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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진소청은 이게 자신의 마지막 싸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팔부신중과 축융의 전투에 끼어들었을 때 그가 생존할 확률은 터럭만큼도 없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본인이었다. 아직까지 투선은 커녕 일개 신선조차 제대로 뛰어넘었다 할 수 없는 실력으로는 어불성설인 것이다.
그래도 싸워야 한다.
지금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진소청, 그는 되뇌이면서 앞으로 계속 전진했다. 뇌신지혼의 빛에 감싸인 채 눈빛은 계속 앞만 보고 있었다.
그에게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만들어준 것은 바로 백련교주와의 전투였다.
방금 전, 진소청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련교주에 맞서서 싸웠다. 그가 부여받은 역할은 소교주를 베어서 교주의 역린을 찌르는 것 뿐이었으나 그는 굳이 백련교주 앞에 나타나서 싸움을 청했다. 왜냐하면 무인으로써 존경할만한 자에게 허망한 죽음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다소 동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임했던 진소청은 교주와 초수를 나누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교주는 도저히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이기든 지든 끝장나버리는 절망의 전투였으나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원영신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진소청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이다. 원래부터 교주의 실력이 진소청보다 위이긴 했으나 역린을 찔린 상태로도 진소청과 거의 대등했다. 사실상 진소청의 패배라고도 할 수 있었다.
무엇이 교주를 움직이는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교주의 끈기와 투지를 확인한 진소청은 문득 자신에게는 없고 삼대세력의 주인에게는 있는 게 뭔지를 알 수 있었다.
인류구원의 의지!
이기(利己)의 궁극에 달한 이타(利他)이긴 했으나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목표를 위해서 모든 걸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교주는 마지막까지 자신만이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모든 걸 불태우며 싸웠다.
진소청은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까지 싸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물며 실재하지 않는 인류라는 군체(群體)를 위한 집념이라는 건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건 순수한 무(武)의 궁극을 바라는 의지와는 별개의 것이었으며 때가 덕지덕지 묻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순수한 무예의 구도자들을 압도할 정도의 정신력을 발현시켰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자들이었다. 자신의 생(生)이 무엇인지 행동으로 보여주는 존재들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 오면서 계속 생각했다.
자신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자신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 사실 그런 건 없었다.
진소청이 줄곧 우울했던 건 교주의 헛점을 비겁하게 노린 행위 자체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사실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뇌신류의 재흥도, [옛 지배자]에 대항하는 장구한 여정도, 아버지를 죽인 황제에 대한 복수도, 인간을 장난감취급하는 이족에 대한 분노도, 세계의 역사를 기만한 신격에 대한 투지도 없다. 자신은 사실 백웅의 전생 후 그저 할 수 있는 걸 하는 선에서 그치고만 있었던 것이다.
딱히 이게 잘못된 건 아니다. 삼대세력의 주인과 백웅이라는 자들이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독종이자 별종들일 뿐, 진소청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러나.
무의 궁극 그 자체에는 관심도 없는 자들이 자신의 목표를 위한 광기를 추구한 결과 - 도리어 무(武)의 본질을 뛰어넘는 강함을 얻게 된 건 무슨 이유인가? 그리고 광기의 정체를 생각하던 진소청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자신 또한 미쳐야 한다.
안전한 곳에서 그저 재능에 안주해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려서는 결코 그들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설령 객관적 비교로서 나중에 그들보다 강해진다 하더라도, 그 강함으로 세계를 움직일 정도의 집념은 보일 수 없으리라.
폭력적이기까지 한 자신의 재능을 적극적으로 살려서 - 사선(死線)을 넘어야만 한다.
그래야 자신이 그들의 격(格)을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진소청의 내면에 존재하는, 참을 수 없는 공허의 간격을 메우고싶기도 했다.
여태껏 그는 살면서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자신의 재능이 제시하는 직감이며 재능의 결과물일 뿐이라고 하면 너무나 불행한 이야기인 걸까? 실제로 말랑말랑한 모종의 감각이 그에게 일단 싸우라고 계속 말을 걸고 있었고 왠지 그 감각은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진소청은 스쳐지나간 생각을 애써 무시했다.
' 뛰어넘어야 한다.'
불가능한 전장을 뛰어넘어야 한다.
자기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무(武)가 극기(克己)라 함을 체현해야 한다.
단지 수족으로 쓰이는 것으로는 앞으로 백웅의 도움이 될 수 없기에, 그는 스스로 꿈틀거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투웅
뇌신지혼의 가속으로 전장에 도착했다. 잠시동안이지만 그는 청염의 거인, 축융과 팔부신중을 두 눈에 한꺼번에 담았고 그들이 지닌 어마어마한 힘을 확인했다. 그리고 입술이 새파래질 정도로 격한 절망에 휩싸였다.
도저히 상대도 안 된다.
이 전장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자는 한 명도 없다.
저 자들 모두가 인간을 옛날옛적에 초월했다!
어쩌자고 죽을 곳에 제 발로 찾아왔을까?
그 절망적인 현실을 확인한 순간 진소청은 묘한 기분이 자신의 마음속을 휩쓰는 걸 느꼈다. 청량한 것처럼 인간의 뇌를 기만하면서도 질척질척하고 더러운 앙금을 묻히는, 모종의 때묻은 유열(愉悅)이 그의 마음속에서 꽃처럼 피어올랐다.
그래 - 이게 미친다는 거구나.
그리고 인간 진소청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뭐지?
진소청의 존재를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바로 축융이었다. 그는 팔부신중 셋을 한꺼번에 잡을 요량으로 가장 거국적인 시야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감각에 웬 파리같은 인간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어왔으니 신경쓰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 인간의 전력(戰力)을 확인하자 급속도로 흥미를 잃었다.
그냥 벌레일 뿐이었다.
아랫놈들은 저 벌레의 수준을 몇 단계로 나눠서 평가하겠으나 신적 존재인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매미와 무당벌레 중에 뭐가 더 센지 굳이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다만 축융은 스스로 때려잡기 보다는 저 벌레가 전투 도중에 자멸하는 걸 보고 싶었다. 가학적인 성격인데다 잔학무도한 축융은 가능하다면 저 인간이 쓸데없는 짓을 해서 팔부신중이 절망하는 모습마저 보고싶었기에 진소청을 가만히 놔뒀다.
조금 늦게 팔부신중들도 진소청의 존재를 눈치챘다. 그러나 뭐하는 놈인지 몰랐기에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 안 그래도 축융과 싸우는게 버겁기 그지없는데 인간 하나가 끼어든 게 무슨 대수이며, 굳이 힘을 써서 죽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순식간에 철저하게 무시당한 진소청이었으나 그는 자신의 의념을 모아서 절대지경의 무학을 펼쳐냈다.
절대지경
뇌신지혼(雷神之魂)
뇌화(雷化)
그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갑작스럽게 뇌전의 영을 머금고 변화했다. 그러나 이청운 때와는 달리 완전한 번개의 형상이 아니라 마치 몸의 윤곽을 두고 일렁이는 듯 했다. 왜냐하면 진소청은 뇌신지혼의 구결을 상당부분 이해했으되 뇌신지혼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내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뇌신지혼을 싸울 때만 잠깐씩 끌어내는 방식으로 쓸 수밖에 없었다. 상시뇌화를 발동하는 이청운에 비하면 기본적인 공방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진소청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그가 성취한 경지가 낮은 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어찌되었든 뇌신지혼을 이해했으므로 그 요결의 능력을 고스란히 쓸 수 있는 것이다. 진소청은 자신의 창을 번개로 바꾸어서 곧장 팔부신중 마후라가에게 던졌다.
치링
마후라가의 몸 주변에서 요란한 음률이 울리더니 자동으로 방어막이 펼쳐져서 진소청의 뇌창을 막았다. 마후라가는 건방진 인간이 적이라는 걸 확인하자 극히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언령을 토해냈다.
[ 죽어라! ]
끼잉 -
그 순간 진소청은 음파가 날아와서 그의 몸을 꿰뚫어 난도질하는 걸 알아챘다. 소리의 속도라면 피할 수 있겠지만 마후라가의 언령은 특수한 고대주술이었기에 신법이나 반응속도로는 회피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마후라가의 언령에 담긴 힘은 순식간에 진소청의 정신을 박살내며 영혼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뇌화가 장난처럼 풀리며 진소청의 전신에 혈관이 돋아났다. 본래라면 일격에 핏줄기가 되어서 산화했겠지만 진소청이 의념으로 저항하는 중이었다.
" 크허헉."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마후라가의 힘에 전율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팔부신중의 공격 한 방에 절대지경인 자신이 순식간에 살해당할 위기라니? 팔부신중 본체의 힘이 투선을 뛰어넘는다는 건 결코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팔부신중 중에서 약한 편인 마후라가조차 현재의 진소청을 벌레처럼 죽일 수 있었다.
마후라가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 그걸 버텨? 인간치곤 꽤...]
옆에 있던 천인이 퉁명스레 말했다.
[ 어차피 이제 전투불능일 것이다. 저런 놈은 무시하고 축융에게 집중해라.]
[ 그러지.]
푸콱
그들의 말을 증명하듯 진소청의 팔죽지가 터져 나갔다. 의념으로 버텼으나 더 이상은 주문의 위력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쪽 팔을 잃은 진소청에게 더 이상 회생가능성은 없어보였다.
콰과과광
진소청을 아랑곳하지 않고 축융과 팔부신중 사이에 빛줄기가 수만 개나 내려꽂히고 하늘을 불태우는 폭염이 일어났다. 도저히 이 시대에는 허용되지 않을 법한 장대한 규모의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진소청은 허공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휘이이잉
염옥과 광란으로 불타는 허공 속에서 진소청은 피투성이가 된 채 생각했다. 한쪽 팔을 잃었다는 상실감따위는 없었다.
' 왜지?'
자신은 벌레와 같다.
분명히 적들에게 그렇게 인식되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이제 그는 벌레처럼 죽는 절망을 맛봐야 마땅할 터인데도 -
' 재밌어.'
그는 마음 속에서 벅차오르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저 광기에 쭉 몸을 맡기고 있었을 뿐인데 뜻밖에도 생전 느껴본 적 없는 희열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게 재밌다니 믿을 수가 없었지만 실제로 그랬다. 진소청은 미소를 지은 채 손을 뻗었다.
즐겨 볼까.
휘리릭
떨어지는 진소청의 손에 어느샌가 뇌창이 날아와서 잡혔다. 그는 이 동란(動亂)의 흐름을 왠지 알 것 같았고, 이 혼잡한 전장에서 자신이 뭘 해야할지 알 것만 같았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지만 몸 안에 올올이 박혀있는 감각 하나하나가 일깨워지며 뭘 해야할지 알려주고 있었다.
몸이 근질근질하다.
싸우고 싶다.
절대지경
진천(振天)!
진소청의 몸이 이번에는 뇌신지혼을 쓰지 않고 허공을 날았다. 이미 내공과 의념을 꽤 소모한 상태라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었지만 이번에 그가 노리는 것은 바로 가루라였다. 그가 내뿜는 신염을 가만히 놔두면 조만간 진짜 타죽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루라는 그저 불꽃만 내뿜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 흥.]
신적인 감각과 반응속도를 지닌 가루라는 즉시 진소청의 살기를 눈치채고 그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는 허공에서 화염기둥을 하나 만들어서 발사했다. 팔부신중의 신체능력은 딱히 무예를 연마하지 않았으나 절대지경의 고수에 못지 않았다.
쿠콰쾅
순식간에 진소청이 있던 곳은 작열으로 빛나며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가루라는 성가신 벌레를 해치웠다 생각하며 신경을 끄려 했으나, 다음 순간 그의 가슴팍이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 ......?]
은빛 가시같은 게 그의 몸을 투과해 있었다. 사실 그것은 진소청의 창이었다. 한쪽 손에 창을 들고 있는 진소청의 몸은 당연한 듯 공격을 끝낸 후였다.
[ 어?]
그리고 진소청은 어느 새 기를 돋우고 있었고, 가루라가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순간 란(蘭)의 절초가 발동되어서 가루라의 몸을 찢어버렸다.
푸콰콱
진소청의 얼굴은 한없이 잔잔했다. 휘도는 창날 속에서 진소청은 멈추지 않고 곧장 옆에 있던 천인에게 쇄도해 갔다. 천인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걸 눈치챘으나 이내 자신이 알고 있는 고대주술을 써서 진소청을 공격했다.
" 크흑."
퍼버벅
술법의 문양이 진소청의 몸에 박히며 피분수를 일으켰다. 뇌화를 써도 천인의 술법은 전혀 피할 수가 없었다.
[ 뭐지? 저 녀석...]
천인은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그의 술수가 날아들자 진소청은 그대로 당하면서 뒤로 날아갔는데 아직까지 전투력이 남은 듯 허공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인간이라면 지금쯤 죽었어도 열번은 죽었어야 할텐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 설마 저 인간은 의념을 이용해서 술법을 중화시켰단 말인가?'
무슨 재주로?
이론상 가능하긴 하지만 그런 천재적인 감각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자신의 술법의 파장에 맞춰서 순간적으로 의념으로 저항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까?
천계의 날고기는 투선들 중에는 할 수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천인이 만나본 자들 중엔 없었다.
" 흐아아아아아!!"
그러나 혈인(血人)처럼 변한 진소청의 눈에서 안광이 폭사하며 그가 재차 천인을 공격했을 때, 그를 지켜보던 천인과 마후라가는 그제서야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다.
이 녀석.
방금 전보다 더 강해졌어.
푸욱!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게 무색하게, 천인의 목은 진소청의 창에 꿰뚫려 있었다. 진소청의 창에 담겨있는 잠재력을 천인의 방어막이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 ]
물론 이건 결코 치명상이 아니다. 칠요로 당한 것도 아니고 축융에게 당한 것도 아니니 방금 전 진소청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가루라도 곧 부활할 것이다. 자신도 잠깐 소멸할 뿐 금세 부활할 게 분명하다.
이게 바로 팔부신중과 일개 인간의 격차였다.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코입이 없는 새하얀 광인(光人)의 모습인 팔부신중 천인의 본체는 이질적인 기분에 휩싸여있었다. 외팔이에 불과한 인간이 미친듯이 날뛰는 모습은 인외의 존재인 그에게도 감명을 주었다.
[ 굉장하군... 너같은 인간은... 처음 본다.]
스아악
천인은 일시적으로 소멸되면서 찬탄하는 말을 남겼다. 그것은 진소청이 지닌 재능이 인간이라고 얕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수준임을 순간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마후라가 또한 눈치챈 건 마찬가지였기에 다소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 크하하하하하!! 제법 하는 벌레구나. 마음에 들었...]
눈 앞의 촌극을 바라보며 축융이 껄껄 웃을 때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소청은 축융에게 달려들어서 전력을 다해서 창을 꽂았다.
콰아아앙!!
[ ......]
축융은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왜냐하면 자신도 모르게 신력을 써서 진소청의 일격을 방어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신체(神體)를 지니고 있는 자신에게 위험이 될 거라고 본능적으로 인식해버렸다는 말이었고, 동시에 진소청의 잠재력이 일순간 신을 찢을만한 수준에 올랐음을 뜻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축융은 어이없는 마음이 들었다.
[ 네... 네놈이 감히.]
아무리 그렇다 해도, 감히 삼황오제 바로 아래에 있는 대신격인 축융 자신에게 거침없이 칼을 들이댈 수 있는 미친 인간이 존재할 줄이야?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 너무 상식밖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리라. 수천년 중에 최고로 놀란 상황인지라 축융은 신답지 않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진소청은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이제 체력도 기력도 다 떨어져서 한두 번만 더 부딪히면 예외없이 죽을거라는 사실을 알아챘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도망갈 방법도 없었기 때문이다. 제갈사의 계획과도 엄청나게 뒤틀렸지만 이미 그런 걸 상관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는 강해지고 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알 수 있었다.
다음 번의 격돌에서 또 강해지리라.
마치 어둠 속에서 별이 자신을 안내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흐름을 뒤따르고 있는 진소청이었다.
그것이 - 절대지경 진천.
어떤 초식이나 무공이론, 수양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만의 경지.
수천 년 무공의 역사를 재능만으로 부정해버리는 이단(異端).
극한상황에서 그 자신이 진정으로 투쟁을 즐길 수 있을 때만 발현되는 모순.
' 최선을 다하자.'
살아날 길을 포기해야만 최대의 효율을 얻을 수 있다니, 너무 모순적이었다. 그러나 죽음을 인정하고 몰입하기 시작한 진소청, 그는 우는 소리를 하는 대신 거인 축융에게 창을 겨누며 말했다.
" 한번 더?"
진소청은 즐기고 있었다.
이번 생에서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