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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673화 (67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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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최후의 봉인!

그건 나도 짐작하고 있던 것이었다. 내가 신공표의 봉인을 풀 때 사용했던 힘은 실타래처럼 꽁꽁 묶여있는 봉인의 8할을 해제했으나, 나머지 2할은 굉장히 견고하게 주박되어 있어서 섣불리 풀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게 천계 삼청의 일인인 태상노군이 절교교주 신공표를 봉인하기 위해 진력을 쏟아놓은 '진짜 봉인'일 것이리라.

그리고 그 봉인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신공표가 나를 죽일 듯 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 뜻에 따라왔던 게 분명하다. 자기 말로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풀린다고 허세를 부렸지만 그런 거라면 내 뜻에 따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 풀어줄 수 없어!'

그걸 푸는데 드는 힘은 최소한 음신지력 20년치를 넘어선다. 게다가 그걸 풀었을 때 신공표가 날 도와줄지는 미지수였다. 공연히 팔부신중 여섯 명과 싸우느니 그냥 나를 버리고 혼자서 현실세계로 되돌아갈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계산을 끝내고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못 해! 누구 좋으라고."

음신지력을 벌써 꽤 소모했다. 이번회차에서 얻은 음신지력의 대부분을 신공표의 봉인해제에 썼으니 한번의 생이 날아간 셈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추가로 20년치 이상의 음신지력을 소모하게 되면 지금까지 쌓아온게 너무 아까웠다. 차라리 자살을 해서 다음 전생을 시작하는게 몇 배는 나은 것이다.

흉신의 주문처럼 일회성 소모주문과는 다르게 음신지력은 삶을 거치면서 계속 적공(積功)되는 능력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흉신의 주문보다 훨씬 귀중했기에 더 이상은 함부로 소모할 수가 없었다.

내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신공표가 말했다.

[ 후후, 그럼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셈이지?]

"......"

[ 참고로 여의봉의 신축자재 능력은 안 써줄 거다. 내 부탁을 들어줄 때까지.]

자살해야하나?

거리가 삼사십리 떨어진 안전장소라 해도 팔부신중의 신적능력을 생각하면 뒤쫓아오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도망칠 방법도 없다.

' 근데 자살하기엔 뭔가 좀 아까운데...'

토요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낸 건 큰 성과지만 이렇게 죽어서 남는 게 있나?

현실세계로 돌아가는 정도는 해야 본전이 아닌가?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신공표가 말했다.

[ 약속하지. 내 봉인을 풀어주면 저 놈들을 막아주겠다. 그러니...]

"네 약속같은 건 믿을 수 없어."

[ 뭐?]

"일단은, 최선을 다하고 나서 할 얘기니까!"

나는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이란 걸 써 보기로 마음먹었다. 여기까지 몰렸으니 아마 써도 괜찮을 것이다.

' 설마 전투가 아니라 도주에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는 목갑에서 제갈부를 꺼내서 명령했다.

"제갈부! 불사초래(不死招來)의 술법을 쓰고, 나와 생명력을 공유해라!"

"알았다."

우웅

제갈부가 술법을 시전하자 나와 제갈부의 이마 위에 흰색 원이 떠올랐고 천천히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나는 몸 속에서 기운이 급격히 가라앉으면서 몸이 크게 무거워지는 걸 느꼈고, 제갈부도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신공표가 히죽 웃었다.

[ 재밌는 발상이군. 후대의 대술법사가 만들어낸 술법인가? 하지만 그 하중(荷重)을 과연 인간의 몸으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좀 닥쳐..."

[ 시전자와 피시전자, 둘 다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있지 않으면 성립이 불가하겠군.]

역시 저 놈은 혼돈의 재능으로 한번에 이 술법의 진가를 알아낸 모양이었다. 나는 몸에 엄청난 부하가 걸리면서 머리속이 끊어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몸에 힘을 주었다.

끼기긱

관절이 아프면서 삐걱거리지만, 점차 몸에 활력이 돌아온다. 불사초래의 술법에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다.

' 사용할 수 있는 건 딱 한 식경.'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제갈부의 몸에 있는 중요요혈을 짚어서 힘을 크게 끌어내며 몸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후 눈을 크게 부릅뜨며 품속에서 금침을 꺼내들었다.

파밧

가주와 직계에게만 전승되는, 화씨일문 최악(最惡)의 비기가 펼쳐진다.

"대라멸진(大羅滅盡)을 시행한다."

필멸일광(必滅一光)!

쿠구구궁!!

나는 다음 순간 제갈부와 함께 몸을 띄워 모든 내공을 소모해서 전신의 팔문둔갑(八門遁甲)을 열었다. 내 몸은 물론이고 제갈부까지도 대라멸진으로 인해 팔문이 개방된 상태가 되었고, 육체능력은 일순간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나는 전신에 신이나 다름없는 힘이 흐르는 걸 느끼며 생각했다.

' 역시 예전보다 수십 배나 강해졌군.'

대라멸진은 사용자의 기본능력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과거 절정고수 수준일 때보다 훨씬 강해졌으니 대라멸진의 효과도 그만큼 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전신의 힘을 모두 끌어내며 외쳤다.

"따라와!!"

콰앙

한 번 땅을 박차는 순간이었다. 나는 예전에 여의봉을 최대속도로 늘일 때, 그 이상으로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걸 알 수 있었다.

일보간산(一步看山)!

단 한번의 걸음으로 나는 세 개나 되는 산봉우리를 뛰어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미 음속을 돌파한지는 오래이고, 수십 배를 훨씬 넘는 어떤 지점에 이르러 있었다. 이 정도의 가속이라면 내 움직임만으로도 폭풍우가 일어날 지경이리라.

꽈광

옆에서 제갈부 또한 나를 따라오는 게 느껴진다. 나는 미친듯이 대라멸진을 써서 달리면서 생각했다.

' 바다에 도착하면 어떻게 하지?'

그땐 그때다.

나는 일단은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으아아아!!"

꽈광

중간에 야트막한 산봉우리나 절벽이 보이면 피하지 않고 그대로 몸통박치기로 들이박았다. 그래도 내 몸이 더 강했으므로 절벽째로 파괴해 버리고 무자비하게 달려나갔다.

콰과과광

달리기와 함께 폭음이 연쇄적으로 울렸다. 생명체에게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속도까지 가속하면서 달리자 나는 전신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몸의 팔문이 닫히려고 하는 순간 술법이 발동했다.

생명력공유!

그와 동시에 제갈부의 몸에 있던 힘이 내게 흘러들어와서 대라멸진의 상태를 유지시켰다. 나는 아직까지 너끈함을 느끼면서 미친듯이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어느덧 수천 리를 넘게 달려서 어딘가에 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때까지가 딱 한 식경이었고 나는 서서히 대법이 풀리는 걸 느끼며 기절하듯 주저앉았다.

풀썩

' 바닷가다...'

다행히 바다를 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해도 대라멸진 한번으로 이 암천향을 한번 가로지른 셈이 되는 건가?

나는 팔문이 천천히, 안정적으로 닫히는 걸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제갈부도 내 옆에서 따라서 쉬고 있자 신공표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 과연. 본디 펼치면 죽을수밖에 없는 초강화대법을 유지하는 비결으로 제한적 불사술법과

생명력 공유를 응용한 것인가? 발상 자체는 매우 창의적이구나.]

"......"

[ 그 술법의 의의는 강화대법의 지속시간을 높이는 데 있겠군.]

"너 똑똑한 거 알았으니까 좀 쉬게 놔둬..."

나는 한숨을 쉬었다. 신공표가 한 말이 다 맞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일시적으로 불사신으로 만드는 술법!

그리고 생명력 공유!

이 두 가지의 고급술법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원래는 사용시간이 반 각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펼치고 나면 죽을 수밖에 없는 대라멸진을 진짜 필살기로 승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불사초래의 술법은 한 식경동안 몸을 불사신으로 만드는 고위술법인데 이걸 써서 대라멸진의 지속력을 높이고, 생명력을 초절정고수인 제갈부와 공유함으로써 탈진할 확률을 낮추며 안정성을 더 높인 것이다. 두 명의 생명력이 공유되면 대라멸진의 소모속도가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 2개의 상위술법을 동시에 시전하는 건 최고경지의 술사나 가능한 일이기에 지금의 내가 혼자서 시전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문제 또한 제갈부를 인형으로 만들어서 대신 시전하게 함으로써 해결한 것이다.

이 술법의 창안자는 제갈사였다. 제갈사는 대라멸진을 자폭기로만 놔두는 걸 아깝게 여겨서 편법으로라도 완성시키기를 원했고, 그 결과 [인형이 된 제갈부]를 전제로 한 괴이한 복합술법이 생겨났다.

이로써 대라멸진의 유지시간을 반각에서 한식경으로 늘리는데 성공했으며, 유사시에 강적에 대처하는 필살기를 하나 더 만든 셈이 된 것이다.

' 원래는 이걸 써서 백련교주를 암살할 생각이었지만... 도주에 쓰게 될 줄은.'

제갈사가 제안했던 것은 바로 나와 제갈부가 동시에 대라멸진을 써서 힘을 증폭시킨 후, 내가 전방에서 교주를 압박하고 제갈부가 합공하는 전략이었다.

본래 나와 제갈부가 두 명이서만 덤벼들면 교주를 이기는 건 턱없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대라멸진으로 전력을 열 배 이상 증폭시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정도의 전력이면 초기의 교주 정도는 암살하고도 남았다. 옆에 호법사자가 한 명 있더라도 같이 없애버릴 자신이 있었다.

나와 제갈부 둘이서만 가야하는 이유도 있었다. 대라멸진으로 힘을 쓰면 사실 기술을 거의 쓰지 못하고 강대한 힘에 휘둘릴 확률이 높기에 아군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공연히 거치적거리기만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상황이 어찌나 꼬였는지, 이 절묘한 술법을 기껏해야 팔부신중에게서 도망치는 용도로 쓰게 된 것이다. 그렇다 해도 기껏 한 식경을 달려서 대륙을 가로지른 셈이었으므로 효과가 굉장하긴 했다.

내가 쉬고 있을 때 신공표가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 거기 세뇌되어 있는 인형놈은 별로 중요한 놈이 아닌가 보지?]

"무슨 소리야."

[ 그 술법은 언뜻 완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술자에게 엄청난 불이익이 있지. 방금 술법을 시전함으로써 저 술자의 수명이 20년은 깎였을 텐데.]

"......"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곡이기도 했다.

' 동료들에게 대라멸진 연장의 복합술법을 해달라고 할 수 없는 이유...'

언뜻 2개의 상위술법을 이용해서 대라멸진을 연장하는 건 완벽해 보였지만 그렇지 못했다. 왜냐하면 생명력을 공유하면서 불사를 유지하고, 거기에다가 대라멸진으로 팔문을 개방하기까지 하면 시전자의 생명력이 크게 소모된다. 그 결과는 방금 신공표가 말했듯이 제갈부의 생명력이 20년치는 날아가는 게 되었고, 그건 술법중에서도 금술(禁術)이라고 불리는 악독한 것에만 붙을 정도의 제약이었다.

그렇다 - 이건 정상적인 술법이 아닌 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놈에게 부담을 떠안겨야 하는 모순이 있는 것이다. 나는 차마 이 술법을 망량이나 천우진에게 시전해달라고 할만한 염치가 없었다. 물론 그들은 부탁을 들어줄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한번뿐인 생명을 소모시키라는 건 차마 할 수 없는 소리다.

[ 그 놈은 네게 있어서 죽일만큼 미운 놈인가 보지?]

신공표가 한 말에 양심이 뜨끔했다.

정말로 제갈부가 그 정도로 잘못했냐 하면 확실히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나 또한 편의때문에 제갈부를 이용해먹는 셈이었지만 나는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 이 녀석은 보통인간들이 괴롭힘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불의(不義)한 편에 붙었어. 타인의 감정 따위는 눈꼽만치도 생각지 않는 놈이었지. 이 놈이 인신공양을 간접적으로 돕기도 했어."

[ 변명하는 것 같군. 후후... 그런 이기적인 행위를 했다고 해서 네게 인형으로 조종당해도 될 이유가 되는가? 다른 문제 같다만.]

"......"

[ 거악(巨惡)이 소악(小惡)을 괴롭히는 건 아니냐?]

나는 으르렁거렸다.

"입이 뚫렸다고 멋대로 말하지 마. 다 사정이 있어."

신공표가 웃었다.

[ 결국 너 또한 네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할 뿐이구나. 좀 더 솔직하게 약육강식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게 어떠냐?]

"내가 위선자라고 할 셈이냐?"

[ 네가 내세우는 선(善)이란 걸 모두가 받아들일 수가 있다면 내가 틀렸겠지...]

"제길."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공표의 말에 휘둘려봤자 내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다.

' 지금 이런 논쟁이나 할 때가 아냐.'

내가 딱히 옳은 건 아니지만 저 녀석은 지금 나를 말로 괴롭히고 싶을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제갈사 때 겪었으므로 나는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신공표. 거래하자."

[ 어떤 거래 말이냐?]

"음신지력으로 최후의 봉인을 풀어주는 건 할 수 없어. 이 힘은 내게도 소중한 것이라서 더 이상은 쓸 수 없다. 하지만 현실세계로 복귀한다면 풀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 그 때까지는 네게 협력하라 이 말이냐?]

"그래."

그러자 신공표가 코웃음을 쳤다.

[ 흥! 이번에는 내가 널 믿을 수가 없구나. 네놈이 나를 현실세계로 돌아가는데 이용해 먹고는 더 강한 봉인으로 나를 금제하려 한다면?]

"......"

[ 난 처음의 조건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네놈이 봉인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절대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 때였다.

화르륵!!

화룡신검에서 화룡진인의 영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 절교교주 신공표. 고집을 부린다면 결국 우리 모두 팔부신중에게 잡혀서 창힐의 노예가 될 뿐이다. 그걸 모르는게 아닐텐데.]

신공표는 화룡진인이 마음에 안 드는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 잘난체 하지 마라. 그것까지 네가 걱정해줄 셈이냐?]

[ 다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억지를 쓰냐는 말이다.]

[ 후후! 그렇다면 어디 네가 증거해 봐라. 네 존재를 걸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말해보란 말이다.]

신공표가 비직 비웃음을 흘렸다.

[ 그런 약속도 할 수 없으면서 이쪽만 너희를 믿으라고? 웃기는 소리.]

[ 어쩌자는 거냐?]

[ 내 봉인을 풀어라. 난 아까부터 이야기하고 있었을 텐데.]

분위기가 살벌했다.

신공표는 절대 봉인해제에 대해서 양보해주지 않을 셈인 듯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신공표의 봉인에 힘을 써 버리면 그녀가 배신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이도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마음을 먹고 말했다.

"알았어. 봉인이고 지랄이고 다 포기하지."

[ 뭐라고?]

나는 목갑에 있던 수요를 꺼내들고 말했다.

"여긴 암천향이니까 근처에 있는 [옛 지배자]한테 이걸 바치고 나를 현실세계로 돌려보내달라고 할 거야. 제일 쉬운 방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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