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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746화 (74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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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이 삶이 처음이 아니라니?

' 아!'

나는 그의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잠시 후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 이걸로 마지막이다. 내 축복은 네가 패도(覇道)를 쉽게 걸을 수 있게끔 운명을 조정해 주고, 만일 네가 죽게 되면 네가 원했던 것들 중에서 아무거나 이뤄주는 것이다.]

[ 달기와 싸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그래서 선물로 한 가지 더 가르쳐주고 가겠다.]

[ 네게는 망각의 인(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환생(還生)할 확률이 높다.]

[ 모든 정명자는 윤회의 고리에서 망각하게끔 각인이 영혼에 새겨져 있다. 다만 아주 가끔 그 각인이 사라져 버리거나 애초에 없는 놈이 있다. 그런 놈은 기억을 지닌 채 환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14번째 삶 - 그 막바지에 항우는 내게 강림해서 대신 사도 달기를 쓰러뜨려준 후, 내가 원했던 걸 이뤄주고는 천계로 되돌아가 버렸다. 그 때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를 대답해 줬는데 그 중에는 망각의 인에 관한 것이 있었다.

항우가 말하길, 망각의 인이 없는 인간은 환생할 확률이 높다고 했다. 본디 모든 정명자는 윤회의 고리에서 망각하게끔 되어있으나 그 망각이 이뤄지지 않은 영혼인 것이다. 나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용중일에게 말했다.

" ... 당신, 설마, 환생자(還生者)... 인가?"

환생자 - 그것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자.

또 한번의 삶을 살아가는 자!

용중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말했다.

" 이야기할 게 많겠군.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나는 일행과 함께 신생 백련교의 내당으로 들어갔다. 이 곳은 새로이 지어진 건물이라서인지 백련교 특유의 신전같은 분위기는 없었으나 웅장하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었다. 나는 용중일과 마주앉은 상태로 말했다.

" 환생자라니 어떻게 된 거지? 그걸 내가 어떻게 믿어야 하오."

" 믿든말든 상관없소. 애초에 내가 왜 그 사실을 방금 전에 털어놓았다 생각하오?"

" ......"

용중일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 나는 줄곧 내 정보망을 이용해서 세상을 관찰해 왔소. 그리고 지금 세상의 이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소. 또한 백웅 당신이 그 흐름의 중심에 있다는 것도..."

나는 그의 말에서 뭔가를 눈치채고는 말했다.

" 나와 손을 잡고 싶다는 말이군."

" 그렇소. 내가 판단할 때 지금은 지독한 난세, 칠요를 많이 갖고 있는 당신과 손을 잡지 않으면 백련교가 생존할 수 없소. 그래서 내 비밀을 공유하는 각오를 보이려는 것이오."

그렇다면 자신이 환생자라는 정보를 내놓음으로써 동료가 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방금 전의 이야기는 그렇게 해석이 가능했다.

" 너무 편할대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내가 당신을 동료로 할지는 아직 전혀 생각해둔 바가 없소."

내가 대꾸하자 용중일이 말했다.

" 나는 제갈사가 시켰던 일을 모두 해 냈소. 그리고 제갈사가 당신의 책사라면 그 모든 행위는 자신의 주군을 위한 것일 터. 내가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일 것이오."

" 흠."

" 정 그렇다면 우리 백련교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것만이라도 확실히 해 주시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해 주겠소."

" ... 알았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나는 힐끔 옆에 있던 구천현녀를 쳐다보았다.

[ 구천현녀님. 저 자에게 망각의 인이 없습니까? 저 자가 환생자가 맞습니까?]

내 스스로 알아보고 싶지만 화안금정으로는 망각의 인을 확인할 수가 없다. 구천현녀의 술법에 기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질문에 구천현녀는 시해지술을 써서 잠시 용중일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 맞습니다. 망각의 인이 없으며 세월을 쌓아온 환생자군요.]

[ ......!!]

[ 아주 희귀한 존재입니다.]

나는 용중일의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하자 전율이 흘렀다.

환생!

불가의 사상이며 윤회사상의 결집으로 이야기는 숱하게 들은 것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채 새로운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일! 인생에 환멸을 느끼는 자들이라면 누구든 환생에 큰 매력을 느끼고는 했다. 물론 환생은 불가사상에서 큰 고통을 수반하곤 했으나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나서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유혹은 누구에게도 매력적인 것이다.

헌데 그 환생을 이룬 자를 지금 처음으로 보게 될 줄이야!

" 백련교를 적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소. 알고있는 걸 말해주시오."

" 좋소."

용중일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 내 진짜 나이는 사백이십 오 세이며, 지금은 6회차요. 용중일로 살아온 세월이 아마 최장수 인생이 될거라고 예감하고 있소."

사백여 년을 살아온 환생자인가.

" ... 진짜 이름은?"

내 질문에 그가 훗하고 웃었다.

" 용중일은 용중일이오. 당신은 내 전생의 이름이 궁금하겠지만, 이막종(李寞倧), 탁불주(濯彿奏), 위세연(委歲連), 선우파재(鮮于巴裁), 몽오심(朦梧心) 같은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을 것이오."

" 으음..."

정말이었다. 방금 용중일이 나열한 이름은 아마 그가 환생하며 거쳐왔던 이름은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하다못해 내가 아는 강호의 역사상 유명한 고수 중에도 아예 없었다. 나는 의문스러워서 용중일에게 말했다.

" 이상하군. 지금의 당신은 용중일이란 이름을 갖고있으며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 중 하나가 되어있소. 이전의 생에는 왜 이름을 떨치지 않았던 것이오?"

" 후후."

용중일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 첫번째, 이막종의 생을 살 때 나는 그저 평범한 남송(南宋)의 농사꾼이었소. 평생동안 논밭을 갈았고 내가 살면서 겪었던 가장 특이한 일은 악왕(鄂王)께서 금나라 군세를 멸하고 개선하는 행렬을 보았던 거였지. 나는 평범한 농사꾼으로 약 육십 세에 생을 마감했었소."

" ......"

남송의 악왕이라 한다면, 악비(岳飛) 대장군을 말하는 것이다. 금나라에 맞서서 남송제국을 지켜낸 전설의 명장으로서 간신 진회의 세치혀에 휘말려 파멸했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그 또한 무려 사백 년 전 일이니 굉장히 오래전의 일이다.

" 그런데 죽고 나서가 이상했소. 나는 갓난아이의 몸에서 눈을 떴고, 그 이름이 탁씨 가문의 탁불주라는 걸 자라나면서 알게 되었소. 나는 환생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새로운 삶을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소. 과거에 급제해서 벼슬길에 나아가기도 했지. 헌데..."

" 무슨 일이 있었소?"

" 나는 살다보니 이막종이 죽은 때와 탁불주가 태어난 때가 거의 같다는 걸 알게 되었소."

" ... 그 말은!"

용중일이 차분하게 찻잔을 들어올려 한 모금을 마신 후 말했다.

" 내 환생에는 틈이 없었소. 죽는 즉시 환생한다고 봤지.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탁불주로 살아가던 삼십 오 세 즈음에 조급해지고 말았소."

" 왜 조급해졌던 것이오?"

" 탁불주로 살다가 죽으면 또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나는 그때쯤 벌써 사는 게 꽤 지겨워져 있었소. 계속 환생을 하는 건 그리 달갑지 않았소."

" 뭐...?"

나는 황당해서 용중일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 이막종 육십 년, 탁불주 삼십오 년. 겨우 백 년을 살아놓고 인생이 질린다고 생각했소?"

내 관점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백 년이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벌써 생애가 백 년을 훨씬 넘었지만 아직 질린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는다. 그러자 용중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 이막종으로 살 때 나는 결혼하여 애를 가져 가장이 되었고 손주까지 봤었소. 농사꾼의 일생은 보기보다 밀도가 있어서 육십세에 죽었어도 많은 경험을 쌓았지. 그런데 다시 태어나서 탁불주로 살며 과거급제하고 또 결혼해서 애가 생겼소. 그때 난 이미 보통사람이 지닐 수 있는 삶의 경험을 훨씬 초과해 있었고, 상당히 지쳐버렸던 것이오."

" ......"

할 말이 없다. 그가 말하는 '보통 사람'의 기준이 나와는 굉장히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쌓은 경험과는 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 설마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용중일의 말이 이어졌다.

" 난 그 때 무한한 삶은 저주에 가깝다 생각했소. 마침 몽골의 쿠릴타이 칸이 중원을 침략해서 성도와 양양을 함락했던 시점인지라, 세상도 많이 혼란스러웠소. 나는 관직을 정리하고 전진교(全眞敎)에 입문하여 북칠진자(北七眞子)의 제자가 되었소. 전진교는 몽골제국에 호의를 사고 있어서 생존하기 쉬웠지."

" ... 거짓말하는 건 아니겠지? 북칠진자의 제자라면 전진교 초대교주 왕중양도 봤단 말이오?"

" 믿든 아니든 난 그랬소. 그 때 내공과 무공을 처음으로 익히고 양생술을 도모하여 장수하고자 했소. 왜냐하면 오래 살며 초인적인 힘을 쌓으면 삶의 지루함이 덜어질 것이며, 도교의 신비한 힘으로 내가 환생하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렇게 말한 용중일이 창 밖을 힐끔 쳐다보았다.

" 탁불주가 죽은 건 백삼십 삼 세였소. 몽골의 침략을 피해 동네의 도관에서 수련생을 가르치다가 늙어 죽었지."

" 그리고 또 태어났소?"

" 그렇소. 다음 생은 위씨세가의 위세연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여인의 몸이었소. 그 때 처음으로 성별이 다르게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 ......"

" 전생에 쌓은 무공지식이 있었기에 나는 여인의 몸으로도 상당한 무공을 성취해서 무림인이 될 수 있었소. 그 때는 이왕 이렇게 된거 고절한 무공을 익혀보자고 생각해서 당대 최고의 문파를 찾아다녔고, 그 때 처음으로 백련교에 입문하게 되었소."

" 흠!"

" 백련교에 들어가서 열심히 무예를 수양하다가 독신으로 칠십 이 세에 사망했소. 그게 내 3번째 삶이었소."

보통 사람이라면 용중일의 말을 재미없게 듣게 될 것이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뭘 하다가 몇 세에 죽었다는 짤막한 인생담을 누군들 재밌게 들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전생자로서 용중일의 말에 격하게 공감할 수 있으므로 굉장히 재밌게 들을 수가 있었다.

" 4번째 삶인 선우파재는 초원인이었소. 나는 그때쯤 지독한 우울에 시달렸는데, 왜냐하면 위세연의 삶이 끝날 때까지 내 삶이 반복되는 원인을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소. 난 그때 이미 삶에 크게 질려있었소."

" 그래서 어떻게 했소?"

" 모험가가 되기로 했소. 무공을 한평생 익혀봐야 답이 없으니 세상의 신비한 고문과 유적을 찾아다니면서 내게 일어난 이상한 일의 원인을 적극적으로 찾아내려 했소. 무공은 충분했기에 나이가 이십여 세가 되자 세상으로 모험을 떠났지. 그 당시에 죽을 때까지 하루도

멈추지 않고 움직였소. 중원은 물론 서장과 천축까지 돌아다녔을 것이오."

" ......"

" 그 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지. '이면(異面)'의 세계, 악몽과 같은 이족(異族)의 실체, 칠요나 고대신화에 대해서. 또한 내가 환생하는 이유도 망각의 인이 없어서라는 걸 알게 되었소."

지금부터가 진짜다.

눈 앞의 용중일은 3번의 삶을 살고 4번째부터 본격적으로 궤도에 뛰어든 것이다.

" 나는 그때부터 딱히 망각의 인을 부활시킬 방법을 찾지 않았소. 왜냐하면 이건 나만이 지닌 고유한 능력이라고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지."

" 왜 망각의 인이 사라졌는지는 알아냈소?"

" 그건 지금도 모르겠소만... 아무튼 나는 그때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소."

용중일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 이 세상이 위기에 처해있다면, 오로지 환생자인 나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거라 여겼소."

" ......!!"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용중일의 생각이 변화하는 궤도가 나와 굉장히 흡사해 있었기 때문이다. 용중일은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을 이었다.

" 선우파재의 삶이 끝난 후 5번째 삶인 몽오심의 생은 도가 고대유파의 무공을 수습하고 술법을 익히며 비밀을 캐는데 집중되었소. 나는 그 때 백련교의 고대서적을 입수했으며 고대 백련교의 제례의식에 대해서도 꽤 공부했었소. 도가와 불가에 숨겨져있는 고대 이족의 비밀도 계속 캤소."

" ... 그랬군."

나는 딱히 용중일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마 5번째 몽오심의 삶에서 그가 수신류나 마도의식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챈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가진 지식은 그 때 이미 웬만한 마도사를 능가해 있었으리라. 그가 원영신이나 천령단의 부작용을 즉시 알아챈 건 이미 전생(前生)에 지식을 다 습득해놓았기 때문이리라. 모르긴 해도 그는 지금 상당한 술법과 마법을 시전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나는 용중일에게 말했다.

" 당신이 황산파 고대검술을 복원할 수 있었던 것도 환생 덕분이오?"

" 복원이고 뭐고 나는 4번째 선우파재의 삶에서 황산파 검술의 맥을 잇는 생존자에게 직접 배웠었소. 그게 6번째 용중일의 생으로 넘어와서는 실전되었던 거 뿐이지."

" 그런가."

어처구니가 없다.

지금까지 그가 풍신류 검술과 황산파 검술을 동시에 달인의 경지로 익힌 이유가 - 그가 천재라서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저 무림의 세월을 쌓아오면서 배워온 것 뿐이라니! 눈 앞의 용중일은 딱히 무공천재인 게 아니라 살아있는 무공의 역사였던 것이다.

용중일의 눈빛이 순간 달라졌다.

" 내가 하는 말을 모두 확실히 믿는 듯 하군. 역시 당신도..."

" ......"

나는 용중일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 그는 나 또한 환생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용중일은 여러 번의 환생을 거듭하며 무공과 지식, 경험을 쌓아서 이번 삶에서 무시무시한 성과를 얻어낸 환생자였다. 그런 용중일의 눈으로 보기에 나는 용중일 이상의 준비를 해 온 환생자처럼 보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와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환생자와 전생자.

그는 세월을 이어오고 있으나 - 나는 세월을 반복하고 있다.

그건 굉장히 큰 차이일 수밖에 없었다.

' 어떻게 하지?'

나는 내심 고민했다. 그에게 환생과 전생의 차이를 말해주고 내 비밀을 솔직히 말해주는 게 맞을 것인가? 아닌 게 아니라 용중일이 마지막 일전에 참여해주면 편해질 것 같았고 그를 전생동료로 끌어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 ... 생각은 자유요. 아무튼... 당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 무림의 역사군."

" 후후."

용중일은 서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 나는 사대무류를 다 한 번씩 배워봤소. 물론 이 사실은 그 누구도 몰랐겠지. 이번 삶에서 풍신류의 무공을 배우면서 나는 사대무류의 무공을 결집시키는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기로 했고, 그 이름을 검형(劍形)이라 붙였던 것이오."

" ......"

정말 존경스러운 근성이다.

저 말대로라면 용중일이야말로 역대 백련교 고수중에서 제일 오랫동안 백련교 무예를 다양하게 익힌 존재인 것이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 조금 받쳐주긴 했겠지만 사신검형을 창안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 이러니까 최종흑막처럼 보일 수밖에 없지...'

본래라면 내가 관여하지 않았던 역사 속에서 진소청이 마주쳤을 가장 큰 난관이 용중일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수백 년간 환생을 거듭하면서 사대무류의 무공을 다 익혀본, 야망이 넘치는 초고수! 타고난 불가일세의 천재인 진소청에게 어울리는 숙적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용중일처럼 대단한 존재조차도 신격이 끼어든 판에서는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게 되며, 그나마도 용중일은 이면의 세계를 완전히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시간대비 얻어낸 정보의 효율로 치면 내 쪽이 훨씬 앞서고 있었다. 아마 이것이 전생자가 환생자보다 유리한 점이리라.

" 용중일. 당신은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왔기에 혈육을 혈육이라 인식할 수 없게 된 거요?"

" 유감스럽게도 그렇소. 용비천은 나를 친아들로 아꼈으나 나는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었소. 표면으로는 그를 경애했으나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지..."

" 그게, 비인간적인 변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소?"

" 그럴지도.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 걸 억지로 느끼려 해봤자요."

용중일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 나는 관심있는 일 외에는 하지 않소. 성욕조차 사라진지 오래요."

" ......"

비인외도(非人外道).

그의 표정에서 느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용중일은 딱히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저 자신의 목적과 욕망에만 충실할 뿐이며, 그것도 세상을 구하려는 건전한 목적인데 어째서 비인외도가 느껴진 걸까? 나는 그걸 깊이 생각할수록 마음속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이 놈은 아직 믿을 수가 없어.'

믿고싶지만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놈은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를 내게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확증은 없다고 하더라도 내게 신뢰를 주기에는 크게 부족했다. 내가 멍청하다면 몰라도 지금 상태에서 뻔히 속아줄 순 없다.

' 그럼 이용해먹고 버려야지.'

나는 고개를 크게 저은 후 용중일에게 말했다.

" 용중일. 미안하지만 당신에게 내 비밀을 모두 털어놓을 수는 없소. 그러나 현재 낙양을 둘러싼 상황과 창힐, 천계의 정보에 대해서는 다 알려주지. 대신에 낙양을 공략하는 일에 도움을 주시오."

" 정보를 듣고 결정하고 싶소만."

나는 용중일에게 현재의 정보를 간략하게 알려주었다. 물론 흑요석은 쓰지 않았고 어느 정도 진실의 가감을 섞은 이야기였다. 용중일은 잠시 그 정보를 음미하다가 말했다.

" 그렇군. 황궁의 토요만 얻으면 당신은 육요를 얻어 마지막 일요까지 얻을 수 있는 거군."

" 나를 돕겠소?"

" ......"

용중일은 묘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 백웅. 당신은 황제에게 인간의 왕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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