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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711화 (71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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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천우진이 달에 있다니?

나는 이해가 안되어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쳐다보며 말했다.

" 설마, 저 달을 말하는 것이오?"

[ 그렇소, 백웅.]

" 말도 안 돼... 저기는 현재 인간의 힘으로는 갈 수 없잖소."

내가 당황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나는 제갈사에게서 마도지식을 배우면서, 사실 이 세계의 지리와 물리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광대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천체에서 달까지의 거리도 알게 되었는데 무려 이 천체를 서른 번이나 겹쳐야 도달할법한 거리였다. 내가 중원에서 서역 대영제국까지 갔던 거리를 수백 수천 번 가까이 가야하는 거리였고, 그나마도 우주의 진공이 그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도저히 뛰어서는 갈 수 없다. 그만한 거리를 날아서 갈만한 기계장치는 현재의 인류 수준으로는 발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 물리적인 거리로는 그렇지. 현재의 과학과 수학이 수백 년은 더 발달해야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오.]

" 그런데 저기에 천우진이 갔다는 말이오?"

[ 내 사제는 술법을 이용해서 찾아갔소. 그의 수준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 물리적 거리를 물리적 수단으로 찾아가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오.]

" 으음."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저 어마어마한 거리를 뚫고 달까지 술법으로 갈만한 수준이란 건 어떤 걸까? 중급 술수도 제대로 못 쓰는 나로서는 일단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일단 머릿속을 정리하며 물어보았다.

" 그럼 천우진이 신시결전이 끝나고 난 후에 저기에 간 이유는 뭐요? 왜 제갈사는 그 일을 시킨 거요?"

[ 달은 굉장히 수상쩍은 장소이기 때문이오.]

" 응?"

[ 백웅 당신도 마도지식을 배워서 알겠으나, 저 달이라고 하는 행성은 천문학적인 확률을 뚫고 만들어진 개체요. 현재 이 행성에 생명이 제대로 숨쉴 수 있는 이유는 달이 온갖 외부의 혜성이나 해로운 천체를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오. 이 정도 우연은 사실 거의 존재할 수가 없소.]

" ......?"

[ 먼 옛적부터 저 달은 주술적으로 아주 중요한 상징이 있다 여겨졌고... 모든 술법의 근원이 되기도 했소.]

망량이 말을 이었다.

[ 제갈사 숙부는 저 달에 실제로 월궁항아(月宮姮娥)가 유폐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던 것이오.]

" 월궁항아라면, 투선(鬪仙) 예(?)의 아내를 말하는 것이오?"

[ 그렇소. 천하제일의 미녀로 불렸으며 유궁 예의 아내가 되었고 광한궁(廣寒宮)에 갇혀있다는 전설의 불로불사의 여신...]

" 흠."

나는 망량의 말에 과거의 기억을 되살렸다.

[ 예 님. 서왕모야말로 천계 최대의 반역자이며 삼청을 소멸시킨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고한 신선들을 잡아먹은 혐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은 제 명예를 걸고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알아!]

[ 난 고대에 불로불사의 연단을 구하러 그녀의 궁전에 갔을 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그래도 서왕모를 따르는 거다.]

[ 서왕모는 모든 일이 끝나면 내게 항아를 되돌려 준다고 말했다. 절대 너희를 그냥 보내줄 순 없어.]

[ 구천현녀. 당신이 정의라는 건 알고 있어. 당신 말대로 해야 천계도 인간계도 살 수 있겠지. 하지만... 내게는 아내가 더 소중해!!]

내가 지난번에 죽기 직전, 구천현녀 손오공 등과 함께 서왕모의 인세멸망 음모를 막기 위해서 천계 태산으로 쳐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우리를 홀로 막아선 게 바로 투선 예였는데 그는 구천현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뜻을 돌리지 않았다. 그가 말하기를 그는 이미 서왕모의 음모를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서왕모에게 동참한 것이다.

그 때문에 손오공이 쓸데없이 부상을 입게 되어서 계획이 더 힘들어졌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때의 기억을 차분하게 떠올리며 망량에게 말했다.

" 그랬었지... 그런데 월궁 항아가 뭐가 중요하길래 굳이 그 일을 캐내기 위해서 천우진을 달까지 보내버린 것이오?"

[ 월궁 항아. 그녀는 투선 예의 아내이지만 그 전에 또 하나의 신분이 있소.]

" 그게 무엇이오?"

[ 그녀는 천계에 있을 적에 태음성군(太陰星君)이라 불렸으며 기실 삼청 외의 그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정도의 드높은 직위를 지니고 있었소. 지닌 바 술법능력이 그리 높지도 않은데도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녀의 출신성분 때문이었지.]

나는 망량의 말에 내 도교지식을 훑어보다가 속뜻을 알아챘다.

" ... 제곡(帝?)!!"

[ 바로 그거요.]

망량은 눈을 빛냈다.

[ 그녀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제곡(帝?) 고신씨(高辛氏)의 딸이오. 즉 삼황오제의 직계혈족! 따지고 보면 원래 팽조나 창힐보다 더욱 드높고 지엄한 신분이었다고 할 수 있소.]

" ......!!"

삼황오제 제곡!

그는 사비시신 등의 다양한 신격들을 부리며 새를 다스리고 동방을 수호한다고 알려진 삼황오제였다. 여태껏 그 모습을 별로 많이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그 또한 삼황오제이기에 지닌 바 권능이 막강할 것이다. 그리고 삼황오제 전욱의 손자격인 팽조만 해도 대라신선급인데 그보다 더욱 격조높은 항아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나는 놀란걸 진정하며 말했다.

" 흠... 그러니까... 월궁항아를 찾아서 우리 동료로 만들려고 천우진을 보낸 거요?"

[ 아니오. 지금 삼황오제와 드잡이질하는 이 판국까지 와서 그녀 정도를 아군으로 만들어서 뭐하겠소? 게다가 결국 삼황오제의 혈족이니 그들 편을 들게 뻔한데.]

" 그럼..."

[ 잘 생각해 보시오... 그녀는 제곡의 딸이오.]

" ......"

내가 머리를 굴렸지만 망량이 뭘 생각하는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낑낑대고 있을 때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서문혜가 뭔가 알아차렸는지 말했다.

" 삼황오제가 혈족을 아무데나 내버려두진 않을테니, 그녀가 유폐되어 있다는 광한궁 그 자체가 삼황오제 제곡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이군요."

[ 맞소.]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 전설상의 광한궁은 달에 있다고 알려져 있소. 그리고 우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삼황오제는 자기만의 이세계(異世界)를 하나씩 거느리고 있고, 그 예로 만신전이나 만귀전 등이 있소. 그렇다면...]

나는 망량의 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 달 그 자체가 삼황오제 제곡의 만신전(萬神殿)이란 말이오?"

[ 숙부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오. 삼황오제가 자신의 만신전을 인위적으로 생성한 셈이지. 별 하나를 통째로 덮어써서.]

" 으음...!!"

[ 제곡의 만신전은 반왕전(盤王殿)이라고 불리오. 그리고 현재 우리 동료들 중에서 반왕전을 탐색할만한 능력을 지닌 건 오로지 사제뿐이었기에 그에게 달의 탐색임무를 맡겼던 거였소.]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달이 삼황오제 제곡의 만신전이라니!

나는 책사들이 내 생각보다 어디까지 앞서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정보를 모아오기만 했는데도 그들은 훨씬 멀리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 구르면서 저 결론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열 번은 더 죽어야 했으리라.

' 다행이다.'

나는 망량이나 제갈사 등을 만날 걸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 움직이는 것에 비하면 수십 배나 되는 시간을 단축시켜준 게 분명했다. 내가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망량이 말을 이었다.

[ 전욱의 만귀전은 봉래도에 있던 오거천문을 통해서 들어갔소. 마찬가지로 제곡의 반왕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문'을 통과해야 할 확률이 높았소. 그리고 그 '문'은 틀림없이 달에 있을 것이고 사제는 그 문을 찾고있는 중이오.]

" 혹시 망량, 천우진과 연락이 되오?"

[ 아직은 되지 않소. 왜냐하면 그 곳은 너무 먼 곳인데다, 반왕전이란 게 사실이라면 삼황오제의 권역이니 명경의 능력이 미치지 않소.]

" 음."

내가 현재 상황을 머리에 넣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 슬슬 밖으로 나와 주십시오, 구천현녀 님.]

파앗

망량의 말이 끝나는 순간 내 뒤편에서 영체가 나타났고, 그건 구천현녀의 영체였다. 그녀는 현재 나와 동행하는 상태였고 평소에는 투명한 채로 차원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 자리에 소환되자마자 망량에게 말했다.

[ 대단하군요. 인간일진대 그대는 자력으로 명계 최심부에 가서 전륜성왕의 명경을 손에 넣고, 반왕전과 명계의 진실을 모두 알아냈습니까?]

망량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저 혼자 한 일이 아니며 모든 게 백웅과 동료들 덕분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구천현녀께서도 우리의 일을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 ......]

망량의 무덤덤한 표정에 일순간 격정이 스쳐지나갔다.

[ 구천현녀 당신께서는 초고대부터 중원신대의 모든 역사를 지켜보신 위대한 신격. 우리가 알아내려는 신화상의 기밀 정도는 이미 다 알고 있으실 겁니다. 어찌하여 삼황오제가 마음대로 이 세계의 윤회전생을 망가뜨리는 걸 지켜보고만 있으셨습니까? 너무나 무책임합니다.]

[ ......]

[ 이 세계는 인간에게 한 줌의 희망조차 존재하지 않는 생지옥으로 변한지 오래입니다. 죄책감은 없으십니까?]

나는 깜짝 놀라서 망량을 쳐다보았다.

" 마, 망량!"

설마 망량이 대놓고 구천현녀를 비판하다니!

원래 도가의 정신을 수호하고 정의를 추구했던 망량이라면 도교신격의 최상위에 있는 구천현녀를 감히 비난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망량은 그답지 않게 상당히 화가 나 있는 듯 했고 눈빛에는 결의마저 감돌고 있었다. 신화상의 비참한 진실에 그의 올곧은 마음이 크게 격동하고 있는 것이리라.

구천현녀는 한참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그대들 인간이 저를 아무리 비난해도 할 말이 없군요. 그대들의 말대로 나는 모든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황오제가 마음대로 모든 걸 주무르는 것을...]

[ 삼황오제의 강대한 권능에 굴복하셨던 겁니까?]

[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분'께서 하셨던 약속 때문이기도 했지요.]

[ 그 약속은 무엇입니까?]

[ 아직 말할 수 없습니다.]

구천현녀가 말을 이었다.

[ 저는 그들의 만행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인간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늘 괴로운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망량은 별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구천현녀를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 구천현녀여, 백웅을 배신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 알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구천현녀에게 다짐을 받아낸 망량이 내게로 시선을 돌린 후 말했다.

[ 백웅. 사제가 반왕전의 입구를 찾아내고 그 안의 월궁항아까지 찾아낸다면 우리는 삼황오제의 거점 중 2개를 이미 알아내게 된 셈이오.]

" 음."

[ 삼황오제의 거점은 조만간 모두 알아내야 하오. 그래야 언젠가 그들을 모두 일망타진할 수 있소.]

일망타진!

" 조금... 자신이 없소."

나는 그 말을 듣자 약간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일행의 전력을 다 모아서 열 배 스무 배를 해도 삼황오제 하나를 감당 못하는 수준인데 그들의 거점만 다 알아내면 뭐한단 말인가? 내가 무력감을 느끼는 표정을 짓자 망량이 훗하고 웃었다.

[ 백웅. 당신은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소. 당신의 무력은 별로 성장하지 않았을지언정, 당신은 지금까지 늘 상당히 높은 성과를 거두었소. 그건 내가 장담하니 자신감을 가지시오.]

" 고맙소."

[ 분명히, 우린 이번 생에 뭔가 해낼 수 있을 것이오. 그게 뭐가 됐든 간에.]

확신을 담은 어조로 말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 구천현녀의 도움을 받으면 달까지 갈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달에 가서 사제를 찾은 후 지상에 되돌아와서 내게 다시 연락을 주시오.]

파앗

망량은 그 말을 끝내고 사라졌다. 그리고 주변의 시꺼먼 이공간이 사라지고 원래대로의 평범한 요남 호수로 되돌아왔다.

나는 옆에 소환되어 있는 구천현녀에게 말했다.

" 구천현녀시여. 달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겠습니까?"

[ 있습니다. 지금 술법으로 길을 열어드리지요.]

위잉!

구천현녀가 시해지술을 쓰자 곧장 은빛 통로가 생겨났다. 이 통로를 한 걸음만 내디디면 달에 갈 수 있는 게 분명했다. 시해지술은 여러모로 만능술법이라는 생각을 하던 나는 순간 멈칫했다.

" 혹시 달에 도착한 후 시해지술로 천우진을 찾을 수는 없겠습니까?"

내 질문에 구천현녀가 대답했다.

[ 찾을 수는 있지만 일단은 신중하게 가야 할 것입니다. 술법을 가능하면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 네?"

[ 그대의 동료 망량의 추측대로입니다.]

구천현녀의 시선이 먼 하늘의 달에 머물렀다.

천공의 초승달은 마치 광기를 머금은 듯 푸른빛을 뿜고 있었다.

[ 저 달은 삼황오제 제곡의 반왕전. 저 곳에서 제곡은 인과율을 신경쓰지 않고 힘을 쓸 수 있으니 결코 우리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 ......"

나는 그 말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삼황오제가 마음껏 힘을 사역할 수 있는 악몽의 이계로 지금 걸어들어가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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