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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98화 (697/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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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축융이 강림하는 순간, 제갈사는 자신의 뇌 안쪽까지 흑염(黑炎)이 파고들어서 순식간에 태워버리는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치지지직!

제갈사의 전신에 급격한 화상이 일어났고 살이 마치 액체처럼 녹았다. 이윽고 뼈까지 탄화되는 지옥의 불길에 고통을 느끼면서 제갈사는 히죽 웃었다. 너무나 예상했던대로였기 때문이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수만 개의 마법과 술식을 연구하며 익혔던 제갈사는 삼황오제 전욱에게서 축융소환술식을 받는 순간 이 술식을 외우면 죽는다는 걸 직감했었다.

삼황오제가 필멸자에게 소환술을 주면서 곧이곧대로 써먹을만하게 만들 리 없다. 안 그래도 강력한 존재를 소환한다면 그 힘의 잔류가 소환자의 정신을 장악하는데다가 힘의 여파를 제어하지 않으면 당연히 소환사는 죽어버린다. 그걸 막으려면 삼황오제쪽에서 배려를 해 줘야 하는데, 인간을 한낱 벌레로 보는 자들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실제로 이 술식에는 소환사 방어장치가 되는 마법문양이나 술식회로가 전혀 없었다. 그 덕분에 소환요건이나 제물도 필요없었고 대소환주문 치고는 매우 간단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삼황오제의 편의였다. 실제로는 소환사 스스로의 육체를 제물로 삼기 때문에 별다른 추가제물이 필요없는 것이다.

축융을 소환한 자, 염신(炎神)의 불꽃에 타죽을 지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술식은 백웅이 귀환한 후 그에게 가르쳐줘봤자 거의 무의미한 술식이었다. 써먹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무의미 그 자체였다. 그럴 바에야 다른 식으로라도 깽판칠 방법은 많다.

그러나 - 제갈사는 이걸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백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이라면 이 헛점투성이 소환술식이라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었다.

불타 죽는다.

제갈사는 자신이 죽음의 임계치에 도달해서 몸에서 영혼이 떠나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몸이 녹기 전에 이미 생명활동은 끊겨 있었다. 본디 생명체는 이 순간이 되면 이성이 끊기고 약하기 그지없는 혼령의 상태가 되지만, 이혼대법을 극성으로 연마한 자는 자신이 죽고 나서도 의식이 끊기지 않고 자유자재로 영혼을 움직이는게 가능했다.

제갈사의 영혼은 수인(手印)을 맺으며 이혼대법의 최고급 비결을 발동했다. 이혼대법의 극성에 이르렀기에 영혼 상태에서도 술법을 쓸 수 있는 특수능력이 존재했다.

전혼탈겁(轉魂奪劫)!

파앗

다음 순간, 제갈사의 시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는 은신처의 지하에 마련해 둔 여벌육체로 성공적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혼대법 극성에 이른 자만의 능력, 전혼탈겁.

죽고 나서도 미리 이혼대법을 펼쳐 둔 육체로 영혼을 즉시 옮길 수 있는 궁극의 기술!

제갈사의 성취가 더 높아진다면 설령 이세계(異世界)에 다른 육체가 있다고 해도 차원의 벽을 넘을 수 있겠지만, 그런 건 마왕급 마력을 지니고 있을 때나 시도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제갈사가 인간으로써 이혼대법을 역사상 가장 완벽하게 익힌 존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보통은 대성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실패율이 3할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갈유룡도 제갈사처럼 할 수 있었으나, 그의 경우는 팔괘술의 극에 이르러 있기에 전혼탈겁과 비슷한 술법을 구현하는 게 가능한 경우였다. 두 형제 모두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었기에 극과 극이 통할 뿐이었다. 전혼탈겁과는 기본원리가 달랐으며 제갈유룡 쪽이 효율이 좋지 않고 어려웠다. 이혼대법만큼 혼백의 제어에 특화된 술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제갈사는 방금 전까지 온몸이 불타던 고통때문에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역시나 자신에게 닥쳐온 부작용에 씁쓸하게 웃었다.

' 안 보이는군.'

마왕의 눈을 잃어버린데다가 시야가 온통 깜깜했다. 도청마법도 잠시 구심점을 잃고 와해되어 있었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계약으로 인해 빼앗긴 시력이었기에 전혼하더라도 회복되지 않는것이다.

제갈사는 빠르게 마법주문을 외웠다.

" 오라, 나의 눈이 되어라."

제갈사는 임시방편으로 사역마를 소환해서 시력을 되찾았지만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사역마는 소환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마력을 소비하기에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앞으로 반 시진 정도면 신시 전역에 펼쳐놓은 사역마가 동시에 소환해제되어버릴 것이다.

주르륵

제갈사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전신화상의 환통(幻痛)이 대뇌피질을 자극하면서 마치 실제하는 듯한 타격을 몸에 줬기 때문이다. 제갈사는 지금도 빠개질듯이 머리가 아팠으며 관자놀이를 칼로 도려내고싶을 정도의 기분이었으나 히쭉 웃었다.

" 흐흐."

조용한 은신처에서 제갈사의 메마른 웃음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그의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처럼.

팔부신중 야차는 자신의 몸을 변형시키며 고함을 내질렀다.

[ 빌어먹을!!]

꾸드드득!

인간의 몸은 그대로인데 팔만 야수의 것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용을 썼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단시간에는 본체로 되돌아가지 못했다.

팔부신중들은 본래 창힐의 가호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부활 후 전력을 갖춘 채 바로 싸우는 게 가능했으나, 문제는 방금 전에 십이율주와 싸울 때 당한 치명상이 칠요(七曜)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었다. 칠요에 당해서 죽었기에 부활시간도 느렸으며 심지어 되살아난 후에도 전신에 족쇄가 매달린 것처럼 본체의 힘을 끌어내는 게 버거웠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하필 소환되고 있는 게 축융이라는 점이었다. 어떤 이유로 인해 팔부신중은 축융과 싸우는게 너무나 큰 부담이었다. 마음같아서는 당장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긴나라와 건달파는 부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축융의 소환이 이뤄진 상태에서 그들이 인간형으로 부활하게 되면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게 된다. 야차는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동료인 팔부신중이 고문당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 빌어먹을 인간놈!!'

일이 왜 이렇게 꼬였단 말인가?

분명히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움직였을 터였다. 본래 그들은 하나씩 흩어져서 싸워도 여유롭다 생각했으나 긴나라가 일부러 뭉쳐다니기까지 했다. 게다가 방심하지 않고 즉시 본체로 변신해서 싸웠다. 그런데도 이런 꼴이 되다니!

그제서야 야차는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았다. 십이율주가 아무리 강해봤자 기껏해야 투선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일개 인간이라지만 칠요를 활용하면 그렇게 강해질 수 있다는 건 애초에 고려에도 넣지 않은 것이다.

' 아무튼 이 상황은 위험해.'

폭왕의 화신같은 건 아무리 강하든간에 어떻게든 쓰러뜨릴 자신이 있다. 폭왕이 아니라 다른 [옛 지배자]의 화신을 소환했어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본체가 아닌 이상 화신이나 사도의 수준에서는 마찬가지다.

팔부신중에게는 이 자리에서 질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고대부터 계획된 창힐의 가호,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축융은 다르다.

축융은 결코 상대해선 안 된다.

야차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로 했다. 그녀는 자신의 낫을 크게 휘두르며 소리를 크게 전파시켰다.

[ 축융이 왔다!! 우리를 돕지 말고 나머지는 도망쳐라!]

나머지 셋의 팔부신중을 퇴각시키고 자신은 여기에 남아서 부활한 긴나라와 건달파가 도주할 수 있게 시간을 버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형인 상태에서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위이잉

그녀의 명겸(冥鎌)이 진동하며 공명음을 내뿜었다. 야차는 낫을 치켜들며 술법을 발동했다.

십대지옥(十大地獄)

도산지옥(刀山地獄)

소환!

쿠구구구

갑작스럽게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그녀의 명겸은 본래 명계의 대장장이가 벼린 것으로써 지옥시왕의 소유가 될 예정이었으나, 창힐의 거래로 그녀에게 하사되었다. 즉 명계의 보패였으며 지옥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삽시간에 반경 오 리 이내는 셀 수 없이 빽빽한 도산검림이 가득한 칼날의 지옥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야차는 허공에 뜬 채 손을 앞으로 뻗었고, 도산검림에서 수십만 자루의 칼날이 뽑혀서 천공의 검은 십자 상흔으로 향했다.

파바바밧

순식간에 도산지옥의 검림(劍林)이 마치 거꾸로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날아갔다.

우우웅

혼돈이 일그러진다.

[ 크윽...]

그러나 천공의 검은 십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칼날덩어리들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야차는 대라신선에게도 통하는 공격이 아예 씨알도 먹히지 않자 절망했지만 진짜 절망은 직후에 찾아왔다.

퍼벅!!

야차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벽에 부딪히며 터져죽었다. 그녀를 죽인 것은 난데없이 시공간을 무시하고 나타난 시꺼먼 거인의 손가락이었는데, 그 손가락은 나선을 그리며 휘도는 청염(靑炎)에 휩싸여 있었다.

어느새인가 소환된 거인의 권태로운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 우선 한 놈.]

손가락이 서서히 신단수의 잔해에서 멀어지자 그 자리에는 마치 파리처럼 죽어 있는 야차의 혈편이 뚝뚝 떨어졌다.

파앗

그 때 허공에서 긴나라와 건달파의 모습이 구현화되었다. 창힐의 권능으로 되살아난 그들은 뜬금없이 도산지옥이 소환되어 있자 당황했고, 청염의 거인과 죽어있는 야차의 시체를 보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파악했다.

" 아니?"

건달파는 경악해서 외쳤다. 저 청염의 거인은 신화시대에 질리도록 보아왔기에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고 그들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 추, 축융!! 왜?!"

긴나라의 얼굴 또한 새하얗게 질렸다.

" 이럴수가... 말도 안 돼!!"

" 도망쳐야 한다."

그들은 바로 전신에서 힘을 일으키며 본체로 변하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긴나라는 당혹스러워했다.

" 아니... 설마 칠요공명에 당한 부상이."

그 순간이었다.

다시 한 번 손가락을 내밀어서 벌레를 잡으려던 축융이 멈칫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 호오... 칠요...? 무슨 소리지?]

" ......"

팔부신중 둘은 당황했다. 본체로 변하면 어떻게든 도망은 칠 수 있을테지만 인간형인 상태에서는 그것도 요원하다. 이 상태에서 축융이 칠요에 관심을 보이는 게 좋은 일인지 나쁜일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건달파는 책사인 긴나라의 선택에 모든 걸 맡기기로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긴나라는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축융에게 말했다.

" 축융이여! 우리는 월요와 목요를 갖고 있다."

[ 그래?]

" 그래라니."

쿠웅

청염의 거인이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축융은 부숴진 신단수를 의자삼아 앉은 채 턱을 괴었다. 그 모습은 한없이 오만하기 그지없었다.

[ 그래서 내게 어쩌라는 거냐. 이 벌레새끼들아.]

" 크윽. 이 놈..."

긴나라는 분통이 터지는 듯 했으나 이내 감정을 가라앉히고는 말했다.

" 칠요를 네게 넘겨줄테니 우리를 보내다오."

축융은 그 말에는 곧이곧대로 대꾸하지 않고 딴소리를 했다.

[ 오... 그러고보니 너는 긴나라였던가.]

" 나를 아는가?"

[ 창힐이 네 자랑을 꽤 했었지. 천축에서 제일가는 현자의 영혼을 자신의 밑으로 복속시켰다고... 너 말고도 다른 팔부신중에 대해서는 한번 정도는 들었었지.]

" ......"

그랬다. 축융은 본래 창힐과 동렬 이상인 존재였던 것이다. 격으로 볼때 팔부신중을 깔아보는 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긴나라는 축융이 뜻밖에 자신을 아는 척 하자 호의적인 반응이라 생각하고는 급히 말을 이었다.

" 부탁이다. 칠요의 소유권을 넘길테니 우릴..."

[ 좋아.]

" 부탁을 들어주는 건가?"

긴나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건달파 또한 마찬가지였다. 싸우면 승산이 아예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도망쳐야 하는데 설마 축융이 자신들을 놓아주다니?

퍼벅

하지만 다음 순간 긴나라의 후덕한 몸뚱이는 그대로 핏덩이가 되어서 터져버렸다. 축융의 마력으로 뻗어낸 손가락이 그의 인간형 몸체를 짓이겨버렸기 때문이다.

건달파는 그 순간 일이 꼬인 걸 알아채고는 즉시 걸선의 신법을 동원해서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취팔건곤보(醉八乾坤步)!

무림에서도 일절로 불리는 전대 개방방주의 신법이 펼쳐지며 그의 신형이 빠르게 도산지옥을 흩날리듯 지나쳐갔다. 눈깜짝할 사이에 그의 몸은 삼 리나 되는 거리를 주파했다. 그러나 축융은 일어서서 힐끔 그 모습을 보더니 냉큼 자신의 손을 휘둘렀다.

우드득

" 커헉...!!"

이상한 일이었다. 축융은 딱히 건달파를 쫓지도 않았고 허공에 손을 휘두른 것 뿐이었는데 건달파의 몸은 축융의 손아귀에 붙잡혀버린 것이다. 물론 건달파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축융은 대신격이다.

그러므로 시공간을 조작해서 필멸자를 붙잡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무공으로 대항하는 건 지난한 일이었고 본체를 드러내서 그 마력에 저항할 수 있어야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다 해도 축융은 감당할 수 없는 상대이긴 했으나 건달파는 십이율주와 싸운 걸 후회했다.

' 하다못해 다같이 모였을 때 싸웠으면...'

축융은 씩 웃으며 자신의 손에 붙잡혀 있는 건달파를 쳐다보았다.

[ 사실 나는 창힐이 네놈들 이야기 할 때마다 속이 뒤틀렸다. 건방지게 제놈 따위가 나와 맞먹으려고 드는 것 같아서 말이다...]

" 큭... 헉... 으윽."

우드드득

건달파는 아무런 말이나 항변을 할 수 없었다. 축융의 손아귀힘이 너무 강해서 호신강기를 펼치고 있는데도 전신의 뼈와 살이 분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물락거리는 동안에 건달파는 지옥의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축융이 건달파와 눈을 마주친 채 말했다.

[ 간만에 지상계에 오니 배가 고프군...]

그 눈빛에는 식욕이 감돌고 있었다.

" ......!!"

건달파는 눈을 부릅떴다. 몸이 서서히 축융의 입과 가까워졌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한 건달파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발버둥쳤다.

" 크윽... 으윽."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잠시 후 그는 시꺼먼 어둠 속으로 집어삼켜지며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우득

우득

와작와작

한참동안 별미를 즐기던 축융은 기분이 좋아졌다.

[ 흐음... 역시 칠요는 없군. 보나마나 대충 주워섬긴 소리같았는데 생각 그대로야.]

그리고 자신의 주변으로 본체로 변해서 날아오는 팔부신중들을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 하하하! 오늘은 진수성찬이구나.]

한때 세계를 불태울 뻔 했던 마신(魔神) 축융이 진정으로 강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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