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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 아버니이이이임!!!"
잠시 후 그 자리에 서문혜의 오열이 울려퍼졌지만, 그녀는 슬픔에 잠길 시간도 없이 커다란 지각변동이 장내에 울려퍼지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쿠구구궁!!
그녀는 눈 앞에 있던 [신의 무덤]이 엄청난 속도로 닫히는 걸 알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입구가 씻은 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황량한 평야만이 남게 되자, 옆에 서 있던 베루스가 말했다.
" 다행히 전욱이 화내지는 않았군. 깔끔하게 처리한 덕에 재빨리 무덤의 입구부터 닫아버린 모양이오."
" 그, 그건..."
" 더 이상 필멸자가 [신의 무덤]에 들어갈 방법은 존재하지 않소."
" ......"
" 나는 이만 본국에 돌아가겠소. 부친의 명복을 비오."
베루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로서는 해줄 만큼 해줬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서문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 여기서 벗어날 순 없어. 뭔가 다시 들어갈 방법이 있을 거야.'
검마는 자신을 지키고 죽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은 이 유적지의 위치를 잊지 않고 더 탐색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덤이 닫혔다 하더라도 근처의 사적이나 다른 유적을 더 찾으면서 단서를 찾아내는 게 자신이 해야할 일이리라.
지금은 귀환할 백웅을 위해서 단서를 더 모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다시 한 번 [신의 무덤]을 열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서문혜는 검마의 장례를 치를 겸 수족과 같은 무영문도들을 부르기 위해 전서구를 띄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가 이 평야에서 그로부터 한 달 이상을 더 지냈으나 그 어떤 답장도 오지 않았다. 무영문도들이 요녕성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는 무영문도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요녕성으로 움직였고, 곧이어 조사 끝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무영문도들은 모두 실종되었다.
마치 하늘로 솟아오른 것처럼 단 한 명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살해당했나 싶었지만 그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서문혜는 내심 절망했으나 이대로 꿇어앉아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없으면 없는대로 장비를 꾸리면서 유적 탐사 준비를 했다. 동시에 돈을 모아서 온갖 학자들이나 상인, 마을 원로들에게서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동료들에게 연락하고 싶었으나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적대세력에게 당할 수도 있었으므로 그녀는 신분을 숨긴 채 계속해서 평야를 떠돌며 살았다.
그러던 중 서문혜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머릿속에 듣게 되었다.
[ 들리시오?]
그 목소리는 생경한 듯 했으나 곧이어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서문혜는 마치 검마가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깜짝 놀랐다.
" 당신이군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죠?!"
[ ... 길게 얘기할 수 없소. 검마 어르신이 미처 당신에게 전해주지 못한 것 같으니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하시오.]
그 목소리가 이어서 말했다.
[ 기억을 전송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오. 그래야 불의의 사고가 터질 때를 대비할 수 있소. 그리고 당신도 몇 안되는 생존자이니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하오. 그래야 백웅에게 기억을 전승해줄 수 있겠지.]
" 당신은 다 알고 있다는 말인가요?"
[ 아직까지는... 하지만 동료들과 하나하나 접촉하면서 늘려갈 생각이오.]
" 알았어요. 어떻게 하면 되죠?"
[ 명계의 힘을 전해받을 수 있는 기물이 필요하오. 보름달의 월광(月光)이 비치는 날 호수에서 내가 말해주는 주문을 외우면 되오.]
서문혜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 나는 술법같은건 전혀 몰라요. 주문만 외워도 되는 건가요?]
[ 물론 그렇진 않소. 술법의 소양이 있어야 받아들일 수 있겠지. 하지만... 당신이라면 가능할 거요.]
[ ......]
[ 동시에 다음 보름날까지 당신에게 기초주술을 알려주겠소.]
서문혜는 목소리의 계획을 반신반의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목소리의 주인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목소리의 주인에게서 머릿속으로 술수의 기초를 배우면서 다음 보름날을 기다렸다.
그녀는 시일이 되자 요남(?南) 연안의 저습지대로 갔다. 그리고 보름달이 뜨자 상대가 알려준 술수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청명하고 맑은 호수 한가운데에 떠 있던 월광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촤앗
호수 가운데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이윽고 드넓은 호수의 수면 전체가 시꺼먼 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더니 이윽고 그 어두운 호수 전체가 거대한 거울처럼 은빛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한 명의 인영(人影)이 월광을 받으며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서문혜가 말했다.
" 정말이었군요."
상대방이 대답했다.
[ 그렇소. 현재 이 곳은 명계(冥界)의 최심부와 연결된 이공간으로 변했소.]
" 어떻게 한 건가요?"
[ ... 아직은 말해줄 수 없소.]
" 어째서죠?"
[ 당신이 적들에게 붙잡히거나 세뇌당할 확률이 있으니까... 내 거취나 비장의 수가 알려지게 되면 결국 백웅의 운신에도 큰 약점이 생기게 될 것이오.]
서문혜는 상대방의 말이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다. 현재 그녀가 천애고아처럼 생뚱맞은 곳을 돌아다니고 있으며 무림에서도 멀어져 있기 망정이지, 만일 '적'들이 그녀를 표적으로 삼기 시작하면 속수무책이리라. 하물며 지금은 그녀를 보호해 줄 검마나 다른 동료들도 없지 않은가?
게다가 전례가 있기에 상대가 하는 말은 신뢰성이 있었다. 상대방이 말했다.
[ 백웅이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르오. 허나 나는 대략 5년에서 10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오.]
" 이유가 있나요?"
[ 그 이상이 된다면...]
그는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닫고는 말을 이었다.
[ 아무튼 서문혜 당신이 앞으로 할 일은 자신의 역량을 키움과 동시에 [신의 무덤]에 관한 조사를 계속 하는 것이오. 당신은 처음에 스스로 생각했던 일을 하면 될 것이오.]
" 겨우 그 말을 하려고 이토록 번거로운 일을 시킨 건가요?"
[ 물론 아니오. 당신에게 하나의 단서와 하나의 힘을 주겠소.]
" 단서? 힘?"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무영문도들이 신시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갑자기 실종된 이유. 지금 당신에게 가장 궁금한 건 이거겠지.]
" 당신은 그들이 어딨는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안다는 말인가요?"
[ 물론이오.]
" 그럼 왜 내게 그걸 말하지 않았나요."
[ 지금 말해봤자 당신은 그들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오. 왜냐하면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 ......!!"
[ 무영문도들은 지금...]
상대는 무영문도들에게 일어난 일과 현재 그들의 상태를 서문혜에게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 난 서문혜는 분한 마음과 절망감 때문에 울고싶어졌다. 그렇다면 확실히 지금 당장은 무영문도들을 구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 뭔가... 뭔가 방법은 없을까요?"
[ 딱히 없소. 하지만 그들이 당장 해꼬지를 당할 일은 없을테니 안심하시오. 적어도 그 자들은 이족은 아니니까. 아마 별일없이 잘 지낼 거요.]
" ......"
[ 그리고 당신에게 줄 힘은 바로 이 거울이오.]
파앗
서문혜의 손 위에 새까만 손거울이 나타났다. 그 손거울은 특이하게도 거울부분이 완전히 먹빛으로 물들어서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기에 앞과 뒤를 구분하기 성가셨다. 그녀가 손거울을 살펴보자 상대방이 말했다.
[ 그 거울은 신령스러운 보물이니, 당신의 내면에 잠들어있는 힘을 서서히 일깨워줄 것이오. 어디까지 끌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호신에는 충분하겠지. 그리고 나중에 당신 쪽에서 내게 연락할 때에도 먹빛 거울을 쓰면 될 것이오.]
" ... 궁금한 게 있어요."
[ 무엇이오?]
" 그 말은, 더 이상 연락하지 않겠다는 말인가요?"
[ 그렇소. 사실 지금의 연락도 꽤 무리해서 눈치보며 한 것이기에... 백웅이 돌아올 경우에만 내게 연락해주길 바라겠소.]
" 알겠어요."
[ 상황을 알아야 할테니 당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기억은 넘겨주겠소.]
그리고 서문혜는 방금 전의 기이한 현상이 모두 사라지고 눈 앞의 호수가 평범한 호수로 되돌아왔으며, 자신에게 신시 결전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제갈사가 그 당시에 사역마로 수집했던 시각적, 청각적 정보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군데군데 끊겨있거나 해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정보를 제한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서문혜는 생각했다.
' 기다려야 해.'
과연 언제 백웅이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하루도 허투루 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 검마 서문대룡이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주었으니 자신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야 했다. 그녀는 그 날부터 시간이 남을 때마다 계속 사료를 찾고 학자를 찾으며 연구했고, 또한 때때로 기척을 숨기며 심산유곡에서 무공수련을 종종 하기도 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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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웅 님. 듣고 계신가요?"
나는 서문혜의 뒤를 따라서 이름모를 산 속을 뛰어가며 대꾸했다.
" 잘 듣고 있었소."
타닷
나뭇가지 위를 뛰어다니면서 듣고 있지만 그래도 그녀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잘 들려왔다.
나는 서문혜와 합류한 즉시 고대유적에서 떠나서 그녀의 인도에 따라 요남의 호수로 향했다. 그 여정을 하면서 계속 서문혜의 긴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몇몇 부분은 확실히 대충 이야기로 넘어갔기에 잘 알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 이제 호수까지는 이십 여 리 정도 남았나?'
거의 다 왔다. 이 속도면 곧 도착할 것이다.
쏴아아...
나는 서문혜와 함께 호숫가에 도착한 후 그녀와 함께 말없이 밤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호수는 광대하게 넓어서 적어도 반경이 이십 리는 될 법 했다. 그것도 길쭉한 게 아니라 넓은 호수라서 그 넓이가 더욱 광활하게 느껴졌다.
" ......"
나는 서문혜에게서 들은, 약 5년간의 이야기를 생각하자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암천향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겨우 생존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동료들은 그 이상의 간난신고를 겪은 것이다. 게다가 검마가 죽었다는 말에서는 참혹한 기분마저 들었다.
지금만 해도 검마에게 성묘를 하고 싶었으나 서문혜가 그럴 시간이 없다고 나를 호수로 데려오는 바람에 찾아가지 못했다. 그녀가 검마의 딸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녀 쪽에서 도리어 바라는 일일텐데도 나를 끌고온 걸 보면 그녀 또한 자신의 업(業)이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 밤이긴 하지만 오늘은 초승달이오. 이래서는 부를 수 없는 게 아니오?"
내 질문에 서문혜가 자신의 품 속에서 먹빛 거울을 꺼내들며 말했다.
" 그렇지 않습니다, 백웅 님. 이 거울을 사용하면 됩니다."
그러더니 하늘을 향해 소리높여 외쳤다.
[ 명경(冥鏡)의 권능으로 명하노니 오거라, 만월이여! ]
파아앗
그 순간이었다. 호수 위에 떠 있던 초승달이 갑자기 보름달으로 그 모습을 바꾸는 게 아닌가? 본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먹빛 거울이 지닌 힘이 일시적으로 기적을 일으킨 듯 했다. 그리고 호수에 보름달이 떠오르자 서문혜가 추가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서문혜를 보며 내심 놀라워했다.
' 술수의 기초만 배웠을 텐데 벌써 중급 술사의 경지는 되는 것 같구나...'
5년 동안 지속적으로 연마하긴 했을 테지만 기초밖에 안 배웠을텐데 저 정도 술법실력을 쌓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나는 서문혜 또한 뛰어난 기재라는 걸 다시 실감했다.
첨벙
잠시 후 서문혜가 먹빛 거울을 호수 안에 던져 넣자 그녀의 말대로 호수 전체가 시꺼먼 먹빛으로 화하더니 은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은빛 호수 한가운데에는 한 명의 인영이 서 있었다.
나는 '그'가 바로 서문혜가 말했던 인물이며, 지금까지 서문혜를 인도해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익히 아는 사람이었으나 얼굴에는 초췌한 기색이 가득해 보였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살아... 있었구려..."
그러자 그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 명계의 심장부에 들어와 버려서 살았다고도 죽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태요. 허나 아직 당신을 도와줄 힘은 남아있소, 백웅.]
" ......."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검마가 죽었다고 했을 때도 슬퍼서 먹먹하기 그지 없었는데 지금의 감정은 좀 다르다.
이렇게까지 노력해서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 새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약해져서는 안 되었기에 주먹을 꽉 쥐며 그에게 말했다.
" 날 도와주시오, 망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