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19====================
암천향(暗天鄕)
팽조와 마주친 순간 나는 저 놈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고민했다.
무공?
술법?
확실한 건 내가 먼저 섣불리 달려드는 건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때 천우진이 앞으로 나서며 팽조에게 외쳤다.
"급급여율령!"
파지직!
팽조의 몸 주변에 팔괘형상이 물결처럼 일어나더니 번개를 튀겼다. 팽조는 뜬금없는 강력한 봉인술을 당하자 잠시동안 멈췄으나 이윽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천우진이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강하군."
[흐... 이런 잔재주 따위.]
치링 -
그러자 팽조의 몸 주변에 뭔가가 소환되더니 그를 시꺼먼 구체 속에 감싸면서 방어를 하기 시작했다.
화룡진인이 내 내면에서 말했다.
[보패 혼원산(混元傘)! 저 자가 가지고 있었구나.]
"혼원산이라고요? 그건 분면..."
[봉신대전 때 마가사장(魔家四?)의 둘째였던 마예홍(魔禮紅)의 보패다. 저 보패는 선계에서도 손꼽히는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
나는 흠칫했다.
봉신대전의 마가사장 마예홍!
그 자 또한 고대의 대라신선이었으며 태사 문중의 부하로써 강력한 보패의 힘을 휘둘렀다고 알려진 존재였다. 실력으로 치면 봉래도주인 이흥패와 동격에 있는 자들이었는데 고대에 서기 선인들에게 봉인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마가사장의 유물이 팽조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놀라운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팽조는 자신을 방어하는 혼원산을 소환하자마자 연이어서 또 다른 보패들을 소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끼깅 -
팽조가 소환한 시꺼먼 비파가 기이한 음향을 장내에 퍼뜨리자 갑자기 당산의 눈이 희번득하고 뒤집혔다. 당산은 난데없이 내게 달려들면서 뇌명을 시전했다.
뇌신류(雷神流) 절기(絶技)
뇌신권(雷神拳)
'어? 야!!'
이 놈이 왜 나한테 덤벼들어? 이 놈이 미쳤나!
꽈과광!!
나는 급히 당산의 뇌신권을 막아냈지만 이어서 미세한 은사(銀絲)가 풀려나오면서 내게 암격을 가하려 한다는 걸 알아챘다. 당문의 암기술이 분명했기에 내가 허공에서 다섯 회전을 피했고, 멸혼보로 물러나려는 순간 당산이 양손을 휘두르며 또 한 번 절기를 퍼부었다.
오의(奧義)
만천화우(滿天火雨)
"큭!!"
나는 천지를 뒤덮듯 날아드는 의념의 암기를 보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저 중엔 진짜 비수와 암기가 섞여 있었고 의념절기로 펼쳐지자 거의 구분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속도와 힘도 매우 강렬했기에 아무리 나라도 쉽게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굴공참과 뇌신류 묘역의 예를 응용해서 어떻게든 당산의 만천화우를 걷어낼 수 있었다. 강렬한 회전이 뇌전을 머금으며 날아드는 암기를 튕겨냈다.
까강
'제길, 이청운한테 지옥수업을 받지 않았다면 죽었겠네.'
내가 당산의 습격을 막아내는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괴생물체가 출현했다. 그 생물체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였는데 밑도 끝도 없이 우리에게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급속히 강하(降下)했다.
콰과과광!!
파앗
연속된 습격에 나는 일행들과 함께 급히 다른 곳으로 피했다. 다행히 이 자리에 온 사람들 중 저 습격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팽조의 일차공격을 막아내자마자 당산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개자식! 갑자기 배신이냐?"
"......"
하지만 당산은 내 외침에 대꾸하지 않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싸울 준비만 하고 있었다.
뭔가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내가 당산을 경계하자 옆에 와 있던 천우진이 말했다.
"마가사장 마예해(魔禮海)의 보패 흑비파의 위력이다."
"흑비파?"
"수만에 이르는 인간을 한꺼번에 세뇌하는 능력이 있지. 아무래도 당산은 흑비파의 세뇌에 걸려버린 모양이다."
"윽, 세뇌보패..."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나야 그렇다 치고 서문혜는 신화적 혈맥을 잇고 있어서 걸리지 않았고 천우진 또한 세뇌 정도에 걸릴 놈이 아니다. 그리고 베루스 또한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는 걸 감안하면 당산만 걸린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는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거대 괴생물체는 보패 화호초(花狐貂). 소환수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전투보패다. 장갑이 매우 두껍고 대부분의 술법과 물리력을 흡수할 수 있다."
"...팽조는 설마, 마가사장의 보패를 모두 쓸 수 있는건가?"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다. 그 외에도 더 갖고 있는것 같군..."
"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팽조가 쓸 수 있는 보패만 네 개 이상이라는 건가? 하지만 그건 말도 안돼.'
지금 팽조는 마가사장의 보패를 동시에 운용하며 우리를 압박해 왔지만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팽조가 어떻게 마가사장의 보패를 갖고있는지는 둘째 치고 보패는 엄청난 술력과 기력을 빨아먹는 물건이므로 결고 쉽게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설령 대라신선이라 해도 두 개 이상의 보패를 쓸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팽조가 아무리 신의 현손이며 대라신선이라고 하지만 저렇게나 많은 보패를 한꺼번에 써도 괜찮은 걸까?
내 의혹을 눈치챈 듯 천우진이 말했다.
"팽조는 삼황오제의 혈족이다. 그로므로 태생이 신족이니 인간출신 대라신선과는 다른 그만의 능력이 있겠지. 놈의 능력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내야 쉽게 이길 수 있다."
"이대로 정면승부를 하면 불리하단 말이냐?"
"보패를 한꺼번에 쓸 수 있을 때의 위력은 이미 신공표의 싸움에서 느꼈을 텐데."
"......"
"우리가 질 것 같지는 않지만 힘대 힘으로 밀어붙이면 쓸데없이 큰 피해를 입을 거다. 그리고 신공표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일단 신중하게 접근해라."
"알겠어. 당산이 세뇌된 건 어떻게 하지?"
천우진이 지긋이 당산을 노려보다가 대꾸했다.
"내가 잠깐 저 놈을 맡고 있겠다. 너는 화룡진인과 진소청의 도움을 받아서 팽조의 잠재력을 탐색해라. 서문혜는 잔류 마도사들을 제거하면 될 것이다."
"알았..."
나는 대답하고 행동하려다가 순간 어색함을 느꼈다.
'어... 그러고보니 진소청은 왜?'
당산은 혼자서 사천무림을 말아먹을 정도의 실력이었으므로 무림의 절대자 경지에 오른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당산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보패 흑비파의 세뇌에 당하고만 것이다. 그만큼 보패의 위력은 막강했는데 정작 내 옆에 있는 진소청은 안색이 조금 안 좋을 뿐 전혀 세뇌당한 기색이 없었다.
진소청은 왜 정신공격에 당하지 않은 거지?
내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진소청이 앞으로 달려나가며 말했다.
"백웅! 내가 화호초를 박살내겠소."
"아, 알겠소!"
나는 진소청이 화호초를 공격하는 사이에 곧장 멸혼보를 써서 저만치 떨어져 있는 팽조를 공격했다. 팽조는 내가 화룡진인의 기운을 휘감고 달려들자 자신의 한쪽 손을 시꺼멓게 물들이며 검을 들었다.
까강!
'으윽.'
나는 팽조와 일 검을 맞부딪힌 순간 전신이 저려오는 걸 느꼈다. 상대방이 들고 있는 검은 마가사장의 보패인 청운검(靑雲劍)이었기에 상당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고 팽조의 완력 또한 거신족에 맞먹는 듯 했다. 만일 내가 들고 있는 검이 평범한 장검이었다면 지금 피를 토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검의 충돌으로 나와 팽조의 역량차이를 순식간에 알 수 있었다. 설령 보패없이 싸워도 아직은 내가 일대일로는 절대 팽조를 이길 수가 없다! 종족으로서의 차이가 하늘과 땅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팽조가 검날을 겨루는 상태에서 히죽 웃었다.
[흐흐흐...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인간 애송이인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흥, 관상도 볼 줄 아냐?"
[물론... 범부(凡夫)가 틀림없는데 괴이한 일이군.]
나는 그 말에 찔끔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검에 힘을 실었다.
"범부 칼에 한 번 죽어봐라아아아아!!"
콰칭!
그 순간 내 검에서 뇌신류의 검강이 폭사하면서 미끄러지듯 팽조의 목에 부딪혔다. 하지만 검강을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팽조는 그저 따끔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고, 나는 다시 검류를 펼쳐서 열 번이나 크게 베었다. 그러나 역시 팽조에게는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한 듯 했다.
"으, 뭔..."
[크하하하... 너는 내가 입은게 팔괘자수선의(八卦紫綬仙衣)라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구나.]
"보, 보패를 입고 있어?"
[네놈따위의 공격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팽조는 호언장담했다.
나는 이런 유형의 적은 처음이라서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보패를 몸에 둘둘 말아서 최강의 방어력을 뽐내다니!
여태껏 내가 마주쳤던 적들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보패를 여러개나 한꺼번에 쓴다고 해도 신공표에는 전혀 비교할 수 없다. 신공표와는 달리 보패의 잠재력을 동시에 끌어내서 해방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장비효과만 쓸 뿐이기 때문이다.
'쩝... 그렇지만 어떻게 이기지...'
그렇게 생각하면 위안이 되었으나 문제는 그렇다 해도 딱히 이길 방법이 없는 게 문제였다. 암울함을 느끼면서도 나는 일단 모든 무공을 발휘해서 팽조에게 도전했다.
까강! 까강!
무려 이백여 초를 겨뤘다!
화룡진인이 내 검에 자신의 화룡염을 실어서 위력을 강화시켰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다. 내 일검의 위력이 내공의 효과로 산조차 베어버릴 위력이라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방어력이었다. 심지어 해신에게도 일단 칼이 꽂히기는 했는데 눈 앞의 팽조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
투쾅!
"으아악."
나는 팽조가 날린 주묵에 갈비뼈를 맞자 간신히 호신강기로 막았지만 너무 아파서 비명을 흘렸다. 그리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시공간 조작!'
방금은 내가 멸혼보나 보법으로 피하지 못하게 내 시공간을 가까이로 끌어온 다음에 팽조가 주먹으로 갈긴 것이었다. 매우 단순한 수법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무공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내 호신강기마저 깰 수 있는 강권을 맞은 것이다.
'이런 놈은 절대지경에 올라야 겨우 싸워볼까말까 하겠구나...!!'
초절정의 경지에서 아무리 내공이 많고 뛰어난 무공이 있어도 팽조를 상대로는 도저희 이길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보패 팔괘자수선의를 뚫을 정도의 공격력이 있어야하고 시공간조작에 저항할 의념절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절대지경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별 수 없이 화룡진인에게 내 몸의 통제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화룡진인이 강림하면 영력과 신체능력이 크게 상승하며 용왕의 권능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룡진인도 내 몸을 움직이면서 팽조를 상대로 버티기만 할 뿐 딱히 수가 없는듯 했다.
콰광!!
후두둑...
화룡진인이 용왕의 화염을 수십 장 크기로 뿜어냈으나 연기 너머에 나타난 팽조는 티끌만큼도 다친 기색이 없었다. 팽조가 히죽 웃으며 화룡진인을 조롱했다.
[흐흐, 화룡진인... 기왕 이렇게 된거 너를 붙잡아서 만신전으로 가는 길을 알아내겠다.]
[건방떨지 마라! 천계 최고의 수호법의를 입고 있는 주제에. 네놈이 맨몬이었다면 진잔에 내 불뽗에 타 죽었으리라.]
[억울하면 너도 보패를 쓰면 될 게 아닌가? 크하하.]
화룡진인은 상당히 분노한 듯 눈을 치켜떳다. 나는 화룡진인에게 말을 걸었다.
[화룡진인. 더는 무리일 듯 합니다. 탐색은 이 정도면 되었으니 이제 구천현녀의 도움을 빌리는게 좋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놈의 수준과 구체적인 실력 전설울 알아보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내 힘으로 부딪혔다. 하지만 이 정도면 알만큼 알았으니 결판을 낼 때가 된 것이다.
[으으. 저 놈을을 없애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우웅
내게 구천현녀가 강림하자 팽조는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그리고는 신안(神眼)으로 내게 강림한 구천현녀의 본질을 알아보자 경악했다.
[아, 아니?! 당신이 대체 여기 왜...]
구천현녀의 싸늘하게 대꾸했다.
[팽조여. 그대가 사라지던 무렵 천계의 비고동에서 보패가 대량으로 사라진 일이 있어서 그대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대는 그 보패들을 가지고 서방으로 갔던 것이군요.]
[......]
[삼황오제의 혈족이라는 위대한 핏줄을 타고났음에도 그 하류배와 같은 성정과 행동... 더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소멸시키겠습니다.]
부들부들
팽조는 몸을 떨면서 분노인지 원망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천계는 이미 창힐이 다 막았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어째서 여기 구천현녀가... 설마 창힐놈, 나를 속인 것인가...?]
스윽
구천현녀가 손을 들며 시해지술을 펼칠 준비를 하자 팽조가 급히 구천현녀에게 말했다.
[구, 구천현녀. 내가 보패를 한꺼번에 쓸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하군요. 그대는 신의 혈족이라 신력을 많이 지니고 있으나 혼돈의 재능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대라도 보패를 남발하면 힘이 고갈되어 쇠약해질 것인데 무슨 수로 그게 가능하죠?]
[가르쳐주면 나를 놓아준다고 그대의 이름에 걸고 약속해라.]
[......]
나는 구천현녀에게 단오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구천현녀는 차분하게 대꾸했다.
[그냥 죽으십시오.]
[아니 잠깐...!!]
퍼버벙
시해지술이 펼쳐지자 팽조는 그대로 분해되어서 소멸당하고 말았다. 원래의 구천현녀의 힘이라면 이 정도까지는 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수요를 공양받아 고대 전신의 힘을 회복했으므로 팽조 정도는 가볍게 해치울 수 있는 것이다. 오쩌면 과거 힘을 회복한 공공과 대등할지도 모르는게 현재의 구천현녀였다.
그리고 팽조가 소멸된 자리에는 팔괘자수법의와 청운검이 떨어져 있었다. 그 외에도 몇 개의 보패가 더 있었는데 하나같이 진귀한 것들로 보였다.
'아싸, 저 보패를 동료들에게 하나씩 주면...!!'
나는 득의양양한 기분이 들었다. 저걸 나 혼자 다 쓸 수는 없겠지만 내겐 동료가 있다. 동료들에게 보패를 하나씩 나눠주기만 해도 전력이 급격히 상승할 것이다! 구천현녀도 그렇게 생각한 듯 앞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쿠르릉
갑자기 번개가 떨어지며 그 자리에 신공표가 나타났다. 신공표는 팔괘자수선의와 청운검을 주운 후 씨익 웃었다.
[이건 내 꺼...]
그 순간이었다.
퓨웅!
신공표가 뭐라고 말하는 순간에 은빛의 섬광이 날아들어서 그녀의 발밑에 꽂혔다. 소리소문없이 날아든 그 은창은 마치 시간 그 자체를 베어버린 것 같았다. 신공표가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이 되어서 은창을 던진 당사자를 쳐다보았다.
[......]
그 자리에는 그 짧은 시간에 화호초를 반파시킨 진소청이 서 있었다. 그리고 진소청의 뒤에는 당산을 기절시켜서 들쳐업은 천우진도 와 있었다.
진소청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 꺼 아니니 내려놓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