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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89화 (688/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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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파바밧

극호와 명룡자, 청월 세 명의 고수들은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명룡자가 제운종 신법을 극성으로 끌어내서 달리다가 극호에게 외쳤다.

"정말로 그 놈의 계획대로 할 생각이냐?"

"......"

"자살행위다! 서로 힘을 합쳐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이 무슨..."

명룡자와 청월은 일단 책사의 명령대로 따라 움직이긴 하면서도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 또한 백웅의 동료였기에 현재 상황을 들어서 알고 있었고, 팔부신중이라는 초강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제갈사에게서 떨어진 최후의 지시는 상상과는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극호가 자신의 창을 다잡으며 말했다.

"선배님들은 걱정마십쇼. 어차피 무인으로써 죽을 자리를 고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사치 아니겠습니까?"

청월이 핀잔을 날렸다.

"흥! 용비천 놈을 죽여서 네놈 원수는 다 갚았다 이거군. 근데 나는 아직 교주를 못 죽여서 이대로 죽긴 좀 억울하단 말이다."

"알게 뭡니까? 그리고 제갈사의 계산으로는 이 자리에서 교주도 죽을 확률이 큽니다."

"그 놈을 믿느냐?"

"광서생(狂書生)을 믿는다고 하면 세상에서 제일 미친놈 취급 받겠지만..."

극호는 씨익 웃었다.

"복잡한 건 생각하지 맙시다, 선배님들. 어차피 그 놈이 지금 우리한테 준 임무도 만만한 게 아니니까요."

"흐음. 그런가."

청월은 금세 수긍했다. 하긴 이렇게 혼란스러운 판국에 무인이 책사의 의도까지 다 읽고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극호의 말대로 막상 그 '자살행위'를 하는 것도 꽤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쿠궁...

명룡자가 자신들의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귀장(鬼將) 떼거리를 보자 눈썹을 꿈틀거렸다.

' 제갈사 말대로군.'

역시 예측대로 이 근처에는 십이율과 만하령문이 직접 마련해 둔 강력한 방어막이 있었던 것이다. 귀장들은 상급술사들이 소환한 전투병들로써, 일반적인 무림인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술사들이 호신용으로 자주 소환하는 존재였다. 그는 시험삼아서 자신의 내공을 담은 반월형 검강을 날려서 귀장 떼거리를 공격했다.

콰과광!!

반경 삼 장에 이르는 거대한 강기덩어리가 부딪히자 큰 폭음과 함께 귀장들이 시체가 되어서 날아갔다. 하지만 귀장들은 인간과 달리 전혀 당혹하거나 기세를 잃지 않고 도리어 전투태세를 갖춰서 일행을 공격해 왔다. 왜냐하면 귀장은 명계에서 소환된 전투귀신병이므로 인간의 감정이나 약점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키이잉 -

"하압!!"

콰광!!

청월이 고함을 지르며 뇌신류 고급절학인 뇌명쌍륜장(雷鳴雙輪掌)을 시전해서 한 번에 열 마리의 귀장을 날려버렸다. 그들이 수백 마리의 귀장군대를 일소하는데는 약 한 식경 정도가 걸렸고, 극호는 자기 이마의 땀을 닦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선배님들. 내공은 좀 많이 남으셨슴까?"

"이삼할 정도 쓴 것 같군."

극호는 쩝, 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1차방어막에서 힘을 많이 썼기 때문이었다.

"운기요상할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보행하면서 기혈을 돋우며 회복하십쇼. 명룡자님은 구궁신공(九宮神功), 청월 선배님은 뇌룡흡월(雷龍吸月)을 운용하시면 될 검다."

명룡자가 당혹한 듯 말했다.

"물론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만... 보법행공을 해야한다고? 그렇게 상황이 급하단 말이냐?"

"네. 지금도 꽤 늦었습니다."

극호는 자욱한 산세 속에서 거대한 나무의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이 난장판을 틈타서 신단수의 정상으로 가야합니다. 그게 우리 임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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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구...

빛이 일그러지며 차원이 부숴졌고, 부숴진 차원의 안 쪽에서 성큼 거대한 팔뚝이 나왔다. 그 팔뚝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었으며 마수(魔獸)가 산악을 움켜쥘 듯한 크기와 형태였다.

최초로 자신의 본체를 드러낸 팔부신중 야차(夜叉)가 팔을 내리쳤다.

콰과광!!

최초의 부딪힘! 야차의 공격에 담겨있는 힘이 신단수를 보호하는 결계를 강타했고, 결계는 한차례 크게 뒤흔들렸다. 야차는 허공으로 서서히 자신의 몸을 끌어내며 흉측한 미소를 지었다.

[ 세계수... 가장 완벽한 혼돈의 생명... 인간이 신조차 탐낼 보물을 갖고 있었구나.]

얼핏 팔부신중 본체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낸 듯 보였으나 결계에는 미세한 틈이 거미줄처럼 나 있었다. 적어도 결계의 내구도가 일 할은 깎였다는 뜻이었다.

이제 곧 팔부신중 여섯이 모두 본체를 현계하게 될 것이다. 이대로라면 신단수와 신시는 그대로 파멸해버리고 말 것이리라. 야차가 예정된 승리에 여유롭게 자신의 몸을 지상으로 소환하고 있을 때였다.

후와앗

[ ......!!]

야차는 흠칫하며 자신의 낫을 들어 어디선가 날아온 화염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이윽고 야차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허공에서 불타올랐다.

[ 크아아아악...]

폭염(爆炎)!

지상계의 화염이라면 야차는 자신의 마력으로 바로 꺼뜨려버릴 자신이 있었으나 지금 날아온 화염은 완전히 다른 이계(異界)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강력한 공격에 야차는 전력을 다해서 몸을 보호했고, 그 사이에 다른 팔부신중들이 슬며시 하나둘씩 본체를 드러내며 나타났다.

크하악

팔부신중 가루라가 눈을 번뜩이며 자신의 부리에서 화염을 토해냈다. 가루라의 화염이 야차의 몸을 휩쓸자, 폭염과 신염이 엎치락뒤치락 겨루더니 이내 진정되었다. 화염끼리 힘을 겨루는 진귀한 현상이었다.

팔부신중 긴나라가 먼 하늘을 보며 말했다.

[ 폭왕의 화신이군.]

[ 강한가?]

[ 모르겠어... 어느 정도의 제물과 제약이 갖춰졌는지.]

팔부신중 건달파가 말했다.

[ 지배자의 화신에 오랫동안 발목잡힐 순 없다. 둘로 나뉘어서 공략하는 게 어떤가?]

[ 그게 좋겠군.]

일행의 책사인 긴나라가 명령했다.

[ 나와 야차, 건달파는 세계수의 결계를 깨겠다. 가루라, 천인, 마후라가는 지배자의 화신을 쓰러뜨려라.]

[ 좋아.]

파밧

그들은 오랫동안 고민하지 않고 찢어져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폭왕 카르바도크의 화신이 거대한 흑룡(黑龍)으로 변해 하늘에 나타나자 그 앞에 조인(鳥人)같은 모습을 한 가루라가 나타났다. 가루라의 옆에는 천인과 마후라가가 있었다.

폭왕의 화신은 그들을 보자 껄껄 웃었다.

[ 크하하하... 감히 창힐 따위의 화신이 내 앞을 가로막는가?]

[ 네가 우리를 비웃을 처지인가? [옛 지배자]의 화신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동격이다.]

눈코입이 없는 새하얀 광인(光人)이 구름에 감싸인 듯한 모습. 그것이 바로 천인 삼장법사의 본체가 지닌 형태였다. 팔부신중 천인이 가볍게 반박하자 폭왕의 화신이 불쾌한 듯 입에서 흑염을 흘려냈다.

[ 감히... 네 주인이 반편이라는 걸 내가 모르는 줄 아느냐? 태초부터 혼돈에서 태어나 성좌에서 싸워온 나와 동격이 될 수 있다 생각하느냐?]

[ ......]

[ 감히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지 마라. 미천한 놈 따위가 강대한 존재의 비위를 맞춰봤자 벌레일 뿐!]

한없이 오만한 말이었으나 팔부신중 중 누구도 그 말에 딱히 반박은 하지 않았다. 사실이라서인지 딱히 대답할 가치가 없어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뱀과 사람이 합쳐진 듯한 사인(蛇人)의 형태를 한 마후라가가 말했다.

[ 너같은 놈과는 중원역사의 어둠속에서 질리도록 싸워봤지. 하지만 네놈은 이 싸움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 네놈이 누구의 화신이든간에 결국 우리 손에 죽을 것이다.]

[ 건방진 놈들!!]

콰과광

[ 크아아악.]

광염(光炎)이 번뜩이는 전장에서 폭왕의 화신인 흑룡은 미친듯이 검은 불꽃을 난사했다. 그 불기둥은 무려 직경이 수백 장에 이르렀고 몸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사되었기에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심지어 한번 모아서 발사하면 흑염의 기둥이 산을 뚫기 일쑤였다.

그나마 가루라가 폭왕의 화신을 상대로 광염을 상쇄하고는 있었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폭왕이라 하는 [옛 지배자]가 상당히 격이 높은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히 화신또한 강력할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백련교주가 충실하게 산제물을 바친 덕분에 힘이 전혀 감소하지 않은 것이다. 그에 비해 팔부신중은 억지로 지상에 현신한 여파로 꽤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힘의 격차가 역력했다.

피융

쿠콰콰쾅

[ 마후라가!!]

천인이 흠칫 놀라서 뒤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에 날아온 흑염의 공격 때문에 마후라가가 큰 타격을 입고 영체가 갈기갈기 찢겼기 때문이다. 팔부신중 중에서 힘으로는 꽤 하위에 있는 마후라가라고는 하지만 화신체의 일개공격에 당할줄은 생각도 못했기에 천인은 상당히 당황했다.

가루라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 필멸자가 꽤 귀찮은 놈을 소환해 버렸군... 받아랏!]

화르륵

가루라의 신염이 토해져서 폭왕의 화신에게 반격했으나, 그의 불꽃은 엄청나게 빠른 폭왕의 속도 때문에 스치지도 못했다. 가루라는 속도로 꽤 자신 있었으나 폭왕의 화신이 가진 속도가 그 이상이란 걸 확인하자 경악한 듯 했다. 폭왕의 화신이 다시 한 번 검은 숨결을 토해내자 가루라 또한 당해버리고 말았다.

번쩍

[ 크아아악...]

가루라가 새까만 숯처럼 변해서 땅으로 떨어지자 폭왕의 화신이 천인 앞으로 쇄도해오며 웃었다.

[ 크흐흐... 팔부신중 별것도 아니구나.]

[ ......]

콰과광

지이잉 -

천인은 침착하게 시공간 술법으로 방어하는 중이었다. 술법 최고의 경지에 오른 천인이 온갖 동서고금의 주술을 시전해서 막자 아무리 폭왕의 화신이라도 쉽게는 공략할 수 없었다. 천인이 한참을 막아내다가 새하얀 달걀귀신같은 얼굴에 히죽 미소를 띄웠다.

[ 넌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

[ 뭐?]

천인이 그 말을 하는 순간이었다.

번쩍!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치더니, 가루라와 마후라가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는 게 아닌가?

폭왕의 화신은 난데없는 일에 멀뚱히 전방을 보고 있었다. 폭왕의 화신이 잠시 후 당황한 듯 말했다.

[ 뭣... 분명 없앴을 텐데...]

[ 크흐흐.]

천인이 흉소를 지었다.

[ 안심했다. 있는대로 힘을 낭비해 줘서.]

[ 웃기는 소리!]

쿠콰콰쾅

다시금 전투가 재개되었다.

"......"

십이율주 하은천은 그 전투를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신시 주변의 약 수십리 이내는 모조리 그의 눈과 귀가 도달하는 장소였으며 해방목요의 주인으로써 사역하는 권능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팔부신중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는 중이었고 나름대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십이율주 하은천이 문득 옆에 있던 풍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심 좀 하지."

"무슨 말씀..."

후왁!

하은천이 일장을 내질러서 풍백의 가슴팍을 치자, 그의 등 뒤로 어둠의 기운이 뭉클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풍백이 깜짝 놀라서 뒤를 쳐다보자 하은천이 술법을 써서 그 기운을 포획하려고 했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십이율주가 고소(苦笑)를 머금었다.

"크큭,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도청하고 있었겠군. 그럼 제갈사도 지금 팔부신중의 대화를 모두 들은 셈인가..."

"으으. 설마 그 마도사가 제게 마법을 걸었단 말씀이십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풍백이 크게 당황했다. 왜냐하면 그건 있을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술법의 차이는 둘째 치고, 그를 포함한 삼사(三師)는 원래부터 인간이 아닌 신족이었고 특수한 존재였다. 그렇기에 술법저항력이 일반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옛 지배자]의 사도나 화신쯤 되지 않는다면 결코 그들을 술법이나 마법으로 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제갈사. 아마 지금도 내 말을 듣고 있겠지. 이 마법이 네 능력만으로 시전한 건 아니라는걸 짐작하고 있다. 네 뒤에 있는 마(魔)의 존재와 계약해서 비장의 한수로 내건 거겠지. 계약으로 얻을 수 있는 마법은 제약을 이용해서 술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으니까."

십이율주는 손가락으로 어둠의 기운을 가리켰다.

"잘 들어라. 너희는 호랑이 몸속의 벌레가 아니라 독안에 든 쥐에 불과하다. 너희부터 먼저 때려잡고 나서 팔부신중을 상대해 주마. 넌 절대 내가 갖고 있는 칠요를 뺏을 수 없을 것이다."

퍼엉

어둠의 기운이 터져나갔다.

풀썩!

그 순간 어딘가를 걷고 있던 제갈사는 흠칫하며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주르륵....

"크흐흐... 역시 십이율주. 동방최강자... 생각보다 더 빨리 알아채는군. 팔부신중의 싸움이 결판날 때쯤 알아챌 줄 알았는데..."

제갈사는 오른쪽눈의 시력이 사라지고 눈두덩에서 핏줄기가 굵게 흐르는걸 느꼈다. 십이율주의 말대로 제갈사는 삼사에게 어둠의 기운을 심어서 도청하기 위해서 마왕과 강력한 계약을 치뤘고, 그 담보로 오른쪽 눈을 내놓은 것이다. 십이율주가 마법을 파해했으니 담보로 내건 눈이 박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제갈사가 중얼거렸다.

"뭐... 칠요를 뺏는것도 생각해봤지. 내 영혼을 바치고 조건을 세게 건다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건 지금 내 목적이 아냐."

제갈사는 히죽 웃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십이율주가 움직이게 되었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율주는 -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가고 있는지, 그리고 뭘 원하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가 볼까...?"

저벅.

저벅.

제갈사는 어둡고 질척거리는 암도(暗道)를 걸어갔다.

이 길의 끝에 승리가 있을거라고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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