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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82화 (68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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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제갈사의 요청에 따라 백련교주는 호법사자들을 소집했고, 동시에 십이율에 동맹요청을 했다. 동맹조건은 백련교주가 십이율에게 중원의 절반을 넘기고 향후 백련교 사대신기의 소유권을 함께 가진다는 것, 그리고 수신류 무공의 전수였다. 요청에 대한 대답은 약 사흘만에 되돌아왔고 십이율주가 삼사와 함께 직접 찾아왔다.

십이율주가 빙긋 웃었다.

"별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제대로 된 조건을 내놓는군. 동맹성립이다."

[ 내가 사대신기라는 게 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데 그냥 믿는건가?]

"후후! 글쎄?"

십이율주는 백련교주의 말을 어물쩡 넘겼으나 그 순간 회담자리에 있던 모두가 직감했다.

십이율주는 백련교 사대신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대번에 요청에 응해서 본인이 직접 삼사와 올 리는 없는 것이다.

' 또한 그 의도를 읽혀도 상관없을 정도로 사대신기의 가치가 크다는 걸 알고 있는 거겠지...'

제갈사는 내심 인상을 찌푸렸다. 적이긴 하지만 십이율주는 정말 수수께끼의 사내인데다가 감춘 역량이 대단히 많았다. 십이율주를 붙잡아서 그의 정보만 얻을 수 있다면 백웅의 여정이 절반 이상 단축될 거라고 확신할 정도로 그는 이 음모의 중원대륙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순간적으로 제갈사는 대라멸진을 쓴 백웅을 포함한 아군고수들이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교주와 협공해서 십이율주를 생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이내 무리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십이율주가 보유한 술법이 어떤 게 있는지 모르는 이상, 도리어 낭패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윽고 백련교주는 현재 팔부신중이라는 적수가 존재하며 큰 위기에 처해있는 상황을 십이율주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십이율주가 말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신적 존재를 상대로 한다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또한 십이율 문주 대다수는 그런 자들과 대적할 역량이 되지 못해."

[ 동맹의 댓가를 받고 싶다면 성실하게 임해라. 그 자들이 본교를 무너뜨리고 나서 그대들을 가만 놔둘 거라고 생각하는가?]

"뭐... 그렇군. 나도 알아들었어."

잠시 생각하던 십이율주가 말했다.

"전면적으로 협력하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말해줘."

그러자 제갈사가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십이율주. 해방목요의 힘을 빌려서 대술법을 시전하고 싶소."

"헤에. 내가 목요를 갖고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이 판국에 더 이상 서로의 거리를 잴 이유가 없지. 팔부신중한테 지면 우리 모두 죽는데."

태연하게 대꾸한 제갈사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계획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십이율주 뒤편에 있던 삼사들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했고, 십이율주 또한 침묵했다. 십이율주는 제갈사의 계획을 다 듣자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 놀랍군. 이 중원에 아직 너 정도의 책사가 남아 있었다니."

' 계획에 응하시겠소?"

"물론 응해야지. 팔부신중을 퇴치할 수 있다면 내 계획도 많이 수월해지니까. 하지만 그 전에 네가 어떤 주군을 모시고 있는지 알고 싶은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십이율주가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네가 백련교주를 위해서 일하는 것 같진 않거든. 너 정도의 책사이자 강력한 마도사가 그렇게 열심히 일할만한 자가 누구야?"

"세상에서 가장 우둔한 주군이란 것만 말해두겠소."

그들은 회담이 끝나자마자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장은 백련교가 될 수밖에 없겠으나 다시금 팔부신중이 찾아오기 전까지 최대한 싸울 준비를 해두어야 했다.

원로원 고수들이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는 걸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보던 백련교주가 말했다.

[ 저들은 중원무림에서라면 하나같이 손꼽힐만한 초절정고수들이지만 팔부신중을 상대로는 의미가 없겠지.]

"......"

[ 나는 서고에서 고대의 비밀을 탐독하던 중 그 사실에 줄곧 절망해 왔다. 이 세상의 무림이란 게 한낱 촌동네에 불과하며 이면의 뚜껑에 불과하고... 절대자의 경지에 이르러봤자 천계의 하수인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사실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갈사가 피식 웃었다.

"바쁜 사람 물러내서 한다는 소리가 그렇게 뻔한 소리인가?"

[ 용중일이 왔다.]

백련교주가 제갈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 그를 왜 부른 거지? 일단 요청을 해서 부르긴 했지만.]

"뭐, 새로운 천령단의 후계자가 있어야하지 않나? 우리측에서 용비천을 죽여버리는 바람에 그쪽 풍신류 호법사자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을 테고.

제갈사의 눈이 순간적으로 섬짓하게 빛났다.

"나는 도리어 지금까지 용비천의 뒤를 이어서 용중일에게 천령단을 전수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한데. 지금까지 왜 공석으로 놔뒀지?"

[ ......]

"천령단 하나 정도는 별 것 아니란 말인가?"

백련교주는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 용중일은 내빈당에 와 있다. 만나봐라.]

"그러지."

제갈사는 백련교주에게서 물러나와서 내빈당에 있는 용중일을 만났다. 물론 혼자 만났다가는 난데없이 암습에 당할 수 있었으니 진소청을 대동한 상태였다.

스으...

제갈사가 그와 마주하는 순간, 등 뒤에 있던 진소청과 용중일의 눈이 마주쳤고 주변의 공기가 크게 서늘해졌다. 제갈사의 무공이 높지 않아서 잘은 알 수 없었으나 두 초극고수들끼리 뭔가 견제를 나눈 듯 했다. 제갈사는 빙긋 웃으며 용중일과 인사했다.

"여어 반가워."

"반갑소. 그대가 배교의 교주인 제갈사요?"

"그러는 너는 풍신류의 차기 호법사자 용중일이겠지."

용중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무슨 일로 본인을 본단에 부르셨는지."

분명 그들 사이에는 원한이 존재했다.

용중일과 풍신류 전력을 회쳐버린 게 바로 백웅 일행이었던 것이다.

그런고로 아버지의 원수를 마주친 상태인데도 용중일의 안색에는 한 줌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후후."

제갈사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별건 아니고, 슬슬 풍신류의 호법사자가 되줬으면 해서 말이지. 지금 엄청난 강적을 앞두고 있거든."

"......"

"천령단을 일부러 이런저런 핑계로 거부하고 있더군. 교주는 그런 네 의도를 알면서도 일부러 내버려두고 있었고... 천령단을 거부하는 이유가 뭐지?"

"그걸 백련교의 외인인 그대에게 말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오만."

"뭐 말할 이유는 없겠지. 그런데 내가 추측한 걸 좀 말해봐도 될까?"

용중일은 제갈사를 무시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하지만 제갈사는 그런 용중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넌 천령단이 무엇인가, 무한의 내공을 받는 대신 무엇을 잃어버리는지 명확히 알고 있지. 그래서 천령단을 거부하는 거야. 안 그래?"

"......"

"교주도 아마 네가 눈치챈 걸 눈치채고 있겠지. 하지만 일부러 압박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건 네놈의 역량이 용비천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만..."

"천령단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부터가 세계의 이면에 발을 담궜다는 뜻인데다가..."

제갈사가 히쭉 웃었다.

"네 녀석은 한때 유림의 정예요원이기도 했으며 온갖 이치를 탐구해서 돌아다녔더군? 그러면서도 황산파를 설립해서 구파일방의 장문인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서 천령단도 없는데 풍신류의 무공을 초월해서 천령단 소유자에 맞먹는 무위를 지니게 되었으니... 내가 교주라고 해도 네게 천령단을 주지는 않을 거야. 교주의 역량으로는 천령단을 얻은 용중일 너를 통제할 수가 없으니까."

"......"

"교주는 반백년만에 제 2의 이청운을 마주하고싶지 않겠지."

그 순간 용중일이 슬며시 눈을 떴다. 제갈사가 그의 비밀을 다 털어놓아버리자 반응이 달라진 것이다. 그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날 찾아온 이유는 그저 천령단을 전수받으라고 설득하려는게 아니겠지."

"역시 두뇌도 명석하구만. 구파일방 장문인다워."

"원하는 걸 말하시오. 당신과는 대화해도 좋소."

제갈사는 '대화는 아까부터 하고 있지 않았나?' 라고 이죽거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용비천이 말하는 '대화'에는, 제갈사를 진짜 거래상대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담겨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갈사가 말했다.

"별거 아냐. 백련교는 아마 곧 무너질텐데 무너진 후에는 너와 내가 좋은 거래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찾아온 거지."

"풍신류의 후계자인 내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군."

"크크! 네가 풍신류의 후계자로써 가진 정체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보는데? 정말 풍신류에 애착이 강했으면 천령단의 제약이 뭐든간에 일단 받아들여서 유파의 약세를 막는 게 우선 아니었나?"

"... 무너질 백련교라고 생각하면 돕는 이유가 뭐요?"

"일단은 공동전선인데다 서로가 필요해서 이용해야 하니까. 하지만 나로서는 이번이 전부가 아니라 뒷일도 생각해야 하고, 너 정도면 좋은 거래상대라고 생각했다."

"흐음..."

용중일은 턱을 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검을 날렸다.

푸콱!!

순식간에 주변에서 세 개의 혈영(血影)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번졌다. 그들은 교주의 명을 받아서 그들의 대화를 감시하고 있던 수신류의 초절정고수들이었는데 순식간에 살해당한 것이다. 제갈사가 그 모습을 보자 감탄하듯 말했다.

"대단하군!! 황산파 장문인 너무 강한 거 아냐? 저놈들 하나하나가 교주직속 원로원 고수들이라서 구파 장문인보다 더 셀건데."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참 성격이 나쁘군. 진소청이 듣는 귀를 처리해도 될 터인데 끝까지 내게 손속을 쓰라고 강요하는군."

"크크크...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만. 듣는 놈들이 보고하러 움직이려고 드니까 초조했나보지?"

"할 말이나 하시오."

"그럴까나."

능청스레 대꾸한 제갈사가 말했다.

"얼마 후 내 주군이 귀환할 것이다. 너는 백련교가 멸망한 후에도 내 주군을 도와서 싸워줬으면 한다. 너 정도면 그럴 역량이 되겠지."

"그럴 이유는 없는데."

"이유는 내가 만들어 주지. 네가 우리 제안에 따르면..."

이윽고 제갈사가 악마처럼 달콤한 제안을 용중일에게 건넸다. 용중일은 그 말에 깜짝 놀라더니 크게 고민했고, 머지않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그대와 손을 잡겠소."

"잘 생각했다."

"천령단 이야기는 잘 무마해 주시오."

스읏

용중일은 그 자리에서 신법을 써서 사라졌다. 본단에 오래 있어봤자 좋을 일이 없기에 황산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제갈사가 자신의 팔을 붕붕 휘두르며 말했다.

"어디 보자, 이번에는 저 놈의 뒤처리를 해 주고... 하는김에 비밀까지 다 얻어내면 최고인가."

그렇게 독백하던 제갈사가 등 뒤에 있던 진소청에게 말했다.

"진소청, 어때? 용중일의 현재 실력은."

"강하오."

"나를 백웅으로 만들지 마. 설명을 해줘야 얼마나 강한지 알잖아?"

제갈사의 재촉에 진소청은 힐끔 주변에 널려있던 수신류 고수의 육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와 대등하오."

"역시 그런가? 그 말은 저 놈도 절대지경의 초입이란 말인가."

"아마 그럴 것이오. 그와 내가 직접 손을 나눈다면 아마 그 때의 운이 될 것이오."

"예전에는 저 정도로 강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가 잘못된 거야?"

"... 아마 예전에 남궁세가를 멸망시켰을 때조차도 용중일은 자신의 실력을 다 드러내지 않았던 걸로 보이오. 오늘에서야 진짜 실력을 내비친 거라 생각하오."

제갈사가 혀를 찼다.

"쯧! 더럽게 꿍쳐두는 새끼군. 저 놈이 미야모토 무사시나 교주 정도로 강할지도 모르지 않나?"

"절대 그렇진 않소. 그렇다면 그는 이 자리에서 직접 손을 써서 우리를 몰살시키는게 훨씬 편했을 것이오. 아니면 천령단을 받아서 직접 교주와 결판을 냈겠지."

"흠, 그렇구만. 저 놈이 갖고있는 무공이라는 검형(劍形)에 대해서는 뭐 짐작가는 게 없나?"

"없소. 그런건 직접 싸워봐야 아는 거요."

진소청은 힐끔 제갈사를 쳐다보았다.

"이제 어쩔 생각이오?"

"어쩌긴."

제갈사가 말했다.

"승부는 한 순간이야. 목요의 힘을 빌려서 팔부신중에게 일격을 먹이지 못하면 전부 끝이지."

"그렇다면 모든 게 천우진에게 달려있겠구려."

"그래."

제갈사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 망량선사의 뜻에 달려있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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