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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나는 그 동안 망량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다.
" 망량.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소? 아니.. 아니지."
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목갑에서 흑요석을 꺼냈다. 흑요석을 통해서 기억을 전달해서 망량에게 내가 겪었던 일을 알려주는 게 먼저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흑요석을 꺼내자 망량이 손을 내저었다.
[ 나는 여기에 실체로서 소환되어 있는게 아니니 그 흑요석의 술법은 무의미하오. 기억이 전달되지 않을 것이오.]
" 아..."
[ 그냥 말해주시오.]
" 알겠소. 나는..."
나는 암천향에 간 후 내가 겪었던 일을 차례로 말했다. 난데없이 신의 위장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신공표를 봉인에서 풀어주었던 일, 암천향에서 아수라와 일전을 벌인 후 측천무후를 만나 이야기를 한 일, 구천현녀에게 수요를 바쳐 팔부신중을 물리쳤던 일 등등이었다.
내 이야기를 반 시진 가까이 모두 침착하게 들은 망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랬군. 그렇다면 아마 신공표의 손에 아수라가 죽은 후에 팔부신중이 지상을 습격한 것일 거요.]
"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 ... 이제야 일의 아귀가 다 맞는 것 같군.]
뭔가 중얼거리던 망량이 말을 이었다.
[ 백웅. 내가 명계에 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오? 그 중대차한 신시의 결전에서 전력부족까지 감수하고서.]
" 솔직히 잘 모르겠소."
정말로 모르겠다. 망량이 제갈사와 의논하면서 뭔가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건 남쪽대륙에서 함께 숙식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내게 구체적인 건 알려주지 않았다. 망량은 대체 왜 명계에 간 것일까?
망량이 세 개의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 세 가지의 목적이 있었소.]
" 세 가지?"
[ 그렇소. 하나는 바로 당신이 직전에 이뤄냈던 업적인, 우희(虞姬)의 탐색이었소. 초패왕 항우의 연인이었던 그녀를 찾기만 하면 향후 항우가 당신의 아군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 ....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명계에 도전할만한 위험을 감수하기는..."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물론 우희를 찾으면 내게 큰 도움이 되긴 하겠으나, 명계행은 무언가 수상쩍은데다 두 명의 투선이 일부러 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매우 위험했다. 우리 전원이 힘을 다 합쳐도 될까말까한 일에 도전하다가는 개죽음밖에 없을텐데, 고작 그 이유로 망량이 목숨을 걸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 물론 그것만으로는 섣불리 명계 도전을 결정할 수 없었지. 또 하나의 이유는 명계의 현 상황을 확인하며 지옥시왕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었소.]
" 그게 중요하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베노 세이메이의 말대로 현재 염라대왕의 자리가 공석이고 그나마도 생사부를 남북두성군이 제멋대로 관리하는 거라면 수상쩍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건 목숨을 걸고 명계를 탐색할만한 이유까지는 되지 못했다.
내 말에 망량이 설명했다.
[ 아주 중요했소. 왜냐하면 이 세계의 윤회전생 체계를 확인해야만 삼황오제와 미래종말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오. 어찌보면 이 문제는 당신이 거대한 힘을 얻기 전에 미리 확인해둬야 하는 정보였소.]
" ......?"
[ 백웅. 사람은 죽으면 명계에 가오. 그러면 명계에 간 다음에는 어떻게 되오?]
" 음..."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 일단 알려지기는 49일간 인간의 영혼이 지옥시왕에게서 재판을 받고 이후의 거취를 결정받는다고 알고 있었소. 그리고 그 거취는 인간계에 기억을 지운 채 환생하거나 명계에서 벌을 받게 되오. 혹은 천상계나 다른 세계의 주민이 되는 거라고 알고 있소."
[ 그렇소. 나는 과거 당신에게 도가 술법지식을 가르칠 때 그렇게 가르쳤소. 또한 그 지식은 이 세상에서 술법을 연마하는 도사 중 9할 9푼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당연한 체계요.]
망량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 하지만 당신이 전생으로 쌓은 지식을 통찰하고, 그리고 아베노 세이메이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었소.]
" 아닐 수도 있다는 게 무슨 뜻이오?"
[ 인간술법사가 탐색할 수 있는 영역은 지옥의 앞에 있는 연옥까지가 보통이고 지옥 내부까지 들어간 술사는 역사상 매우 희소하오. 그래서 여태껏 그 내부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더욱 망설이다가 말했다.
[ 만일에, 인간이 윤회전생하지 않는 거라면?]
" ......?!"
[ 천계가 지금까지 인간을 속여왔던 거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 무슨 말이오?"
[ 말 그대로요. 당신도 알다시피 종말의 시기인 오백여년 후, 지상계는 물론이고 명계에 있던 모든 영혼들도 [옛 지배자]의 손아귀에 들어가서 먹이가 되게 되지. 하지만 만일에 그 가정부터 틀려있었다면?]
" ......"
[ 인간이 죽은 후 명계의 심판을 받지 않는 거였다면 어떤 상황이라고 생각하오?]
나는 망량의 말을 그제서야 이해했다.
" 서, 설마?"
망량은 꺼지듯 한탄했다.
[ 내가 직접 여기에 들어와서 확인해 본 결과, 아베노 세이메이의 말대로였소... 염라대왕 뿐만이 아니라 모든 지옥시왕(地獄十王)은 소멸한지 오래였소.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 죄지은 영혼을 심판하는 옥졸이나 간수들 또한 할일을 잃고 허무의 공간에서 멍하니 떠돌고 있었을 뿐이오. 이 곳은 황량한 사막이나 다름없었소.]
" 으음!"
[ 지옥은 있으되 심판관은 없다. 심판관이 없으니 옥졸과 간수도 할 일이 없다. 이건 이미 명계가 그 역할을 잃었다는 뜻인 거요.]
" ... 그럼 죽은 자들의 영혼은..."
[ 나는 그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서 명계의 최심부로 왔던 것이오.]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 그리고 영혼의 행방을 찾기 위해 명계를 여행하다가 이 명경(冥鏡)의 방에 들어오자 모든 걸 알 수 있었소.]
" 어떻게 된 거였소?"
[ 모든 영혼은 명계를 한 번 경유한 후 그대로 알 수 없는 차원의 회랑으로 빨려들어가게끔 되어 있었소. 마치 배수구처럼 한 줌의 영혼조차 빠져나가지 못하고 혼돈의 수렁에 가라앉게 되지.]
" 그 수렁이란 건..."
[ 쉽게 말해서 [옛 지배자]의 뱃속이오.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 ......"
나는 물론이고 옆에서 듣고 있던 서문혜도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다.
죽으면 적어도 선악에 따라서 심판받고 환생할지도 모른다는 게 일반적인 인간들의 인식이었다. 종종 어떤 종교에서는 신이 거두어서 천년왕국에 산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선악을 심판받는 과정은 있었다.
그러나 - 실제로는 그런 게 없다니.
그냥 죽고 나면 무조건 [옛 지배자]의 뱃속으로 직행하는 거였다니?!
생지옥(生地獄)!
나는 그저 그 단어밖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제갈사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 난 저승이나 구원에 미련없어.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은 후에 뭐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지. 하지만 나는 알만큼 다 알고 있고, 천계에서 마련해준다는 인위적인 구원을 혐오한다. 결국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
[ 나도 형님도 형수도... 제갈세가 전체가... 얼마나 천계의 위선에 농락당했는지.]
그리고 예전 망량과의 문답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 방현령은 천 년 전 사람이고 전위는 거진 천사백 년 전의 인물이오. 불가에서 말하는 윤회전생의 원리에 따르자면 그들은 예전에 사후세계로 가서 새로운 존재로 환생해야하지 않소?]
[ 음... 설명하자면 복잡하지만, 그 질문은 한 가지 틀렸다는 것만 말해두겠소.]
[ 사후세계와 저승은 같지 않소. 그건 엄연히 다른 것이오.]
[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죽고 나서도 신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지...]
천계에서 마련해주는 인위적인 구원.
신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그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되새긴 후 망량에게 말했다.
" 당신과... 제갈사. 그리고 아마 제갈유룡. 제갈가문의 사람들은 대략적으로 그 진실을 이미 예전부터 유추하고 있었구려."
[ 그렇소. 제갈유룡은 세계의 이면을 저절로 알게 되었을 것이고 숙부는 마도를 접하며 알게 되었을 거요. 나는 스승님께 공부를 배우다가 건너들었소.]
" 하지만 당신들은 지금껏 전생을 살아오면서 내게 거기에 대해서 설명해준 적은 없었소. 왜 이제서야 말을 해 주는 거요?"
[ 사실확인이 없는 유추는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기 때문이었소. 다른 곳도 아닌 저승세계에 대해서 섣불리 편견을 가지고 잘못된 정보를 갖고 접근하면 아무리 당신이라도 후환이 두려운 법. 당신이 전생자라는 걸 감안했기에 억측을 함부로 피로하지 않았던 거요. 만에 하나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전생이 끝장나버릴 수도 있으니.]
" 으음."
일리있는 말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 그리고 이제 직접 명계에 와서 사실을 확인하게 된 거요. 이 세상의 사후세계는 진정으로 환생체계가 사라져버린 생지옥이며 명계는 옛날옛적에 그 기능을 잃었다는 사실을.]
" ... 하지만 그렇게 생지옥이라고 하면 현재 이 세상에 태어나는 새로운 인간들은 대체 뭐요?"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어리둥절했다.
" 지금도 중원 어디에선가는 인간이 새로 태어나고 있소. 만일 [옛 지배자]의 뱃속으로 인간의 영혼이 먹혀버리는 게 사실이라면 영혼의 수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어야하지 않소?"
[ 그건 바로 삼황오제 때문이오.]
" 삼황오제?"
[ 삼황오제는 현재 [옛 지배자]들과 정전협정을 맺음과 동시에 강력한 축복을 동방세계에 내리고 있소. 8인의 지배자가 만들어낸 강대한 축복은 [혼의 재창조]를 이루어내지. 동시에 그들은 영혼이 사라진만큼의 영소(靈素)를 이 행성 전체에 재공급하고 있소.]
" ... 삼황오제가 늘 죽은 만큼의 새로운 영혼을 창조하고 있다, 그 말이오?"
[ 그렇소. 그리고 백(魄)은 늘 자연이 다시 만들어내게 되고, 새로 만들어진 혼에 백이 들러붙으면 새로운 영혼이 인간의 태내에 자리잡게 되오.]
" ......."
나는 입을 멍하니 벌리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 그건... 삼황오제가 전쟁을 멈추는 댓가로... 인간을 수천 년 동안 [옛 지배자]의 먹이로 공급했다는 말이오?"
[ ... 맞소. 그것이 바로 세계의 진실.]
망량은 눈을 감았다.
[ 상위 신선들은 얼추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눈을 돌리고 중화세계의 유지에만 신경써야 했던... 절망적인 현실이오.]
" 으아아아아아!!"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 암울하다!
' 이러니, 이러니까 삼황오제가 인간을 벌레취급하는 거였어!!'
단순한 힘의 차이가 아니다.
삼황오제나 [옛 지배자]들은 실제로 인간을 마치 가축처럼 양식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수천 년 동안!
그렇다면 생전에 존재하던 모든 인간세상의 도덕과 가치, 선악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차피 죽고 나면 악신의 한끼 식사거리가 될 뿐이라면,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이 세계가 악(惡)의 천칭에 기울어져 있다는 건 과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건조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런 삼황오제의 눈에 인간이란 건 얼마나 하찮고 역겹게 보였을까?
그저 새모이를 털어넣듯 [옛 지배자]의 입에 먹이로 던져주고 있는 약해빠진 미물이 자신을 숭배하는 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심심하면 인신공양으로 한줌씩 집어먹으며 즐기는 한끼 식사거리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동시에 나는 인간의 생사와 사후세계, 우주의 인과율을 자유자재로 갖고노는 삼황오제의 압도적인 힘에 전율이 흘렀다. 이런 존재들이 인간의 신앙 따위를 필요로 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그 자체로 머나먼 과학과 마법의 주인이자 신좌의 왕인 존재들에게 있어서 인간은 그저 장난감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을 천계에서 감추고 사후에 명계에 심판받는다고 거짓정보를 퍼뜨린건 그럴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걸 알게 되면 모든 인간들이 광기에 젖어서 그저 극악한 자아를 지닌 채 악신을 숭배하게 될 뿐이다. 문명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절망적 진실이었다.
망량이 씁쓸하게 말했다.
[ 이렇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측천무후의 선택 또한 그리 나쁜 건 아니었소. 적어도 그녀는 팔부신중의 힘을 빌려 자기 시대에 태어난 인간의 영혼들을 한끼먹잇감에서 구제했으니까...]
" 빌어먹을... 하지만..."
나는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서문혜가 말했다.
" 앞으로 백웅 님이 우리를 구해주실 거예요. 그 진실은 알았고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뭐죠?"
[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명경(冥鏡)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소.]
" 명경...?"
스으윽
망량의 옆에 사람 키만한 거울이 소환되었다. 그 거울은 아까 서문혜가 호수에 던져넣었던 것처럼 시꺼멓고 빛을 반사하지 않았다. 망량은 그 거울을 손으로 쓰다듬다가 말했다.
[ 명경이란 바로 지옥시왕을 다스리던 군주,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남긴 최후의 유물이오. 보통 지옥시왕의 수장은 염라대왕이라 알려졌지만 그건 왜곡된 정보이고 전륜성왕이 본디 명계를 통치했었소. 그는 신적 존재이지만 세간에는 정확한 정체가 알려져 있지 않소.]
" 전륜성왕..."
[ 나는... 그동안 많이 고민했었소.]
망량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 내가 무공이든 술법이든 이제 아군에게 도움이 될만한 건 없을까 하는 자괴감도 들었고,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지 늘 고민했소. 그러던 중 내가 할 수 있는 건 큰 그림을 보면서 당신의 행로를 잡아주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스승님께 조언을 구하게 된 것이오.]
" 망량선사에게!"
[ 그리고 스승님은 내게 명계에 가서 전륜성왕 최후의 보물인 명경을 손에 넣으라 하셨소. 아주 고대적... 인간이 아직 그 힘을 잃지 않았고 명계가 제대로 굴러가던 시절에 만들어진 진실의 거울을.]
" 그 거울은 대체 무엇이오?"
망량이 말했다.
[ 이 거울의 힘을 보여주겠소.]
파아아앗!!
다음 순간, 나는 은빛으로 물들어 있던 호수에서 빛이 일어나더니 갑작스럽게 내게 기억이 전달되는 것을 느꼈다. 서문혜의 시점에서만 볼 때는 잘 모르던 정보, 동료들이 결전을 겪을 때 느꼈던 생생한 감정, 심지어는 심층의식까지 전달된 것이다!
나는 순식간에 마치 전지적 시점으로 신시결전 후의 상황을 바라본 것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5년간의 공백을 많이 메운 셈이 되었기에 나는 꽤 놀라고 말았다.
" 이, 이건?"
[ 명경은 이 세상 어떤 존재에게라도 말을 걸 수 있으며, 그 존재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고, 어디든 볼 수 있소. 그리고 지옥시왕들은 이 명경을 전륜성왕에게서 대여해서 죄인들을 심판하곤 했지. 나는 이 명경의 주인이 되었기에 명경을 이용해서 정보를 흡수하고 재전송할 수 있게 되었소.]
" ......!!"
설마 이건, 저승신화에 흔히 나오는 '죄를 비추는 거울' 업경(業鏡)과 같은 것인가?
그렇다면 망량은 말 그대로 신화적인 보물의 주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억을 전송받은 순간 현재 망량의 상황을 알아채고는 말했다.
" 망량. 당장 구하러 가겠소."
망량은 지금 멀쩡한 상태가 아니다.
명계에 어떻게든 잠입해서 명계의 최심부, 명경의 방의 문을 닫아놓으며 농성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밖에는 적들이 가득 몰려와 있으며, 그들이 문을 언제 깨부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죽어라 버티고 있는 것이다. 문이 깨지는 순간 망량은 지옥아귀와 나찰들에게 참혹하게 살해되리라.
하지만 망량은 훗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럴 필요 없소. 당신이 그렇게 늦지 않게 돌아와준 덕에 적어도 일이 년은 여유가 있으니, 그 때까지는 내가 명경을 이용해서 당신을 후방에서 지원하겠소. 당신의 기억을 대신 저장해 주고 필요할 때 힘을 지원해 주겠소.]
" ......"
[ 기억을 전해받아서 알고 있겠지만 숙부께서도 명계로 임시대피해 있소. 지금은 영체에 타격을 입어서 가사상태이지만 어쨌든 죽지는 않았소. 숙부가 깨어나시는대로 당신에게 말해 주겠소.]
그렇다.
제갈사도 저 명경의 방에 같이 들어가 있다. 단 그는 이미 많은 힘을 소진한 상태였기에 명경의 방에 도착하는 순간 가사상태가 되었고 겨우 숨만 붙어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갈사는 지상세계에 남아있는 것보다는 명경의 방에 가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 꼭 구하러 가겠소."
지금 당장은 안전하겠지만 나는 언제가 됐든 최대한 바삐 두 책사를 구출하러 가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저 문이 깨져서 둘 다 죽게 될 것이고, 제갈사의 영혼도 마왕의 소유가 되어서 생지옥을 겪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망량이 말했다.
[ 우선 백웅 당신이 현재 처한 상황을 고려해 볼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명약관화하오.]
" 무엇이오?"
이어진 망량의 말에 나는 앞으로 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 달으로 가시오. 그 곳에 천우진 사제가 있을 테니, 사제의 힘으로 신공표의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