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3====================
암천향(暗天鄕)
[그것이 대성의 뜻인가...]
제천대성이 나를 돕기로 하자 장삼봉은 손을 늘어뜨린 채 말했다.
[백웅이여. 그대가 말한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소. 특히 서왕모께서 여와라고 하는 주장은 너무나 기이하오. 그 증거가 있는 것이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구천현녀께서 수천년 전부터 의심하고 있었고 제천대성도 은연중에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은 없지. 또한 증명해봤자 여와를 벌할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누가 있단 말입니까? 삼황오제조차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무의미한 일이란 말입니다."
[......]
"여와가 암중에서 힘의 논리를 천명한 것이라면 이쪽도 그에 맞설 뿐. 대선(大仙) 원원자께서는 우리 일을 돕지 않으시렵니까?"
내가 제안하자 장삼봉이 침묵하다가 말했다.
[나는... 그대와 함께 하고 싶으나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이 있소.]
"무슨 말입니까?"
[이 일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소. 그대와 나는 다시 보게 될 것이오.]
스스스
장삼봉의 신형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선술을 써서 사라지는데도 그를 막는 자는 장내에 없었다. 의아해서 천우진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장삼봉 진인은 자기 입으로 침묵하겠다. 하면 누구에게도 말할 자가 아니다. 그리고 그를 막는건 골치아픈 일이 될 것이다."
"음, 그런가..."
"그에게도 비밀이 있는 것 같군. 신뢰를 쌓지 않으면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이다."
그건 아마 의천검(倚天劍)에 관련된 비밀일 것이다.
일전에 무당파의 의천검이 있는 장소를 명룡자에게 알아내서 뽑으려 했으나, 아무리 힘을 써도 뽑히지 않길래 장삼봉 진인을 불러서 뽑는 방법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장삼봉 진인은 단오히 거부했었다.
[내가 등선하기 전에 직접 모든 절대지경의 깨달음을 담아서 의천검을 봉인했기 때문이오. 무당산 전체를 파헤친다 하더라도 의천검은 그 누구도 쓸 수 없을 것이오. 그리고 그대에게 받은 공양물을 모두 돌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의천검의 봉인을 풀어줄 생각은 없소.]
[그 검은 만해무익(萬害無益). 거짓된 역사의 증거이며 거짓된 신왕(神王)의 검... 그 검의 양면성이 눈을 뜨면 감당이 되지 않으니, 그대가 능력이 된다면 차라리 의천검을 부숴버리는 걸 추천하겠소.]
[더 이상은 천기이기에 알려줄 수 없소. 공물은 도로 가져가시오.]
"......"
지금까지 나는 장삼봉 진인이 그저 무예 하나로만 절대지경을 이루고 등선한 무림의 절대자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의천검에 관련된 언행이나 행동을 보면, 어쩌면 그 또한 이 세계의 [어둠]을 접한 적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여동빈과 더불어 무신과 만난 적이 있는 투선이기도 했다.
[나 또한 등선하기 전에 무신을 마주쳤소.]
[아지랑이같은 자였지...]
[허나... 무신은 일순간이지만 무의 극한을 보여주었소. 그것만으로도 무의 극한에 도달하기 위해 무한의 세월을 노력할 수 있는 열정이 생겨나는 것이오.]
[무신의 질문의 대해 내 나름대로 해답을 내놓은 것...]
여동빈 또한 아직도 내게 무신의 비밀을 숨기고 있다. 장삼봉 진인이 무신과 접촉한 적이 있다면 그 또한 어느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다음번에는 의천검의 능력을 파고들어볼까?'
그렇게 하면 어쩌면 장삼봉과의 연결고리가 더 생겨날지도 모른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제 망량의 계책대로 움직여야 할것 같습니다."
"뭘 할 셈이지?"
제천대성의 물음에 나는 나직이 대꾸했다.
"현재 월요와 목요를 지닌 십이율주는 명계로 도피했다고 생각되고, 제 동료가 최선을 다해 명계를 탐색하고 있지만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 2개의 칠요는 당분간 찾을수가 없으며 남은 칠요 중에서 수요와 금요는 우리 손에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상에 남은 칠요는 화요와 토요가 되지요."
"화요와 토요를 손에 넣겠단 소린가?"
"네. 물론 만만치 않은 일이겠지만 꼭 해내야 합니다. 4개의 칠요가 한 세력의 손에 있으면 삼황오제도 쉽게 우이를 건드릴 수 없게 되니까요."
내 말에 제천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지? 이유를 설명해 줘."
"......"
나는 순간 말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망설였다. 하지만 제천대성도 일단 동료로 받아들였으므로 중대정보도 공유하기로 결정했다.
"서왕모, 그러니까 여와는 칠요의 해방을 두려워합니다. 칠요를 모으는 행위 자체가 그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다른 삼황오제와 비교해도 특히나 두려워하지요. 섣불리 굳면 칠요를 동시에 해방시켜버리겠다고 그녀를 협박할 재료로 쓸 수 있습니다. 구천현녀 님이나 제천대성 형님의 힘을 합쳐서 억지로 해방하는것도 가능할테니까요."
"... 정말이냐? 그런 얘기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만."
[저도 몰랐던 사실이군요.]
제천대성은 물론이고 구천현녀도 놀라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단오하게 말했다.
"사실입니다. 서왕모는 칠요의 해방으로 으름장을 놓으면 말을 들을 겁니다. 이건 제 목숨을 걸고 알아낸 겁니다."
"음... 도대체 어떤 모험을 한 거냐. 아무튼 믿으마."
제천대성이 귀밑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일단 납득했다. 아마 내 표정에 진실성이 가득해서일 것이다.
'직접 본 거라구.'
그도 그럴것이, 나는 지난 생에 서왕모가 있는 천계로 돌격해서 공공을 소환한 적이있다. 그리고 공공이 여와에게 칠요의 해방을 이용해서 협박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는 것이다. 여와 스스로 서왕모를 자해시킬 정도였으니 아주 잘 먹히는 방법이었다.
그 지식과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번 생에 서왕모를 견제할만한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일단 지상에 있는 칠요 2개를 추가로 확보하면 이쪽은 4개를 갖게 됩니다. 덤으로 십이율주를 발견해서 그에게서 칠요를 뺏을 수만 있다면 지상의 칠요 6개를 모두 모을 수 있게 되는거죠."
"호오... 그렇군."
"또한 칠요 6개를 모두 얻으면 만신전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고 응룡이 직접 강림해서 알려주고 갔습니다."
"... 진짜 만신전으로 갈 생각이냐?"
"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만, 그건 나중에 형님의 뜻에 맡기겠습니다. 칠요를 모으면 드리기로 약속했으니까요."
"흠..."
"칠요 재봉인을 하든 만신전에 가든 형님의 뜻대로 해 주십시오."
제천대성이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천우진이 걸어나와서 말했다.
"백웅 놈이 너무 큰 국면의 계획만 주절거리는 것 같아서 당장 해야할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드리겠소. 사형한테 들은 얘기를 간추리지도 않고 고스란히 다 해버리는군."
"뭘 해야하지?"
"당장 급한 건 며칠 내로 남부에서 마법(魔法)으로 부활한 사해용왕이 수백만 해신족 대군과 함께 몰려와서 인간들을 공격하는 일이오. 제천대성께서도 잘 모르고 있다면 아마 천계측에서 그들에게 대항할 병력을 천제단으로 내려보내는데는 시간이 꽤 걸릴것이오. 그렇기에 이 일은 창힐을 자극해야하오."
"창힐을?"
이윽고 천우진이 망량의 계책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 예기를 들은 제천대성이 인상을 강하게 찌푸렸다.
"내가 그런 일에 동의할거라 생각하냐?"
"이거 말곤 방법이 없소. 창힐과 팔부신중은 아마 남쪽의 환란을 이미 감지하고 있겠으나 바로 막으려들지는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이 일을 빌미로 천계가 해신과 겨루어서 힘을 소모하는 걸 은연중에 원하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천계와 해신이 둘 다 약해지면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할 생각이겠지."
"그렇겠군."
"놈이 나서게 하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하는 게 최선이오. 그리고 놈들이 공멸하게 만들 수도 있소."
"하지만 만일 악당끼리 힘을 합친다면?"
"사형이 말하기를, 창힐은 그럴 자가 아닐거라고 예측했소. 수백 년이나 일찍 잡은 기회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켜야 하니, 섣불리 타인을 자기 집에 들일 자가 아니라 했소."
"네 사형이라는 놈이 얼마나 두뇌가 뛰어난지는 몰라도 그 예측이 맞을거란 보장은 없는 것 같은데."
제천대성이 불만스러운듯 중얼거리자 천우진이 팔짱을 꼈다.
"천하에서 사형의 계책을 믿을 수 없다면 그 어떤 책사의 책략도 무의미하오."
"백웅, 넌 동의 하냐?"
"네."
"하, 이거 정말 막 나가는구만."
제천대성은 한숨을 쉬었다. 천하의 천방지축인 제천대성이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망량의 책략이 어지간히도 막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가 말했다.
"알았어. 그렇게 놈들을 공멸시키는 동안 우리는 뭐 하냐? 그냥 떡이나 먹으면서 구경하는거냐?"
"아니오. 그 다음엔..."
내가 차례로 망량의 책략을 이야기하자 제천대성은 반쯤 포기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그래. 한번 해 보자고. 대신 나중에 칠요를 준다는 약속을 어기면 죽여버릴 줄 알아라."
"네, 물론이죠."
우리는 잠시동안 전략을 짠 후 호수에 거울을 던져서 망량을 불러내었다. 그리고 망량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망량이 내게 말했다.
[백웅. 그 십이율주의 거취 말인데, 아무래도 놈은 명계에 없는 것 같소.]
"......? 무슨 말이오?"
나는 망량의 말에 황당해서 반문했다.
"놈은 죽었소. 명계로 자신의 육신과 혼을 가져갔을 것이고 칠요와 함께 명계 어딘가에 모습을 감췄다는 거 아니었소? 그 외에 다른 가능이 있는 거요?"
[명경의 방에서 계속해서 명계 전체를 탐색하고 있으나 특별히 이공간이나 숨겨진 곳 그어디에도 칠요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소. 아무리 십이율주가 대단한 존재라 해도 전륜성왕 최후의 보물인 명경의 탐색으로 몇 년 씩이나 찾아내지 못하게 칠요를 숨길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오.]
"그럼 무슨..."
[그가 죽은 다음에 명계로 가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하고 있소.]
"음..."
그런게 가능한가?
어쨌든 생명체라면 죽으면 명계에 가는 게 아닌가?
내가 의아해하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칠요를 두 개 이상 모으게 되고 상황이 안정되면 필히 십이율의 잔당을 토벌해 주시오. 그 자들 중 단의 일족은 틀림없이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오.]
"알겠소."
파앗
우리는 천우진과 구천현녀의 술법을 빌어서 다함께 달을 갔다. 그리고 달 표면에서 어두운 빛이 새어나왔고, 제천대성은 금요를 자신의 손 위에 띄운 채 칠십이둔술을 천천히 외우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제천대성의 술수는 수보리조사라는 전설의 술사에게서 사사한 것으로 도리오 수보리를 넘어섰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또한 술법의 종사이니 금요의 힘을 끌어 내어 술법을 쓰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잠시 후 금요의 빛이 크게 밝아지더니 제천대성이 기합을 내질렀다.
"하아앗!"
쩌엉
그 순간 천공이 크게 뒤틀리며 우주의 암흑조차 집어삼키는 거대한 혼돈의 문이 한 순간 생겨난 것 같았다. 제천대성이 금요에 걸려있는 봉인을 일시적으로 해제시키며 힘을 빌려와서 소환문을 만든 것이다. 그와 동시에 구천현녀와 천우진이 앞으로 손을 뻗으며 추가로 대술수를 발동했다.
쿠구궁
혼돈의 문은 잠시 후 사라져 버렸다. 천우진이 두리번거리다가 급히 말했다.
"빨리 도망치자. 사비시신이 보기 전에 빨리."
슈웅
우리는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천우진은 멀리 낙양쪽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 이어졌군."
"소환되고 있는 중이냐?"
"그래. 애초에 제곡이 그들의 통과를 허했으니. 어둠의 통로가 낙양의 상공에 만들어졌다."
화안금정의 천리안의 능력을 써서 같이 보고 있던 제천대성이 거들었다.
"팔부신중이 나와서 문들 닫으려 드는구만."
"그리 쉽게 닫히지 않을 것이오. 결국 창힐 본인이 나서서 제곡과 이야기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
"그리고 여유가 없어진 창힐은 발밑의 불꽃과 문밖의 화재를 동시에 끄려고 할 것이라 이 말인가..."
"그렇소. 집주인 입장에서는 당연한 사고방식이지. 천계의 힘이 소모되기를 지켜볼만큼 여유로운 상황도 아니고, 천계가 도리어 창힐부터 공격하려 들 테니까."
그는 자신감있게 말했다.
"아마츠카미가 금성에서 바로 지구로 올 수 있는 문을 낙양에 만들어놨으니 저걸 해결하는데만 창힐의 힘이 빠질 것이오. 그러면 창힐은 자신의 수하인 팔부신중을 보내서 남부의 일을 빨리 처리하려 들게 뻔하오. 그 사이에 우리는 남은 칠요를 회수하면 될 것이오."
그랬다.
망량의 계책은 짧으면 1년 후에 지구에 회귀할 아마츠카미들을 미리부터 창힐의 본거지가 되어있는 낙양에 소환하는 것이었다. 창힐이라면 그 문을 닫을만한 힘이 있겠지만 아마츠카미의 귀환은 은연중에 삼황오제들이 바라는 바였기에, 제곡이 뒤에서 압력을 넣을 게 뻔했다.
파지직
그 증거로 낙양 상공에 열린 차원문은 좀처럼 닫힐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옛 지배자]에 버금가는 마력을 지닌 창힐이 닫고싶어할텐데도 말이다. 제곡이나 삼황오제가 옳거니 싫어서 저 문을 유지시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힘의 균형을 이루어 길항상태인지 본격적인 소환이 시작되지는 않고 있었다.
'삼황오제들은 가면을 벗고 싶어서 지상을 청소할 용도로 고대악신 아마츠카미를 이용하려 든다. 당연히 쉽게 포기하지 않겠지...'
당연히 창힐은 문을 쉽게 닫을 수 없어서 제곡과 협상에 나서게 될 것이고, 본디 여유를 갖고 지켜보려 했던 남부의 환란에 대해서도 일찍 대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황이 이렇게 되면 천계 측에서도 삼황오제의 통솔을 직접 받게 될 텐데 서왕모 입장에서는 눈엣가시같은 창힐의 약점이 보이는 순간 천계를 수족처럼 움직여서 창힐부터 공격하려 하는 것이다.
아마츠카미, 창힐, 팔부신중, 천계, 해신이 복잡하게 얽힌 아수라장!
그 사이에 우리는 이목이 덜 쏠리는 틈을 타서 화요의 봉인을 부수고 화요를 손에 넣고, 그 다음에는 약화된 창힐의 낙양을 쳐서 소환되어 있는 토요까지 손에 넣을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럼 가자, 화요를 얻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