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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81화 (68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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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5년 전의 그 날.

백웅이 암천향으로 곧장 떠나버린 후 남은 자들은 남쪽 대륙으로 귀환하기로 했다. 어설프게 백련교를 건드려서 무당파와 소림사가 해를 입게 된 셈이었으나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무공수련시설은 좀 아깝군."

극호가 입맛을 다시며 소림사에 있던 인공수련시설을 뒤돌아보자 망량이 씁쓸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소. 그 동안 내공을 꽤 상승시킨 걸로 만족합시다."

"백련교에 들키면 큰일날텐데."

"안 그래도 나와 사제가 중원에 남아서 마무리를 할 것이오. 사제가 이 시설을 은폐할 것이고 나는 반천맹을 움직여서 중원에 세력의 끈을 남겨두겠소."

"위험하지 않겠소? 망량 당신이 잡히면 신승이나 명룡자가 잡힌 것보다 훨씬 큰일인데."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전생의 경험때문에 자진(自盡)할 수 있는 독을 늘 들고 다니지. 어금니 밑에 있으니 순식간에 고통없이 죽을 수 있으니 걱정 마시오. 술법으로 자진할 틈 정도는 낼 수 있고."

"......"

"그런 눈으로 볼 필요 없소. 흑요석으로 기억을 받아들이는 위험이 얼마나 큰가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당연하오."

극호는 껄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성격상 자진하는 독을 늘 상비하기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 때 옆에 있던 명룡자가 말했다.

"그 백웅이라는 자가 암천향에 떠나서 죽을 확률이 너무 높지 않느냐?"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십니까?"

"지금 네 움직임은 마치 그가 돌아오는 걸 전제로 먼 미래를 보고있는 것 같아서 이상하단 말이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책사답지 않구나."

명룡자의 의문에 망량이 피식 웃었다.

"이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가 귀환하지 않는다는 전제는 없습니다. 확률이 어찌되었든 말이죠."

"뭐라고?"

"지금은 그게 합리적인 상황입니다. 잘 이해가 안 되실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과거 진소청이 50년간 목숨을 걸고 백웅을 기다렸던 겁니다."

그렇게 대꾸한 망량이 힐끔 진소청을 보았다. 진소청은 망량의 말을 이해했기에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사가 말했다.

"슬슬 이동하지. 내 마법과 천우진의 술법을 사용하면 길어도 이틀 내로 본거지에 도착할 수 있을 거다."

파앗

제갈사의 말대로 마도와 술법을 병용하자 그리 어렵지 않게 대륙간을 주파하는 게 가능했다. 제갈사든 천우진이든 각자의 계열에서 최상에 도달한 자들이었고 그들이 힘을 합쳤기에 되는 일이었다. 제갈사는 본거지에 도착하자마자 말했다.

"자, 그럼 여기 원주민 놈들을 생체실험 및 공양물로 쓰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어린양 열마리쯤 심장을 꺼내서 마신에게 바치면 꽤 편해질건데."

"......"

"농담이야. '백웅이 귀환한다'는 전제니까 아직은 그렇게 못 하겠군."

제갈사가 히쭉 웃으며 말을 무마했지만 좌중에 있는 사람들 중 그 말을 진짜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다들 아직까지 백웅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기 때문에 제갈사가 자신의 본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진소청이 말했다.

"백웅이 전해준 깨달음이 있으며 그동안 내공을 빨리 진보시켰으니 조만간 우리 모두가 더 높은 경지에 오를거라 생각하오."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높은 경지에 오른 자가 뒤쳐진 자를 끌어올려주는 게 가능한가?"

"절대지경과 초절정 사이의 간극을 말하는 건가."

"그렇지. 지금 이 정도 판국이면 절대지경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아니, 너희들은 모두 절대지경의 고수가 되어야 해. 아마 진소청 네가 제일 먼저 절대지경에 오를테니까 묻는 거다."

"... 으음."

진소청이 침음성을 흘린 후 말했다.

"장담할 수 없소. 그 차이는 아주 미세하면서도 절대적... 내가 아무리 전해주려 해도 누군가가 그 벽을 넘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오."

"백웅이 절대지경에 도달하지 못하는 건 재능때문만이 아니란 건가?"

"그렇소. '깨달음'같이 추상적인 단어로 표현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이 세계의 법칙에 자신의 의지를 뻗쳐서 장악할 수 있느냐의 문제요. '세계' 그 자체에 자신의 무(武)를 접하는 게 절대지경이니 도달하는 순간 탈인간(脫人間)에 가까워지는 것. 결코 장담할 수 없을 것이오."

"자신없다는 소리를 아주 길게 하는구만..."

투덜거리던 제갈사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다들 역량을 올리는데 집중하도록 하지. 백련교가 강호를 일통한 다음에 중원의 정세가 혼잡해지겠지만 거기 끼어들 틈같은 건 없겠어."

그리고 약 일 년 동안 그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무공과 술법 등을 연마하는데 주력했다. 진소청은 오래지 않아 절대지경에 도달했으며 검마와 극호는 바로 그 직전까지 쫓아온 듯 했다. 명룡자와 청월 또한 흑요석을 건네받은 탓에 빠른 성장을 하는 게 가능했다.

가장 큰 성장을 보인 것은 바로 당산과 서문혜였다. 그들은 원래 수준이 낮았기 때문인지 성장하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였고, 특히 당산의 경우는 절세천재라는 걸 과시라도 하듯 순식간에 초절정의 문턱을 넘어서 뇌신류의 절기를 자유자재로 시전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서문혜는 당산같은 절세천재가 아니었으나 나름대로 재능이 있었으며 주변에 고수들이 지속적으로 대련과 조언을 해 주었기에 빠른 성장이 가능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가던 시점에 난데없이 큰 일이 생겼다.

쏴아아아 -

엄청나게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백련교주의 사자, 화신류의 한백령."

여우가면을 쓴 여인이 난데없이 본거지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백웅의 동료들은 모두 우거진 숲 속에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으며, 한백령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백련교주의 말을 전하러 왔다."

어떻게 여기를 찾아냈냐는 말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물어봤자 대답해주지 않을 게 뻔한데다가 한백령이 여기까지 찾아온 시점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일행의 대표인 제갈사가 느긋하게 앞으로 걸어나와서 말했다.

"무슨 말인데?"

"그대들과 손을 잡고 싶다."

"왜? 천하의 백련교가 이런 남만보다 더 남쪽의 오지까지 와서 우리한테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있나?"

지극히 합리적인 제갈사의 반문에 한백령이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

"... 너희가 풍신류 용비천을 죽였다는 걸 알고 있으나 그래도 너희 도움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 있군. 설명해라."

"얼마 전 의문의 신적 존재들이 교주를 습격해서 부상을 입혔다. 교주께서는 술수를 써서 자신을 도울 자가 너희밖에 없다는 것을 점쳤고, 내가 직접 너희를 부르러 온 것이다."

"......"

"백련교를 도와다오. 너희의 모든 조건을 수락하라 말씀하셨다. 너희가 풍신류 용비천을 죽인 것도 모두 잊겠다."

제갈사는 순식간에 상황을 유추했다.

' 팔부신중이군.'

백련교주를 습격한 이유는 아마 황궁과 팔부신중이 잠재적인 동맹관계이기 때문이리라. 어떤 협약이 물밑에서 오간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황궁의 주작 제갈유룡이 팔부신중의 힘을 빌어서 백련교를 없애려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왜' 지금에서야 그런 방법을 쓰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황궁의 제갈유룡은 백련교를 눈엣가시로 여겼지만 한 번도 팔부신중을 직접 움직일 수는 없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팔부신중을 동원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팔부신중처럼 강력하기 짝이 없는 패를 왜 이제서야 백련교에 사용한 것인가?

다음 순간 제갈사는 황궁과 팔부신중의 관계를 확정지었다.

' 팔부신중은 황궁의 [옛 지배자]와 동맹관계이자 동격에서 움직이는 존재들이군. 제사장이라지만 인간 끄나풀에 불과한 제갈유룡의 명령따위는 듣지 않아. 그렇다면 이번 일은...'

팔부신중의 독단인가?

' 아니... 아니야.'

하지만 화신(化神)인 팔부신중이 정말로 독단적인 행동을 할 리는 없다. 아무리 팔부신중이라고 해도 인간형태 한 명이 백련교주에게 부상을 입히는 건 불가능하므로, 적어도 두세 명이 합공했을 것이다. 그 정도의 규모라면 도출되는 대답은 하나 뿐이다.

' 화신을 움직일 수 있는 건 본체 뿐. 비신(秘神) 창힐의 의지다.'

황제의 최측근.

문자의 발명자.

한때 인간의 왕으로 중원을 지배했던 자.

역사 속에 모습을 숨긴 자.

현재는 암천향의 달으로 가서 신 그 자체가 되어버린 자.

바로 그 창힐이 자신의 화신을 움직여서 역사(曆史)에 끼어들기로 마음먹었다는 의미였다. 제갈사는 그 사실을 알아채자 위험하게 되었다는 걸 즉각 느낄 수 있었다.

' 안 좋군. 놈들에게는 인과율을 무화(無化)시키는 보패나 보물이 있어.'

예전에 창힐의 수하인 긴나라가 물밑공작으로 마왕 벽지상에게 그런 보물을 건네준 적이 있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창힐 측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역사에 인과율 걱정없이 끼어들 수 있는 기회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 능력을 써서 끼어들기로 했다면 상황이 매우 복잡해진다.

생각을 끝낸 제갈사가 말했다.

"백련교주는 얼마나 다쳤지? 공격한 놈들은 어떤 놈이었나?"

"팔 하나를 잃으셨으나 아직 건재하시다. 그리고 세 놈이 함께 공격했는데 하나는 새 날개를 펄럭였고 하나는 정파 삼대기인 걸선(乞仙)이었으며 또 한 놈은 뚱뚱한 놈이었다. 교주께선 전력을 다해 그들을 격퇴시키셨다."

제갈사는 표정이 변하지 않은 채 내심 한백령을 비웃었다. 한백령이 마치 백련교주에게 충성심이 깊은 것처럼 굴고 있지만, 실상은 팔부신중이 교주를 붕괴시키고 화신류까지 공격할까봐 방패를 내세우려 한다는 속셈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흐음. 놈들이 변신하지는 않았나? 인간형이었단 말인가?"

"그렇다."

제갈사는 말을 듣자마자 그들이 팔부신중 가루라, 건달파, 긴나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정말 강하군...'

그는 내심 침음성을 흘렸다. 본체도 아닌 인간형이 그 정도 실력을 갖고 있다면, 팔부신중 전원은 본체로 변신하는 순간 교주 정도는 쉽게 죽일 수 있는 힘을 갖고있다는 소리다. 아무리 합공이라지만 그들 셋이 갖고 있는 힘은 충분히 강력했다. 팔부신중이 본체를 드러내서 백웅 일행을 덮치는 순간 감당할 방법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제갈사가 말했다.

"좋다. 교주와 이야기해 보겠다. 대신 한 놈을 백련교 본단에 불러줘야겠다."

"누구를 말하는 거지?"

"용중일."

그리고 제갈사는 일행과 함께 짐을 꾸려서 곧장 한백령을 따라서 백련교로 갔다.

제갈사의 계산으로는 이미 남쪽 대륙은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이미 천인 삼장법사가 술수를 써서 백웅을 찾아온 적이 있어서 위치를 파악당해 버렸으며, 남쪽대륙 어디로 도망친다 해도 쉽게 찾아낼 수 있으리라. 피할 수 없다면 백련교주와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는 게 옳았다.

일행이 중원에 도착해서 항구에 내리자 제갈사가 당산에게 말했다.

"너는 다두왕국으로 가서 강력한 술법사를 대여해 와라. 누굴 말하는지는 알지?"

당산은 백웅과 달리 머리가 좋아서 금방 말을 알아들었다.

"알아. 백웅이 지난 생에서 빌려오려다가 실패한 예수회 최강의 술사. 음... 교섭하려면 뭔가 가진게 있어야 하는데."

"황금을 좀 주지."

"해 보지. 안되도 나보고 뭐라하지 마."

"안되면 거기 칼 쓰는 놈이라도 빌려와."

이윽고 일행이 화신류의 화덕 염령을 이용해서 감숙성에 있는 백련교 본단에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련교주를 만날 수가 있었다. 백련교주의 팔이 잘렸다는 건 사실인듯 그의 왼쪽 팔은 사라져 있었다. 제갈사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말했다.

"당신의 육체는 이족화 되어있을텐데 재생력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건가?"

백련교주는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 가루라란 자의 입에서 토해진 불꽃은 멸염(滅炎)이라 모든 마력을 삭제하는 위력이 있었다. 멸염에 당한 팔이기에 재생이 되지 않는다. 그 불꽃은 신격에게도 직접 타격을 주는 게 가능해 보였다.]

"그런가."

[ 그대들이 신비한 능력과 배후를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와 백련교를 도와다오.]

제갈사가 그를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

"독고운천 너는 백련교 제사장이자 신녀의 후예겠지? 그렇기에 점을 쳐서 우리를 부른 거 아닌가?"

[ ......]

"네게도 초상능력이 있는지 알고 싶군."

[ 많은 걸 알고 있군...]

백련교주는 제갈사에게 살의를 일으켰으나 제갈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진득하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수단방법 가릴 상황이 아냐. 예상하고 있겠지만 지금 너를 친 놈들은 창힐의 부하이자 마왕에 버금가는 존재들. 놈들한테 맞서려면 지금 우리의 동맹체보다 10배 이상의 힘이 필요하니까 서로 정보공유가 필요하다."

제갈사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팔부신중이 신화(神化)해서 본체를 드러내서 동시에 공격해오는 경우!

아무리 그래도 인과율때문에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겠지만 한두 놈이라도 본체를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전멸위기는 차고 넘쳤다.

[ 정보공유라... 이쪽만 정보를 퍼주는 건 공유라고 하지 않는다.]

"알아. 이쪽도 제대로 정보를 주지."

백련교주는 그제야 대답했다.

[ 그 말대로다. 미약하게나마 점술로 미래를 읽는 능력의 잔재가 내 핏줄에 있지.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능력이 약해진 탓에 모든 힘을 끌어올려서 간신히 쓸 수 있었다.]

"그랬군. 그럼 팔부신중이 널 공격한 이유는?"

[ 놈들은 제갈유룡을 도와주러 왔다고 했다.]

"......"

본인들 이야기로 그렇게 이야기했다면, 아마 창힐이 원하는 것은 현재 삼대세력의 균형을 깨뜨리고 제갈유룡이 중원을 편하게 장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여태껏 백웅의 전생행적을 본다면 -

' 이런 행동은 창힐 본인에게도 부담이 되는 것일 터.'

아니, 틀림없다.

창힐 또한 아마 종언을 기다리며 힘을 비축하는 존재일 게 분명하므로 - 쓸데없는 힘낭비를 하지 않으려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도 일부러, 백웅이 암천향에 가자마자 지상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가 있는가?

생각을 정리하던 제갈사는 문득 씨익 웃었다.

[ 왜 웃나?]

"아니 그냥."

백웅이 암천향에서 뭔가 해낸 것이다.

정확히 뭘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창힐이 백웅을 이용하거나 견제하기 위해서 밑밥을 뿌려야 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 잘 하고 있구만 주군.'

제갈사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알아채고는 백련교주에게 말했다.

"계책은 있다."

[ 정말인가?]

제갈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백련교의 전력을 다해서 우리를 도와라. 그럼 팔부신중이 한꺼번에 쳐들어와도 어떻게든 쫓아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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