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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702화 (70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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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촤락...

강물이 조용히 물결치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검마와 미야모토 무사시는 강을 앞에 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검마든 미야모토 무사시든 기력을 회복하는 중이었고 자신들의 내공심법을 최대한으로 발현해서 치유력을 높이는 중이었다. 다만 그런 개인사정과는 별개로 이 일대의 풍광이 아름다우며 고적한 건 사실이었다.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 석양이 강물의 수평선에 내려앉을 때쯤 무사시가 입을 열었다.

" 율주와의 싸움은 어땠나?"

검마는 무사시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강변을 응시했다.

" 그는 실질적으로 무적(無敵)이었소."

"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실체를 깨달았군."

" 역시 당신은 알고 있었구려."

" 모를수가 없지. 내가 십이율의 특위라는 웃기지도 않은 직위를 받아들인 건 그걸 깨고싶어서였으니."

검마가 힐끔 무사시를 보며 말했다.

" 전부터 생각했던건데 언제 중원어를 그리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된 거요? 당신은 동영에서만 수십 년을 살았다 들었소만."

검마의 의문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 미야모토 무사시는 중원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고 어눌한 편이었는데, 이번 백웅의 전생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이상할 정도로 유창하게 중원어를 잘 쓰고 있었던 것이다. 검마로서는 이 차이가 왜 생겼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 내가 율주에게 빨리 언어를 익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가 내가 언어를 빨리 습득하도록 도와주었다."

" 중원어 강사라도 붙은 건가?"

" 아니. 이것 덕분이었지."

휘익

무사시가 검마에게 조그마한 한 쌍의 물체를 던졌다. 검마가 그 물체를 받아들자, 그건 마치 귀에 끼우는 듯한 형태로 되어있는 금속체로 보였다. 검마가 물끄러미 그 괴이한 물체를 쳐다보자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했다.

" 율주가 준 거다. 그는 해어기(解語機)라고 불렀다."

" 해어기라... 이걸로 어떻게 익힌단 말이오?"

" 귀에 꽂아봐라."

검마는 해어기를 귀에 꽂았다. 아니나 다를까 귀에 맞춰져 있는지 약간 끼이긴 했지만 맞춰서 들어갔다. 그리고 무사시가 뭐라고 동영어를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는데, 검마는 잠시 후 놀라움을 느꼈다.

" %^*^*&^*@&[email protected]&%^안...#*%724#&%^그래... 이제... 들리나? 키사라기 가(家)의 가로와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가 잘 들리나."

검마는 자신이 자연스럽게 동영어를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입에서도 동영어가 흘러나갔다.

" 잘 들리오."

" 이렇듯 동영어로 바로 대화가 가능하지."

" ......"

검마는 해어기를 귀에서 떼내서 수상쩍은 눈으로 쳐다봤다. 확실히 이 해어기를 쓰는 순간 동영어가 마치 모국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조금 시간차가 있긴 했으나 말을 습득하는 난이도와 습득기간에 비하면 찰나라고 해도 무방했다.

" 그걸 끼고 오래 지내면 어느 순간 빼고있어도 상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 믿을 수 없군. 율주는 이런 신묘한 기계를 어떻게 만든 거지?"

" 나도 모른다. 충전이 필요없다고 자랑하는 말은 들었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군."

검마는 의혹을 느꼈다. 이것 또한 마도의 기물인 건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문이 있었기에 그는 무사시에게 시선을 돌렸다.

" 이 기계는 물론 신기하지만 당신의 동기가 더 궁금하군. 당신은 무(武)에만 관심이 있을터인데 왜 중원어를 배우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소?"

" ... 흠."

무사시는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 너희들이 모두 절대지경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 무슨 소리요?"

" 너희를 안내하던 시점에 너희 일행 대부분이 초절정의 극을 보고 있으며 향후 절대지경에 오를거라는 사실을 직감했지. 다만 시간문제일 뿐. 그렇다면 내가 너희를 이끌어준다면 재밌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다."

" ... 그렇군."

검마는 무사시의 마음을 이해했다.

' 이 자는 절대지경의 경쟁자를 원하고 있었던 거다.'

무사시는 자신의 경지를 올리기 위해서는 절차탁마할 수 있는 동급의 적수가 필요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애초에 무사시의 무공은 너무 높아서 같은 절대지경이 아니면 대련조차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십이율주는 조직운영을 핑계로 거의 상대도 해주지 않으며 중원에도 절대지경고수를 찾기가 너무 힘드니 무사시는 답답했으리라.

그러던 중 백웅 일행을 보게 되자 절대지경의 잠재력을 느끼고는, 자신의 경쟁자를 양산하려는 계획을 세운 게 분명했다. 절차탁마하여 경험치를 쌓게 되면 결국 무사시 자신에게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는 무사시가 어떤 인물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자는 결코 십이율주의 사냥개같은 게 아니다.

순수하기 짝이 없는 무(武)의 구도자!

세력균형이나 인류구원의 이상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자였다.

검마가 말했다.

" 절대지경의 고수가 많아지길 원했던 까닭은 역시 그 천의무봉 때문이겠구려."

" 그래. 직접 부딪혀본 너는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내 쾌검(快劍)의 심득을 내놓으면서까지 너희를 가르친 이유를."

" 이해하고 말고."

검마는 무겁게 말을 이었다.

" ... 그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길 수가 없소."

강함과 약함의 문제가 아니다.

상성의 문제에 가까웠다.

문제는 천의무봉 그 자체가 괴랄하기 짝이 없는 원리인지라 파해법을 찾지 못하면 손조차 댈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말했다.

" 십이율주를 내 검으로 꺾을 수 있다면 나는 세계최강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그 놈이야말로 동방최강자이며, 아마 세계최강이라 할 수 있다."

" 그럴지도."

검마는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꼭 그렇진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 인간 최강이 누구인지는 정해지지 않았어. 백련교주가 멀쩡했다면 십이율주의 좋은 상대가 되었을 것이다.'

언뜻 백련교주의 무공깨달음이 십이율주보다 훨씬 낮아보였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검마는 십이율주가 백련교주와의 다툼을 조금씩 피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마치 가위바위보같은 관계였다.

무사시가 검을 살짝 휘둘렀다.

촤하학!

다음 순간 강이 절반으로 갈라진 채 멈춰버렸고, 무사시는 베인 강물에서 잉어 몇 마리를 접인지력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검마에게 휙 던져줬다.

" 뭐라도 좀 먹어라."

" 고맙소."

칼로 물 베기, 그것도 수평선이 보이는 강을 통째로 잘라버린 기행을 선보인 미야모토 무사시였지만 검마는 그 정도로 놀라지 않았다. 절대지경이란 자신의 의지와 무(武)로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검마 자신도 마음만 먹으면 저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타다닥...

검마와 무사시는 같이 잉어를 구워먹으며 말없이 회복에만 전념했다. 그들은 강가에서 기공을 돋우며 수면상태에 빠졌고, 다음날 아침 동이 터올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벽의 고요 속.

미야모토 무사시는 말했다.

" 여태껏 내게 십이율주의 전령이 오지 않았다. 역시 그는 죽었겠지."

" ......"

" 이제 난 십이율의 특위가 아니다."

" 그래서?"

미야모토 무사시는 눈빛을 형형하게 빛냈다.

" 나는 너와 겨뤄서 이긴 후 중원에 갈 것이다. 그리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마도팔문의 주인을 다 죽이고 나의 이천일류(二天一流)가 중원무공을 압도한다는 걸 천하에 떨칠 생각이다."

섬뜩한 말이었다. 실제로 미야모토 무사시가 중원에 나서서 대혈겁을 일으킨다 해도 현재 그 행위를 막을만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절대지경의 고수같은 건 현재의 중원무림, 그것도 겉으로 드러난 자는 아무도 없었으며 숫자로 밀어붙일수도 없었다. 중원무림이 무사시 한 명 때문에 멸망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무쌍참 한번에 정파고수 수천 명이 일거에 몰살당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 검마는 그 말을 들으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리어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망을 담고 있었다.

" 한심하군."

" ... 뭐라고?"

무사시가 인상을 찌푸리자 검마는 담담하게 말했다.

" 한심하다 했소. 그 경지에 도달해놓고 한다는 일이 고작 그건가?"

" 고작이라니... 네놈이 몸담고 있던 중원을 부수겠다는 게 작은 일이라 말하는건가."

" 그렇소. 그건 작은 일이오."

무사시는 화를 내는 대신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그럼 네가 생각하는 큰 일이란 뭐지?"

" 이 세계를 망가뜨리는 신(神)을 없애는 것이오."

" ......"

" 날 간보지 마시오. 당신의 목표는 사실 그게 아니었소?"

무사시가 피식 웃었다.

" 맞다. 중원무림을 박살내는 건 그 준비운동같은 거지.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신을 죽일만한 힘이 없으니까 작은 목표부터 실천하는 거다."

" ... 학살을 거듭하며 원한을 쌓아나가면서, 그 원한을 양분삼아 중원에 새로운 절대고수가 탄생하길 바라는 건가?"

검마의 말에 무사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 역시 넌 머리가 좋구나. 나는 그래서 중원놈들을 죽일 생각이다. 평화에 젖어있는 놈들의 머리통을 깨다보면 어디선가 센 놈들이 튀어나올 거고, 그 중에 내가 상대할만한 놈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 그 적수와 생사대전을 벌이다보면 당신의 절대지경 또한 강해진다는 말일테고."

" 그렇다."

검마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마도에 오랫동안 몸을 담궈왔던 경험상 무사시가 어떤 이론을 이야기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흙탕물같은 흑도에서 목숨 건 쟁투가 오래 이어질 경우 마치 진주처럼 뛰어난 재능의 마도고수가 출현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마 이렇게 수준낮고 확률낮은 이야기를 미야모토 무사시같은 절대고수가 할 줄은 몰랐다! 이런 주먹구구식 셈법으로 원한도 없는 중원무림에 피바람을 일으키려는 발상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 대체 무슨 근거지? 피바람 속에서 절세고수가 탄생하리라는 그 근거없는 확신을 믿을 수가 없구려."

" 이해받을 생각은 없다. 난 그저 내 이론을 실천하러 가는 것이다. 내가 살던 동영의 무예계는 그렇게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 으음."

검마는 침음성을 흘렸다.

" 당신은 미쳤구려."

그리고 미야모토 무사시가 진정으로 무예에 미친 광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자는 엄청난 천재이지만, 그 때문에 범인들이 생각하는 지경을 벗어나 있었다. 그저 자기자신의 무예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수천 수만명이 죽어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도저히 이해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팔부신중과 황궁이 이제부터 날뛸 것인데 그들과 싸울 생각은 하지 않는거요?"

" 내가 왜?"

" 당신의 목표를 실천하려다 보면 결국 그 자들과 부딪힐텐데."

" 당연히 그것도 생각해봤지. 하지만 난 팔부신중과 부딪히지 않을 거다."

" ......?"

" 내가 놈들을 막을 이유는 없어. 그리고 놈들도 성가신 무림놈들을 내가 알아서 처리해준다 하면 나와 동맹을 맺으려 하겠지. 나는 결국 내 맘대로 할 수 있을거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 ......"

" 그리고 내 힘이 더 강해지면 그때 내가 황궁을 쳐서 멸망시켜도 되겠지. 그리고 팔부신중을 하나하나 없애는 거다."

검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제서야 무사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이 자의 머릿속에... 약자에 대한 배려나 인정... 정의의 마음 따위는 전혀 없다!'

딱히 타고난 악인은 아니지만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모든 걸 무시하며 이용해버리는 독선.

천재로서 태어난 자의 오만.

검마는 그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자 속이 답답해짐을 느꼈다.

스르릉

검마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미야모토 무사시에게 겨누었다.

" 미야모토 무사시."

" 마음을 정했나?"

검마는 진심으로 살기를 일으켰다. 그의 머릿속에 무사시에게 무공을 배운 은혜는 까맣게 사라져 있었다.

" 당신을 죽이겠소."

검마 서문대룡은 자기 목숨을 걸고 무사시의 목을 베어버리려는 각오를 다졌다.

대련으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십이율주가 사라진 상태의 무사시는 그저 고삐풀린 망아지일 뿐.

' 협의(俠義)가 없는 무(武)는 그저 폭력에 불과하다.'

검마는 기필코 미야모토 무사시를 죽여버려야만 이번 생 백웅의 앞길에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무사시같은 태도는 결국 극악한 무리들의 힘만 실어줄 뿐이었기 때문이다.

뼛속까지 전투광인 무사시는 히쭉 웃었다.

이제야 진심이 된 검마와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워졌다.

" 바로 그거야."

그리고 이름없는 강변에서 절세검객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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