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759화 (75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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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신혈?

모두의 시선이 제갈유룡에게 집중되었다. 제갈유룡은 서서히 말을 이었다.

" 초상기인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동서방의 마도기술이라기 보다는 그걸로 조화를 맞춰야하는 내면의 혼돈이었다. 혼돈을 동력으로 움직이는 인형이며 그걸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신에 버금가는 [굴레]의 권능을 사역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태생부터 혼돈이 적었던 인간의 형태로 그 정도의 혼돈을 얻게하기 위해서는 피와 육신 자체가 특수한 재질이어야 했다."

그 때 제갈사가 끼어들었다.

" 잠깐 기다리지. 형님."

" 왜 그러지, 사(邪)?"

" 난 예전부터 그 초상기인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었거든. 이건 질문으로 치지 않고 동생인 나에 대한 관용으로 봐줄 수 있을까?"

" ... 말해봐라."

"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며 막대한 혼돈을 내재한 것이라면 굳이 '인간의 형태'에 고집할 필요가 있었던 건가? 그냥 강력한 이족을 사냥하거나 도리어 이족의 몸을 기반으로 제물용 환수(幻獸)를 만드는 게 보다 실용적이고 효율도 훨씬 높았을 텐데, 왜 굳이 인간의 몸이어야 했던 거지? 예를 들어 이족의 용을 붙잡아서 거기에 같은 공을 들였다면 초상기인보다 훨씬 쉽고 강력한 결과물이 나왔을 게 분명한데."

" ......"

" 따지고보면 초상기인처럼 인간의 형태로 인형을 제작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혼돈과 강대한 권능까지 담으려 하니까 미친듯이 제작난이도가 올라갔잖아? 모든 인형사와 마도사들이 어이없어할 미친 짓이야. 왜 굳이 그래야 했던 거지?"

" 확실히 궁금하겠군... 중요한 점을 짚었어."

마도사의 탐구심이 담긴 질문에 제갈유룡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 우선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 현 황제를 끌어들이며 나는 그에게 유사시에 초상기인의 몸으로 옮겨가서 불로불사를 이룰 수 있다고 꼬드겼다. 욕심많은 황제를 내 계획에 끌어들이는 근거로 써야 했지."

" 그건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해. 끼워맞춘 거지? 황제같은 건 언제든지 괴물 밥으로 주고 꼭두각시를 내세울 수 있었잖나?"

" 그렇지. 진짜 이유는 바로 고대부터 내려오는 초상기인의 초안(初案)이 비밀리에 황궁에 전승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초상기인이 제갈유룡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었단 말인가?

뜻밖의 이야기였으나 제갈사는 왠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갈유룡의 말이 이어졌다.

" 아주 기초적인 발상만이 담겨있고 구체적인 실현안은 허무맹랑할 수준이었지만... 초상기인에 동서방의 마도기술이 필요하며 그 결과를 내기 위해 세계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을 변환금속 신혈(神血)을 넣으면 된다는 내용이 확실히 고문(古文)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건 황조가 바뀔 때마다 비밀리에 전승되어 오고 있었고, 나 또한 제갈가의 가주이자 대천문관으로서 어렸을 때 전해받은 것이다."

" 그 초안을 만든 건 누구지? 아, 이것도 질문으로 치지 마."

" ... 염치없는 놈."

" 혈육좋은 게 뭐야?"

" 닥쳐라."

제갈유룡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곤 대꾸했다.

" 알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인간의 발상은 아니었지. 왜냐하면 인형을 제작할 수 있는 마도사는 많으나 신혈을 써서 [굴레]까지 다루는 인형을 굳이 만들려는 자는 없으니까. 그 발상은 인간 측에서 나온 게 아니야."

" 흐음..."

" 네 말마따나 너무나 비효율적이기에 인간은 그런 발상을 못 해."

인간 측에서 나온 게 아니라니?

나는 제갈유룡의 말이 알쏭달쏭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왜 '발상'을 걸고 넘어졌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제갈사가 알겠다는 듯 말했다.

" 인신공양에 참여하는 주체는 3가지가 있지. 바치는 자, 제물, 그리고 받는 자. 바치는 자도 제물도 그런 발상을 하지 못한다면 - 결론은 '받는 자'가 생각해낸 거란 이야기겠군."

" 그렇다. 잘 알아들었군."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황급히 제갈사를 쳐다보았다.

" 제갈사! 받는 자의 생각이란 건 설마..."

" 뭐, 네 생각대로일 거다. 신(神)이 인간에게 주문한 게 바로 초상기인이란 소리야."

" ......!!"

"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인간 입장에서 뭐가 신의 마음에 들지 노심초사하며 제물을 바칠 수도 있겠지만, 달리 생각하면 받는 입장에서 어떤 선물을 받으면 좋겠다고 직접 인간에게 주문할 수도 있는 거잖아?"

" ......"

" 신도 평범한 것보다는 자기 취향에 맞는 걸 먹고싶겠지."

그런 문제인 건가?

하지만 어쩌면 이런 게 마도(魔道)의 비굴한 본질일지도 모른다. 미천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신에게 굽실거리며 제물을 바쳐온 결과, 그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이며 사회일 것이리라. 그 대상이 삼황오제든 흉신이든간에 말이다.

" 그래. 고문에서는 초상기인이 완성될 시의 압도적 위력도 논하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강하게 내 마음을 끌었던 건 바로 '선호도'였다. 너희도 알겠지만 제물이 신의 마음에 얼마나 드냐에 따라서 인간이 내려받는 가호나 대가도 커진다. 그런데 고문에서는 초상기인이 완성되어 그걸 바치게 되면 거의 완벽에 가깝게 [옛 지배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적혀있었으니 제작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 이상한 얘기군. 형님도 나처럼 매사에 신중하고 의심이 많은 편인데 어떻게 그 고문에서 주장하는 바를 바로 믿은건지 모르겠어."

" 실제로 다른 제물과는 차원이 다른 효율을 보였기 때문이다. 완성이 아니라 습작으로 몇 개 만들어둔 초상기인을 바친 것만으로도 일반적인 제물보다 훨씬 신격들이 마음에 들어했었다. 실제로 고위 이족을 잡아바치는 수고에 비하면 굉장히 쉬웠다. 이후 내가 초상기인을 완전히 제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둠의 세력들이 나를 귀하게 대접할 정도가 되었지."

" 흠... 납득이 가네."

제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내 전생기억을 전해받은 제갈사였기에, 초상기인 습작을 인신공양하는 것만으로도 일개 인간의 수백배에 가까운 효율이 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의문을 표한 건 제갈유룡도 그 사실을 완전히 인지하는지 확인하려는 차원이었다.

" 결론은 만들기 힘든 요리이기 때문에 귀한 요리로 대접받는다는 거겠군. 내 의문점은 좀 해결됐어. 그럼 본론으로 다시 넘어가서... 신혈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는 뭐지?"

" 신혈의 재료는 수은을 특수한 연금술 공식으로 변환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절대 단시간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고 복잡하고 어려운 공정이 필요했지. 서방의 대연금술사인 생제르맹의 도움을 빌렸음에도 완성시간이 가늠되지 않았어. 그래서 나 또한 기백년 이상의 세월을 예감하고 있었는데 고문에서는 신혈이 대량으로 매장된 장소가 있을거라며 찾으라고 했다."

" ......?"

제갈사가 기괴한 표정을 지었고, 제갈유룡이 말했다.

" 네 생각대로 뭔가 이상하긴 했지. 고문에서 단서를 줬으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디가 그런 장소인지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마치 알아서 찾아보라는 듯..."

" 역시 그랬군."

" 다른 의도가 뻔히 보였기에 나는 거기에 뭔가 음모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구체적으로는 후세의 인간 손을 빌려서 자기 뜻을 이루려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게 신혈의 매장장소를 알리지 않은 이유는 완성시기를 조절함과 동시에 후세의 의심을 피하려하는 사전작업이었다는걸."

" 그게 아마 진시황이겠군."

" ......"

" 형님은 그 진시황의 정체나 구체적인 목적은 몰랐겠지만 어떻게 하면 놈을 견제할 수 있는지는 알아냈을 거야. 그래서 신혈을 언급한 거겠지."

제갈유룡은 대꾸하지 않고 차갑게 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진시황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알아냈다.

진시황의 음모는 바로 신혈(神血) 그 자체에 있다!

하지만 그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시황은 불로불사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데 도대체 어떤 수를 쓴 걸까? 나는 답답해서 한걸음 앞으로 나오며 제갈유룡에게 물어보려 했다.

" 그럼 그 신혈이 어떻게 약점이 되는..."

그 순간, 제갈사가 급히 내 입을 막았다. 그는 내게 염파를 보냈다.

[ 잠깐 있어봐! 틀린 질문은 아니지만 이건 형님이 유도한 대화흐름이다. 이대로는 농락당한다. 내게 맡겨라.]

... 제갈사가 그렇다면 그럴 것이다.

나는 제갈사를 믿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제갈사가 말했다.

" 그럼 마지막 하나의 질문이 남은 거지, 형님?"

" 그렇다, 사."

" 그 전에 한가지 밝혀둘 게 있어."

제갈사가 내게 염파를 보내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갑에서 제갈부를 꺼냈다. 제갈부의 모습을 확인한 제갈유룡은 거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는데 마치 그럴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한 반응이었다.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 보다시피 내 조카님은 충실한 이혼대법의 노예가 되어서 불철주야 백웅을 위해서 일하는 중이지. 형님에 대한 의리로 조카의 행방 정도는 가르쳐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제갈유룡은 무덤덤하게 내뱉었다.

" 그래도 싸지."

" 응?"

" 정체불명의 수상한 자가 무명제사서를 훔쳐갔을 때 나는 부아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본진만을 지키라고 일러두었다. 설령 추종술과 전이술으로 행적을 좇을 수 있더라도, 보통 실력자가 아닐테니 반드시 호위나 강자를 대동하라고도 일러뒀지. 그러나 부아는 내 경고를 모두 무시하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해 단독으로 너희를 쫓다가 붙잡혔으니, 그 우(愚)는 스스로가 책임져야 할 것이다."

제갈유룡의 냉정한 말에 제갈사가 감탄한 듯 말했다.

" 이야 과연 형님이군! 정인군자인 척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약육강식의 세계를 잘 이해하며 이용하는 게 형님의 본질이야."

" 그래서? 나를 화나게 하려고 부아의 모습을 보여준 건가?"

그러자 제갈사가 고개를 흔들었다.

" 아니. 내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만 더 받아줬으면 해서 말이지."

" ... 뭐지? 너무 어리광이 심하군."

" 어차피 이제 곧 칠요가 다 모이게 될거야. 어떤 의미로는 세계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지. 그 전에 혈육간의 앙금을 털어버리는 차원이니 이정도의 사소한 질문쯤은 받아달라구. 칠요나 대세에 관련된 질문은 아냐."

" 하아... 넌 언제나 억지를 썼지. 좋다."

제갈유룡은 쓴웃음을 짓더니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사는 천천히 질문했다.

" 형님 말처럼 이 제갈부란 놈은 타고난 재능만 뛰어난 바보일 뿐이다. 이놈보다 내 작은조카인 망량 제갈현이 훨씬 큰 그릇이라는 걸 형님이 모를 리가 없어. 나는 과거 현이에게 왕(王)의 재(才)가 있다고까지 판단했었어."

" ......"

" 형님은 정말로 현이의 술법재능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계획에서 내쫓아버린 건가?"

망량에 대한 질문이 날아오자 제갈유룡은 상당히 동요한 듯 했다. 그 동요는 내가 눈으로 보고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 ... 그러니까 참여시키지 않은 것이다."

" 무슨 뜻이지?"

" 현이에게 부족한 건 술법재능 뿐이었다. 그 아이는 난세의 간웅을 도와 세상을 평정할 군사(軍師)가 될 수도 있었으며 평탄한 세상의 현군(賢君)을 도와 치세(治世)를 이뤄낼 재상(宰相)이 될 수도 있었다. 또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자들을 융화시키는 넉넉한 인품 또한 지니고 있었지."

" 맞아."

" 그건 제갈무후에 비견되는 능력... 이여지간 관악지상(伊呂之間管樂之上)이었다. 우리 제갈세가의 역사 속에서 천재는 쉴새없이 배출되었으나 그 아이만큼 큰 그릇은 얼마 없었으리라. 위기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정의를 지키며 관용을 베풀 자 몇이나 되겠는가? 천재일수록 제멋대로이며 타인을 포용하기가 쉽지가 않아. 하물며 위기에 몰리면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일수록 이기적으로 변한다."

제갈유룡은 하늘을 보며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 내 영혼을 바쳐 천상을 뒤집는 역모(逆謀)을 꾀하고 있었거늘, 어찌 그런 제갈세가의 미래를 앞길이 보이지 않는 복수의 일념에 동참시킬 수 있었을까? 실패하면 혼돈의 신에게 영겁토록 고문당하는 절망이 기다리고 있는데 사, 너라면 그랬겠느냐?"

" ......"

제갈사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 이 길은... 무간지옥이었다. 혼돈 속에서 죽음을 갈구하는 외길이었노라. 나는 그 아이가 내 일과는 무관해지길 원했다. 평범하게 자기 재능을 소소하게 살리며 빛의 세상에서 천수를 마치기를 원했다."

" 그랬군."

" 내가 실패하여 죽더라도 그 아이가 빛의 세상에서 무후의 맥을 이어줄 거라 생각했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제갈유룡은 일부러 망량에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재능의 부족을 핑계로 황궁에서 쫓아낸 것이었구나.

" 허나, 현이도 죽었다니... 내게 남은 건 이제 절망 뿐이구나. 크크... 크흐흐..."

제갈유룡은 기이한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것은 진정으로 그가 낙담했다는 의미로 보였다. 뜻하지 않게 망량의 죽음이 언급되면서 제갈유룡의 기가 꺾인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러나 제갈사는 그걸 분명히 노리고 있었던 모양인듯, 천천히 그에게 말했다.

" 형님. 저승이 난장판이고 윤회전생이 끊긴 상태라는 건 이미 알고 있을 거야."

" 알고 있다."

" 현이의 영혼도 이미 어딘지 모를 곳으로 빨려들어가 고통을 당하고 있겠지... 현생도 저승도 구원이 없는 생지옥, 그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랄맞은 세계야. 산 자의 세상이라 해도 다르지 않지. 약육강식과 차별, 학살, 강자의 만횡을 한평생 겪다가 끝없는 절망만이 기다리고 있어."

담담하게 절망을 토로하던 제갈사가 말했다.

" 하지만 칠요를 얻으면 그 상황이 달라진다. 그건 목전에 다가왔어."

" ......"

" 내 주군인 백웅은 최소한 그 상황만큼은 타개해줄 수 있을거다. 형님의 생각대로는 아니겠지만 그 나름대로 인류를 구할 비전을 갖춘 왕이기 때문이지. 그는 황제 공손헌원을 알현해서 인류의 구원을 요청할 것이다. 제갈부도 그 전에 세뇌를 풀어 주지."

"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 마지막 질문에는 아무런 가식 없이 모든 걸 이야기해줘. 형님이 아무리 솔직히 이야기한다 해도 원한다면 세상 제일의 현자조차 진실만으로 기만할 수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제갈사가 제갈유룡과 눈을 마주쳤다.

" 부탁이야. 우리를 도와 줘."

" ......"

좌중의 모두가 크게 놀랐다. 설마 저 제갈사가 저런 말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제갈유룡이 그를 응시하다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백웅이여. 마지막 질문을 해라."

그 말투는 아까 전과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이전까지는 끝까지 내게 적의를 보이며 지략을 다해서 저항하려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결코 그런 태도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상황을 인정한 듯한 기색이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제갈사의 설득이 제갈유룡에게 어느 정도 먹혔다는 걸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 완성형 초상기인을 차지한 진시황의 약점을 알려줘."

" 말했듯이 약점은 신혈이다. 초상기인의 마지막 공정에서 나는 본디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장치를 해 두었지. 그건 내 연구를 이어받은 생제르맹이나 팔부신중조차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 장치?"

" ... 선천팔괘(先天八卦)의 우전(右轉)이다."

우전이라면...

' 시공간을 상수(象數)로 치환시킨 법칙을 말하는 거군.'

나는 선천팔괘의 기초원리를 공부했으므로 우전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오른손과 왼손을 사용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시간을 다루는 영역에서 하도수(河圖數)가 운용될 때 홀수와 짝수는 각각 좌선(左旋)하고 우전(右轉)했다. 그리고 이건 일건천 건삼련이나 이태택 태상절과 같은 기본배치원리와는 또 다른 원리였기에 공부하는 사람의 머리를 쥐어뜯게 만들었다.

' 실생활에 필요도 없는걸 뭐하러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나 싶었지...'

뛰어난 두뇌가 있어야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사실 나같은 놈은 공부해선 안되는 학문이다.그러나 과거 망량이 열성적으로 가르쳐준 덕에 간신히 기초를 이해했던 것이다.

나는 괘를 그릴 때 초효, 중효, 상효를 어떻게 그렸는지를 머릿속으로 되짚어보며 괘가 윤전(輪轉)하는 형태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그리고 머릿속에 도학지식을 떠올린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음... 우전은 알겠는데 그게 어떻게 약점이 된다는 거지?"

" 초상기인을 이루는 서방의 기술은 육체와 혼의 결속에 주로 작용하고, 동방의 기술은 몸뚱이에 가둔 혼돈의 힘을 효율적으로 소화시키는데 작용하고 있다. 즉 연약한 인간의 형태를 하면서도 혼돈의 힘을 부담없이 사역할 수 있는 건 몸 자체에 배치된 선천팔괘가 계속해서 혼돈의 힘을 순환시키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삼황오제 복희의 힘으로 혼돈성을 견제한다고 볼 수 있다."

" ......."

" 그러나 나는 초상기인이 배신했을 때를 대비해서 선천팔괘가 움직여서 혼돈의 기운을 중화시킬 때 우전(右轉)에 약점을 만들어뒀다. 본디는 모든 팔괘를 통제하면서 마지막 공정까지 끝낼 생각이었는데 그 전에 이런 꼴이 되어서 초기의 약점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 우전의 약점을 찌르는 방법까지 알려줘."

" 선천팔괘를 사역하는 능력, 혹은 팔진도(八陣圖)를 펼칠 수 있다면 쉽다. 놈이 [작은 굴레]를 쓸 수 있더라도 팔진도가 펼쳐지는 순간 놈은 휘말려서 약점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 그렇군... 고마워!"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 확실히 제갈사 덕에 이정도 정보를 얻어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제갈사가 설득하지 않았다면 필요한 말만 하고 전혀 설명을 안 해줬을거야...'

그것만으로도 단서는 되었겠지만 진처럼 강력한 상대와 싸울때는 힘겨운 노릇이다. 제갈유룡이 인정을 베푼 덕에 내 칠요모으기가 한걸음 크게 다가선 것이다.

그 때였다.

우오오오오오 -

거대한 흐름이 울려퍼졌다. 그건 세계 그 자체를 뒤흔드는 흐름이었고, 특별한 힘을 쓰는 자라면 누구든지 감지할 수밖에 없었다. 기를 사용하는 무인이든 술수를 쓰는 술법사든 마도사든 모두가 '무언가'가 풀려났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 ... 깨어났군."

제천대성이 침중하게 중얼거렸다.

무엇이 깨어났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단지 깨어나는 것만으로도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는 현재 상황에서 단 하나 뿐이었다.

바로 이 순간 - 삼황오제 염제(炎帝) 신농(神農)이 깨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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