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762화 (761/1,615)

762====================

암천향(暗天鄕)

남아있으라고?

나는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저와 대성이 같이 싸우는 게 더 이길 확률이 높을 게 아닙니까?”

“아니! 별로 안 그럴 거 같아.”

“…….”

단칼에 부정당하니 갑자기 머쓱해졌다. 내가 당황하자 제천대성이 천우진과 신공표를 각각 가리켰다.

“저거 봐. 저 둘은 천하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술사들이고 예전부터 시간조종능력에 대비해왔지만 최소한의 저항만 가능했다. 즉 우리를 가둔 건 순수한 [옛 지배자]급의 권능이라 봐도 되는거지. 타고난 혼돈을 지닌 자나 칠요를 다량 가지고 있는 너같은 경우가 아니면….”

“가까이 갈수록 놈의 능력이 더 강해진다는 겁니까?”

“정답.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으니 여유롭지만 가까워질수록 숨도 쉬기 힘들어질거다. 놈은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을 사냥하게 되겠지. 나도 저런 놈이 제대로 능력을 쓰면 버틸 자신 없어. 최소한 치명상을 당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면 대성께서 혼자 가셔도 소용 없….”

나는 대꾸하다가 뭔가를 깨닫고 내가 갖고 있는 칠요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제천대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차렸구만. 그것들 나한테 다 줘.”

“…으음!”

나는 제천대성의 작전을 알 수 있었다.

오요를 제천대성에게 넘겨주면 그가 나를 대신해서 진과 싸운다!

확실히 보통 인간인 내가 장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강해지는 걸 생각해보면, 오요를 모두 갖게 된 제천대성이 누릴 권능은 상상을 초월한다. 칠요 하나만 있어도 제천대성이 천방지축으로 날뛸 수 있는데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확실히 이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전술이었다.

물론 제천대성을 믿을 수 있고 없고는 걱정할 바가 아니다. 그를 믿을 수 없을 거라면 애초에 여기까지 동행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설령 배신한다 하더라도 제천대성이 내 전생 자체를 멈추는 배신을 하지 않는 한 무방했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제천대성에게 말했다.

“대성. 만일 놈을 쓰러뜨리고 토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알아. 그래서 네가 진소청이나 다른 놈에게 오요를 미리 넘기지 못한 거잖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제천대성이었지만 이건 중요한 가정이었다.

제갈사가 말하길, 칠요에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비밀과 성질이 존재하기에 여섯 개나 되는 칠요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저절로 공명작용 때문에 봉인이 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설령 진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도 쓰러뜨리는 것 자체를 고민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만일에 나 이외의 일행이 칠요를 넘겨받았다가 진을 쓰러뜨린 후 공명작용 때문에 죽거나, 혹은 억지로 황제 앞에 끌려간다면 그것만큼 황당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제천대성이 말했다.

“솔직히 난 저 마도사놈의 생각을 딱히 옳다 그르다 생각지는 않지만… 만일에 즉시 봉인이 다 풀려버려 황제를 알현할 수 있게 되면, 황제에게 확실히 내 뜻을 이야기하겠다.”

“어떤 뜻입니까?”

“네 생각과 같아. 이 세계의 종말을 최대한 유예하거나, 아니면 엉망진창이 된 세상을 구해달라고 소망하겠지.”

“…….”

그는 한결같았다. 처음엔 칠요를 절대 모으면 안된다고 반대하고 있었으나 희망이 생기자 나와의 의리로 거기에 걸어보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세상을 구하고싶어하는 마음은 같아보였다.

‘…좋아.’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품속에 있던 흑요석을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제갈사는 절대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나는 이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제천대성이 어리둥절해했다.

“이건 뭐냐?”

“대성께 제 이번 전생의 결과를 맡기려 합니다. 당연히 제 비밀도 알려드려야겠죠.”

“혹시 기억을 전송하는 술수인가?”

“네.”

“좋아. 보내 줘.”

우웅!

내가 제천대성에게 기억을 보내주자 그는 잠시 부르르 떨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 [큰 굴레]를 움직이는 전생자라는 거였냐?”

“네.”

“핫! 내가 널 못 죽일 거라 생각해서 기억을 보내준 거냐? 넌 여러 번의 전생을 거치면서 나, 제천대성을 농락한 셈인데.”

제천대성은 얼굴에 약간의 분노를 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입장에서는 전생자인 내게 희롱 당했다고 여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금요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흐음.”

그의 화가 조금 누그러진 걸 느끼자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지금껏 기억을 못 드린 이유는 대성께서 칠요 모으기를 반대하는 기세가 워낙 강했을 뿐더러 제게서 칠요를 강탈해서 봉인해버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변심하면 어찌될지 몰랐고, 제갈사는 실제로도 최근까지 그걸 고민했죠. 하지만 저는 여기까지 온 이상 대성을 완전히 믿기로 했습니다.”

“…….”

“또한 저는 대성이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생자의 특권을 사용해서 농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진심을 믿어주십시오.”

내 말을 들은 제천대성이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웃긴 녀석이군. 결국 지금 네 주변에 모인 자들이, 네 위력(威力)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 모인 동료였으면 하는 바램인거냐?“

“네.”

“적어도 한 놈은 그런 게 아냐. 네 전생자의 권능과 힘에 반해서 꼬여든 것일 뿐, 대의 따윈 없다.”

힐끔 당산을 쳐다보던 제천대성이 말을 이었다.

“또한 네게 남아있는 삶이 대의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절망뿐일 수도 있지. 넌 사실 구원자같은게 아닐수도 있어. 너 스스로 착각하고 있을 뿐일지도.”

나는 움찔했다.

“…그럴수도 있겠죠.”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오요를 받고 나서 진과 안 싸우고 도망치면 어떡할건데?”

“그걸 걱정했다면 기억을 공유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귀밑머리를 긁적였다.

“참, 대책없는 자식이야. 그냥 입다물고 나한테 오요만 줬으면 충실하게 할일 해줬을 건데 뭐하러 사람을 이렇게 심란하게 해?”

“그건 이용하는 것밖에 안 되니까요.”

“하! 하하하핫….”

그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말했다.

“그래도 결과가 같으면 다 똑같은 거라고 우기는 자식은 아니군. 그나마 다행인가?”

“…….”

“좋아. 칠요 다 줘봐.”

치리링

잠시 후 나는 제천대성에게 칠요를 하나씩 넘기기 시작했다. 금요에 이어 수요를 넘겨주자 갑자기 눈앞이 침침해지면서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몸의 안쪽부터 돌로 채워지는 것처럼 굳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내 변화를 눈치 챈 제천대성이 말했다.

“삼요가 있어도 진의 시간능력에 저항하기 힘든가보군. 최소한 사요가 있어야 대항할 수 있는 거겠지. 잘 기억해둬라.”

“…한 두 개 더 넘겨드리면… 곧 제 의식이….”

“알아. 이거 참 먹고 튀기 좋은 상황인걸~?”

느긋하게 약올리듯 말하는 제천대성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월요, 화요, 목요를 동시에 그에게 넘겼다. 그리고 시간이 빠르게 정지되면서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제천대성의 목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렸다.

[걱정 마라. 난 절대 안 진다.]

파앗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는 알 수 없는 기이한 장소에 떠다니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건물의 잔해가 떠다니고 있는데 사방은 오색기류로 가득차 있었고 상하좌우가 잘 구분되지 않는 혼돈이었다. 언뜻 허차원(虛次元)과 비슷해 보였지만 그때처럼 존재확률이 변동되는 현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긴 어디지?’

나는 동료들이 어디 있는지 주변을 살펴 보았는데 그 때 외침이 들려왔다.

“백웅!! 여기요!”

나는 그 목소리가 있는 곳을 향해서 경공술을 써서 날아갔다. 약 삼십 장 밖에 있던 그 동료는 바로 진소청이었다. 진소청은 내게 말했다.

“백웅.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소?”

“아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 여긴 어디요?”

“나도 잘 모르겠소. 다만 나는 깨어난지 열흘이 지났고, 당신은 방금 전까지 어디에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났소.”

“……!!”

“여긴 이상한 공간이오. 아직까지 동료를 한 명도 보지 못했소.”

“흠….”

나는 진소청에게 내가 의식을 잃기 전 제천대성에게 오요를 넘겨준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진소청이 말했다.

“그렇다면 제천대성이 뭔가 한 거겠군.”

“가만히 있어도 아무것도 안 되니 좀 더 동료들을 찾아봅시다.”

나는 진소청과 함께 이 공간에서 건물의 잔해를 뛰어다니며 주변에 동료들이 있는지를 찾았다. 그러자 머지않아서 천우진이 당산, 서문혜 등과 함께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천우진은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역시 네 녀석의 인과율은… 엄청나구나….”

뭔가 감탄한 듯한 말투였다.

“뭔 소리야?”

“여긴 ‘흩어진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이 잘게 부서진 상태가 진행 중인 곳이지.”

“좀 알아듣게 설명해 봐.”

“…방금 전까지 내가 이 공간에서 몇 년을 있었다고 생각하냐?”

“몰라. 진소청은 열흘이라고 했는데.”

천우진은 한숨을 쉬었다.

“술법으로 이 공간에 저항하면서 여기 두 녀석을 찾는데 일년 하고도 석 달이 걸렸다. 합류한 후 반 년이 지났고.”

뭐라고?!

나는 당황했지만 이내 상황을 눈치 채고는 말했다.

“이 공간에서는 각자 겪는 시간흐름이 다른거군. 그리고 먹지도 자지도 않아도 괜찮은거고.”

“그래. 여기서 우리는 깨진 유리조각에 비치는 잔영(殘影)같은 거다. 실체는 존재하지만 수없이 많은 시공간의 폐곡에 갇혀있는 거였지.”

“안 좋은 거냐?”

“안 좋은 정도가 아니지. 난 여기서 끝장나는 걸 각오했다. 네놈을 만나지 못하고 수천 년이 지나도 이상하지 않은 공간이야. 난 여기 두 놈한테 유서 써두라고 했었어.”

“…….”

“하지만… 네 녀석이 눈을 뜨는 순간 이 흩어진 공간이 수복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네가 갖고 있는 엄청난 인과율 때문에 저절로 모이는 거겠지. 이런 현상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어. 이론상으로 가능하긴 하지만서도.”

뭔 소리야?

나는 천우진이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인과율이고 뭐고가 시공간이랑 어쩌니 저쩌니 하고 있으니 어떻게 알아듣겠는가. 하지만 나는 대충이나마 알아들으려고 노력한 결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인과율이 많으니까 이제부터 내가 돌아다니면 동료들을 다 찾을 수 있다 이 말이지?”

“쉽게 말하면 그렇지.”

천우진은 그렇게 대꾸하면서 불신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건 바닥에 떨어져서 깨진 유리가 저절로 흠 없는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 그게 가능한 인과율을 갖고 있는 넌 대체….”

“아 됐고 빨리 찾자!”

나는 다음으로 제갈사를 찾을 수 있었다. 제갈사는 전후사정을 듣더니 말했다.

“흐음. 그럼 상황은 아마 제천대성과 진이 싸우다가 시공간이 박살나버린 거겠군.”

“시공간이 박살나?”

“그런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신공표까지 찾고 나서 얘기하자.”

우리는 마지막으로 신공표를 찾으러 다녔다. 그러자 머지않아 신공표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는 무언가 못마땅한 눈으로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신공표는 나를 쳐다보더니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네 녀석! 원숭이한테 칠요를 줬지? 왜 나한테 주지 않았냐?”

“…….”

너 같으면 주겠냐?

나는 속에서 욕이 치밀어 올랐지만 애써 참고는 말했다.

“다행히 만났군. 제천대성을 여기서 본 적 있어?”

“못 봤다!”

“…그럼 기다려야겠군.”

천우진과 제갈사는 토론을 한 결과, 여기에 흩어진 동료들을 다 찾으면 시공의 수복력이 가속화되어서 원래대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강력한 인과율이 마치 자석처럼 작용해서 시공간을 이어 붙인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멍하니 있으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났을 때였다.

슈와아아악!!

갑자기 오색기류의 기묘한 공간이 사라지더니 우리는 원래 있었던 어둠의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후두둑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수신류의 서책이 땅에 떨어졌다. 그 광경을 본 제갈사가 고소를 지었다.

“역시, 시간정지가 발동된 후 찰나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군.”

“…….”

정말 기묘한 경험이다. 다들 당혹스러워할 때 신공표가 말했다.

“상황은 명백하다. 오요를 가진 원숭이와 진이 싸우다가 강력한 시간왜곡이 비틀어 깨지면서 황궁 전체의 시공간이 박살나서 ‘흩어진 공간’이 된 거다. 그래서 우리가 방금 전까지 폐곡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그건 알겠어. 그럼 빨리 제천대성을 찾으러 가자.”

타닷

모두가 내 뒤를 따라서 달렸다. 왜냐하면 마지막으로 진의 파장과 그 방향을 느꼈던 게 나였기에 내 기억에 의존해서 그 위치를 찾아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면 갈수록 아까의 파장이 황제의 옥좌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옥좌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흥, 이겼다 생각하나…?”

마치 꺼질 듯한 진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진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반쯤 시체처럼 찢어발겨진 채 옥좌에 몸을 뉘이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청혈(靑血)이자 신혈이 바닥에 웅덩이처럼 고인 게 보였다.

누가 봐도 죽기 직전!

그리고 그 앞에는 마찬가지로 피투성이가 된 채 꼿꼿이 서 있는 익숙한 모습이 있었다. 나는 그의 앞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등을 보는 순간 상황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제천대성이었다.

제천대성의 전신은 진만큼이나 처참하게 뜯어져 있었다. 차마 앞을 볼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제천대성은 끝까지 어깨를 꼿꼿이 세운 채 한 마디를 했다.

“당연히 이겼지.”

스윽

퍼버벅!!

다음 순간, 제천대성의 주먹이 진의 머리통을 부숴버리고 말았다. 최후의 일격을 날린 것이다. 나는 마무리가 나자마자 제천대성을 부축하려 했으나 그가 나를 멈춰 세웠다.

“오지 마.”

알 수 없는 위압감에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제천대성은 한숨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흘리더니 말했다.

“…이 놈, 끝장 못 냈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할 수준으로는… 약화시켰어.”

“대성! 지금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잘 들어둬…. 백웅 넌 다시 저놈을 만날 거다…. 꼭 이겨라.”

제천대성의 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는 앞을 꼿꼿이 쳐다보며 말했다.

“내 고향… 화과산(花果山)이 보이는구나.”

그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생기가 사라지고 싸늘한 죽음의 기운이 퍼져나가자, 나는 그가 죽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오요를 가지고 진과 싸운 끝에 동귀어진한 것이다.

정말 죽은 건가?

천하의 제천대성이?

나는 잠시 충격을 받아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제갈사가 한걸음 앞으로 나와서 이혼대법을 써서 제천대성의 혼을 붙잡으려 했다. 나는 그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제갈사의 손목을 세게 붙잡았다.

“그만둬!!”

내가 제갈사를 강하게 노려보자, 제갈사는 이혼대법을 멈추고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물러섰다.

스윽

그리고 신공표는 뒤에서 염력을 써서 오요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려 했으나 그 순간 천우진이 나서서 그녀의 염력을 차단하고는 재빨리 오요를 내게 밀어주었다. 내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오요를 받아들자 다시금 강력한 힘이 내 몸에 깃드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신공표를 노려보았다.

“제기랄!! 제천대성이 죽자마자 또 장난질이야?!”

“네가 멍 때리고 있으니 나라도 회수해야하지 않겠느냐?”

“빌어먹을, 닥쳐!!”

나는 속이 답답해졌다.

분명 상황은 제천대성 덕에 잘 풀렸지만 그의 희생을 빌미로 이용하려는 모습을 보니 순간적으로 환멸감이 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제갈사든 신공표든 원래 그런 성격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 정신 차리자.’

제천대성의 희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일일이 남의 지적을 받고 고칠 때가 아니다.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제천대성만 개죽음당한 것이다!

나는 무서운 눈으로 모두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마지막으로 토요를 회수할거야. 날 방해하거나 칠요를 뺏으려 드는 놈은 무슨 수를 쓰든 파멸시켜버리고 말겠어!”

“뭣….”

“나 백웅의 이름을 걸고 영겁의 세월동안 박살내버리겠다!! 반드시!!”

정확히는 신공표를 대놓고 노린 말이었으나 신공표도 내 서슬에 움찔한 듯 했다. 그녀가 뒤로 물러서자 나는 진의 시체를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차마 제천대성의 앞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얼마나 처참한 싸움이었는지 이 피 웅덩이와 살점조각으로 유추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준 이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싶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제천대성의 얼굴을 마주한 후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 당신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진의 시체 앞에 서서 그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공을 크게 돋우어서 그의 살점을 헤집고 뼈를 부러뜨린 후 심장을 손에 거머쥐었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일전에 봤을 때처럼 흡수된 토요의 형태가 손에 잡힌다.

나는 서서히 진의 심장, 토요 팔괘도를 몸에서 뽑아내었다.

푸콱

심장을 뽑음과 동시에 내 몸에 장비되어 있는 오요가 웅웅거리며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진동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모든 칠요가 금광(金光)을 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치리리링 -

해방된 칠요는 선연한 무지갯빛으로 변했고 아직 해방되지 않은 건 금광을 유지했다. 나는 칠요를 늘어놓고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제갈사. 육요(六曜)가 모여도 공명만으로 해방되지는 않는 것 같아.”

“그런 것 같군. 신공표!”

이 자리에서 칠요를 제대로 해방할 수 있는 건 이제 신공표 뿐이었다. 그녀는 뭔가를 한참동안 생각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내가 해방을 거부한다면?”

“봉선의식을 치르러 가겠지.”

“지금의 상황에서 의식 따윌 치를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나?”

“안될 건 뭐지? 여와도 관전으로 돌아섰고 염제 신농도 백웅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 삼황오제는 이제 의식을 방해하거나 해방을 미룰 이유가 없어. 이제 우릴 막을 자는 없다.”

“크… 크크.”

신공표는 기괴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좋아, 해방시켜 주마….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지켜볼까.”

신공표가 천천히 미해방된 칠요들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강력한 혼돈의 재능으로 술법을 써서 표면에 새겨진 글자들을 뒤틀자, 잠시 후 금광이 무지갯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신공표가 마지막으로 해방시키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육요가 다 해방된다…!!’

정적.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이 세계에 충만해 있던 거대한 혼돈의 덩어리들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혼돈이 빨려 들어간 곳에 대신 질서의 힘이 채워지며 대지를 치유하는 듯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파아아아

이윽고 어두운 하늘의 구름 사이로 빛이 새어나오며 대지를 따스하게 내려쬐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와 동시에 세상의 모든 것이 점차 회복되는 듯한 기세를 느낄 수가 있었다. 마치 세계 전체에 생명과 질서가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천우진이 크게 놀란 듯 말했다.

“영천(靈川)이 완전히 되살아나다니…? [옛 지배자]가 점거하고 있는 이 대지에서는 무리일거라 생각했는데.”

“천우진.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영천은 새로운 정령을 만들어내어 대지를 충만하게 하는 특수한 용맥이다. 그러나 지금은 영천이 말라붙어서 대부분의 정령들은 영계로 가 있는 상황인데 영천이 살아났어.”

“흠….”

빛이 어둠의 세상을 비추는 듯한 느낌이다.

비가 온 후 시원한 공기가 청량하게 들판을 내지르는 듯 했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그 외의 변화는 생겨나지 않았기에 이상하게 생각할 때였다.

쿠구구구구….

잠시 후 하늘에서 뭔가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눈을 부릅떴다.

“서왕모!!”

[…….]

서왕모는 폐허가 된 황궁에 서 있는 우리들을 천공에서 내려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홀로 모습을 드러냈을 뿐 곁에는 아무런 호위나 시녀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시작으로 하늘에서 또 다른 존재가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건 바로 제곡의 사도인 사비시신이었다.

우우우우우

사비시신 뿐만이 아니었다. 만귀전의 열 또한 어둠의 차원문을 열고 천공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열광(熱光)을 머금은 별똥별 같은 것도 나타났는데, 그 또한 삼황오제의 사도급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우리가 긴장하고 있을 때 서왕모가 문득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는 우리 삼황오제도 모르는 일이 벌어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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