전자가 자신의 인연을 자각하여 권속과 함께 왕좌에 도전하는 것!

그리고 검마는 소환되었지만, 지금 염상했는데도 백련교주나 십이율주는 소환되지 않았다. 그걸로 보아 숨겨진 소환 조건이 뭔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 지금부터다.’

바로 이것이 왕의 자격을 가리는 싸움인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