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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어떻게 해야 저승에 갈 수 있지?!
' 남두성군과 북두성군이 지키는 북망산... 그 곳을 뚫는 수밖에 없어!'
그래야 명계에 갈 수 있다!
나는 대번에 방법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명계에 정상적으로 갈 방법은 따로 없으나 이미 이번 생에 명계의 출입권을 손에 넣은 것이다. 문제는 남두성군과 북두성군이 그 권한을 줘놓고는 도리어 입구를 틀어막아 지키는 상태라는 거지만, 그건 난이도가 있다는 문제일 뿐 못 간다는 게 아니다.
나는 천우진에게 말했다.
" 천우진, 북망산으로 가자!"
" ......"
" 천우진?"
" 지금부터 달려가도 사형이 있는 곳은 명계의 최심부. 십이율주에 대적할 전력까지 갖춘 채 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하다. 심지어 전국옥새가 없는 지금은 그 장소가 어디인지도 몰라."
" 으음."
천우진은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그냥 흑패를 쓰는 게 어떻겠나?"
" 아!"
" 흑패를 써서 신에게 빌어라. 그리고 사형의 목숨을 노리는 십이율주의 영혼을 없애버리면 해결이 될 것이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나는 천우진의 발상에 감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 그럼 나를 태산 밑으로..."
그 때였다.
" 백웅. 그건 안될 말이오."
진소청이 앞으로 나와서 나를 제지했다. 나는 막 천우진과 함께 장내를 벗어나려다가 진소청이 앞을 가로막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았지만 진소청의 뜻은 확고한 듯 전혀 움직일 기색이 없었다.
" 왜 그러는 거요? 지금 망량의 목숨을 구할 방법은 십이율주를 없애는 것밖에 없고, 그러려면 흑패를 써야 하오."
" 안 되오."
" 왜 안 된다는 거요?!"
내가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진소청이 차분하게 대꾸했다.
" 이유는 두 가지가 있소."
" 어떤 이유."
" 첫째. 망량이 현재 위험에 처했으나 그를 구하려 흑패를 쓰는 건 향후 당신의 운명을 결정지을 정도로 큰 지출이오. 흑패를 쓴다면 신 이외에는 누구든 없앨수도 있고, 또한 죽은 자를 누구든 살릴수도 있소. 냉정하게 말하자면 망량을 구하는데 흑패를 쓰는 건 낭비요."
" ......"
" 달리 말하자면 망량이 죽은 후 그를 되살려도 되는 거지."
나는 이를 으득 악물었다.
" 제기랄! 그걸 누가 모르는 줄 아시오? 나도 다 알아! 하지만 망량이 죽는 것 뿐만이 아니라 제갈사도 죽을 거고, 그들이 모조리 당하면 앞으로 우리는 책사 하나 없이 앞날을 헤쳐나가야 하오. 그리고 동료를 구하는데 그런 계산은 필요 없어!"
" 두 번째 이유를 말하겠소."
" 뭣..."
진소청은 마치 얼음처럼 냉정하게 자기 할 말만 했다.
" 둘째. 흑패를 써서 십이율주를 해치운다면 당장 이 상황은 모면하겠지만 역시 그가 어째서 명계에 생자의 육신을 가진 채 나타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망량을 정확히 노리고 공격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소. 그건 다음 번에도 마찬가지로 십이율주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번거로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는 뜻이 될 거요."
" ......"
" 흑패를 쓰는 건 굉장히 쉽고 편하고 강력한 수단이오. 하지만 판이 이렇게 크고 복잡해진 이상, 당신은 제갈사의 말대로 동료의 목숨을 장기말으로 취급할 필요가 있소. 또한 행동하기에 앞서서 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살펴야 하오."
그렇게 말한 진소청이 말했다.
" 망량을 구하지 말자는 게 아니오. 단지 그 방법이 최선인지, 그리고 우리가 해야할 일이 뭔지부터 확실하게 짚고 가야 하오. 지금 당신은 너무 상황에 휘둘리고 있소."
" 으음..."
" 일 각은 망량이 버틸 수 있을 거요. 그렇게 가정하고 잠시 작전회의를 해 보는게 좋지 않겠소?"
진소청의 말은 언뜻 소름돋을 정도로 차가워 보였지만 순간 내 머리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상황에 휘둘리고 있는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철저히 안전할 줄 알았던 망량과 제갈사가 한꺼번에 위기에 몰렸단 사실이 내 시야를 한 순간에 좁게 만들었다. 어떤 게 최선인지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달아버린 것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진소청. 하지만 현실적으로 흑패를 쓰지 않으면 망량을 구할 방법은 딱히 없지 않소?"
" 말했듯 그건 가장 편하고 강력한 방법. 하지만 다른 방법은 분명히 있을 것이오."
진소청이 천우진을 쳐다보았다.
" 그렇지 않나? 천하제일의 술법사인 너라면 적어도 한 개는 알고 있겠지."
" ......"
나는 천우진이 침묵하자 혹시나 해서 물었다.
" 흑패 말고 명계로 갈 방법이 있는 거냐?"
" ... 있다."
" 어떤 방법이냐."
천우진은 아직까지 검게 물들어 있는 호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 호수에 열린 차원의 문을 열고 닫는 건 명경의 주인인 사형이 해야만 하는데, 지금 사형은 문을 닫지 않은 채 연락이 끊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사형이 명경의 힘으로 열어놓은 이 호수는 현재 사형이 있는 곳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 아...!!"
나는 천우진의 말뜻을 알아차리고는 외쳤다.
" 이 호수를 따라 들어가면 단번에 명계의 중심부로 갈 수 있다는 말이군!"
" 그럴지도."
" 뭐야? 확실하지 않다는 말이냐."
" 당연하지. 아무리 명경으로 열린 차원문이라 하더라도 겨우 통신을 위해 열어놓은 자그마한 틈새일 뿐이다. 억겁과도 같은 시공 사이에 몇 개의 왜곡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라. 여기에 들어갔다가는 자칫하면 차원의 미아가 될 가능성이 높단 말이다. 물론 직통이니까
북망산의 입구로 들어가서 명계 심부까지 찾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빠르겠지만."
신경질적으로 대꾸한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 그리고... 설령 사형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해도 그것만으로 일이 잘 풀릴거라고 생각하는거냐?"
" 무슨 뜻이지?"
" 십이율주가 죽을 때를 생각해 봐라. 그 때 놈은 팔부신중 3명의 본체를 상대로 2명을 쓰러뜨리고 동귀어진에 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달리 말하자면 놈이 칠요 2개를 해방시켜서 싸우면 팔부신중보다 확실히 강하다는 말이고, 마왕 이상의 존재라는 뜻이다."
" ......"
" 만일에 놈이 지상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제약이 사라진 상태가 되어서 칠요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하면... 인간일 때의 하은천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 이 전력으로 놈과 싸우면 몰살당할 수도 있어. 이렇게까지 어려운 방법을 택할 이유가 없기에 네게 흑패를 써서 그냥 십이율주를 해치우자고 말한 것이다."
" 으음... 일리가 있군."
천우진은 짧은 순간에 그것까지 생각한 듯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당산이 말했다.
" 그럼 이렇게 하자구. 흑패를 써서 십이율주를 죽이되, 지금 이 호수를 통해서 망량과 바로 접촉하는 거야. 그리고 하는 김에 망량, 제갈사, 명경을 모두 현세에 가져오는 거지! 이러면 될 거 같은데."
천우진이 고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 사형이 그동안 여러번 명경의 술법으로 우리와 접촉하면서 왜 그 방법을 쓰지 않았겠나? 이쪽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저쪽에서 되돌아오는게 몇 배는 어렵기 때문이다. 저쪽으로 섣불리 넘어가면 지상으로 되돌아오는 데 몇백 년이 걸릴 수도 있어."
" 흠."
그때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 구천현녀! 구천현녀의 시해지술이라면 이쪽으로 되돌아오는 것도 가능할 거야."
구천현녀는 화룡진인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시해지술의 힘으로 암천향에서 현세로 귀환시키는데 성공했다. 당연히 암천향보다는 명계가 쉬울 게 분명하다.
" 그렇기야 하지만 구천현녀는 인과율 부족 때문에 천계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너는 창힐의 의도를 알고 현왕의 인을 얻은 대가로 대부분의 보물을 소진했다. 구천현녀를 지금 강신시킬만한 공양물이 없지 않느냐?"
" 윽! 잠깐만..."
그러고보니 선지자와 거래를 하기 위해 보물을 바쳤더니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남은 거라고는 화요와 화룡신검 정도인데 이건 바칠 수가 없다. 화요를 바칠 경우 칠요를 2개나 구천현녀 손에 쥐어주는 셈인데 이건 너무 과하다. 게다가 화룡신검 또한 화룡진인을 버리는 격이 되므로 할 수 없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당산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 잠깐잠깐... 아직 있잖아, 공양물."
" 뭐?"
" 황산의 식토. 그건 아직 당신의 목갑 안에 남아있잖아?"
" 그걸론 부족할거같은데..."
보통 공양물로는 구천현녀를 불러봤자 금방 인과율이 소진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명계 왕복에다가 십이율주 상대까지 맡겨야 하므로 큰 인과율이 필요했고, 그만한 강력한 제물이 필요했다. 그러자 당산이 호쾌하게 말했다.
" 그 놈들이 있잖아, 그놈들. 그걸 바쳐버리라고. 어차피 쓸데도 없는데."
" 그놈이 뭔데."
" 흉신의 축복을 받은 번데기들."
" ......!!"
나는 흠칫 놀랐다.
흉신의 축복을 받은 변이자들!
그들은 대뢰옥에서 구출했으나 전신이 이족화되어가고 이지를 잃은 상태인 인간들이었다. 개중에는 시꺼멓게 변이되어서 번데기같은 갑각에 자신을 가둔 자도 있었다. 그들은 대뢰옥에서 구출할 후 되돌릴 방법이 없어서 그냥 목갑에 넣어두고만 있었는데 뜻밖에 당산이 그들을 언급한 것이다.
나는 표정이 안 좋아졌다.
" 그들을 제물로 구천현녀를 부르라고? 그건 죽이는 거랑 다름없어."
" 하지만, 틀림없이 제물로서의 가치는 최상급일걸? 여태껏 당신이 써먹지 않아서 그렇지만 틀림없을거야, 흐흐."
" ......"
" 안 그래 천우진?"
당산이 천우진에게 질문하자 천우진이 대꾸했다.
" 그렇긴 하지. [옛 지배자]의 축복이 직접 스며들어서 숙성중인 존재라면 품고 있는 마력이 굉장할 테니."
" 거 봐."
" 하지만 그건 인신공양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
천우진의 말이 맞았다. 제갈사 또한 그들에게 크나큰 제물의 가치는 물론이고 강력한 전력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여태껏 써먹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들은 금의위에게 억울하게 잡혀와서 인간의 형태를 잃은 채 강제로 이족화된 희생자였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는 인신공양은 말 그대로 극악한 행위인 것이다.
그러자 당산이 어깨를 으쓱했다.
" 정말 그래? 백웅, 당신은 흉신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이름이나 알고 있어? 그 자들은 정말 아무런 가치 없는 타인(他人)일 뿐이라고. 그에 반해 망량과 제갈사는 우리의 소중한 동료라고 할 수 있지. 생면부지의 인간들이 몇 명 죽는 것과 망량과 제갈사의 가치를 비교해 보라고."
" ......"
" 망량과 제갈사도 이해해 줄 거야. 어차피 그들을 인간으로 되돌릴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인간처럼 생각도 못하는 괴물들을 계속 목갑에 썩혀둘 이유는 또 뭐야? 백웅 당신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인데 그 정도 희생 정도는 감수할 수 있잖아?"
" ......"
" 갖고있는 걸 최대한 활용하자고. 그게 대의(大義)를 위한 거잖아."
당산의 말은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 ... 흑패를 쓰지."
" 엉?"
" 그냥 십이율주를 흑패로 죽이겠어."
회의를 해 보고서야 마음을 정할 수가 있었다. 물론 당산의 말대로 구천현녀를 강신시키기 위해서 흉신의 축복을 받은 변이자들을 희생시키면 그 방법이야말로 효율이 최대일 것이다. 십이율주는 십이율주대로 쓰러뜨리고 망량과 제갈사도 한번에 구출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무고한 희생은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변이자들 자신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내 이득 때문에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오만인 것이다. 자신의 의사라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그들을 인신공양하는 건 안될 일이다.
내가 힐끔 진소청을 바라보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반대하지 않소. 당신은 충분히 생각해서 결정했으니."
파앗!
나는 천우진의 도움을 받아서 태산 밑 개인간의 마을으로 갔다. 그리고 흑패를 써서 밀림으로 간 후 지배자에게 소원을 빌었다.
" 신이시여! 십이율주를 없애 주십시오."
[ 그 소원, 받아들였다...]
후우웅
[ 소원은 이루어졌다...]
십이율주의 영혼으로 보이는 게 지배자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물끄러미 밀림의 지배자를 보다가 말했다.
" 신이시여. 궁금한 게 있습니다!"
[ 무엇인가...]
" 혹시 제가 누군가에게 운명을 조종당하고 있는지요?"
내 질문에 밀림의 지배자는 눈을 굴려서 나를 자세히 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 호오... 잘은 모르겠지만... 흥미롭군... 확인이 불가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후후... 재밌어.]
뭔가 감탄사를 연달아 말하던 지배자가 말을 이었다.
[ 네 운명의 끝에... 선택이 올 것이다... 아니... 이미 선택했나...?]
" 무슨 말씀이신지..."
[ 높디높은 천상에... 오르려 하는 자... 그 모든 간교한 지혜는... 결국 한계가 있지... 그래... 기어오는 혼돈조차 잴 수 없는... 세계의 심연을 어찌 알까... 크크... 재밌겠구나...]
파앗
나는 다시 태산의 개인간 마을로 되돌아왔다. 나는 즉시 천우진의 도움을 받아 본거지로 되돌아갔는데, 호수의 은빛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이이잉
기이한 이명(耳鳴)이 계속 울리고 있다. 하지만 망량의 모습은 다시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 쪽에서 심각한 이변이 일어난 건 확실해 보였다.
' 이래선 십이율주를 해치웠는지 아닌지 확인할 도리가 없군.'
나는 한숨을 쉬었다.
" 하아."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옆에 있던 세이메이에게 용화수의 씨앗을 넘겨주며 말했다.
" 세이메이. 이걸 가져가. 망량이 이걸 심으면 될 거라고 했으니."
세이메이는 용화수의 씨앗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 이건 설마..."
이어진 세이메이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 세계수의 씨앗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