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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토요가 저 놈의 심장이라니!
확실히 심장에 엉켜 융합되어 있는 건 과거에 본 적 있는 토요 팔괘도의 두루마리였다. 다만 그 크기가 원래보다 축소된 듯 했고 심장과 융합된 지금은 마치 괴이한 생명체처럼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그 순간 달기가 지닌 능력 중 하나인 염동력을 발휘해서 토요를 내 쪽으로 가져오려 했지만 심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진은 내가 염동력을 쓴 걸 알고 있는지 그저 훗하고 웃었다.
" 초상기인은 동서방 마도기술의 결정체이자 초상능력의 정화. 그 정도 잔재주가 내게 통할거라 생각하나?"
" 어쩌자는 거냐? 심장 자랑하냐?"
" 그럴 리가."
내가 진을 노려보자 놈은 다시 심장을 쑥하고 오른쪽 가슴으로 집어넣었다.
" 아무튼 고맙군. 덕분에 외차원을 둘러싸는 이 혼돈의 뱀을 기습할 틈이 났다. 만만치 않은 놈이었는데."
스으으으...
진은 서서히 옥좌 뒤편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놈은 마치 비웃듯 한 마디를 남겼다.
" 오기 싫으면 안 와도 돼..."
파앗
진이 사라진 장소를 보면서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저 놈은 십중팔구 수문장이 제압된 틈을 타서 창힐을 만나러 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행동은 굳이 내가 따라오지 않아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창힐을 만나러 따라갈 수 없는 이유는 놈의 의도와 정체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 저 자식이 원하는 건 대체 뭐지?'
처음에는 나와 토요를 걸고 왕의 자격을 거래하려고 하다가, 그게 여의치 않자 수문장의 제압을 목표로 걸었다. 그리고 수문장이 제압되자마자 창힐을 만나러 가 버린 것이다. 나는 일련의 흐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파악하기 쉽지가 않아서 곤혹스러웠다.
하지만 문득 뭔가 연결고리가 보였다.
' ... 왕의 자격. 그건가?'
진이 제일 처음 거래조건으로 내건 것은 왕의 자격이다. 그 말은, 왕의 자격이야말로 놈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며 양보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 그리고 지금 창힐을 만나러 간 것도 왕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어서라고 생각하면 약간 앞뒤가 맞는 기분이 들었다.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놈이 내게 '오기 싫으면 안와도 된다'고 한 말에는 그런 의미도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창힐의 수문장을 치우는 일은 다 끝났으니 자기 볼일만 보겠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창힐에게 왕의 자격과 관련된 뭔가가 있을까?
아니다. 저 말 자체가 나를 저기로 끌어들이려는 함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책략과 계교에 많이 데여봤기 때문에 도저히 행동을 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 제기랄! 저 자식, 말 한 마디로 날 묶어버렸군.'
차라리 시간정지능력이라도 써서 덤벼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자신이 가진 힘을 과신하지 않고 책략으로 승부를 보는 놈이었다. 저런 놈이 진면목을 드러내면 굉장히 골치아파지기 때문에 나는 고민이 되었다.
판단컨대 시간적 여유는 없다. 만에 하나 저 놈이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진짜로 창힐을 상대로 뭔가 해보려 하는 거라면 모든 게 망해버린다.
지금은 선택해야할 때.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안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 ... 놈이 일부러 내게 토요를 보여줬어. 결국 진을 쓰러뜨리거나 놈에게서 강탈하지 않는다면 육요를 모을 수 없다는 뜻. 그렇다고 다른 육체로 놈에게 도전하기에는 위험이 너무 커.'
그렇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달기의 육체로 뭐든 이룰 수밖에 없다. 나는 마음을 정하고는 곧장 옥좌 뒤편의 혼돈의 통로로 뛰어들었다.
파앗!
내가 혼돈의 통로에 뛰어들자, 그 곳에는 마치 소용돌이 치는 듯한 우주의 성천(星天)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발을 내딛자 내딛은 곳에 반투명한 빛의 계단이 생겨났고, 마치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지는 원형 통로가 있는 듯 했다.
나는 통로의 아주 먼 곳에 진의 신형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진은 나를 힐끔 뒤돌아보더니 계속 걸어갔고, 나는 뛰어서 진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위이이잉...
' 쳇.'
내가 뛰어가려 했으나 빛의 계단은 마치 정해진 시간마다 이동하게 해줄 수 있다는 듯 내 위치를 고정시켰다. 아무래도 이 곳에서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는 게 전제조건인 듯 했다. 나는 별 수 없이 한 걸음씩 옮기면서 통로의 안쪽으로 다가갔고 진과의 거리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서서히 진과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진은 웬 커다란 문 앞에 서서 문을 올려다보고 있었으며 아마 그 문이 이 원형통로의 끝인 듯 했다. 내가 거의 다 오자 진이 나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 겁쟁이는 아니군. 동료를 안 불러온 걸 보면."
" 닥쳐. 대체 무슨 꿍꿍이속이냐?"
" 지금 보듯 창힐은 의심많은 자라, 수문장이 모두 돌파될 때까지 대비해서 강한 결계를 쳤다. 그래서 3대 수문장 중 하나인 달기가 네게 육체를 뺏기고, 나도 칠흑의 뱀을 제압했는데도 아직도 장해물이 있어."
" ......"
고오오오
나는 달기의 요력을 끌어내며 눈에서 혈광을 흘렸다. 인간형이라고 하지만 몸체가 클 때와 비교해도 힘은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저 놈을 당장 잡아족쳐버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이 웃었다.
" 후후. 그렇게 내 의도를 알고 싶나?"
" 제기랄! 뜸들이지 말고 말할거면 빨리 말해."
" 나는 창힐이 최후의 승자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게서 지상왕(地上王)의 직인을 얻으려는 것 뿐이야. 왜냐하면 창힐이 승천하여 진정한 왕이 되고 나면 천상의 존재가 될 테고, 지상의 지배권은 남게 될 테니까... 그 지배권만이라도 얻고싶군."
" ......?"
" 그렇게 궁금하다면 따라와 봐라. 나는 창힐과 교섭할 자신이 있다."
쿠구구궁!!
진은 문에 힘을 주더니 혼돈을 불어넣어서 바로 열어버리고 말았다.
' 이 자식! 어디까지 사람을 얕보는 거냐!'
나는 재빨리 진에게 달려들어서 공격했으나 난데없이 시공이 멈춰버렸다.
쩌정
나는 아무리 시간정지능력이라도 강력한 혼돈의 힘에는 파해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달기의 요력과 혼돈을 끌어내었다. 그러자 멈춘 시간이 풀려나면서 나는 다시금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진은 그 순간 내게로 일 장을 내뻗으며 말했다.
" 발동."
후욱!
나는 그 순간 팔에서 힘이 빠지면서 내 공격에 실린 위력이 다 사라졌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황급히 위기감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자, 진이 말했다.
" 대단한데. 내가 노리고 능력을 썼는데도 쉽게 피하다니..."
" 무슨 짓을 한 거냐?"
" 토요가 내 심장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나? 본래 토요는 법술을 파해하는 능력이 있지만 초상기인의 능력과 합쳐져서 이제는 혼돈을 흩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 ......!!"
" 신살(神殺)능력이라고 봐도 좋겠지, 후후. 나는 사도나 마왕도 죽일 수 있다. 조건이 갖춰지면 [옛 지배자]라고 해도."
나는 진의 말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혼돈을 토요로 제압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초상기인과 합체될 경우의 한정적 조건이긴 했으나 나는 칠요의 가공할 가능성을 눈 앞에서 본 느낌이 들었다. 토요만이 특출난 칠요가 아닐테니 다른 칠요 또한 저런 식으로 응용이 가능한 건 아닐까.
' 방금 전 칠흑의 뱀을 제압한 것도 토요의 힘인가.'
지금 달기의 몸으로 마주해서 망정이지 눈 앞의 초상기인, 진은 역대 전생에서 마주했던 적들 중 최강수준의 적이 분명했다. 다행히 달기의 힘으로 놈의 시간정지에 저항할 수 있기에 망정이지 원래는 상대가 불가능한 놈인 것이다. 내가 놈을 경계하고 있자 진은 문을 마저 열면서 말했다.
" 너도 왕이 되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네 편에 붙어볼까도 생각했으나 네가 왕의 자격을 포기하지 않으니, 창힐에게 붙어서 그 힘으로 네가 가진 칠요를 빼앗겠다."
" 너...!!"
" 난 기필코 인간의 왕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럼 잠시 후에 보자, 하하하."
파앗
나는 문 안으로 사라진 진을 보며 어렴풋이 놈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 수문장을 다 없애고 창힐에게 자신을 유일한 사도로 삼아줄 걸 청원하려 하는 건가?!'
아무래도 역학관계를 이용해서 창힐에게 교섭을 걸 생각으로 보였다. 하긴 모든 수문장이 뚫리고 칠요가 다 모이기 일보직전이라는 위기상황이기에 아무리 창힐이라도 진의 제안을 무시할 수는 없으리라.
그리고 놈이 만일에 창힐과의 교섭에 성공한다면 더욱 강대한 힘을 얻어서 우리를 공격하러 올 것이다. 지금의 진만 하더라도 달기의 본체로 싸워서 이긴다는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는데 그 정도면 재앙이었다. 같은 사도급이라 해도 [옛 지배자]가 힘을 어느정도 몰아주는지에 따라 천지차이가 났다. 내가 일단 따라와서 놈의 의도를 듣는 게 옳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 윽... 시간이 없는데 그러면...'
하지만 이대로 창힐의 면전에 뛰어드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나는 창힐에게 있어서 최선으로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낙인 찍힌 것이다. 별로 강하지도 않은데다 칠요를 5개나 갖고 있어서 나만 후려패서 칠요를 뺏으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래도 창힐의 제안을 뿌리친 구원(舊怨)이 있었기에, 창힐은 나를 보자마자 찢어죽이려 할게 분명했다.
그러면 이대로 진이 교섭에 실패하기만을 기대해야하는 건가?
그건 달기의 몸까지 뺏아놓고는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진이 처음부터 이 구도를 예상해놓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놈의 계획을 박살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하지만 딱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이대로 얌전히 물러나는 게 최선인데 그렇게 되면 악수에 악수를 거듭하다가 자멸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이렇게까지 답이 보이지 않는 선택도 드물었기에 나는 깊게 고민하다가 마침내 마음을 먹었다.
" 제길! 어디 해 보자!"
이렇게 된 이상 나도 창힐과 교섭해 본다!
놈과 얘기하면 뭐라도 얻어낼 수 있겠지!
후악
나는 혼돈을 헤치고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현왕의 인으로 다시 몸을 뒤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그것만 믿고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방금 전의 맑은 성천의 느낌과 달리, 혼돈과 악이 뒤엉킨 진흙탕같은 공기가 느껴졌다. 예전에도 몇 번 느낀 적이 있었던 [옛 지배자]의 영지의 느낌 그대로였다.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치사량의 혼돈이 쉼없이 덮쳐오고 혼돈에 왜곡된 이생명체와 괴물들이 포효하는 대지였다. 세상사람들은 이런 곳을 흔히 지옥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나는 그 지옥도에서 진의 기척을 찾았다. 혼돈의 맹수와 야수가 돌아다니는 이 대지에서 어둠의 포효가 쉼없이 몰아쳤지만 그래도 달기 자체가 혼돈의 존재였기에 압박감은 없었다.
' 저기 있군.'
나는 머지 않은 곳에 거대한 제단이 설치되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진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서 재차 진을 공격했다.
휘익!
하지만 진은 또다시 시간정지능력으로 간단히 내 습격을 피해내 버렸다.
' 아 제기랄! 짜증나네 저 새끼!!'
나는 속으로 역정을 냈지만 순간 놈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 표정은 방금 전까지 자신만만하고 득의양양했던 것과는 달리 곤혹스럽기 그지없어 보였다. 진은 멍하니 제단을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 ... 이럴 리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 진!! 창힐은 어디 있냐?"
" ......"
" 네가 무슨 교섭을 하든 내가 방해해주마!!"
내가 놈을 노려보자 진은 멍하니 혼돈의 하늘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 없다."
" 뭐?"
" 창힐은 여기... 없다. 의식은 진행되고 있는데 어째서?"
나는 놈의 말을 듣자 코웃음쳤다.
" 헹, 꼴 좋군. 그렇게 자신해 놓고 창힐이 머무는 방이 어딘지도 파악하지 못했나보지? 얼빠진 새끼!"
" ... 그런 문제가 아니다... 여기가 아닐 리가 없다. 이 외에는 창힐이 있을 곳이 없는데... 여기가 바로 그의 임시 본거지인데. 어떻게 [옛 지배자]가 이토록 홀연히 사라질 수가..."
진이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자 나는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괜히 용기를 내서 들어왔다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더 이상 네놈 장단에 놀아날 이유도 사라졌군. 그럼 일단 이 자리에서 네놈을 반 죽여놓고 토요를 가져가겠다."
놈의 기묘한 능력이 신경쓰이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못 이길 정도는 아니다. 이 자리에서 달기의 본체로 변신해서 싸운다면 엄청난 내구도와 혼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못해도 동귀어진까지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놈을 반죽음으로 만든 뒤 나는 원래 몸으로 되돌아가서 토요를 회수하러 오면 되는 것이다.
' 토요의 봉인술만 조심하자.'
이제 있는 힘껏 싸우면 된다!
내가 본체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 으으윽..."
뭐지?
나는 갑자기 머리가 크게 아파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뭔가 기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마침내 여기까지 왔구나... 드디어!]
이 목소리는.
분명히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 왕의 운명을 가진 자, 여기까지 인도하느라 힘들었다.]
내가 망량의 죽음과 함께 명경을 전해받고 가사상태에 빠졌을 때, 내게 왕의 운명을 논하며 현혹했던 그 목소리의 주인. 나는 놈이 뭐하는 존재인지 몰랐지만 지금 다시 직면하게 된 것이다.
환영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 환영은 고대의 제관을 쓴 채 얼굴이 보이지 않는 혼돈이었는데, 그 환영이 내게 말을 걸었다.
[ 고비가 많았으나... 그 모든 것은... 내가 본디 가지고 있었던 제왕의 운명력(運命力)으로 헤쳐나왔다. 너 혼자만의 운으로 그 모든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느냐...]
[ ... 아주 길었다. 후후...]
넌 누구냐?
[ 칠요를 다섯 개 씩이나 모을 수 있었던 기오막측한 운... 그게 정말 네 혼자 힘이었다 생각하느냐... 너와 나의 운명력이 합쳐진 결과였다...]
[ 나 또한 황제 공손헌원에게 인정받은 제왕...]
눈 앞의 환영은 진에게는 보이지 않는 듯, 진은 내가 허우적거리는 꼴을 의아하게 보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진에게 정신을 쏟을 겨를도 없이 그 환영을 죽어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 가장 필요한 시점... 드디어 현신할 수 있게 되었다.]
[ 한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그때는 여의치 않아서 넘겨버렸지.]
바로 이 놈이다.
이번 24번째 전생을 갖고논 배후가 바로 이놈이 분명했다.
넌 누구냐고!!
환영은 내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히쭉 웃더니, 갑자기 내게로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후와아아악!!
그리고 나는 그 순간 내 정신이 크게 떨어져 나가는 듯한 충격과 함께, 내 정신에 [거대한] 무언가가 크게 비집고 들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치 좁은 방에 두 명이 억지로 비벼서 들어가듯 고통과 함께 내 전신이 발작하듯이 떨렸다.
" 으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그게 단순히 기억일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인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놈이 나를 정신세계에서 쫓아내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그 압력에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지만 너무 밀어내는 힘이 강력해서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벅찼다.
안돼!!
이대로 정신을 뺏길 순 없어!
이미 반신(半身)의 통제권은 뺏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 정신의 반쪽을 집어삼킨 그 존재는 내 기억을 읽고는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 호오오... 위대한 술법으로 몸을 바꿨는가... 그렇다 해도 나는 이미 네 정신의 절반을 붙잡았으니, 이미 네 영혼은 내 소유이다...]
[ 당장 나가!!]
나는 발악하듯 외쳤지만 상대는 대꾸하지 않고 내 몸을 움직여서 하늘으로 손을 뻗었다.
[ 모르겠는가...? 동시성(同時性)을 감당하지 못하고 이 굴레의 '나'가 소멸해버렸다. 동일한 [옛 지배자]가 둘 씩이나 존재할 수 없기에 인과율이 '나'를 심판한 것이다. 이런 일은 우주 역사상 처음 일어나는 현상...]
[ ......]
[ 물론 나로서는 그 또한 예측한 바... 큰 굴레를 넘어온 내가 가진 인과율이 더욱 강력하니 당연한 일... 그러나 결국 '나'는 계속 존재하고 있으니 대결계를 파괴하는 의식은 계속되리라.]
나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재빨리 절연의 언령을 읊었다. 이는 대라신선조차 쫓아낼 수 있는 강력한 주문!
쿠우우우...
하지만 절연의 언령은 잠시 놈이 밀고들어오는 걸 약하게 했을 뿐 도저히 먹히지를 않았다. 놈은 절연의 언령으로 어떻게 해보기엔 너무 격이 높은 존재인 게 분명했다. 설마 이 주문에 이런 맹점이 있었다니...
안 되겠다.
끝까지 놈의 지배력을 이겨낼 수가 없다. 너무나 강력하다.
또한 놈의 정체가 내가 예상하는 '그것'이라면, 나는 여기서 끝장이다.
나는 이어진 놈의 말을 끝으로 잠시 의식을 잃고 말았다.
[ 전생자여. 나는 사황(史皇) 창힐(倉頡). 네 50년의 휴식 동안 모든 것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