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0====================
암천향(暗天鄕)
세계수의 핵이라는 곳으로 향하던 한백령은 수신류 호법사자 독고준의 인도를 받았다. 백련교주는 그녀에게는 딱히 기밀정보를 이야기해주지 않았으나 독고준과는 사전에 이야기가 다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한백령에게 다시금 불신감을 일으켰으나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일단 임무를 위해서 움직였다.
타닷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거대한 신단수의 외곽이었다. 독고준이 말했다.
[ 역시 교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대로는 아무리 달려도 신단수 내부로 갈 수가 없군...]
그랬다. 지금까지 백련교의 교인과 병력들은 모두 신시 외곽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신단수나 신시까지는 십여 리도 되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막상 신법을 발휘해서 가까이 가려 하자 신단수가 계속 멀어지기만 할 뿐인 것이다. 아마 특수한 결계 때문에 허가받지 않은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는 구조인 게 틀림없었다.
[ 시작하자.]
독고준이 슥하고 손을 들자 옆에 있던 수신류의 원로들이 걸어나왔다. 이윽고 그들이 삼재진(三才陣)의 형태를 만들고는 전신의 기를 유형화(有形化)시키면서 모든 내공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무한의 내공에 반응한 주변의 대기가 끓어오르며 대지가 거꾸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한백령이 물었다.
"지금 뭘 하는 거지?"
[ 천령단의 힘을 합쳐서... 힘으로 결계를 뚫는다.]
"뭣... 무모하다!"
한백령은 깜짝 놀라서 외쳤다.
무한의 내공을 합친다!
얼핏 듣기에는 좋아보였으나 무(武)에 몸을 담은지 수십년이 넘은 한백령은 그게 절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천령단은 무한의 내공을 끌어낼 수 있으나 개개인이 지닌 내공의 기질은 모두 달랐다. 내공의 절대량이 높아질수록 섬세한 통제를 하기가 힘들어졌으며 하물며 타인이 지닌 무한의 내공과 조화를 맞추는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보나마나 주화입마에 들거나 몸이 폭발할게 뻔했기에 그동안 한백령은 시도조차 안해봤던 것이다.
독고준이 자신의 기를 제어하며 말했다.
[ 우리 수신류는 그 동안 천령단을 제어하는 전문 협동기술을 오래 연마했다. 가능한 일이니 잠자코 보아라.]
쩌저적
아니나 다를까 독고준과 수신류 원로들의 피부가 쩍쩍 갈라지면서 각질조각이 피와 함께 흩날리는 게 보였다. 그들의 몸은 이형(異形)이었으나 고통을 느끼는 듯 전신에 핏줄이 울그락불그락 올라와 있었다. 독고준이 노갈을 터뜨렸다.
[ 크아아앗!!]
콰광!!
다음 순간, 무지막지한 양의 기가 뿜어져 나오며 허공에 원통형의 광선을 만들어 냈고, 그 빛은 공간을 꿰뚫으며 휘리릭 감겨들어갔다. 잠시동안 침묵이 이어진 후 폭발과 함께 지금까지 신기루처럼 멀리 있는 것만 같던 신단수의 뿌리줄기가 눈 앞에 보이게 되었다.
후두둑...
나무줄기와 흙줄기가 비산하는 가운데 한백령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 이 놈들. 합동기술까지... 정말로 여기 세 놈만 천령단을 가진 게 아니겠구나. 적어도 서너 명은 더 있어.'
이 정도면 교주가 그 동안 타 무류를 무시하고 안하무인으로 독재정책을 편 게 이해가 갔다. 설령 화신류나 풍신류가 천령단을 이용해서 반역을 꾀해도 하루아침에 몰살시킬 자신이 있었으리라.
' ... 그 날 이청운을 도왔어야 했는데. 너무 신중했었다. 그게 마지막 기회였을줄이야...'
한백령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런 한백령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독고준은 자신의 내상을 치유하면서 말했다.
[ 세계수의 핵은 교주께서 주신 이걸 써서 따라가자.]
독고준은 품속에 있던 가루주머니를 꺼내서 허공에 휙하고 뿌렸다. 그러자 금빛의 아지랑이가 생겨나며 허공으로 길게 이어졌고, 그 끝은 신단수의 어딘가 중턱에 맺혀 있는 듯 했다.
"그건 대체 뭐지?"
[ 영력이 가장 강한 곳을 감지하는 요정(妖精)이다. 이 놈들이 강한 영력의 냄새를 맡고 반응하는 곳이 바로 핵일 것이다.]
"......"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 가루처럼 생긴 요정들은 중원의 술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아마 교주만이 터득한 비밀의 밀교(密敎) 주술이거나 마법이리라. 교주가 무인이라기보다는 마도사에 가깝다는 제갈사의 정보가 사실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 모든 걸 내게 숨겼군. 이제 됐어. 교주는 끝장내야겠다.'
한백령은 드디어 마음을 완전히 결정하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튕겼다. 의념지기로 만들어진
화령(火靈)이 은밀히 움직이며 신호를 보내서, 부하들이 계획을 실행하는 순간이었다.
' 가라.'
더 이상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
한백령은 완전히 백련교에서 연을 끊기로 작정한 것이다.
한백령이 수를 썼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일행은 세계수의 핵으로 추정되는 장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들은 거대한 신단수를 오르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낄 듯, 수신류 원로 하나가 말했다.
[ 누군가가 먼저 올라간 것 같습니다.]
[ 흠. 이동한 흔적이 있군.]
뿐만 아니라 조금 더 올라가자 귀장들이 죽어있는 장소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극호 일행의 뒤를 따르고 있는 셈이었다. 극호 일행이 훨씬 앞서서 이동했기에 그들 사이에는 한 식경 정도의 속도차이가 있었다.
귀장들의 시체에서 무공의 흔적을 잠시 살피던 독고준이 말했다.
[ 무공이 매우 높은 자들이다. 교 내에서도 손꼽힐만한 수준이군.]
[ 단의 일족일까요?]
[ 그건 모르겠다. 조만간 중턱에 도달할텐데 놈들을 모두 죽이되 한 놈은 생포하라.]
[ 네.]
독고준은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 우리쪽 전력이 죽거나 부상당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지금 귀장들을 쓸어버린 자들은 초절정 중에서도 끝에 도달한 듯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령단을 이용해서 우위를 얻을 수 있다고는 해도 이 정도의 고수들이 끼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수였다.
그는 내심 작전이 실패하지 않을지 걱정했다. 전력의 우위와는 별개로 혼잡한 실전에서는 사소한 변수가 거대한 실패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윽고 세계수의 핵이 있는 중턱에 도착했을 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 음... 분명 핵은 저 안쪽인데... 인기척이 없군.]
그랬다.
극호 일행의 목표는 세계수의 핵이 아니라 정상이었기 때문에 도중에 머물지 않고 계속 올라간 것이다. 본의아니게 조우를 피한 셈이었지만 독고준은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는 핵이 있는 장소로 진입했다. 의문의 고수들이 자신들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굳이 찾아가서 싸울 이유가 없었고 지금은 자신의 임무가 더 급했기 때문이다.
[ 가자!]
호법사자 둘과 수신류 원로 셋이 안으로 걸음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후와아앗
[ 커헉... 억...]
갑자기 수신류 원로들과 독고준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의 피부에 돋아난 비늘이 흉측하게 시들면서 뽑히고 있었고 생기 그 자체가 빠져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정작 한백령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한백령이 의아해서 말했다.
"왜 그래? 평범한 동굴인데..."
[ 윽... 이럴수가... 마(魔) 그 자체를 분해해버리는... 공기가... 크헉...]
독고준은 심장을 쥐어뜯듯 괴로워하다가 뒤로 물러섰다. 그는 분한 듯 황금용가면을 부르르 떨다가 한백령에게 말했다.
[ 우리는 마(魔)를 몸에 받아들여서 핵 근처에 다가갈 수가 없다. 최대한 핵에 다가가서 마를 쫓아내는 결계나 구조물을 없애다오. 그래야만 우리도 핵으로 진입할 수 있다.]
"으음."
한백령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저 수신류 놈들은 반쯤 이족이 된 게 틀림없단 말인가?
' 그럼 천령단은 마(魔)가 아닌건가?'
분명히 교주가 치른 건 마도의 의식이었건만 무한의 내공을 이계에서 빌려오는 능력이 사마(邪魔)에 속하지 않는다는 건 뭔가 이상했다. 위화감을 느끼는 이유는 한백령이 무한의 내공을 사용할 때마다 이 세계의 기(氣)와는 이질적인 걸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백령은 의문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거대한 내부 수림(樹林)에 들어섰다.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거대한 나무와 구조물들의 풍경은 굉장히 이질적이었고 새로웠다. 아닌 게 아니라 한백령은 이게 고려나 중원의 건축양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이건 뭐야?'
비싼 유리를 건물에 도배하거나 생전 처음 보는 소재로 만들어진 게 많았다. 기와조차 없는 사각형의 건물도 있었다. 이족의 구조물인가 싶었으나 그렇다기에는 요사스러운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한백령은 이 장소에서 살짝 뛰어오르자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으며 둥둥 떠다닐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녀는 기를 운용해서 앞으로 나아갔는데 황금빛 실선이 웬 나무를 향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무 안의 나무.
기괴하다면 기괴한 풍경이었으나 한백령은 홀린듯 가까이로 가기 시작했다. 본래 핵을 차지하는게 그녀의 일은 아니었으나 저 나무가 품고 있는 거대한 힘에 그녀의 천령단이 반응한 듯 했다.
아니 - 처음부터 끌리게끔 만들어져 있는 존재일지도.
그 때였다.
쿠구구구궁!!
거대한 진동이 울리며 내부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한백령은 그 순간 이 공간에서 강한 반발력이 일어나며 빠르게 튕겨져나가는 걸 느꼈고, 다음 순간 겨우 중심을 잡아서 출구로 빠져나왔다. 그녀는 밖에 있던 독고준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지?"
독고준은 하늘에 나 있던 커다란 검은 구멍의 파괴흔을 쳐다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 ... 팔부신중한테 결계가 뚫린 것 같다...]
"뭐!"
[ 시간이 없다. 안에 십이율주와 삼사가 있었는가?]
"놈들은 안 보였다."
[ 그럴수가... 신단수의 핵에서 놈들이 모든 걸 조종하고 있을 거라고 교주께서 말씀하셨거늘.]
독고준은 크게 당황한 듯 했다. 교주의 지시가 틀린 건 처음인지라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백령은 침착하게 독고준에게 말했다.
"교주와 바로 연락할 수는 없나?"
[ 잠시만... 윽.]
독고준이 흠칫 굳었다.
[ 통신을 걸어도 교주님이 연락을 받지 않으신다...]
"......"
[ 어, 어떻게 해야...]
독고준이 공황상태에 빠지자 한백령은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내심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독고준에게 알려줄 이유가 없었기에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금 교주에게 귀환해봐야 무의미하다. 이렇게 된거 신단수의 핵을 가져가자."
[ 핵을 가져가자고?]
"그래. 저게 있으면 교주에게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내게도 말이야.
한백령은 내심 중얼거렸다. 일단 제갈사의 뜻대로 계획을 진행하긴 했으나 그녀는 제갈사에게 휘둘리기도 원하지 않았다. 조만간 상황을 확실하게 그녀의 뜻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장의 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세계수의 핵이리라.
[ 좋아. 그럼 갖고 나오...]
스칵!!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칼날이 등 뒤에서 수신류 원로 하나를 베어버린 것이다. 수신류 원로는 무의식중에 호신강기를 일으켜서 방어하려 했으나 이미 늦어있었고 이어진 이참(二斬)에 그대로 몸이 둘로 쪼개졌다.
[ 커학.]
수신류 원로가 쓰러지는 순간 장내에 있던 네 명의 고수들은 동시에 의문의 습격자를 공격했다. 그러자 습격자는 제일 앞에 있던 수신류 고수 하나의 목을 그대로 잘라버리고는 갑자기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천령단을 지닌 자의 목이 뎅겅 치솟는 모습이 현실같지가 않았다.
[ 큭, 네놈!!]
독고준이 격앙된 목소리로 오 장 밖에 나타난 습격자에게 외쳤다.
[ 미야모토 무사시!!]
"후."
스릉...
미야모토 무사시는 차가운 미소를 띄며 자신의 애도, 아메노하바키리(天羽?斬)를 꺼냈다.
아메노하바키리는 동영 역사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명도(名刀). 고수에게는 딱히 무기가 상관없으나 이 무기는 마력을 지닌 존재에게 특히 강한 특성이 있었기에 그가 수해를 공략하기 전에 음양사 아베노 세이메이에게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리 절대지경의 무사시라도 수신류 천령단의 호신강기를 일격에 베는건 무리였으나 상성효과 덕에 쉽게 기습할 수 있었다.
무사시가 말했다.
"율주에게 핵의 호위를 부탁받았다. 그렇게 마음이 흐트러져서야 내 일검을 받아낼 수 있을까?"
그는 처음부터 백련교 호법사자 일행이 중턱에 도착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지만 천령단의 소유자 다섯명을 상대로 혼자서 덤비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지원을 요청하고 기회를 보고 있던 중 독고준의 마음이 흐트러지고 일행의 주의가 산만해지자 곧장 습격해서 두 명을 척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 죽어라!!]
"와라."
독고준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곧장 무사시를 공격했다. 천령단의 고수 셋이 동시에 공격하면 아무리 절대지경의 무사시라도 죽게 될 것이다. 잘해봤자 동귀어진일 거라 생각한 독고준은 무사시를 죽이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콰과광
[ 한백령. 십이무극용왕참으로 놈을...]
막강하기 그지없는 화신류의 공격력으로 무사시를 압박하면 쉽게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독고준이 외쳤으나,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 ......?]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 자리에 한백령의 모습은 없었다. 수신류 원로와 함께 무한의 내공을 일으켜서 무사시를 합공하고 있던 독고준은 그 사실을 깨닫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한백령은 역시 그 자리에 없었다.
[ 아... 아니 대체.]
그는 어이를 상실했다. 이 상황까지 와서 절대지경 고수와 싸우는데 화신류 호법사자가 도망쳐버릴 줄이야? 그러나 그가 마음의 빈틈에 생기자 곧장 미야모토 무사시의 무시무시한 검기가 그를 토막쳐버리려고 날아왔고, 독고준은 이를 악물며 그 공격을 막대한 호신강기로 막아냈다.
[ 이렇게 된 이상 끝장을 볼 뿐!]
그 무렵.
백련교주는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져 있었다.
그는 삽시간에 노쇠한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 당한 건가... 하지만 어떻게...]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 한백령이 배반할지도 모른다는건... 예상했는데... 그래서 화신류가 다 몰려와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지키게끔 했거늘...]
백련교주는 바보가 아니었다. 한백령이 감정을 숨겼으나 굳이 그녀의 내심을 읽지 않아도 그녀가 배신할만한 요소는 차고 넘쳤다. 그렇기에 충분히 대비를 해놓은 채 장내의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조문을 찔려버린 것이다!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 주변에는 남아있는 수신류의 정예와 원로들을 탈탈 털어서 배치시켰으며 천령단 소유자도 있었다. 한백령 본인이 와도 어려울 판에 도대체 무슨 수로 백련교주의 약점을 찔렀단 말인가?
십이율이 자신의 조문을 찔렀을 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부의 적을 경계하는 이상으로 백련교주는 신시쪽에서 오는 침입자를 민감하게 감지했기 때문이다. 단의 일족중에서 경계할만한 초고수가 왔다면 자신이 즉시 출동했으리라. 그러나 그런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백련교주가 당혹해하고 있을 때, 그는 맞은편의 문 쪽에서 누군가가 서서히 걸어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벅.
"백련교주. 일어서시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백련교주는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얼굴을 들어올렸는데 무면탈 너머로 한 사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 그랬군... 네가 왔기 때문이었어...]
"한백령이 원격으로 화덕 염령을 열어줬소. 그 덕분에 최단거리에서 기습하여 소교주의 수급을 취할 수 있었소. 화신대가 나머지 수신류 고수들을 유인해 줬고."
투둑
사내의 손에서 소교주의 수급이 떨어졌다.
"비열한 습격이라 욕해도 좋소."
그러나 백련교주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는 분노보다는 초연함과 담담함을 내비쳤다.
[ 그럴 리가. 내 아들 또한 무인(武人).]
"......"
[ 네게 죽었다면 내 아들도 만족할 것이다... 진소청.]
진소청은 뭐라고 말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정의에 반해서 - 오로지 효율만을 추구하여 여기까지 왔다.
당연히 비열한 기습에 욕을 먹을 각오를 했다.
그러나 천하제일인 백련교주는 끝까지 당당하며 초연하게 그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창을 들었다.
"... 천하제일인의 가르침을 주시오."
[ 좋지.]
위선이라도 좋다.
백련교주를 무인으로써 떠나보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