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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창힐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흰색 빛이 하나둘씩 유성처럼 내려꽂히듯 날아왔고 그 빛을 흡수할 때마다 그는 알 수 없는 힘의 기류를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힘의 밀도가 갈수록 높아지는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는 창힐에게 말했다.
" 팔부신중은 네 화신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죽으면 네게 힘이 돌아오는 거지?!"
내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개별적인 존재에게 힘을 하사하는 사도와는 달리 화신이란 본인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화신이 개별적 인격을 가질 수는 있으나 결국 본체와 본질이 같은 것이다. 그래서 화신이 죽는다고 자기 힘이 되돌아오진 않는다.
그래서 나는 팔부신중을 창힐이 아끼고 죽지 않도록 무한부활의 가호를 걸어준다고 생각했다. 순수하게 '또 다른 자신'을 보는 마음으로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라니? 이런 건 통상적인 화신의 개념과는 완전히 달랐다.
창힐은 내 말은 들은체만체하며 화면을 보았다. 거기에는 팔부신중이 모두 살해당해 있었고 야차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 야차가 제일 오래 버티는구나. 역시 내 제자다워.]
" 뭐? 제자?"
[ 그녀는 내가 인간 제사장 시절이었을 때의 내 수제자였다. 제일 먼저 팔부신중이 되었지.]
야차가 창힐의 제자였다고?
뜻밖의 이야기를 듣자 나는 약간 놀랐고, 창힐의 말이 이어졌다.
[ 팔부신중은 내 화신도 사도도 아니다. 고대주술로 나와 계약을 한 관계일 뿐. ]
" 뭐라고?"
[ 나는 내가 가진 [옛 지배자]의 육체에서 혈육(血肉)을 떼어 그들에게 나눠주어 고위존재가 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그들과 융합하여 내 화신이 되었다고 착각했지... 내가 그렇게 의도하긴 했지만.]
" ......"
[ 나와 그들 사이에 화신의 인과율은 묶여있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겠지. 그러므로 팔부신중이 죽어도 내 힘은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이자가 쌓여서 더 강해진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 속였다는 건가?"
[ 후후. 지금까지 팔부신중이 강해진 건 그저 인간영웅이었던 그들의 재능. 내가 준 건 신의 육체라는 기반 뿐이다.]
창힐은 그저 낮게 웃더니 말했다.
[ 이젠 내 피와 살을 이제 돌려받을 때다. 지금까지 그들이 마왕급 존재가 되어 힘을 누리게끔 도와줬으니 후회는 없겠지.]
" ... 개자식!!"
나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 제기랄...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그랬다.
팔부신중은 사실 창힐의 화신도 사도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본디 뛰어난 영웅급 재능을 지니고 있던 인간들에게 창힐이 화신으로 만들어준다고 꼬드긴 후, 그들에게 [옛 지배자]의 육체를 대여해준 것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대여한 육체의 엄청난 마력을 이용해서 팔부신중이 성장한 것이었을 뿐 처음부터 화신의 인과율이 없었다는 말이리라.
그러나 그건 동시에 창힐이 팔부신중조차 전혀 믿지 않고 그들에게 빚을 받아내는 고리대금업자의 역할을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인간시절 자신의 제자였던 야차마저도 그 사실을 모르고 배신당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한가지 더 궁금한 점을 물었다.
" 팔부신중은 무한히 부활할 수 있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 거지?"
[ 그건 태초에 팔부신중을 만든 고대의 계약에서, 내가 그들에게 무한정 부활을 약속했기 때문이지... 그들은 인과율을 크게 쓰지 않아도 내가 인간세상에 마음대로 간섭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었으니 그 정도 신력은 투자해줄 수 있었다.]
" ... 그럼 축융은 도대체 어떻게 쓰러뜨린 거지?"
[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팔부신중에게 스며있는 내 육체를 매개로 직접 강림해서 내가 축융을 없앴겠지... 인과율을 꽤 많이 소모했을 것이다.]
창힐이 암천향의 달에서 직접 신력을 전송해서 계약의 도움을 받아 무한부활을 시켜줄 수 있었다는 뜻이리라. 나는 말을 알아들었으나 고개를 갸우뚱했다.
" 이해가 안 되는군. 다른 [옛 지배자]도 사도나 화신에게 그정도 배려를 해줄 수 있을텐데 왜 다른 놈들은..."
[ 사도나 화신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옛 지배자]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강력한 사도화신이라 해도 결국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망가지면 또 다른 놈을 만들면 그만이다. 나처럼 유지에 심혈을 기울인 경우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겠지.]
" ......"
[ 칠요에 당하거나 혼돈이 완전히 파괴되거나, 스스로 소멸을 택한다면 나라도 어쩔 수 없었지만...]
그저 성의의 차이일 뿐이었다는 건가.
' 어쩌면 이게 인간 출신 [옛 지배자]의 특이한 점일지도...'
내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퍼벅!!
마침내 야차조차 당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마수(魔獸)의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빠르게 생명이 사라지는 동안 야차가 하늘을 보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 아버님... 뜻을 이루소서...]
슈르륵
야차의 영혼이 흰 빛이 되어 마지막으로 창힐의 몸에 흡수되었다. 모든 팔부신중의 영혼을 흡수한 창힐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듯 몸에 불길한 혼돈의 기류를 흘리더니, 이윽고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 하하하하하!! 계획이 절반 이상 진행되었다. 이렇게나 쉽다니! 괜히 마음을 졸였구나.]
" 이제 뭘 할 생각이지?"
[ 흐음. 우선 나를 알현하려는 자를 만나볼까 싶군. 잠시 기다리도록.]
후웅!
창힐의 모습이 이 정신세계의 공간에서 사라졌다. 단지 화면은 고스란히 남아서, [달기]의 몸으로 보는 시야와 감각이 내게 느껴지고 있었다. 창힐은 다시 달기의 몸을 조종하러 간 게 분명했다.
창힐의 눈 앞에는 진(秦)이 서 있었다.
최강의 초상기인이자 창힐을 지키는 3대 수문장이었던 그는 창힐의 시선과 마주치자 조용히 웃으면서 무릎을 꿇었다.
쿠르릉...
천둥이 치며 혼돈의 비가 내리는 삭막한 어둠의 대지 위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위대하신 인간의 왕을 뵙나이다."
나는 창힐이 곧장 진을 죽일거라고 예상했다.
' 저 새끼는 창힐을 배신했는데 저 더러운 인성으로 볼때 백발백중 죽이려 하겠지!'
내심 나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거악이 소악을 벌하는 장면은 볼 때마다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의 죽음을 보려고 집중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창힐이 천천히 자신의 입을 움직여서 말했다.
[ 오랜만이군...]
뭐?
저게 무슨 소리야?
저 놈들이 구면(舊面)이라는 건가?
그러자 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들어서 말했다.
" 역시 기억이 단절되셨군요. 혹시 [큰 굴레]를 넘기라도 하신 겁니까?"
[ 과연 대제왕이었던 자 답게 영민하군. 그 말대로, 나는 창힐이되 창힐이 아니다.]
" 후, 알아들었습니다. 그럼 다시금 인사드리겠습니다, 창힐이시여."
진이 재차 머리를 숙여서 인사했다.
" 과거 제 봉선의식을 도와주셨을 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지요."
창힐이 그 말에 대꾸했다.
[ 용케도 부활했군. 그 어이없는 소원을 들었을 때는 가망이 없다 생각했는데.]
" 저 또한 이 세상에 집착이 남달라서..."
[ 크흐흐, 대단하구나.]
이어진 창힐의 말에 나는 화면을 지켜보다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진시황제(秦始皇帝)라 불렸던 자여. 이미 궁극의 초상기인을 손에 넣어 불로불사를 손에 넣고 무엇이 모자라 내 앞에 나타났는가?]
진시황제?!
어째서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오지?!
아니, 저 놈은 백발의 초상기인일텐데 어째서 진시황이 될 수 있지? 원래 인격에는 내가 유신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건 절대 눈 앞의 저런 인격이 아니었다! 도대체 진시황이 어째서 백발의 초상기인이라는 말인가?!
진이 그 말에 대답했다.
" 창힐이시여. 이제 곧 천상의 존재가 되시고 나면 진정한 신이 되어 이 세계의 [큰 굴레]에 간섭할 수 있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지상의 지배권을 제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 호오... 내가 그럴 필요가 어디 있지?]
" 지금은 아직 인간만을 움직이고 있기에 인과율이 크게 요동치지 않으나 곧 칠요를 해방하기 시작하면 거대한 인과율이 파동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강대한 [옛 지배자]들이 현실세계에 손을 뻗을터, 그들을 물리치느라 바빠서 지상을 다스릴 겨를도 없지 않겠습니까?"
[ 흠... 내 권속을 이끌고 싶다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진이 씨익 웃었다.
" 팔부신중이 사라진 지금, 저 정도라면 그럴만한 힘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 그 말은 맞군.]
창힐이 문득 눈을 빛냈다.
[ 좋아... 너를 내 정식 사도로 임명하겠다.]
" 감사합니다."
[ 네게 힘을 줄 테니 백웅의 동료들을 모두 여기에 사로잡아 와라.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쿠오오
창힐이 진의 머리에 손을 대자 갑자기 가공할만한 힘이 진에게 깃드는 게 느껴졌다. 원래도 강한 놈이었지만 갑자기 몇 배나 강력해졌다는 게 살갗을 에릴 정도로 와닿았다. 잠시 후 진은 수상쩍은 미소를 남기며 사라졌다.
" 그럼 갔다오겠습니다."
안 돼!!
나는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모르긴 해도 진의 힘은 사도 달기와도 싸워볼만한 수준이었는데 그런 놈이 훨씬 더 강해졌다면 지금 내 동료들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아군에 제천대성과 공공이 있어도 전멸당할지도 몰랐다. 나는 급히 내면세계에서 소리를 질렀다.
" 멈춰!! 제기랄!! 창힐, 그만두라고!!"
슈우욱
그러자 창힐의 모습이 다시 내면세계에 나타났다. 그는 아까와 달리 인간형의 변신한 달기의 모습을 한 채 요염하게 웃고 있었다.
[ 그만두길 원하나...? 그럼 아까 말한대로 모든 걸 내게 양도해라. 칠요, 보물, 천암비서와 전생능력 모든 걸!]
" 빌어먹을! 대체 무슨 차이야!!"
[ 큰 차이가 있지... 나는 네가 굴복할 때까지 계속 비슷한 일을 할 것이다. 네 동료를, 네 연인을, 네 인연을, 네 모든 것을 파멸시키겠다. 현명하다면 그게 반복되기 전에 내게 굴복하여 전생능력을 넘기지 않을까...?]
" ......"
[ 약속은 지킨다... 네가 모든 걸 넘겨준다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고 동료들도 보호해 주지... 아주 좋은 거래란 말이다... 후후.]
웃기고 있네!
수천 년 전부터 자기 수족이나 다름없는 팔부신중까지 속여먹은 새끼가 나를 상대로 약속을 지키겠냐!
내가 바본줄 알아?!
나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본심을 다 내놓을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안된다고 하면 창힐은 그대로 진을 보내서 동료들을 모두 살해해버릴 것이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 제길... 뭔가 방법이 없나...'
너무 큰 외통수를 맞았다. 이대로라면 창힐에게 모든 걸 빼앗기고 처참하게 죽는 결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뭔가 뒤집기에는 너무 불리한 상황이라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였다. 문득 내 머릿속에 망량선사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 넌 만일에 인류를 구할 수 있지만 세계가 멸망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 일어날 수 있는, 그리고 현재 가장 쉽게 관측할 수 있는 상황이지. 네 선택을 듣고 싶다.]
[ 역(易)이 일어나지. 인류는 멸망하지만 세계는 구원받는다.]
......
그 고양이 새끼는 내게 왜 그런 질문을 했던 걸까?
확실한 건 놈의 예지는 거의 백발백중이었으며 실제로도 놈은 내게 창힐이 개념의 형태로 빙의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망량선사의 말대로 머지않아 저 양자택일은 선명한 형태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선택이 다가온 순간인가?
그건 확신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저 예지가 있는 이상 나는 한 가지를 확실히 할 수 있었다.
' 내가 양자택일을 맞이할 때까지는 나는 죽지 않아!'
예언의 특징은 예언이 이뤄지는 시점까지는 결코 대상자가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친다면 지금의 상황은 아직까지 절망적인 게 아니다. 내가 아직까지 뭔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남아있기에 망량선사의 이야기가 성립하는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나서 말했다.
" 창힐."
[ 마음을 정했나?]
" 양도할 수도 있다. 단지 칠요를 다 모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싶어."
[ 어떻게 되다니? 너는 그 결과를 모르는가?]
" 나는 지금까지 칠요를 모으기 위해 백년 이상 노력해 왔다. 적어도 그 결과 정도는 알고 나서 넘기고 싶어."
[ 후후... 육요를 해방하고 나면 왕의 시험이 치뤄진다. 그 시험은 황제 공손헌원의 대리자가 직접 자격을 보는 것... 그 시험의 결과에 따라 마지막 칠요인 일요에 도달할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나는 창힐에게 물었다.
" 그 왕의 시험이 뭐냐니까."
[ 그건 모른다.]
" 말이 돼? 네가 직접 칠요에 봉인문자를 새겨넣기까지 했으면서."
[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삼황오제가 그건 모른다. 그걸 아는건 오로지 황제 뿐...]
" 미친... 넌 황제를 배신하고 기어오는 혼돈의 편에 들어갔는데도 그를 만나는 게 두렵지도 않은가?"
내가 질려서 물어보자 창힐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 그 분은 그렇게 속이 좁은 분이 아니시다. 이미 [옛 지배자]의 고리에서 반쯤 벗어나신 분... 전 우주에서 손에 꼽히는 절대자이시니 나를 벌하실 리가 없다. 애초에 내게 제왕의 자격과 칠요의 도전자격을 부여하신 것도 그 분이시다. 그 분은 모든 칠요의 도전자에게 관용을 행사하신다.]
" ......"
[ 너무 거대하셔서 선도 악도 무의미한 존재. 그것이 바로 황제이다.]
대체 무슨 근거야?
나는 창힐이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을 보이는 걸 보자 황제 공손헌원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확실한 건 너무 절대적인 존재라서 선악을 초월한 중용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도리어 두려워질 정도다.
저 교활하고 잔악한 창힐이 이 지경에 와서까지 존경심을 잃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게 황제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설마 내가 나중에 황제를 직접 대면하면 미쳐버리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나도 내 맘대로 하겠다."
이판사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저번처럼 또 다 뒤엎을 수밖에 없다.
쿠우우우
나는 내면의 인과율을 느꼈다. 본디 불가능한 일이지만, 달기의 몸에 깃들어 혼돈과 요력을 사역하자 그게 확실히 느껴진데다 창힐까지 내 몸에 기어들어와 있으니 더욱 쉬웠다. 일순간 신에 이르는 인지영역을 얻게 된 나는 예전보다 훨씬 쉽게 내게 연결되어 있는 인과율의 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중 하나의 실을 골라내어서 집어내고는 마음 속으로 외쳤다.
멸망의 때에 흐르는 성좌(星座)여! 나, 그대의 힘을 빌리노니, 다가올 천년의 때를 경배하노라!
" ......"
안 된다.
왜 안 되지?
' 아 맞다! 아수라한테 썼지.'
깜박하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수단을 택했다.
' 그럼 꿩대신 닭.'
쿠구구구구
[ 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 좋은 짓!"
창힐이 경악했으나 나는 외쳤다.
" 전욱이여! 달기의 육체를 바치겠으니 창힐을 패 주십시오!!"
그 순간, 내게 묻혀있던 전욱 사도의 인과율이 작동하면서 곧장 삼황오제 전욱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내가 시간의 권능을 사역함과 동시에 전욱이 만귀전에서 눈을 번쩍 떴고 그의 맨얼굴이 나와 마주보게 되었다.
전욱은 큰 불쾌감으로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으나 이윽고 내 말에 응답했다.
[ 일이 끝나면 네놈도 죽여버리겠다...]
단순경고가 아니라 실제로 전욱은 창힐을 처리하고 나면 날 죽여버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허탈하게 대꾸했다.
" ... 맘대로 하십쇼..."
뒷일은 알 게 뭐야.
외통수만 무르면 됐지.
쿠콰쾅
다음 순간, 정신세계에 거대한 파멸의 흑광이 번개처럼 내려꽂히더니, 그 자리에는 거대한 어둠의 거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 아닛?! 대체 어떻게...]
창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자, 전욱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외쳤다.
[ 날 보고 싶었나, 창힐? 이 쥐새끼같은 놈아!!]
어느 새 창힐은 손쓸 틈도 없이 전욱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전욱은 이 정신공간에서도 마음껏 본체의 힘을 쓸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사도 달기의 몸을 통째로 바쳐서 인과율을 줬기 때문이었다.
[ 저, 전욱...]
[ 넌 끝이다!!]
퍼버벅!
전욱의 솥뚜껑같은 거대한 손이 창힐을 잡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