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745화 (744/1,615)

745====================

암천향(暗天鄕)

나는 제갈사와 잠시 의견을 교환한 후 당산을 비무에 내보냈다.

' 이기겠지.'

당산이 팽조와의 전투에서 허우적거렸다 해도 어쨌든 사천무림을 제패한 절대자이며 절대지경의 고수였다. 그런 당산과 5년 전까지만 해도 일개 표국의 표위였던 사공린이 싸우면 누구든 백이면 백 당산이 이길 것이라 예측할 것이다. 사실 보통이라면 서문혜를 내보내도 이길거라 생각하겠지만 신중을 기해서 당산을 내보낸 것이었다.

아직 당산은 무형지독을 온전히 얻지 못했으나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만큼 절대지경의 고수란 의미가 컸다.

삼전 이선승이었으니 이번 싸움에서 이기면 즉시 모든 정보를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비무가 시작되고 약 이십여 초가 흘렀을 때, 장내의 분위기가 크게 변하고 있었다.

따다당!

당산은 사천당문 비전의 무형은사(無形銀絲)를 조종해서 사공린을 공격하고 있었으나 사공린은 풍신류의 검법을 운용하며 차분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그건 명백히 이상한 광경이었기에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 내공도... 의념도... 당산을 감당할 만 하단 말인가?!'

당산에게는 내가 갖고 있던 영약을 상당히 투자한데다가 소림사의 비밀공간에서 기를 급격히 높히는 훈련도 시켜줬다. 게다가 당산 본인도 몇 년간 용맹정진하며 노력하여 의념과 기술을 크게 향상시켰으니 현 무림에서 당해낼 자가 거의 없어야 정상이다. 설령 전성기의

미야모토 무사시를 상대로 싸운다 하더라도 당산은 어느 정도 싸울 수 있으리라.

그런데 본래 햇병아리나 다름없던 사공린이 당산의 내공과 기술, 의념을 모조리 풍신류의 검법으로 막아내고 있다니?!

물론 아직 당산은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게 아니고 설렁설렁 싸우고 있다. 그렇다 해도 그녀는 현재 초절정의 경지를 넘은게 분명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 겨우 오 년만에...?'

사공린의 상대인 당산의 진경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다. 당산 또한 십 년도 되지 않아서 무지렁이에서 절대지경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산 본인이 타고난 무림 최고수준의 재능과 내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했다는 걸 생각하면 그 또한 일반적인 예는 아니었다.

본디 사공린이 절정지경의 고수였다고는 하지만 오 년 만에 초절정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서 절대지경과도 대무가 가능할 수준까지 오른다는 게 가능할까? 하지만 눈 앞에서 그 불가능한 일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게 사공린이었다.

그러자 당산은 공격하다말고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 그건 풍신류 풍마검법처럼 보이지만 풍마검법이 아니군. 대체 뭐지?"

" 풍신검형(風神劍形)입니다."

짤막하게 대답한 사공린이 말했다.

" 이것도 어디 받아보시길."

파지직!

번개가 튀는 소리와 함께 사공린이 신검합일의 형상으로 당산에게 돌격했다. 당산은 그 공격에 뇌신류의 기운이 섞인 걸 알아챈 듯 급히 사공린의 공격을 방어했으나, 사공린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듯 재차 회전하며 연속공격을 했다.

까가강!

까강!

당산은 무형은사를 마치 구체처럼 펼치며 사공린의 습격을 막아내었으나 더 이상 압도하는 기색은 보이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사공린의 검류(劍流)는 일 초식마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며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혼돈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 쳇, 이런데서..."

결국 당산은 당문비기로만 싸우는 걸 포기하고 뇌신류의 무공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가 의념을 발휘해서 뇌명까지 쓰며 격렬하게 공격하자 사공린은 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사공린이 자세를 취했는데, 그녀는 심적권청의 세계로 진입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개(改) 뇌신검형(雷神劍形)

빠지직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산은 뇌명을 써서 공격하다 말고 한쪽 손가락을 크게 다쳐서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것은 사공린의 반격이 당산의 헛점을 정확하게 찔러서 패퇴시킨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 파해식?"

당산은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 설마... 넌... 그 검형을 기반으로 사대무류의 모든 기술을...?"

" 그렇습니다."

사공린은 한 줌의 표정변화도 없이 냉막하게 대꾸했다.

" 제 스승께서 만드신 기술, 사신검형(四神劍形)! 사대무류의 기술이라면 파해도 시전도 자유자재입니다."

" ......"

" 당신은 뇌신류의 기술을 쓰면 쉽게 저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거야말로 좋은 먹잇감이군요."

당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말대로 당산은 뇌신류의 무술을 연마해서 빠르게 경지를 높이고 절대지경에 올랐으나, 뇌신류 기술 그 자체가 파해당한다면 어떻게 싸워야할지 막막해지는 것이다. 별 수 없이 그는 그 때부터 굴공참을 비롯한 칠대절학을 써서 변초로 대응했으나 사신검형의 대응력에는 크게 못 미치는 듯 했다.

나는 복잡한 눈으로 멀리에 앉아 있는 용중일을 보았다.

' 저 자식, 이런 걸 감춰놓고 있었군...'

첫 대면에서부터 검형을 운운하며 나를 습격할 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사대무류의 전반적인 파해식을 추구했을 줄이야! 게다가 내가 보기에는 사신검형의 잠재력은 완전히 드러난 게 아니었으므로 용중일의 진짜 깨달음이 무엇인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당산에게 전음을 보냈다.

[ 최대한 대결을 끌어 봐. 사신검형이 뭔지 최대한 관찰해야겠어.]

[ ......]

[ 왜 그래?]

[ 그런 수준이 아냐... 이 녀석...]

당산은 크게 당혹한 느낌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강적을 만났다는 반응이었는데, 평소의 유들유들한 성격을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사공린이 사신검형을 쓰면서 싸운다고 하더라도 칠대절학을 쓰면 못 버틸것도 아닐텐데 왜 저럴까?

타타탕

하지만 나는 이내 그들의 싸움이 이백 오십초 째에 접어들었을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위이잉

당산의 무수한 무형은사가 퍼져나가며 사공린의 목숨을 노렸지만 사공린은 그 순간 사신검형을 펼쳐내면서 화신(火神), 뇌신(雷神), 수신(水神)의 순서로 태세를 전환했다. 그 변화를 마쳤을 때 당산의 몸통은 텅텅 비게 되었고 그녀가 가볍게 찌르는 것만으로도 당산은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문제는 당산이 사공린의 찌르기를 막아낼 때 일어난 현상이었다. 당산은 칠대절학 중 진무칠절경의 방탄진기를 일으키며 칠성둔영으로 회피했고, 동시에 천축검의 기(技)를 써서 거리까지 조절했다. 본디 이 정도라면 못 막을 공격이 없을테지만 뜻밖에도 사공린은 그 찰나에 다시 사신검형을 쓰며 기이한 검극의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피핑!

" ......!!"

나는 그 순간 머리에 둔중한 충격을 맞았다. 사공린의 일검은 단번에 칠대절학의 묘의(妙意)를 파고들어 또다시 파해식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싸우는 중에 장삼봉의 절대무공을 읽어낸 거나 다름없었다. 지금부터 그 어떤 칠대절학을 쓰더라도 사공린의 일검에 패퇴당할 것이리라.

굴공참이 공간을 어그러뜨리는 흐름을 또다시 인위적으로 어그러뜨릴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 무... 무공을 죽이는 무공!'

그게 용중일의 비기 사신검형인가?!

슈욱!

당산은 결국 어깨에 한 칼을 맞을 뻔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크게 노한 표정을 짓더니 자세를 취했다.

" 크흐흐, 그놈의 사신검형... 얼마나 잘났는지 제대로 확인해볼까."

크우우우우

나는 당산의 자세가 당문비기 만천화우(滿天火雨)라는 걸 깨닫고 흠칫했다. 저 자세와, 놈이 의념을 다해서 가공하고 있는 흉맹한 기운을 생각하면 지금 그는 진심으로 살기를 품은 게 틀림없었다.

당산이 살기를 품었다는 것 - 그것은 지금까지 정통무공의 기(技)만을 써서 싸우던 제약을 벗어던지고 전심전력으로 상대를 없애버리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었다.

' 위험해!'

지금까지 당산은 제대로 싸운 게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절대지경의 고수이며 독공과 암기술을 전문으로 했기 때문에 제대로 싸우면 아무리 봐주려 해도 서로 살육전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이 바로 독공고수의 숙명이었다. 그래서 친선비무인 이 대결에서 독과 암기를 최대한 봉인한 것인데 이제 그 수단을 해금하게 되면 그의 전투력은 비약적으로 오르게 될 것이다.

단순히 전투력이 오르는 게 문제가 아니다.

무형지독(無形之毒)!

당산은 아직 무형지독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으나 그 기초형태라 할 수 있는 천하제일의 극독을 의념으로 정제하는 게 가능했다. 안 그래도 천하일절의 암기술이자 당문 최강의 비기인 만천화우에 무형지독을 섞어서 펼치게 되면 사공린은 틀림없이 죽거나 장애를 입게 될 것이다!

' 제기랄! 어떻게 하지?'

문제는 사공린이 당산의 악랄한 성질을 긁었다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대등한 실력이거나 사공린이 크게 약했다면 모르되, 당산의 자존심을 긁을 정도의 강함을 지녔다는 게 문제였다.

지금의 사공린이 강하긴 하지만 절대 초절정의 벽을 넘었다고는 볼 수 없는 경지이기에 나는 앞날이 생생하게 보였다. 당산이 본격적으로 싸우면 사공린은 잘 다져진 횟감이 되거나 한줄기 독수가 되어 녹아버리고 말 것이다. 사공린이 당산과 정면으로 싸우기엔 아직 몇 년은 일렀다.

아무리 그래도 친선비무에서 사공린이 처참하게 죽게 만들 순 없다. 나는 당산을 말리려고 크게 소리치려고 했지만 나보다 한발 앞서서 뒤편에서 관전하던 용중일이 사자후를 터뜨렸다.

[ 그만!!]

흠칫

용중일의 사자후에는 의념이 실린 견제가 들어있었으므로 막 출수하려던 당산이 멈칫거렸다. 그가 곱지않은 눈으로 뒤편의 용중일을 쳐다보자, 그는 의자에서 일어서며 당산에게 포권을 했다.

" 그대가 이겼소. 우리의 패배요."

" ......"

당산은 납득되지 않는 표정으로 아직도 머뭇거리고 있었다. 살심이 들끓는 표정이 있다고 하면 바로 지금 당산이 짓고있는 표정이리라. 나는 저 표정만 보아도 당산이 사천당문을 멸망시킨 후 사천무림에서 어떤 대혈겁을 일으켰는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당산의 어깨를 두드렸다.

" 이제 됐어. 네가 그녀보다 강한 건 모두가 다 알아."

" ... 제길."

파앗

당산은 이빨을 꽉 깨물더니 휙하고 멸혼보를 일으켜서 어디론가 가 버렸다. 아무래도 사공린을 얕보다가 사신검형에 역습당해서 뇌신류 무공으로 밀렸다는 게 자존심이 크게 상한 모양이었다. 하긴 절대지경의 고수에게 있을 수 없는 망신이었으므로 지금 당산의 심정도 이해가 가긴 했다.

" 좋은 비무였습니다."

상황을 이해한 사공린은 깔끔하게 인사하고 물러났지만 나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 사공린이 5년 사이에 당산을 곤란하게 할 수 있는 초고수가 된 데다가, 사신검형으로 사대무류의 모든 초식을 파해할 수 있다니.'

아니, 사대무류 뿐만이 아니다.

사신검형은 근본적으로 무공을 죽이기 위한 무공이다. '초식' 그 자체를 다루는 이상, 경지가 어찌되었든 장기전으로 가면 누구든지간에 사신검형의 소유자에게 농락당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저 사신검형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말도 안 되는 초월적 재능과 견식, 감각이 있어야 할 테지만 - 사공린의 재능은 그걸 충족하고도 남은 게 분명했다.

칠대절학마저 읽혀버릴 정도라면, 천하의 모든 무공은 사신검형의 소유자 앞에 독안에 든 쥐와 같을 것이다. 조금만 초수를 나누다보면 어느 새 자기 무공의 파해식이 날아드는데 누군들 섬뜩하지 않을까?

사신검형을 이기기 위해서는 절대지경에서도 초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자는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고, 그나마도 대등하다는 것 뿐이니 실질적으로 사신검형은 최강의 무공에 가장 가까웠다.

게다가 공격력만 막강한 게 아니다. 방금 전 사공린은 사신의 검형을 원할 때마다 자유자재로 바꾸면서 각 사대무류의 장점만 취하는 게 가능했다. 즉 사대무류의 모든 무공을 넘어서는 대응력을 갖추지 못하면 사신검형의 방어력을 뚫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었다.

용중일이 말했다.

" 비무는 우리의 패배요. 그럼 질문할 게 있으면 지금 하시오."

" 아직이오."

" ......?"

나는 용중일의 의문어린 표정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나와 당신의 대결이 남았소."

용중일이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 억지를 부리는군. 싸울 이유가 없잖소. 내기는 그쪽의 승리라고 이야기 했을텐데."

나는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했다.

" 억지라도 좋소. 이번에 만일 내가 진다면 우리가 다 진 걸로 하겠소."

" 진심이오? 그런 자신감을 가질 정도의 실력인가?"

" 어쩌시겠소?"

" 좋소. 나야 칠요를 얻을 기회가 있다면 달라붙어야지."

용중일은 이윽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내가 하는 제안이 그저 멍청한 짓이라고 치부한 듯 했다. 또한 자신의 무공에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진소청이 내게 말했다.

" 백웅. 정말 괜찮겠소?"

" ... 괜찮소."

나는 결연한 눈으로 검을 쥐고 앞으로 나섰다.

" 용중일은 내가 직접 상대해야 하오."

보통은 이게 백이면 백 필요없는 싸움이라고 볼 것이다.

다 이긴 내기에서 쓸데없는 위험부담을 지고있다고 말하리라.

' 싸워야 해! 바로 지금!'

하지만 내가 판단할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억지로라도 지금 용중일과 싸워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용중일에 대해 알아내는 게 그의 세치 혀로 말하는 정보 뿐이고, 그가 품고 있는 진짜 무(武)에 대해서는 모르게 된다.

내가 직접 그와 부딪혀서 알아내는 생생한 무예의 체험이야말로 - 차후 생에서 나는 물론이고 내 동료들에게 큰 양식이 될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한테 싸우게 하면 그 체험을 전해받기가 너무 귀찮고 힘들었기에 내가 직접 싸우는 게 제일 나았다. 내가 전생자이기 때문에 이 어리석은 선택은 하책에서 상책으로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저 의뭉스러운 인간이 아무리 자신을 숨긴다고 하더라도 칠요를 걸고 싸우는 내기에서까지

자신의 진짜 무공을 숨길 수는 없으리라. 나는 그 무공을 기필코 체험해보고 말 것이다.

'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신외지물은 넣어둬야겠지.'

나는 해방칠요 두 개를 목갑에 넣어두고 화룡신검 또한 넣어버렸다. 화룡진인에게도 끼어들지 말라고 말해두자, 그녀는 그러겠다고 대꾸했다.

내가 평범한 철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서자 용중일이 서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투명한 눈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 이해가 가지 않는군. 백웅 그대가 보기드물게 강한 고수인건 인정하나, 천하를 제패할 정도는 결코 아니오... 5년 전만 해도 당신보다 강한 고수는 천하에 세 명이 넘었소. 석년의 백련교주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거늘 어찌 칠요와 천하의 비밀에 그렇게까지 다가가있는 거지?"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용중일에게 말했다.

" 그럼 한 수 부탁하오."

쿠궁

마치 방금 전 진소청과 독고성의 부딪힘처럼, 나와 용중일은 순식간에 일섬을 나누었다. 찰나지간에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나와 용중일의 초수가 분주히 부딪혔고, 수많은 절초와 변초가 서로간에 오갔다.

피잉

용중일의 몸이 제자리에서 세 바퀴나 휘돌면서 작은 구름떼를 만들어냈고, 이윽고 구름 속에서 열다섯 개나 되는 검강이 오색빛을 내뿜으며 날아오는 걸 느꼈다. 나는 저게 바로 사신검형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했다.

삼보절기!

나는 세 걸음의 운행으로 빠르게 용중일의 공격범위를 피해냈다. 당산 또한 삼보절기를 쓸 순 있었으나 그는 수행기간이 오래 되지 않아서 나만큼의 숙련도는 없었다. 용중일은 삼보절기에 공격이 빗나가자 눈에 이채를 띄더니 이내 좌수로 검을 휘두르듯 던졌다.

던져진 칼날은 짧은 순간에 마치 거인조차 토막낼 것처럼 거대해지더니 내 몸을 베어왔다. 이기어검술이란 걸 알아챈 나는 칼날을 검뢰로 막아내려 했으나, 그 순간 용중일은 다시 검형을 수신(水神)으로 변형시키며 어검의 성질을 뒤바꾸었다. 물처럼 유하게 흘러드는 음한공력이 내 움직임을 봉쇄했다.

퍼엉!

나는 동시에 칠성폭뢰지로 용중일의 의도를 분쇄하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멸혼보로 허공을 누비다가 천상제 경공으로 용중일의 뒤를 잡으며 검뢰를 날렸지만 용중일은 다시 검형을 바꾸며 순조롭게 막아내었다.

마치 음양(陰陽)이 교차하듯 합이 맞았다. 그것은 상대의 검형이 유연하게 찔러올 때마다 내가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언제까지 회피만 할 수는 없으리라.

여기까지가 약 십여 초.

나는 용중일이 지닌 사신검형의 성질을 알 것 같았다.

' 바꿀 수 있는 검형은 일단 뇌신, 풍신, 화신, 수신의 4종류. 하지만 거기서 다음 파생으로 넘어갈 때 4종류... 이런 식으로 적어도 찰나지간에 열 번은 변화를 바꿀 수 있군.'

기가 막힌 일이다. 이렇게나 빠르고 변화무쌍하게 검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천하의 그 어떤 무공으로도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다. 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 거기에 잘 읽히지 않는 독립적인 검류(劍流)가 하나 더 있으니... 실제적으로는... 다섯가지 변화가 초수마다 끈처럼 이어지면서 무한에 가까운 변화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일천만 가지 이상의 변화가 가능한 건가! 거기에 각 유파의 비기나 오의, 필살기도 쓰고싶은만큼 섞어 쓸 수 있다니...'

압도적이다.

진정으로 백련교 사대무류를 통합했다고 할 수 있는 건 원영신을 지닌 백련교주 독고운천이 아니라 바로 눈 앞의 용중일이었던 것이다! 단순히 원영신으로 상대의 경험을 베껴오는 걸 넘어서서, 용중일은 사대무류의 기본에서부터 통찰하여 4가지 무류를 마치 하나의 무공처럼 만들어버렸으며 - 그게 바로 사신검형이라 할 수 있었다.

백련교주가 원영신으로 사대무류의 비기를 무한대로 뿜어내는 게 겉으로 위력은 더 강할지 몰라도, 무공연계의 완성도는 사신검형 쪽이 압도적으로 높다.

사신검형은 백련교 무예의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나는 용중일을 노려보며 말했다.

" 사신검형이라기엔 한 가지 변화가 더 있군. 그건 뭐라고 하오?"

" 태을(太乙)!"

" 태을이라..."

" 실력은 확실히 천하를 도모할 수준이며 사대무류 장로급을 초월했군. 그러나 내게는 미치지 못하니, 칠요는 받아가겠소."

파밧

용중일이 다시금 나를 습격하듯 뇌신검형의 태세로 공격해 왔다. 뇌신검형이라지만 실제적으로는 놈은 일시적으로 뇌명과 유사하게 호흡을 따라하면서 신체능력을 증폭시킬수도 있고, 뇌신류 검법의 특징을 교묘하게 따오기까지 했었다. 그래서 나는 뇌신류 검호와 직접 맞닥뜨리는 기분이 들었다.

쉬쉬쉭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나는 코앞까지 검이 다가온 찰나지경까지 집중했다. 그 순간 검형이 뒤바뀌면서 풍신류의 검형이 되었고, 나는 손을 내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그러나 아슬아슬할때까지 기다리면서 뒤로 물러섰고, 내게 검극이 날아오는 짧은 순간에 용중일의 검이 무한의 변화를 내포하며 날아드는 걸 느꼈다.

이게 절대지경의 전투인가?

나는 이 무수한 변화와 환혹이 인간의 신체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며 절대지경의 의념으로만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이 영역에 발을 들이자 숨이 막히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서 절대 지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으므로 끝까지 집중을 했다.

코피가 양쪽에서 흐른다. 너무 집중했기 때문이다.

위이잉

문득 검마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 또한 눈 앞의 용중일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쾌검을 맞이한 적이 있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괴검을 생생하게 맞이했던 전투경험이 내 머릿속에서 흘러녹으면서 내 의념을 더욱 강화시켰다.

지금이라면 볼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현혹되지 않는다.

검형이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무사시의 괴검보다 강하지 않으며, 십이율주의 천의무봉보다 뛰어나지는 못하다. 절대지경의 생생한 전투경험이 내 눈앞에 아른거리면서 일시적으로 오성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뚫어져라 용중일의 초식을 관찰하다가 문득 기회를 잡고는 자연스럽게 검을 휘둘렀다.

까강!

상대가 뇌신검형에서 수신검형, 다시 화신검형으로 바꿨다가 뇌신검형으로 회귀하기까지 무려 3번의 변화가 있었으니 섣불리 손을 내밀었으면 반격당했을 테지만 기회를 잘 잡은 것이다.

" 으음!!"

검강의 빛이 불꽃을 튀기며 용중일이 뒤로 물러섰다. 그는 손아귀가 찢어진 듯 잠시 비틀거리다가 몸을 다시 곧추세웠다. 그는 자신의 손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 절대지경이 아닌데 왜 덤비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어."

" ......"

" 백웅 그대는 한 발을 걸쳤구려. 그 한 걸음을 넘어서기 위해 내게 도전한 거였군!"

나는 씨익 웃었다.

용중일이 내 의도를 간파했으나 이미 늦어 있었다.

망량에게서 업경을 전해받으면서 내 무예의 깨달음이 크게 늘었지만 아직도 절대지경의 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분명히 이전보다는 발전해서 확실히 한쪽 발은 문을 넘어서 있었다. 내게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아내고 동시에 용중일의 무예를 확실히 내가 겪어보기 위해 일부러 비무형식으로 그에게 도전한 것이다.

' 놓치지 않아.'

나는 지금 현재 절대지경의 의념을 제대로 쓸 수 없으므로 공격은 제대로 하지 못한다. 절대지경의 고수에게 통하는 건 절대지경의 공격 뿐이다. 어설픈 공격을 해봤자 전부 반격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 집중한다면 방어와 회피만큼은 그 영역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 물고 늘어져주마.'

나는 아직 절대지경의 숙련된 고수를 상대로 정면으로 맞싸울 깨달음이 없지만, 최고의 내공과 무공절기를 가지고 있다. 이걸 최대한 응용해서 버티며 용중일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몸에 각인시키겠다! 이건 다음 생부터 직접 내 재산이 될 것이다.

" 덤비시오."

그래, 난 이런 데서 수준차나 실력차를 거론하면서 우는 소리나 할 수 없다. 검마도 십이율주나 무사시에 비해서 분명히 불리했으나 끝까지 자기 임무를 수행하며 내게 의지를 넘겨준 것이다.

무사란 언제나 최상의 상태에서 필승의 싸움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위험한 순간을 역량과 천운으로 넘기기에 역전의 용사이며, 무사라고 불리는 것이다. 아직까지 실력이 부족하다면 싸우면서 더 늘리면 되는 것! 천박한 재능으로 천 년을 기어봤자 보잘것없다 해도 - 난 포기하지 않는다.

용중일이 말했다.

" 좋소. 당신이 내 검형을 어디까지 견뎌내는지 궁금해졌으니."

바라던 바다.

나는 이 자리에서 모든 걸 수습하기 위해 찾아왔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버텨주겠다!

사천 칠백 오십 구 초.

" 커헉..."

나는 검을 땅에 꽂으며 쓰러졌다. 지금까지의 초수를 나누기 위해 무려 세 시진이나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되는대로 버텨본 것이다. 나는 사천 칠백여 초를 버티면서 마치 수십일간 특별훈련을 받은 것처럼 용중일의 검형을 몸에 새기는데 성공했다. 내 몸 여기저기에는 칼집이 가득 나 있었지만 용중일은 다친 흔적 하나 없었다.

그러나 용중일 또한 다소 창백한 안색이었다. 나와 그렇게나 초수를 겨뤘으니 내공이 진작에 바닥난 듯 했다. 그는 땅에 무릎을 꿇은 채 버티고 있는 나를 복잡한 눈으로 보더니 말했다.

" ... 여태 깨닫지 못했는가. 절대지경끼리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 차이는 천양지차라는 걸."

" 흠."

" 하물며 경계에서 한 발 걸친 정도로는 내게 상대가 되지 않소. 당신은 절대지경에 입문했을 지언정 그 정수(精髓)는 알지 못하오."

확실히 나는 지금까지 용중일에게 치명타를 한번도 주지 못했다. 사신검형은 우연으로라도 미숙자가 뚫을 수 있을 만큼 약한 무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대무류의 통합을 달성한 무공을 상대로 그리 쉽게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 후... 이 자식... 정말... 너무 강하다.'

인간무인의 한계치에 거의 도달한 게 아닐까?

강호에서 무림 최강의 검제(劍帝)라고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나는 싸우면서 몇 번이나 포기할 뻔 했다. 내 일신의 무공은 절대지경에 걸쳐져 있는데 진짜로 용중일한테 거의 손대지 못했다. 이 정도의 무공이라면 지금의 용중일은 석년의 백련교주나 십이율주와 대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피칠갑을 한 상태로 다시 일어서며 씨익 웃었다.

" 하지만 당신도 날 끝장내지 못했지. 전력을 다했는데도. 어쨌든 난 당신의 필살초식만큼은 다 피하고 막아내었소. 또한 내 공격도 열 번 정도는 스치지 않았소?"

" ......"

주륵

용중일의 팔죽지에서 핏방울이 점점이 떨어져 내렸다. 가볍게 스친 상처가 나 있었다.

내 공격은 아예 안 먹힌 게 아니다. 용중일도 내 무예와 안목을 상대로 상처 하나 없이 이길수는 없기에 빈틈을 당한 것이다. 물론 치명타가 아니었으며 그저 살갗이 스친 수준이었지만 분명히 내게도 승산이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의 난 쉽사리 지지 않는다.

내게는 검마의 경험과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 난 아직 더 싸울 수 있소. 계속 해 보겠소?"

허세는 아니다. 피와 상처를 내공으로 지혈하며 계속 내공을 체력으로 전환하면 된다. 나는 이대로 이틀은 버틸 자신이 있었지만 상대는 결코 그렇지 못하리라.

" 후우 - 이건 억지요. 호법사자가 무한의 내공을 믿고 들이대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이오?"

용중일이 한숨을 쉬었지만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 할거면 계속하고 아니면 말고!"

" ......"

용중일이 신경질내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 내가 졌소."

용중일이 패배를 자인한 이유는 내게 실력이 딸려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계속 백날천날 싸우다보면 내 내공은 계속 회복되는데 용중일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신검형에 드는 내공을 최대한 효율있게 써서 사천여 초나 싸웠으나 지금부터는 선천진기마저 소모될 정도로 피폐해질 게 분명했다. 이대로 싸우면 체력과 내공 때문에 결국 내가 용중일을 쳐죽일 기회가 올 것이다.

물론 나와 같은 지구전 전략을 쓸 수 있는 호법사자는 현재의 용중일을 상대로 이렇게나 버티지 못한다. 무예의 깨달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뭘 해보기도 전에 사신검형에 당해서 목이 달아날 가능성이 크리라.

' 뭐, 백련교주나 미야모토 무사시한테는 이런 방법 안 통하겠지...'

그들이라면 나를 단기간에 쳐죽일 방법이 있다. 백련교주가 혼돈화를 하거나 미야모토 무사시가 일격필살의 절기를 날려온다면 나는 회복할 틈도 없이 죽으리라. 단지 용중일의 사신검형이 기술적인 점에 치중해 있어서 순간파괴력이 약하기에 내가 상성상 이득을 본 것 뿐이다.

조금 더러운 방법이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라도 다음 전생을 대비해서 이 자리에서 최대한 많은 걸 수습해야 하기 때문이다. 토요를 거둬갈 시기를 조금 늦춰서라도 백련교에 들린 이상 실패는 있을 수 없다.

" 그럼 한 가지, 질문을 하겠소."

" 그런 조건이 있었지."

" 솔직하게 대답해주어야 하오."

" 그러겠소."

나는 그를 노려보며, 가장 이해되지 않는 점을 말했다.

" ... 용중일. 당신 아버지 용비천이 죽었는데도 전혀 슬퍼하지 않는 이유가 대체 뭐요?"

" ......"

용중일은 잠시 입을 벌리다가 되물었다.

" 그런 걸 왜 묻지?"

" 난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고 싶소. 당신은 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목표가 무엇인지."

어이없을 정도로 비효율적인 질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묻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검을 부딪히면서 용중일이 어떤 인간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는데, 그 감에 따르면 용중일은 용비천에 대해서 냉정한 게 아니었다. 냉정한 걸 넘어서서 아예 무관심한 것 같았다.

그걸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검에 한 줌의 감정이나 원한도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깔끔한 검로(劍路)가 바로 그 증거였다. 아무리 협상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 하더라도 칠요를 건 일대결전에서조차 부모의 원수에게 감정을 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데 용중일은 제 1초부터 4759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원한이나 감정의 격랑, 심지어 그 편린마저 드러내지 않았다. 이는 인간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원수인 우리를 상대로도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태연하게 뇌신류를 포섭하고 독고성을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이상할 정도로 냉정한 태도가 모두 설명이 되어버린다.

풍신류의 후계자로서 풍신류 호법사자이자 아버지에 대하여 아무런 애정, 심지어는 증오나 감정조차 없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인가? 무림인에게 은원(恩怨)과 사문의 일은 목숨과도 같았기에 용중일은 전혀 무림인같지가 않았다. 아니, 무림인을 넘어서서 저건 인간의 감정상태가 아니다!

그 질문에 용중일은 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내 아버지가 아니니까."

그의 눈빛에는 뭔가 결심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 ... 용비천이 불륜을 저질렀단 말이오?"

" 그렇지 않소. 부친은 용비천, 모친은 사여정... 그들은 분명 내 혈육이자 부모가 맞소."

" 그런데 무슨..."

" 정을 줄 수 없었던 것 뿐이야."

" ......?"

용중일은 씁쓸하게 말했다.

" 나는... 이 삶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오."

============================ 작품 후기 ============================

약간의 내용수정이 있었습니다 혼선을 빚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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