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691화 (69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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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도착했구만….”

극호는 한숨을 토해냈다. 중턱에서부터 호흡이 박살날 정도로 쉴 새 없이 싸우고 또 싸운 결과, 마침내 정상 언저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극호는 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신단수를 수백 장은 올라왔다는 사실에 진저리를 쳤고 또한 임무가 거의 눈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극호의 뒤에 있던 청월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잠시 운기를 해야겠다. 더이상은 못 버틴다.”

“…그래야겠슴다.”

말이 끝나는 순간 극호도 주저앉듯 가부좌를 틀며 기를 운용했다. 단지 여기가 고지대라서 공기가 희박한 탓은 아니었다. 그들 셋은 여기까지 오면서 귀장무리를 세 번이나 물리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진법을 통과하며 기이한 영수 같은 것과 수차례 싸워왔다. 그러는 동안 쉬거나 운기를 한 번도 못한 상태였으니 지금은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이렇게 밀도가 높은 연전(連戰)은 처음이다.’ 그들 중 한두 명만 왔다면 결코 여기까지 빠르게 오지 못했으리라. 한동안 그들은 말없이 회복에만 전념했고, 잠시 후 제일 먼저 회복한 명룡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그 놈이 정상에 도착한 후에 어떻게 하라고 하더냐?”

극호는 내공을 회복하는데 여념이 없어서 대답 하지 못했다. 대신 속으로 불평했다.

‘제길. 늙은이 회복력이 굉장하구만.’

심후한 정종내공을 수십년 넘게 연마해온 명룡자의 내가회복력은 젊은 극호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극호는 아직도 내공을 이 할도 회복하지 못해서 끙끙대고 있었지만 명룡자는 벌써 싸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것이다. 아무리 영약을 복용하고 특수한 시설에서 빠르게 내공을 성취했다지만 기본적인 수양의 수준이 다른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다. 청월 또한 무당파의 기공이 뇌신류보다 현묘한 점이 있다는 점을 인정 해야만 했다.

그는 한참 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저도 자세히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거기서 특이한 구조물이나 봉인같은 게 있는지 최대한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흥…. 저렇게 수상쩍은 장소라면 있을 법 하군. 기가 크게 왜곡되어 있어.”

명룡자는 못마땅한 눈으로 정상 쪽을 노려보다가 말했다.

“조금 더 회복하고 가자. 왠지 저기에 가면 뭔가가 있을 것같다.”

“하지만 너무 지체하면….”

쿠구궁!!

그 때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시꺼먼 구멍이 천공에 난 것 같았다. 결계가 파괴되었다는 사실은 세 사람 모두가 즉시 짐작할 수 있었고 안색이 크게 굳어졌다. 극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갑시다.”

“최악이군….”

명룡자는 신경질을 냈다. 전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억지로 위중한 싸움터에 발을 들이는 건 결코 강호인이 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최고의 상태로 싸울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갖추는 게 전투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급박했기에 그들은 말없이 신단수로 올라갔다.

저벅….

신단수 정상에 발을 들이자, 극호는 예전에 백웅의 기억에서 보았을 때와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 걸 알 수 있었다.

오오오

천지사방이 온통 새까만 장소였다. 별이 마치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보였고 별의 숫자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고 발밑과 주변에는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나무줄기가 펼쳐져서 마치 대지처럼 보였다.

극호는 중얼거렸다.

“되려 숨쉬기는 편하군….”

방금 전까지 중턱에서 상층부로 올라오면서 웬만한 일반인은 호흡곤란으로 기절할 정도로 공기가 희박했었다. 거의 숨을 쉬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으나 그들 모두가 초절정고수였기에 깊고 긴 호흡으로 버티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정상에 올라오자 공기가 충만하고 생명력이 느껴져서 편했다.

뿐만 아니라 추위가 없었고 따스한 온기가 사방에 흩어져있는 기분이었다. 비록 새까만 공간이란 게 단점이긴 하지만 이런 곳에서 일년 내내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극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 흩어져서 수상한 걸 찾읍시다.”

“적이 있다면 각개격파 당하기 딱 좋은 고원(高原)인데도 말이냐?”

“방법이 있습니까? 어차피 목숨을 버릴 각오가 없으면 맨정신으로는 못하는 일입니다. 빨리 끝낼 수밖에 없습니다.”

“제길, 그 놈…나중에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조금 있다가 이 자리에서 다시 모이자.”

파앗

청월과 명룡자는 투덜거리면서도 신법을 발휘해서 흩어졌다. 신단수의 정상은 상당히 광활했기에 그들의 신형이 점으로 보이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극호는 정면으로 달려 나가면서 시력을 돋우었다.

잠시 후 극호는 뭔가 이상한 걸 발견하고 멈춰 섰다.

“저건?”

거대한 덩굴뿌리가 둥근 걸 칭칭 휘감듯이 보호하고 있었다. 구석진 곳이라서 눈에 잘 안 띄긴 했으나 극호는 순간적으로 뭔가 중요한 거라는 직감이 들어서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리고 창을 휘둘러서 덩굴뿌리를 잘라내어서 둥근 게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깡! 깡!

‘단단하네.’

극호는 안쪽에 있는 둥근 게 뭔가 금속으로 만들어진 구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기이한 구체는 반투명한 유리창이 달려 있었는데 밖에서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크기는 사람 서너 명이 들어갈 정도로 컸다.

‘챗. 깨버릴까.’

열어보려고 했으나 딱히 방법이 없었기에, 극호는 시험 삼아서 강기를 불어넣어서 금속구체를 때려 보았다.

“헛…?!”

순간 극호는 깜짝 놀랐다. 지쳐있다고는 해도 제대로 강기를 생성해서 공격초식을 날렸는데 구체는 전혀 손상되지 않은 것이다! 지상의 어떤 금속이라 해도 강기에 맞으면 크게 훼손되거나 부서진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더러 몇몇 희귀금속들이 강기를 버텨낸다고는 들었으나 극호가 직접 그런 걸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극호는 한동안 어이없어 하다가 주변을 더 훑어보았는데 다른 건 딱히 없었다.

약 한 식경 동안 근처를 더 조사한 후 극호는 되돌아와서 명룡자와 청월을 다시 만났다. 명룡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듯 했고 청월은 뭔가를 발견한 듯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기이한 게 있다.”

“어딨습니까?”

“한참 가야 한다.”

타다닷

그들은 청월을 따라서 신법을 써서 달렸다. 청월의 말대로 신법을 써도 꽤 시간이 걸릴 정도 였으니 멀리 있는 건 틀림없었다. 그들이 도착 한 곳에는 사람 몸뚱이보다 스무 배는 거대해 보이는 커다란 무언가가 있었다.

“이건 뭡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근데 길쭉하군….”

“흐음. 뭐에 쓰는 물건인고.”

극호는 길쭉한 원통형의 구조물을 기웃거리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상 쪽으로 향해있는 첨단에 뭔가 복잡한 기계장치가 설치되어있는 걸 발견했다. 수십 개나 되는 단추가 있었고, 극호는 어렴풋이 이런 건 자기 전공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잘 모르겠슴다. 신단수의 정상에 왜 이런 게 있는 거지?”

“넌 아까 둥그런 강철덩이를 쳐 봤다고 했지? 이거 한 번 부숴볼까? 잘 될지도 모르잖아.”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거면 어떡함까.”

“더 찾아볼까?”

“…그래야 할 거 같긴 합니다만 갑자기 막막함다. 이런 건 망량이나 제갈사가 잘 알 거 같은데 우리가 뭘 안다고….”

“그렇긴 하군.”

그들은 침묵했다. 그들은 평생 동안 무공을 연마해서 싸움에는 도가 튼 자들이었지만 이런 기이한 이계의 구조물 같은 걸 보고 분석할 능력은 없는 것이다. 그들이 어색한 침묵을 겪고 있을 때 갑자기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함부로 여기 물건을 훼손하지 않으신 건 칭찬 해 드리겠소. 그럼 이제 나랑 얘기 좀 해 보실까, 불청객들.”

파앗

그들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쳐다보자 거기에는 흰 두건을 쓰고 기묘한 모자를 쓴 기이한 인물이 서 있었다. 물론 극호 일행은 석 달 동안 신시에서 지내면서 그가 누구인지 이미 얼굴과 이름을 익혀둔 상태였고, 즉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단의 일족, 홍길동!”

나타난 것은 십이율주의 심복이자 상당한 강자라고 알려진 홍길동이었다. 홍길동은 초절정고수 셋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여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율주께서 말씀하시길,정중하게 모셔오라고 하셨소. 우리 신시의 중지(重地)에 침입한 건 씻을 수 없는 죄이지만 당신들은 그저 실행자일 뿐이니 용서해주실 수도 있소.”

극호는 창을 겨누며 껄렁하게 대꾸했다.

“딱히 용서받을 생각 없는 데에. 넌 혼자서 우리한테 처맞으러 온 거냐?”

그들은 눈에 살기를 띈 채 앞으로 나섰다. 올라 오기 전까지는 체력과 기력이 바닥이나 다름없었지만 신단수 정상의 기력이 워낙충만한지라 지금은 칠 할 이상 회복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홍길동 한 명한테 진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홍길동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어허. 내가 정말로 혼자 왔을 거라 생각하시오 ?”

극호는 그 말에 긴장했다.

“역시 다른 놈과 같이 왔군.”

“아니오,혼자 왔소.”

이 새끼 뭐하자는 거야?

극호가 어이없는 눈으로 홍길동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뭐, 율도국왕(果島國王)이자 만하령문의 대장로(大長老)인 나 정도가 아니면 여기에 올 권리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달까. 다들 팔부신중을 막는다고 바쁘기도 하고.”

“어쩌자는 거냐?”

“얌전히 날 따라서 가는 게 좋소. 말했듯 십이율은 당신들한테 악감정이 별로 없으니까.”

“하….”

극호는 코웃음을 치다가 갑자기 벼락처럼 뇌명을 일으켜서 달려들어서 창극으로 홍길동의 머리를 터뜨렸다.

퍼벙!

엄청난 속도와 힘이 실린 찌르기였다. 극호 또한 절대지경을 바라보는 초고수의 반열에 올라 있었기에 이 기습은 결코 쉽게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극호는 자신이 공격한 게 홍길동의 허상분신이었다는 걸 즉시 알아채고 주변에서 오는 공격을 감지했다.

좌악 극호는 다음 순간 여덟 개의 공격을 걷어내면서 원래 자리로 되돌아왔다. 순식간에 일 초식을 나누었으나 극호는 자신의 전신에 땀이 흐르는걸 느꼈다.

강하다.

그것도 소름끼치게 강하다!

불길함이 척추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왔고,그 사실은 극호의 직감이 홍길동이 자신보다 윗줄의 고수라는 걸 알아차렸음을 의미했다. 명룡자와 청월도 그 사실을 알아됐기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고,특히 명룡자는 내심 경악했다.

‘방금 전…분신이 흩어지고 모이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빨라.’

혹시 저 자는 전설의 ‘그 기술’을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무림에서 전설로만 회자되는 환상의 경지!

명룡자는 불안감을 느꼈다. 만일 홍길동의 경지가 자신이 생각한 것과 같다면 그들은 정말로 여기서 전멸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홍길동이 웃으며 말했다.

“이야. 십이율 문주 중에서도 당신들만큼 강한 자는 두세 명 뿐인데…. 간만에 몸 좀 풀겠군.”

“넌 대체 뭐야? 그리고 단의 일족이란 건 뭐길래 십이율 문주보다 강한 놈들이 드글 대는 거냐?”

극호가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보자 홍길동이 대답했다.

“좋은 곳에서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가르침 받으면서 살아온 것뿐이오.”

“자아, 순순히 따라오면 좋겠지만 그럴 거 같지 않으니…간만에 싸움 좀 해 볼까?”

쉬쉬싁!!

다음 순간 홍길동의 신형이 다섯으로 나뉘었다. 다섯의 분신은 거의 동시에 극호 일행에게 달려들었는데 극호는 영분신의 특징을 기억해냈다.

‘사소한 타격만 입어도 사라지지. 본체는 숨어서 공격해 올 셈인가?’

견제에 말려들지 않겠다고 생각한 극호는 공격적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곧장 기력을 뿜어내면서 광대한 공격초식을 시전했다.

콰광!

한 차례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자욱한 먼지 속에서 다음 순간 보인 풍경은 놀라운 것이었다.

컥…

극호는 명치에 주먹 한 방을 맞고는 눈썹을 떨며 토혈을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그의 한쪽 팔은 홍길동의 분신에 붙잡혀 있었고 홍길동의 칼이 그의 정수리 바로 위에 올라와 있었다. 세 명의 분신에게 순식간에 제압당해버린 것이다. 일 초 만에 극호의 명치에 정권을 꽂은 홍길동이 히죽 웃었다.

“편견이 참 무섭지. 하긴 내 기술이 특이하긴 하니까.”

극호가 당한 이유는 단순했다. 기력을 뿜어냈으나 분신 하나하나가 굉장한 무위를 지니고 있어서다 피하거나 막아내 버리고 되려 극호의 빈틈을 찔러 반격했기 때문이다. 허를 찔린 극호는 자신과 동급의 움직임을 지닌 분신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공방의 순간에 분신들을 투과해버리기까지 했다!

다만 극호가 방어태세로 갔다면 이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상대의 기술을 오판한 것이 극호의 패인이었다.

“윽… 어떻게….”

“잠깐 잠이나 주무시오.”

홍길동이 수혈을 짚자 극호는 혼절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방어적으로 움직이면서 최대한 홍길동과 싸우는 걸 피한 명룡자와 청월은 긴장한 눈으로 앞의 광경을 쳐다보았다. 명룡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치를 떨며 중얼거렸다.

“진실과 거짓이 일체가 되어 현실을 농락하는… 진정한 분신술의 극한…. 전설의 공령백팔환(空靈百八幻)!”

홍길동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역시 무당파 장문이라서 보고 들은 게 많은 건가? 확실히 내 기술은 백팔무진공령(百八無盡空靈)의 경지요. 율도국의 선대 국왕 중 한 분이 중원무림에 출도하신 적이 있지.”

“그런데 알면 뭘 어찌하시겠소? 당신들이 절대 지경에 오르지 않는 이상 내 기술을 간파하거나 반격하는 건 불가하오.”

명룡자는 이를 악물었다.

공령백팔환!!

그것은 무당파 조사 장삼봉과 같은 시대에 무림을 휩쓸었던 공령자(空靈子)라는 기인이 사용했던 전설의 무예였다. 보통의 영분신은 강한 타격을 주면 사라지는 법이지만 그의 분신술은 진실과 거짓이 완전히 조화를 이루어서 초절정고수조차 구분하는 게 불가능했고, 심지어 자신을 허무의 경계에 두어서 완전회피조차 이룩했다고한다.

공격하는 순간에만 실체화를 하는 수법 때문에 허망하게 살해당한 고수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다만 공령자는 호승심에 당시 천하제일인이던 장삼봉에게 도전했으나 패배하여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명룡자는 무당파 장문으로써 그 수기를 전승받아서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그 소유자를 만나 게 되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칠대절학에 숨어있는 절대적 가능성을 파고드는 데에만 평생을 바쳤기에 다른 데는 눈도 돌리지 못했다는 게 맞으리라. 그러나 정말로 홍길동이 공령백팔환의 경지에 이른 자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명룡자는 또 하나의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눈앞의 홍길동 또한 절대지경의 고수!

장삼봉의 수기에 전해지기로 공령자의 공령백팔환은 절대지경에 올라야만 제대로 사용이 가능한 절기였고 백팔무진공령 또한 백팔환의 성취가 대성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는 경지였기 때문이다. 초입인지 완숙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것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또 하나의 절대고수를 눈으로 확인하게 된 것이다.

‘십이율의 수뇌부인 만하령문의 대장로… 십이율주의 오른팔쯤 되면 이런 괴물도 나오는 건가.’

중원무림과 동방무림의 수준차라는 걸 난데없이 느낀 명룡자였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명룡자는 옆에 있던 청월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를 보조해라. 절기를 써서 놈에게서 버틸 수 밖에 없다.]

[저런 말도 안 되는 기술을 상대로 방법이 있나?]

[선조의 유학(遺學)을 최대한 활용하면 가능할 것이다.]

[좋아. 호흡을 맞추겠다.]

홍길동은 이번 공격으로 끝을 낼 생각인지 씨익 웃으며 분신의 수를 늘렸다.

파바바밧

그 숫자는 무려 백팔 개!

실제와 구분가지 않는 분신이 한꺼번에 덮쳐오면 그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홍길동이 말했다.

“나도 시간이 없으니 빨리 끝내드리겠소.”

파앗

홍길동의 분신이 동시에 덮쳐오는 순간이었다.

무량조극(無量造極)

심인(心刃)

굴공참(屈空斬)!

슈카카칵

갑자기 홍길동의 분신들이 수십 체나 찢겨나가면서 홍길동 본인도 뒤로 급히 물러섰다. 그의 공령백팔환은 진짜와 다름없는 힘과 속도를 머금고 있는데도 명룡자와 청월이 등을 맞대고 시전한 절기에 베여나간 것이다. 웬만한 의념 절기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기에 홍길동은 눈살을 찌푸렸다.

“과연… 무당파 오대신공인 양의신공(兩儀神功)을 기반으로 합을 맞춰서 일시적으로 절대지경에 대응하는 합격진을 만들어낸 것인가.”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청월과 명룡자 모두 무림에서 최정상급의 고수였으며 칠대절학을 수련했다는 공통점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사람의 의념이 하나의 칼날(心刃)을 만들어 내면서 절대지경의 영역에 일순간 도달한 것이다! 이 반격은 만만치 않았기에 아무리 홍길동이라도 쉽게 파해할 수 없었다.

‘적이지만 훌륭하다.’

그러나 저 합격진을 무한히 펼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두 사람은 모든 잡념을 버리고 신검합일의 상태로 합격진의 유지에 모든 정신을 쏟고 있었다. 저런 집중력은 무한히 발휘할 수 없었기에, 홍길동은 자신의 승리를 예상하며 중얼거렸다.

“당신 같은 자들을 거느릴 수 있는 자를 만나보고 싶군….”

봐줄 수는 없었다.

만하령문의 대장로 홍길동은 재차 공격을 개시했다.

빨리 그들을 제압하고 십이율주를 도와야 했기에.

천우진은 고민하고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나?’

제갈사가 그에게 맡긴 작전과 부탁.

그러나 그건 정말로 눈앞의 승리 따위는 내팽개치고 전생자의 승리에만 집중한 광기(狂氣) 그 자체였다. 백웅을 위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성적으로 이해 가능한 전략이었으나, 이 삶을 살아간다는 입장에서는 파멸을 향해 내달리는 미친 짓이었다. 그렇기에 천우진은 이미 잠입에 성공했음에도 크게 고민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확신할 수 있다.

이건 미친 짓이다.

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우진은 이 임무를 내팽개칠 수가 없었다. 만일 제갈사가 직접 하도록 떠맡길 경우 아군의 희생이 몇 배로 커지기 때문이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최대효율을 추구하지 않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 수 없게 된다.

천우진의 결정을 떠민 것은 바로 팔부신중이 결계를 부수는 폭파음이었다.

쿠구구궁….

“…지옥이 있다면 내가 제일 먼저 가게 되겠군.”

천우진은 짧게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자신의 신념까지 버리고 백웅을 위해 백련교주를 암살하러 나선 진소청이 떠오른 건 왜였을까?

“급급여율령.”

그의 전방에 조그마한 폭음이 울렸다.

결계로 보호받던 것이 천우진의 술법에 파괴된 것이다.

그리고 그 폭음은 - 신단수의 대격전이 진정으로 광기의 영역에 들어서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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