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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728화 (72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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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낙양의 외성으로 빠져나오려 할 때 누군가가 나를 불러세우는 걸 알아차렸다.

"잠깐! 거기 당신."

내가 성벽 위에서 밑을 힐끔 바라보자 그 곳에는 청색 무복을 입은 사내가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이 근처에는 경비병도 딱히 없길래 냉큼 성벽을 타고 나가버리려 했는데 뜻밖에 허공을 점하고 날아가는 나를 누군가가 발견한 것이다.

'별로 대단해보이진 않는군.'

내가 고개를 돌리고 마저 가버리려고 하자, 그 사내는 내게 급히 전음을 보냈다.

[천상제와 허공답보를 자유자재로 시전하다니 대단한 고수같구려. 당신에게 우리 장씨세가(長氏世家)가 황금을 주고싶소! 긴히 부탁할 게 있소.]

"......"

장씨세가?

장씨세가라면 낙양의 쌍문사가(雙門四家) 철혈태검(鐵血太劍) 장서이한(長徐李韓) 중에서도 가중 장봉(長峰)을 필두로 하는 권법(拳法)의 명가였다.

물론 지금의 내게 있어서는 그리 의미있다고 할 수 없었으나 어쨌든 쌍문사가의 일원이라면 무림에서 무시받을 위치는 아니었다.

나는 팔부신중과 창힐 때문에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동시에 저 자의 이야기에 약간의 관심이 생겼다.

'흠, 어차피 창힐도 망량선사때문에 내게 당장 손댈 순 없겠지.'

그 자의 교활함과 자제심을 생각하면 적어도 내가 아군과 합류할 때까지는 안전하다. 나는 일단 성벽 밑으로 내려가서 지붕 위에서 그를 쳐다보며 마주 전음을 보냈다.

[빨리 용건을 얘기하시오.]

"그... 우리 가문으로 뫼셔서 얘기하고 싶소."

[난 그럴 시간 없소. 용건이나 얘기하시오. 들어보고 결정하겠소.]

"으으."

그는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 위병이 없다는 걸 확인한 그는 다급한 어조지만 일단 말의 조리를 갖춰서 이야기했다.

"난 장의(長宜)라고 하오. 쌍문사가의 가주분들이 모두 무예사범으로 명목으로 황궁에 초빙받았는데 1년째 돌아오지 않고 계시오. 제발 본가의 가주님과 다른 가주님들의 안위를 확인해 주셨으면 하오."

말투 저변에 큰 불안감과 절박함이 감돌고 있었다.

"......"

"이 일을 해결해 주신다면 고인께 황금 오십 관을 드리겠소."

쌍문사가의 가주들이 실종되었다고?

나는 그 말을 듣자 반문했다.

[장의. 한씨세가의 가주인 한진성도 실종되었는가?]

"그렇소."

[가주를 제외한 나머지 쌍문사가의 인물들은 무사한가?]

"그렇소. 허나 모두가 가주께서 한 통의 기별도 하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소. 그래서 후기지수인 자들이 각지로 수소문해서 최절정고수를 찾고 있소. 그 분들의 생사를 반드시 알아야 하기에."

[......]

확실히 상황은 절박해 보인다. 나는 무림에서 무명(無名)이나 다름없을텐데 그저 무공 수위만 보고 급히 잡아서 기밀정보를 말하면서 의뢰를 하려 들다니. 쌍문사가의 무인들은 가주가 살해되었을까봐 공황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사실 지나가는 고수에게 부탁할만한 사안이 아닌데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부탁한 것이리라.

'팔부신중의 짓인가?'

쌍문사가 가주의 공통점이라면 다들 초절정고수이거나 그 문턱에 닿아있다는 점이었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낙양이라는 대도시를 대표하는 고수였기에 수준이 꽤 놓았고, 그 때문에 팔부신중이 그들을 주목했을수도 있다. 물론 팔부신중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 신경을 건드리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한진성을 잡혀갔다는 점이었다. 지금껏 전생을 하면서 한진성은 그리 인상이 나쁜 인물이 아니었고 그 동안 나와 여러번 친분을 맺었다.

그가 참혹하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하면 뒷맛이 나빠지는 것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장의에게 말했다.

[알았소, 장의. 내가 곧 동료들과 함께 그 일을 알아보지.]

"자, 잠깐... 고인의 성명별호는 어찌 되시오?"

[알 필요 없소.]

타닷!

나는 다시 성벽을 뛰어서 낙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재빨리 멸혼보와 축지법을 써서 빠른 속도로 낙양을 벗어나서 근처에 있던 망량선사의 마을으로 갔다. 내가 마을 주변을 둘러보자 그 곳에는 천우진이 너럭바위에 컬터앉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낙양에서 왔군. 대체 거기에는 뭔 생각으로 간 거지?"

"나한테 뭐라하지 마. 망량선사가 보낸 거야."

"스승님이?"

"아무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갔지?"

"네 녀석을 찾아보겠다고 근처의 도시를 뒤지러 갔다. 기별하면 한 시진 내로 올 거다."

"동료들을 모아 줘.."

퓨르르

천우진이 술수를 써서 수십 마리의 참새를 소환하더니 사방으로 날려보냈다. 천우진이 기별을 보낸 후 내게 사정을 듣자 말했다.

"창힐이 술법이나 마법을 네게 부려놓은 것 같진 않군."

"다행이네."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지금부터 창힐과 팔부신중은 본격적으로 우리를 인식하고 적대하기 시작할거란 소리군. 당장 덤벼오진 않겠지만 상황은 어려워졌다."

"......"

"다 오면 그 때 얘기하지."

천우진의 말대로 오래 지나지 않아서 사방에 흩어졌던 동료들이 집결했다. 나는 그들에게 흑요석을 주어서 기억을 공유했고, 모두가 상황을 이해한 듯 했다.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 창힐과 손잡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 생각하오. 그런 수상쩍은 자와 손을 잡아봤자 이용만 당할 뿐이오."

"고맙소."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 망량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생각하오."

나는 그 날 밤 거울을 호수에 빠뜨려서 망량을 소환했다.

소환된 망량은 내게서 전후사정을 들은 후 말했다.

[백웅. 당신의 직감이 그렇게 느꼈다면 아마 맞을 것이오. 당신의 직감은 이성이나 계산으로는 잴 수 없는 영역에 있고, 종종 책략 이상의 정답을 내어놓을 때가 있기 때문이오. 당신의 선택을 신념있게 밀고나갔으면 하오.]

"하지만, 궁금한 게 있소. 만일 창힐의 제안대로 연합하여 천계를 멸망시켰으면 일이 쉬워졌겠소?"

[그건 당연한 일. 천계는 삼황오제의 부하나 다름없는 상황이며 그 체계와 규모도 하루아침에 짤 수 있는게 아니오. 천계가 사라지면 삼황오제는 지상의 일에 개입할 때마다 상당한 힘과 인과율의 소모를 감수해야 하지. 효율이란 점에서만 보면 창힐의 제안은 아주 좋았소. 그는 매우 똑똑한 자라고 생각되는군.]

"음..."

[천계를 멸망시키면 우리의 여정은 크게 단축되는게 분명. 그러나 효율을 추구하다 배신당하는 것보단 그냥 독자세력이 나을 수도 있지.]

그렇게 중얼거린 망량이 말을 이었다.

[창힐은 우리를 위협했으나 당장 우리를 공격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오. 왜냐하면 금성의 마신이 이어진 통로는 제곡이 힘을 주고 있으니 창힐 본인도 상당한 힘을 쏟아야만 제어가 가능하기 때문이오. 창힐 본체는 반쯤 봉인되었다고 봐도 되는 상황이고,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건 팔부신중 6명. 그나마도 그들은 천계나 삼황오제의 도발때문에 낙양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오.]

"다행이군."

[하지만 창힐 세력의 움직임이 멈춘 것도 잠시일 뿐이오. 길어도 몇 달 내로 그들은 압박을 풀고 제멋대로 활개를 치기 시작할 것이오. 창힐을 견제하고 있는 이 기회에 뭔가를 해야 하오.]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오?"

[창힐이 했던 말을 기억하시오. 자신이 낙양을 점거한 순간 모든 게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말은 결코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오. 그는 수백, 수천 년 전부터 낙양에서 뭘 할지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니 이 상황의 주도권을 잡을만한 엄청난 한 수가 있을 것이오.]

"......!!"

[창힐이 낙양에서 벗어나 웅지를 펴는 순간 우리 모두가 끝장이라 생각해도 좋소.]

"알았소."

망량이 말했다.

[지금 우리가 먼저 해야하는 건 바로 신공표와 손을 잡아서 금오도를 토벌하는 것이오.]

"금오도 토벌...!!"

[지금의 전력으론 부족하오. 금오도의 요괴선인까지 우리 부하로 만들어야 창힐이나 천계에 대항해서 세력의 규모로 밀리지 않을 것이오.]

망량의 계책은 간단했다.

사전에 요청받았던대로 신공표를 도와서 금오도와 십천군을 제압하는 것!

하지만 나는 망량의 말에 반문했다.

"망량. 하지만 그건 신공표 좋을대로 하는 일에 불과하오. 신공표는 금오도를 장악한 순간 우리를 배신하고 자기 멋대로 굴 수도 있소.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오.]

"왜 그렇소?"

이윽고 망량이 상세한 계책과 함께 이유를 설명해줬다. 나는 망량의 말을 듣자 상황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과연 망량이군.'

내가 내심 감탄하고 있자 옆에서 듣고 있던 제천대성이 말했다.

"어이. 근데 그 녀석이 어디갔는지 아는 사람 있어?"

"그 녀석이요?"

"신공표. 도와주려고 해도 어딨는지 모르면 도울 수가 없잖아."

"......"

그랬다. 신공표는 제천대성이 나타나서 우리를 겁박하려 했을 때 바로 튀어버린 것이다.

그 때 이후로는 아예 자취를 감추어서 잠잠했기에 어딨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천대성의 말에 구천현녀가 대답했다.

[대성이여. 그녀는 아마 금오도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구천현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사라지기 전에 제게 그런 말을 전하고 갔으니까요...]

"왜 우리한테 얘기하지 않았지?"

[더 시급한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제천대성이 뭐라고 따져물으려 할 때 천우진이 나섰다.

"지금 정말 문제인 건 그런게 아니오. 우리측의 전력이 너무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오."

"뭔 말이냐?"

"구천현녀와 제천대성께서는 굉장히 강력한 존재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 인간들이 금오도로 갈 경우 십천군 중 한 명도 당해내지 못하고 몰살할 가능성이 높소. 십천군 하나하나가 요괴선인으로써 극한에 이른 존재들이라 투선과 맞먹소."

제천대성은 천우진의 말에 납득했다.

"그야 그렇겠지. 특히 왕천군(王天君)이나 금광성모(金光聖母)는 다른 십천군보다 훨씬 강하니까 너희 수준으로는 힘들걸. 왕천군은 통천교주 대리라서 상당한 실력자야."

"싸워봤습니까?"

"요괴왕 시절에 십천군이랑은 다 한번씩 싸워 봤어. 한놈한놈은 별거 아닌데 합공하면 꽤 귀찮아."

제천대성의 말은 언뜻 거만해 보였지만 사실이었다. 십천군 중 하나인 요천군조차도 수십 년 동안 곤륜산의 선인들을 암살하고 다녔으나 누구도 그를 뒤쫓거나 잡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있었고, 심지어 검선 여동빈조차 요천군을 상대할 때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십천군을 대라신선 투선급의 존재들이라 가정하면 현재 우리 인간측 전력으로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이대로 우리 인간들이 짐만 될 수는 없소."

"어떻게 하겠단 거냐? 절대지경에 오르지 않으면 얘깃거리도 못 될 건데, 절대지경이란 게 쉽게 오를 수 있는 건 아니잖냐?"

"지닌바 최선을 다해서 역량을 끌어올릴 수밖에."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나를 보며 말했다.

"움직여라."

"알았다고."

나는 한숨을 쉬며 일단 목갑에서 보패를 다 꺼내서 동료들에게 나눠주었다. 이 보패들을 사용해서 숙련시키는 법을 지금부터 천우진이 훈련시킬 것이고, 일회용으로나마 보패를 쓰는게 가능할 것이다.

'덤으로 소림사에 있는 그 방주에서 하면 훨씬 실력이 빨리 오르겠지.'

그리고 나는 곧장 망량이 말했던 계책대로 중원의 서쪽으로 향했다.

망량은 내가 없는 동안에 관우의 후손이 어디있는지까지는 알아냈으나 내가 실종되는 바람에 언월도를 전달하지 못했다. 나는 망량의 정보를 받아서 관우의 후손을 찾아가서 축복부터 챙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내가 구천현녀의 도움을 받아서 한번에 장흥 지방이라는 곳으로 이동하자, 나는 구천현녀에게 말했다.

"구천현녀님. 장흥 지방에서 무관직을 지내는 관휴(關休)라는 자가 어딨는지 찾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구천현녀는 곧장 관휴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나는 다시 한 번 전이술을 이용해서 관휴가 사는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관휴의 집이 상급무관의 집이라는 걸 확인한 후 집안에 있는 관휴 앞에 들이닥쳤다.

"허억! 당신 누구야."

관휴가 기겁을 하자 나는 말했다.

"당신이 바로 관우(關羽) 운장(雲長)의 후예인 관휴가 맞소? 당신이 가문의 장손이라고 듣고 왔소."

"... 마, 맞소만 당신은 무림의 인물인가."

"그렇소. 당신을 해치러 온 게 아니니 안심하시오."

나는 관휴의 말에 대꾸하며 목갑에서 청룡언월도를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걸 받으시오. 관우가 후예에게 전하기를 원했소."

"......"

관휴는 얼빠진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당신 미쳤소? 그건 전설일 뿐인데..."

"내가 알 바 아니오. 받을거요 말 거요?"

"알겠소. 얼른 내 집에서 나가주시오. 허억."

관휴가 청룡언월도를 받으려 했지만 뜻밖에 무거운지 휘청하며 넘어지려 했다. 나는 그의 몸을 부축해주며 말했다.

"무거우니깐 당신 혼자 힘으론 못 들겠군."

"......"

관휴는 나를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보다가 하인들을 불러서 세 명이서 같이 언월도를 들고 갔다. 나는 과업을 수행하자마자 곧장 근처의 야산에서 음신지력의 영기를 끌어 올리며 마음속으로 관우를 불렀다.

[관우, 오시오!]

오오오오오

인과율이 성립한다면 큰 주술이 없이도 영체를 불러오는 게 가능했다. 게다가 음신지력으로 순수한 힘을 충족시키자 관우의 영체가 내 앞에 나타났다.

관우는 자신의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오... 그대는 진정 내 부탁을 들어주었군.]

"관우여. 당신은 내게 약속을 했습니다. 당신의 후손에게 청룡언월도를 전해주라는 부탁을 들어주면 큰 축복을 내리리라고."

[알았다. 나 그대에게 강림하여 대신 싸워주는 축복을...]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건 됐습니다. 다른 종류의 축복은 안 됩니까?"

이미 구천현녀에 화룡진인까지 강림할 자들이 차고 넘쳤다. 중복된 축복을 받는거나 마찬가지였기에 내가 거부하자 관우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흐음. 뭔가 사연이 있어보이는군.]

"제겐 동료가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축복이 필요합니다."

관우가 천하를 호령하며 외쳤다.

[그러면 나 군신(軍神)으로써 그대와 동료들에게 축복의 위광을 주리라. 그대들의 앞 날에 천추의기(天秋義氣) 만인지적(萬人之敵)의 운이 가득하리라!]

파앗!

관우가 빛을 내더니 사라졌다. 동시에 나는 내 몸에 영문모를 힘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좋았어.'

만일 이번 생에 죽을 경우 다음 생부터 챙길 수 있는 축복이 늘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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