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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86화 (68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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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제갈사는 천우진과 함께 신시로 향했다. 동료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으며, 신시 앞의 결계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갈사가 그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다가 말했다.

"백련교주는?"

"아직 안 왔소."

"단의 일족이 근처에 있을 텐데 이미 만났나?"

"저기 있소."

진소청이 근처 폭포쪽의 바위를 가리키자 거기에는 웬 백청(白靑)이 섞인 고려옷을 입은 사내가 앉아있었다.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가 기(氣)를 자연에 동화시키는 실력이 대단해서 마치 풍경 속에 스며든 것 같았다. 그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제갈사에게 인사했다.

"반갑소. 나는 단의 일족인 홍길동이라 하오."

"흐음. 당신이 안내인인가?"

"당신네 일행이 아직 다 안 왔다고 해서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소."

제갈사는 물끄러미 홍길동을 쳐다보았다. 물론 저 홍길동은 제갈사와 초면일 테지만 제갈사는 홍길동을 알고 있었다.

분신술의 대가!

십이율주조차 인정하는 실력자!

저 놈 또한 만만히 볼 수 없는 존재인 게 분명했다. 분신술에 있어서 일대종사의 경지를 이뤘다면 그 자체로 천하를 오시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제갈사가 입을 열었다.

"백련교주까지 우리가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율주를 먼저 만나고 싶다."

"알았소. 따라오시오."

그들은 홍길동을 따라서 심산유곡과 구름다리길을 열 번 이상 지났다. 그리고 홍길동의 뒤를 따라걷던 중 제갈사가 진소청에게 물었다.

[ 저 홍길동인지 뭔지 하는 놈은 어느정도 실력이야?]

[ 강하오.]

[ 빌어먹을. 넌 설명을 해주면 입에 가시가 돋히냐?]

[ 저 자의 걸음걸이만 봐도 한 치의 오차가 없소. 또한 그를 의념지기로 잠시 건드려봤으나 약점을 찾을 수 없었으니, 최소한 중원무림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힐 실력이오.]

[ 흐음... 절대지경은 아니고?]

[ 그건 모르겠소. 저 자는 자신의 실력을 숨기는데 매우 능숙한 듯 해서.]

절대지경끼리는 알아본다던데 꼭 그것도 아닌건가? 하긴 그게 쉬웠다면 지금까지 용중일의 전력을 오판하고 있지는 않았으리라.

제갈사는 고개를 저었다.

' 그렇다 해도 무공과 술법 양쪽에서 대성한 놈이라면 그 자체로 위협이지.'

두 개의 능력을 잘 혼합해서 쓰면 어떤 파괴력이 나오는지는 제갈부의 예시에서 알고 있었다. 온실 속의 화초같았던 제갈부와 달리 직접 이족과 싸우는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십이율주의 가르침도 받았을 홍길동의 실력은 당연히 제갈부보다 훨씬 위에 있으리라. 현 일행 중에서 진소청과 대등한 수준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윽고 그들은 신시 내부로 들어와서 십이율주를 대면했다. 십이율주는 꽤 언짢은 기색인 듯 삐딱하게 의자에 앉아있었고 제갈사에게 대뜸 말했다.

"전욱이랑 뭔 얘기했어?"

"무슨 말씀 하시는지..."

"너 정도 마도사가 오거천문을 열고 살아돌아왔다면 당연히 삼황오제랑 얘기했겠지. 뭘 얘기했냐고 묻고 있잖아."

제갈사가 히죽 웃었다.

"얘기해드릴 순 있는데 그럼 반황주 돌려주십시오."

"정말 그러기야?"

"전 분명히 율주께 함께 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거절한 건 율주였습니다. 반황주까지 드렸는데 제가 얘기해드릴 이유가 없잖습니까?"

"... 너무 내 성질을 건드리지 마."

십이율주의 눈에서 파르스름한 빛이 흘렀다. 그 순간 강렬한 의념지기가 폭풍처럼 몰아쳤고 제갈사에게 쏟아지는 압박을 진소청이 창을 곧추세워서 막아내었다. 진소청을 힐끔 쳐다본 십이율주가 말했다.

"너희, 별로 맘에 안 들어. 무슨 꿍꿍이속이야?"

"엇... 이거 참 우연이군요. 저희도 율주가 별로 맘에 안 듭니다. 무슨 꿍꿍이속이십니까?"

제갈사가 유들유들하게 받아치자 십이율주는 끙 하는 소리를 내더니 말했다.

"됐어. 어차피 공통의 강적을 눈앞에 둔 이상 더 이상 얘기하진 않지. 하지만 너희가 내 영지인 신시에 들어온 이상 내 명령을 어느정도는 따라줘야 할 거다."

"그거야 유념하고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팔부신중에 대한 대응책은 세계수의 결계를 이용해서 막아내고 반격한다, 이게 전부냐?"

"그 이상의 대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제갈사가 힐끔 창 밖에 있는 거대한 나무의 전경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세계수의 힘은 해신(海神)마저도 억제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강력한 영적능력을 지닌 존재를 이용한 결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얘기는 또 어디서 들은 거야?"

"봉래도의 흔적을 찾다보니 들었으니 언짢아하진 마시길."

"흐음. 확실히 그 말대로 세계수를 이용한 결계는 인간술법사가 펼칠 수 있는 최상의 경지라고 할 수 있지만..."

십이율주가 팔짱을 꼈다.

"힘이 부족하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거다. 반황주의 힘을 더한다고 해도 한없이 부족해."

"그야 그렇죠."

팔부신중들이 본체로 변해서 몇 번 후려치기만 해도 세계수의 결계는 박살나버릴 가능성이 컸다. 물론 그들이 동시에 본체로 공격한다는 가정이긴 했으나 이대로는 몰살하는 방도밖에 없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팔부신중 본체의 위력을 당해낼만한 힘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제갈사는 물론 방법이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 니가 봉황을 소환하면 되겠지.'

십이율주는 봉황을 소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 신위를 사용해서 한때 고려의 서경에 상륙하려 했던 해신을 몰아냈던 전적까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고 말했다.

"정말 승산이 없다 생각하셨다면 처음부터 저희를 신시까지 들이지 않으셨겠죠. 저는 율주의 의견부터 듣고 싶습니다만."

"흐응. 별 거 아냐. 칠요를 하나 더 꺼내는 거지."

"... 위치를 아십니까?"

"하나 알고 있어. 그걸 찾아와서 칠요공명을 이용해서 결계를 증폭시킬 생각이야."

물론 지금 십이율주의 대안은 제갈사가 이미 예상했던 것이었다.

월요를 꺼내올 생각이 분명하다!

강화도 마니산에 잠들어 있는 월요의 제단에 피를 흘려 수호자를 소환하고, 그 수호자를 쓰러뜨려 월요를 꺼낼 심산이리라. 역시 십이율주는 월요의 존재를 지금껏 알면서도 방치해온 게 틀림없었다.

' 대체 왜 그런거지?'

칠요를 굳이 봉인상태로 놔둔 이유가 무엇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십이율주는 칠요를 해방할 수 있는 모종의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천계의 허락도 없이 이미 목요가 해방되어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월요를 가져와서 해방시킨다면 해방칠요를 2개씩이나 가진 셈이 되어서 세상에서 두려운 게 없을터인데 십이율주는 지금까지 서산대사를 시켜서 몰래 지키게 할 뿐 딱히 월요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삼황오제나 천계의 견제를 신경썼다는 것밖에 없다. 해방칠요를 두 개나 갖고 있으면 누구든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칠요에 대해서 온갖 정보를 구르면서 모아온 백웅이나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고, 보통 필멸자는 자신의 생애에는 결코 그런 정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이 어쨌든 제갈사는 대꾸했다.

"그 칠요를 저희 측에서 쓰면 되겠군요."

"뭘 당연한 것처럼 억지를 부리고 앉아있어? 이 곳은 내 영지고, 내 정보로 내가 찾아내는 거니까 내가 칠요를 쓸 거야. 두 개의 칠요 모두."

"욕심이 너무 많으시군요."

"딱히? 칠요가 두 개라고 해도 세상의 판도를 바꿀 정도는 되지 못하는데."

퉁명스럽게 대꾸한 율주가 말을 이었다.

"백련교주가 곧 도착하면 그에게는 세계수의 경비를 맡길 거다. 너희도."

"흐음."

역시 십이율주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권을 자신이 가지고 있을 셈이 분명했다. 그리고 제갈사는 십이율주가 지닌 또 하나의 속셈을 알아챘다.

' 만일 팔부신중을 퇴치하는데 성공하면 우리를 팽할 속셈이 있군.'

그렇지 않다면 굳이 본거지인 신시까지 잠재적인 적수를 들여놓을 이유가 없다. 뭔지는 몰라도 십이율주는 그들을 포박하거나 죽일 수 있는 함정을 짜놓을 확률이 컸다. 적대하고 있는 백련교와 수상쩍은 백웅 일행을 한번에 물리치기에는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는 것이다. 제갈사는 십이율주의 욕심이 매우 크다는 생각을 했다.

' 하긴 저게 이 시대의 패주로써 당연한 생각이기도 하지.'

제갈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때였다.

후우웅!!

마치 흑영(黑影)이 흘러들어오는 듯 좌중에 검은 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광풍이 몰아친 후 그 자리에는 백련교주와 호법사자들이 서 있었다. 백련교주를 본 십이율주가 말했다.

"백련교주 당신 무례하군. 얘기하는 중에 막 들어오면 어떻게 해."

[ 예를 논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라 생각한다.]

잘라서 말한 백련교주가 힐끔 좌중의 인물들을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 잘만 된다면 팔부신중을 한꺼번에 물리칠 수 있다.]

"하! 다들 의욕만 넘치는군. 어떤 방법인데?"

[ 인신공양이다.]

"뭐?"

백련교주가 무감정하게 말했다.

[ 제물은 충분히 준비해 뒀다. [옛 지배자]의 화신을 소환해서 팔부신중을 막아내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

그 순간 제갈사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십이율주는 불편한 듯 말했다.

"너네 백련교도를 바치겠다는 말인가?"

[ 그렇다.]

"뭐 그거야 너네 알아서 할 일이지만 그 마력을 신시까지 들여오겠다면 신시의 종주인 나로서는 가만 있을 수가 없는데."

[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화신을 신시 외곽에 소환하면 되니까.]

"흐응... 맘대로 하라구."

만일 이 자리에 백웅이나 망량이 있었다면 백련교주가 교도를 제물로 바쳐서 [옛 지배자]의 화신을 소환하는 계책에 대해서 경악하며 극히 반대했으리라. 예전에 낙양에서 3만이나 되는 교도를 바쳤던 참극만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수백 수천명의 목숨이 날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이율주도 제갈사도 딱히 인신공양에 대해서 큰 거부감은 없는 인물들이었다. 백련교주의 제안을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제갈사의 경우는 심경이 복잡한 게 다른 이유였다.

' 교주 저 놈도 다른 꿍꿍이속이 있잖아.'

얼핏 연합체를 위해서 최선의 책략을 희생하듯 내놓은 것 같지만, 백련교주 또한 화신을 소환해서 뭔가 꾸밀 게 분명하다. 뭐라고 집어서 얘기할 순 없었지만 책사로서의 감이 백련교주의 행동이 구리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백웅이었다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겠지만 그는 백련교주가 꿍꿍이속이 있다는 걸 반쯤 확신해 버렸다.

아마도 신시 그자체를 장악하거나 위기를 틈타서 십이율주를 암살하고 단의 일족을 손에 넣는다는 등의 행동이리라. 제갈사는 세 개의 거대세력이 모였는데도 서로 뒤통수 칠 생각밖에 하지 않는게 뻔히 보이자 실실 웃었다.

"크크크."

이래선 이길 리가 없다.

십이율주가 2개의 칠요를 해방시켜 공명시키고, 백련교주가 [옛 지배자]의 화신을 소환하고, 제갈사가 축융을 소환시키면서 세계수의 결계를 받아서 싸운다는 건 얼핏 대단해 보였다. 전력만으로는 팔부신중의 협공을 막고도 남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서로간의 신뢰따위는 없기에 뭐가 뒤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질거란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 그럼 내가 할 일은 정해졌군.'

정말로 3대세력이 화합해서 팔부신중을 막아낼 수 있다면야 전력을 다해서 책략을 짰겠지만 현재 분위기는 전혀 그런게 아니다. 그렇다고 제갈사가 책임지고 화합을 이끌어낼 이유도 없었기에, 그는 깽판을 치기로 마음먹었다.

제갈사가 웃으며 말했다.

"자아, 그럼 최선을 다해봅시다."

셋이 최선을 다해서 서로의 뒤통수를 후려까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제 그는 마음이 편한 것이다.

최대의 변수인 '그'에게만 신경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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