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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다시 한번 화요천염을 끌어올려서 아공간을 깨려 했지만 그 순간 허공에 다섯 개의 공명(共鳴)이 생겨나며 화요천염을 막았다. 그리고 진천군의 광소가 들려 왔다.
[ 하하하! 칠요의 기술이라 해도 우리 다섯이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퍼억!
동시에 피빛 파도와 운석이 날아와서 내 몸을 덮쳤고, 나는 호신강기째로 당해서 뒤로 날아갔다. 내가 땅에 닿으려는 순간 홍사진의 모래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를 집어삼키려 했고, 나는 급히 허공답보를 써서 튕기듯 지면에서 멀어졌다.
' 이러다 죽겠어.'
아니, 이제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게 아닌가?
아공간을 깨려면 화요천염으로 공간 자체를 부수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다섯 명이나 되는 십천군이 동시에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내공이 벌써 다 떨어져가고 있었으므로 눈앞이 침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내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우두둑
그 순간 손천군의 머리가 꺾였다. 뜬금없는 일에 모두의 시선이 그 쪽으로 향하자, 그 곳에는 어느새 항우가 나타나서 손천군의 명줄을 끊고 있는 광경이 나타나 있었다. 옆에서 원천군이 당혹해했다.
[ 이 놈. 멈춰라.]
한빙진(寒氷陣)
원천군의 손이 쫙 펼쳐지면서 무시무시한 냉기가 항우를 덮쳤다. 저 냉기 또한 신선을 얼려서 죽이는 무시무시한 위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항우는 북극의 온도보다 훨씬 더 낮은 한빙진의 냉기에 미동도 하지 않고 성큼 성큼 다가왔다.
[ 흐악. 오지 마.]
원천군이 발악하듯 아공간의 벽을 여러 개 세워서 차단하려 들었지만 항우의 발걸음은 그 모든 걸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원천군이 전이술을 썼지만 그 때마다 따라붙었다. 항우의 눈에서 혈광이 흘렀다.
" 죽어라."
원천군이 눈을 부릅떴다.
[ 으아악. 말도 안 돼.]
그의 옆에서 다른 십천군들이 십절진을 펼쳐서 항우를 공격했으나 항우의 몸 주변에 기이한 별의 형상이 떠오르며 그 모든 자연재해를 막아 버렸다. 이윽고 항우가 주먹을 들어서 원천군의 얼굴에 날렸다.
퍼퍽
피가 튀기며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원천군 또한 항우의 일 권에 당하자 속절없이 사망한
것이다. 나머지 세 명의 십천군은 뜬금없이 두 명의 동료들이 당해버리자 크게 당황했는지 뒤로 연신 물러나다가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 이 놈들!!]
[ 두고 보자.]
쉬익...
적들이 모두 사라지자 사방을 가득 채우던 십절진의 공간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원래 공간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극도의 피로 때문에 숨을 몰아쉬다가 항우를 보고 엉거주춤 인사했다.
" 가, 감사드립니다."
항우는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 너무 약하군."
" ......"
" 신보(神寶)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저딴 놈들에게 반격 한 번 할 수 없는 실력이라니. 그래서 삼황 여와를 어떻게 죽이겠단 거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항우의 힘과 내 힘에는 너무 엄청난 격차가 있어서 뭐라 반박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칠요와 화룡진인의 힘을 다 빌려도 항우의 힘에 발끝도 못 따라가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항우가 말했다.
" 저번에 우희를 찾으라는 이야기를 했었지. 그녀를 찾았느냐?"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 제 동료가 명계 최심부, 전륜성왕의 유물을 이용해서 명계 전체를 탐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계의 절반 이상을 찾아보았지만 아직 우희의 영혼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 전륜성왕의 유물이라. 네 동료는 인간치곤 꽤 하는 놈이군."
" ......"
" 본왕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길 바라겠다."
파앗
항우는 그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나는 항우가 짜증을 내려다가 탐색상황이 좋은 것 같으니 봐줬다는 걸 알아챘다. 항우는 함묵 속에 폭력과 분노를 감추는 인물이라 자칫했다가는 그의 손에 죽을 우려도 컸다.
' 휴. 그래도 덕분에 살았군.'
항우가 안 도와줬으면 나는 그대로 죽은 목숨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서 동료들을 찾아서 돌아다녔는데, 머지 않아 당산과 서문혜 등을 만날 수가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 천우진과 진소청은?"
당산이 말했다.
" 모르겠어."
" 제길... 어떻게 해야 하지."
옆에 있던 서문혜가 말했다.
"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군이 유리한 것 같은데..."
" 일리가 있구려."
괜히 여기에서 멀어졌다가 아군이 우리를 찾기만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며 잠시 체력과 내공을 회복하며 기다렸고, 당산과 서문혜는 그런 나의 호법을 서 주었다.
약 일 각 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콰과광!!
근처 어디에선가 폭음이 울려퍼지며 공공의 광소가 들렸다.
[ 하하하! 금광성모, 나를 너무 얕본 게 아닌가?]
[ 이 거인놈이...]
공공이 유리하게 싸우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그 쪽으로 가려고 할 때 마침 천우진이 전이술로 나타나서 말했다.
" 공공은 내버려둬라."
" 천우진."
그가 자신있게 말했다.
" 그는 점점 힘이 강해지고 있으니 질 리가 없다. 그것보다 우리는 빨리 이 요새의 핵(核)으로 가야 한다."
" 핵을 찾은 거냐?"
" 그래. 어서 가야 한다. 핵을 신공표가 먼저 확보하면 큰일난다."
" 진소청은..."
" 녀석이라면 제천대성과 합류했다."
그럼 문제 없겠지.
타닷
우리는 축지법을 쓰는 천우진을 따라서 뛰어갔다. 천우진이 말하길 핵과 가까워질수록 공간의 고착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전이술을 쓰는 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나는 천우진을 따라서 뛰어가다가 물었다.
" 근데 신공표가 이 요새의 핵을 차지하면 뭐가 위험한건데?"
그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 아무튼 위험하다."
" ......?"
이 녀석 왜 이래?
너무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 같아서 나는 내가 그렇게나 천우진의 심기를 거슬렀나 고민해 보았다. 하긴 아까 전까지 천우진의 속을 긁을대로 긁었으니 저렇게 짜증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천우진이 당산에게 물었다.
" 네가 쓰는 용독술으로 단단한 금속도 녹일 수 있나?"
" 물론이지. 그건 왜?"
" 좀있다 핵을 막고있는 봉인용 철책을 녹여줘야겠다."
" 알았어."
우리는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회랑으로 접어들었다.
' 이 곳도 이족의 건축양식 느낌이 드는군...'
나선형 계단을 계속 내려가는 도중에 적이 습격해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계단의 수가 매우 많고 생각보다 깊어서 놀라울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일 아래쪽에 도착했을 때였다.
뭔가가 있다.
우리는 그 희끄무레한 것을 보자마자 무기를 뽑아들며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나는 봉인용 철책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네놈도 십천군이냐!!"
'그것'은 우리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 순간 우리는 크게 경악했다.
천우진?!
분명히 천우진의 모습이다!
" 엥? 뭐냐."
맹한 목소리였다.
천우진의 모습을 한 자는 멍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 놈들이 천우진으로 변신했어!"
그러자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렇군... 그럼 당장 칠요의 힘을 모두 발휘해서 저 놈을 쓰러뜨려! 공격해."
" 알았어!"
내가 달려들려 하자 서문혜가 외쳤다.
" 백웅 님! 잠깐만요!!"
응?
서문혜가 나를 왜 제지하는 거지?
그 외침에 의문을 갖기도 전에 나는 일단 달려들어서 화룡신검을 격렬하게 내리쳤다. 천우진의 모습을 한 놈은 내 공격에 크게 당황하면서 축지법으로 뒤로 물러났는데, 황당한 듯 외쳤다.
" 너 지금 무슨 짓이냐?"
" 닥쳐라 가짜놈아! 이거나 받아..."
나는 외치려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왜 굳이 십천군이 환술을 써서 천우진으로 변할 필요가 있는 거지? 나는 설마하는 생각이 들어서 즉시 화안금정을 발동시켜서 눈 앞의 천우진을 관찰했다.
화륵!
전혀 가짜의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화안금정마저 속일 수 있는 환술이라면 제천대성조차 속일 수 있는 환술의 소유자란 뜻인데, 십천군이 그 정도 수준이던가? 나는 점점 싸한 느낌이 들면서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을 부릅떴다.
뽀그르르...
서문혜와 당산은 물의 구체감옥에 갇혀서 정신을 잃은 듯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술법을 건 자는 싱긋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는 천우진이었으나 잘 보니 저런 웃음은 절대 천우진이 짓는 게 아니었다.
스스스스
이윽고 천우진의 모습에서 그의 형상이 익히 알고있던 것으로 변화했다. 청발금안(靑髮金眼)의 절세미녀로 변한 그 자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 아하하. 정말이지 놀리는 재미가 있구나.]
" ......!!"
통천교주 신공표!
나는 그 순간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까 우리 셋 앞에 나타났던 천우진은 사실 신공표가 변신술을 써서 위장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천우진은 미리 핵 앞에 와서 어떻게 뚫을지 생각하던 차에 우리가 뜬금없이 빨리 와 버리자 당황한 것에 불과했다.
" ......"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쥐구멍에 숨고싶은 심정이 되어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설마 신공표에게 감쪽같이 속아서 천우진에게 덤벼들어버릴 줄이야.
천우진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 저 녀석에게 속다니."
마치 욕할 힘도 없다는 듯한 그 표정을 보자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침묵하자 신공표가 여유롭게 말했다.
[ 자, 이 통천도(通天島)는 본래 내 것이니 이 핵에서 물러나라. 이제 서로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 아니냐? 방금 전도 너희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이 곳이 내 영지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음이다.]
그 말에 천우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 웃기는군. 통천도의 핵을 당신이 장악해서 힘을 증폭시킨 다음 어떻게 돌변할지 알고? 그렇게 되면 이 통천도 내에서만큼은 당신이 [옛 지배자]와 동격이 된다. 배신하지 않겠다고 이름과 존재를 걸고 언약하지 않는 한 이 곳에서 물러설 수 없다."
[ 내가 뭐하러 그런 약속을 해야 하지?]
" 그럼 우리도 믿을 수 없다. 좀 있다가 제천대성과 항우가 이곳으로 찾아오면 다같이 얘기해 보지."
[ 귀찮은 놈이군...]
" 나로서는 널 이길순 없지만 너도 멀쩡할 수는 없을 거다."
천우진이 힘을 주어 말하자 신공표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 좋아, 이렇게 하지. 이 금오도에서만큼은 너희를 배신하지 않겠다. 이러면 되겠나?]
" ... 어쩔거냐?"
천우진이 나를 돌아보았다. 인상쓰고 짜증을 내긴 했지만 내게 결정권을 넘겨준 것이다.
나는 크게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더 이상 어리숙하게 굴어도 안될 일이라서 애써 표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 덤으로 십천군도 우리를 공격하지 못하게 해."
[ 흥, 멍청이 놈.]
" ......"
[ 알았다. 그렇게 하마.]
잠시 후 언약이 맺어지자 신공표와 천우진은 동시에 전투태세를 풀었다. 그리고 신공표가 물감옥에 가둬놓은 두 사람을 풀어주었고, 당산과 서문혜는 정신을 차린 듯 했다. 신공표는 켁켁거리는 당산에게 말했다.
[ 아까 말한대로 네 독으로 이 봉인철책을 녹여라.]
" 내가 왜? 항우나 제천대성이 힘으로 때려도 되지 않소?"
[ 놈들은 섬세함이 없어서 핵을 통째로 망가뜨릴수 있다. 봉인철책만 녹이려면 네 힘이 필요하다.]
" 알았소."
스으으으
당산은 모든 내공을 집중해서 의형지독을 만들어내는 듯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당산이 초절정을 넘어서 절대지경의 초입에 당도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당산이 잠시 후 눈을 부릅떴다.
파스슷!
봉인의 철책이 다 녹아버리자, 거대한 핵이 마치 심장처럼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커다란 진동과 함께 통천도 전체가 크게 부유하는 듯 했다. 신공표가 감탄했다.
[ 오오... 드디어 수천년만에... 다시 통천도가 내 것이 되었구나.]
" 이제 약속을 지켜."
내 말에 신공표가 힐끔 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 뭐지? 뭔가가 시공을 넘어오고 있다.]
" 뭐?"
[ 결계 발동.]
우우우웅
신공표가 결계를 써서 통천도 전체에 방어막을 만들어냈다.
슈슈슉
그리고 신공표 주변에 전이술을 써서 나머지 십천군들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들 중 두 명은 항우에게 살해당했기에 총 8명이었는데, 그들 중 귀공자인지 여인인지 모를 화려한 복장을 한 자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 신공표. 우린 너를 통천교주로 인정하지 못한다. 우리가 충성을 바치는 그 분께서 오시면 넌 죽은 목숨이다.]
[ ......]
[ 우린 널 돕지 않겠다. 당황스럽겠지.]
그 말에 신공표는 비웃듯 말했다.
[ 후후. 왕천군... 나도 너희들 따위는 필요없다. 어차피 너희들은 수천 년 전에도 딱히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 뭐라고.]
왕천군이라 불린 십천군의 눈꼬리가 급격히 떨렸다.
스윽
신공표는 천천히 사보검을 들며 미소를 지었다.
[ 모두 죽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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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했습니다
백웅의 행위가 개연성 없었던 점에 독자님들께 사과드립니다
더 나은 글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