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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758화 (75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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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우리는 전력을 정비한 후 신단수의 폐허가 있는 고려로 떠났다. 낙양에서 가려면 꽤 긴 여정이겠지만 천우진이 대규모 축지법을 발동해 줬으므로 반 시진도 되지 않아서 제남(濟南)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제천대성이 근두운을 태워주는게 제일 빠르겠지만 그는 나 이외에는 태우고싶지 않다면 불쾌감을 보여서 어쩔 수가 없었다.

' 좋아. 하루도 안 되어서 도착할 수 있겠군.'

우리는 제남에서 곧장 해변 지방으로 갈 생각이었다. 해변으로 가면 천우진이 해저를 통과하는 술수를 써서 더 빠르게 갈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신공표가 나타난 건 그 때였다.

슈욱!!

축지법을 연속 발동하고 있던 천우진이 흠칫하며 멈췄다. 왜냐하면 그의 술수를 방해한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허공에 둥둥 뜬 채 모습을 드러낸 신공표가 우리 일행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 구천현녀와 공공이 사라졌군."

" 신공표! 어디 갔던 거냐."

" 황궁의 졸개들은 일찌감치 처리했었지만 왠지 상황이 위험해 보여서 낙양 바깥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지?"

아무래도 신공표는 상황을 거의 모르는 듯 했다. 나는 구천현녀와 공공이 사라져서 제천대성만 믿고 있는 상황에서 신공표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신공표와 대화를 해보기로 마음먹고는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물론 창힐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느닷없이 사라졌다는 식으로만 했다.

신공표가 내 말을 듣더니 말했다.

" 완성된 초상기인이란 놈을 상대하려고 제갈유룡에게 정보를 얻어낸다는 건가?"

" 그래."

" 흐음... 토요를 심장으로 삼은 인공마도존재라면 위험하긴 하겠구나. 그럼 너희에게 동행해 주마."

" ......"

선심쓰듯 이야기하는 신공표였지만 딱히 기쁘지는 않았다. 지난번에 동료가 되기로 했지만서도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라서 끝까지 믿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공표는 힐끔 천우진을 보더니 말했다.

" 이봐. 한 번에 술수를 같이 써 보자."

" 그러지."

파앗!!

잠시 후 신공표와 천우진이 동시에 술수를 발동하자, 우리는 한번에 과거 신단수가 있던 폐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종사급 경지에 달한 술법사들이 합을 맞추면 적은 술력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듯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한 우리는 신단수 폐허에 있을 제갈유룡을 탐색하기로 했다.

제갈사는 정신을 집중하며 주문을 외우더니 말했다.

" 이쪽이다."

제갈사가 제갈유룡의 심장에 박아넣은 단검은 그의 소유였기에 가장 쉽게 마력을 추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제갈사의 인도대로 폐허의 지하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지하동굴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걷자 거대한 뿌리가 이 근처의 땅을 옥죄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신기해서 중얼거렸다.

" 신단수는 이미 죽었을 텐데 아직도 생명력이 남아있는 것 같아."

" 영체로서의 신단수는 죽었지. 그러나 잔여생명력만으로도 수천년을 살 수 있는 생명체다."

그렇게 대꾸한 제갈사가 힐끔 맞은편의 어둠을 보더니 주문으로 불꽃을 일으켰다. 그러자 동굴의 벽에 누군가의 인영이 붙박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갈유룡이다.

그는 벽에 붙어선 채로 심장에 단도가 꽂혀 있었는데, 죽은 듯 고개를 떨구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 서서히 고개를 들며 이쪽을 보았다.

" ......"

제갈유룡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제갈사가 그를 조롱하듯 말했다.

" 형님. 십 년 내에 그 타락의 단검을 이겨내는 건 좀 힘들지?"

" ... 확실히 그렇군. 이 단검은 뭐지?"

" 호라산의 연금술사 자비르 이븐 하이얀이 연금상태에서 말년에 만들어낸 회심의 역작이지. 예전에 경매에서 운좋게 얻은 거였는데 딱 잘써먹는군. 보패수준은 아니라도 나름대로 독하지."

제갈사가 그렇게 대꾸하고는 말을 이었다.

" 그 단검이 강제속박과 동시에 강제 불사상태로 만들어줘서 이 안에서 생리현상도 필요없었을 테니 생각할 시간이 넘쳤을 거야. 그리고 형님이 생각하는 사이에 세상은 급변했지."

" ......"

"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싶지?"

제갈유룡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제갈사가 힐끔 내게 눈짓을 했다. 아마 내가 직접 그를 설득하는 게 낫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나는 제갈유룡에게 약간 다가가며 말했다.

" 제갈유룡. 나는 백웅이라고 한다. 나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여기까지 왔다."

"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이 단검부터 빼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

" 그럴 순 없어. 단검을 빼는 순간 당신은 자살해서 다른 몸뚱이로 옮겨갈 테니까."

" ......"

" 당신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문도 견딜 인간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 그래서 제갈사도 당신을 고문하는 걸 포기했지. 시간낭비일 뿐이니까."

" 잘 아는군."

" 하지만... 지금 창힐과 팔부신중이 몰살했다면? 그래도 당신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침묵을 고수할 텐가?"

흠칫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인듯 제갈유룡이 약간 동요했다.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냉소했다.

" 거짓말이군. 되지도 않는 이야기는 지어내지 마라."

" 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창힐과 팔부신중이라고 해서 불멸의 존재는 아니잖아."

" 창힐은 극히 신중한 자라서 종말까지 결코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내가 그를 끌어내느라 힘이 빠졌을 정도! 설혹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더라도 그건 삼황오제와 결판을 낼 자신이 있을 때겠지.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이 펼쳐졌다는 걸 내게 믿으라는 말인가?"

" 진짠데."

제갈유룡이 전혀 믿지 않는 모습을 보자 나는 머리를 긁적일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제갈유룡은 창힐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가 판단하는 것도 본래는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창힐은 아무리 끄집어내려 해도 웬만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한자로 창힐족을 각성시킬 때 최대의 이득이 생겨나는 건 종말 바로 직전, 인류의 숫자가 100억에 가까운 정점을 찍는 시점이다. 그렇기에 사오백년 전인 지금 인류의 숫자가 그리 많지도 않고 한자가 전세계에 보급되지도 않았을 때 굳이 모습을 드러낼 이유가 없다. 나는 창힐의 전모를 보아왔기에 제갈유룡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믿든 말든 지금 창힐의 세력은 소멸했다. 그리고 칠요는 거의 다 모여서 최후를 앞두고 있지."

스윽

나는 목갑에서 칠요 다섯 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를 제갈유룡에게 보여주었고, 제갈유룡은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눈을 크게 떴다.

" ......!!"

" 남은 건 토요 팔괘도 뿐. 그것만 있으면 이제 일요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그리고 보다시피 우린 해방을 할 방법도 알고 있다."

" 도대체... 무슨 수로 칠요를 그만큼이나 모은 거냐?"

" 네가 우리에게 협력해 준다면, 아니 정보를 교환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알려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계속 종말의 끝까지 여기 갇혀서 혼자 분노만 곱씹어라."

촤르륵

나는 칠요를 다시 목갑에 거둔 후 냉엄하게 말했다.

" 선택해. 우리를 돕겠나? 아니면 이대로 갈까."

"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다오."

" 좋아."

침묵이 흘렀다. 제갈유룡이 한참 후 입을 열었다.

" 한 가지만 알려다오. 내 아들들은 어디 갔지?"

" ......"

나는 순간 곤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설마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이놈이 아들의 행적을 물어볼 줄이야? 나는 천천히 대꾸했다.

" 망량은 죽었다. 그리고 제갈부는 우리가 데리고 있다."

" 그렇군..."

제갈유룡의 눈에 안타까운 빛이 스치고 간 건 착각일까? 왜인지 그는 망량이 죽었다는 이야기에 상당한 반응을 보이는 듯 했다. 제갈유룡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 좋다. 나를 풀어준다고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면 믿고 정보교환에 응하겠다."

" 뭐? 풀어줄 순 없어. 당신이 어떤 술법을 펼칠 수 있는지 뻔히 아는데."

" 그럼 나도 응하지 못한다."

" 대단한 배짱이군. 이대로 꿈을 잃고 사라져도 좋다는 말인가?"

나는 냉정한 눈으로 제갈유룡을 보다가 말했다.

" 말해두지만 나는 당신이 인형을 숨겨둔 본거지가 몇 군데이며 어디에 있는지 다 알고 있다. 하나하나 말해줄까?"

이윽고 내가 본거지의 위치를 다 말하자 제갈유룡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그 인형들을 부쉈을 것 같나, 안 부쉈을거 같나?"

" 부수지 않았겠지. 부수면 내게 신호가 들어오니까."

" 그래. 하지만 지금부터 부술수도 있어."

" ......"

" 당신은 이미 외통수야. 좀 귀찮긴 하겠지만 다시 돌아가서 본거지의 인형을 다 부수고 하는 김에 당신을 여기서 죽이면 더 이상 부활은 못 하겠지. 영원한 죽음이야. 그런 결말을 원하는 건가?"

" 왜 안 부수고 온 거지?"

" 그럴 필요까진 없기 때문이지. 시간낭비잖아. 칠요를 모으는 게 목적이고 창힐도 팔부신중도 황궁도 소멸되었는데 당신따위가 이제 무슨 위협이 될까? 당신이 단검의 저주를 풀기 전에 모든 게 결판날 거고, 뭣하면 우리는 추가로 봉인을 걸 수도 있어. 이 정보교환을 거부하면 당신만 손해야."

내 말에 제갈유룡은 잠시 침음성을 흘렸다. 그러더니 말했다.

" 내게 원하는 게 뭐냐? 넌 내게 뭔가 다른 것도 원하는 것 같군."

" 별 거 아냐. 내가 알고싶은 모든 것을 알려줘야 하고 최후의 칠요를 얻는 일에 조력해줬으면 한다. 내가 원하는 걸 이루는 김에 당신의 소원도 이뤄주지."

" 내 소원이 뭔지 알고 있나?"

" 잘 몰라. 그러니까 지금부터 가르쳐주면 조율을 해 보자고."

" ... 세 가지."

제갈유룡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딱 세 가지를 물어보면 그것만은 솔직히 답해주겠다. 그러나 그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 고집이 엄청나군. 칠요를 한 개만 더 모으면 이 난장판도 끝인데 대체 무슨..."

" 날 없앨거면 없애라. 하지만 굴복하지 않겠다."

" 뭐라고...?"

내가 질린 듯 중얼거리자 제갈유룡이 대꾸했다.

" 난 절대 내 뜻을 굽히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진천휘가 내게 맡긴 뜻을 이루기 전까지는 결코...!!"

진천휘?

뜻밖의 이야기에 나보다 진소청이 먼저 반응했다. 그는 한걸음 앞서나와서 날카로운 눈으로 제갈유룡을 노려보았다.

" 내 아버지를 아시오?"

" 네가 진소청이겠군..."

" 그렇소."

제갈유룡 또한 진천휘 장군과 진소청의 관계를 아는 듯 했다. 하긴 황궁 최대의 흑막이니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제갈유룡은 퀭한 눈으로 진소청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 진소청이여. 너희가 제갈사의 동료이며 만일 내 아들도 붙잡았다면 내 과거 일을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 허나 나는 부인의 죽음만으로 이 장대한 반역을 결심하지는 않았다. 진천휘가 내게 맡긴 유지(遺志)가 바로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 진천휘가 천계에 반역해서 인간을 구하라고 말했단 말이오?"

" 아니... 그것보다 더욱 본질적인 이야기였지... 나는 단지 내 방식으로 그걸 실천하고자 했을 뿐."

그렇게 말한 제갈유룡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말했다.

" 오요(五曜)를 모은 자... 백웅이여! 나를 죽일테면 죽이고 고문할테면 고문해라. 허나 나는 끝까지 네게 굴복하지 않으리라. 내 방식대로가 아니면 무의미하며, 그대의 이상 또한 내가 터럭만큼도 믿을 수가 없으니! 그러나 그대의 위업을 인정하여 내 명예를 걸고 두 가지를 성실히 답해주리라."

" ... 두 가지?"

" 방금 전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 ......"

진소청의 질문도 하나로 치는 건가? 더러운 새끼!!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신공표가 답답하다는 듯 앞으로 걸어나왔다.

" 귀찮게 하고 있구나. 내가 너를 세뇌하여 알고있는 걸 모두 털어놓게 하리라!"

우웅

하지만 신공표가 펼친 고대의 세뇌술법도 제갈유룡에겐 통하지 않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본 제갈사가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 저건 인형에 들어가있는 혼일 뿐... 하물며 팔괘로 특수하게 제작된 인형에 아무리 이혼대법이나 세뇌를 쏟아부어도 통할 리가 없잖아. 정신계열에 한해서는 아무것도 안 통해. 예전에 마왕의 눈으로 이혼대법을 썼을 때도 정신은 못 건드리고 육체만 구속한 건데."

" 그런 건 진작 말을 해라!!"

신공표가 신경질을 내었지만 제갈사는 무시하고는 내게 말했다.

" 백웅. 형님은 마음을 굳힌 것 같다. 무슨 수를 써도 되돌리지 못할 테니 두 가지 질문을 신중하게 해라."

" 알았어."

자신이 원하는 결론을 보지 못할 바에는 결코 굴복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겠다니.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흉신이나 창힐 등과 손을 잡아온 제갈유룡 치고는 이상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건 아마 절대적인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생뚱맞게 칠요 중 오요를 모아온 나를 느닷없이 믿느니 파멸을 선택하겠다는 마음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해도 그럴테니 일단 상황설명을 해 주지..."

나는 내가 칠요를 모은 경위와 창힐과 삼황오제의 대전, 그리고 창힐과 팔부신중의 소멸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초상기인 진에 대한 이야기 또한 했다. 거기까지 이야기하자 제갈유룡은 상당히 신중한 표정이 되었다.

" ... 그래서 토요를 심장으로 삼은 초상기인, 진이라는 존재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된 상황이다."

" ......"

" 그런데 우리가 예측하건대 진은 제갈유룡 너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존재가 아닌가?"

" 왜 그렇게 생각하지?"

" 넌 원래 흉신이나 황궁의 지배자에게 바칠 제물로서 초상기인을 제작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데 진은 그런 인과율에서 너무나 자유로운 것으로 보인다."

" ... 흥미롭군."

" 네가 진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그리고 추측되는 것과 약점에 대해 모두 말해다오."

제갈유룡은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더니 입을 열었다.

" 신혈(神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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